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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진성의 눈앞에 지장보살 석상 하나가 보였다.

         

       그 크기는 대충 1m쯤 될까?

       한때는 좋은 돌을 쪼아서 만들어내었을 지장보살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인지 곰팡이가 피고 몸 곳곳에 이끼가 끼어 있었다. 게다가 풍파를 그대로 맞기라도 한 모양인지 곳곳이 깨져 있었으며, 연꽃이 조각되어 있어야 하는 아랫부분은 썩은 낙엽에 파묻혀 있었다.

       지장보살의 한 손은 반장(半掌)을 하고 있었고, 남은 한 손은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지팡이는 여섯 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돌로 조각된 것이 아니라 지팡이만 쇠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녹이 잔뜩 끼고 거의 부서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성은 지장보살의 앞에 가서 찬찬히 그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실망이라도 한 듯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세워진 것이구나.”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지장보살이 주술과 연관이 없었던 것이었다.

         

       주술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쿠로츠루기미네의 흉흉한 소문을 억누르고 산에서 헤매다 죽은 사람을 위령하기 위해 세운 석상인 듯 보였다.

         

       진성은 지장보살 석상이 주술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자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었고, 숲속에서 헤매도 상관이 없다는 듯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거침없는 모험심에 하늘이 선물이라도 준 것일까?

         

       또 하나의 지장보살 석상이 진성의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보인 석상은 깨져있었다.

         

       두 번째 지장보살 석상은 재난 때문에 그런 것인지, 혹은 어떤 불한당이 그런 것인지 머리가 없었다. 목 부분이 산산이 깨져 있었고, 몸에서 분리된 머리는 굴러간 것인지 파묻혀버린 것인지 맨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 지장보살 석상 역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인지 매우 더러웠는데, 새똥으로 범벅이 되어 악취를 가득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악취를 풍기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그 주변은 꽤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조금 전의 지장보살이 썩은 낙엽에 가득 뒤덮여 있던 것과는 다르게 누군가가 빗자루로 쓸기라도 한 듯 흙이 드러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개를 돌려보면 사람이 오간 흔적 역시 보였다. 자그맣지만 길도 나 있었고, 사람이 손으로 붙잡은 듯 자국도 있었으며, 쓸데없이 뻗은 나뭇가지들이 사람이 오갈 때 몸에 걸리지 않도록 잘 정리되어있었다.

         

       ‘시현류에서 한 일이겠지.’

         

       그리고 진성의 생각이 씨가 되기라도 한 것일까?

         

       저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진성은 낙엽이 쓸리는 소리에 몸의 자세를 꼿꼿이 펴고, 얼굴 근육을 잘 풀었다. 그리곤 인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정신없이 지장보살을 바라보는 척을 했다.

         

       “누구십니까?”

         

       그리고 사람이 도착해 진성을 보고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얼굴에 서린 표정은 나이에 걸맞은 것이 되어있었다.

         

       “어?”

         

       진성은 낭패라도 한 것처럼 당황스러운, 그리고 범죄를 저지르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몸을 돌리자 보인 것은 검도복을 입고 있는 한 남성이었다.

         

       야쿠자를 연상하게 만드는 험상궂은 표정에 까까머리를 한 남성은 진성을 짜증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인지 옆에 차고 있는 목검을 언제든 뽑아 휘두를 수 있도록 목검의 자루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진성은 그런 남성의 모습에 약간 겁을 먹은 것처럼 주춤거리며 슬쩍 표정을 만들었고, 양손을 위로 들면서 소리쳤다.

         

       “자, 잠시만요! 수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여긴 왜 들어왔습니까?”

       “그, 그게….”

         

       진성은 그의 질문에 눈을 굴렸다. 왼편에 있는 썩은 나무를 바라보기도 하고, 오른쪽에 있는 바위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곤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무인을 바라보았다가 슬쩍 눈을 내리깔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 그게…. 실은.”

       “실은?”

         

       후-우.

         

       진성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듯 천천히 말했다.

         

       “심령 체험을 좀….”

         

       그 목소리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묻어 있었다.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자신이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냐는 억울함.

       몰래 들어왔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들켰다는 듯한 민망함.

       자신의 눈앞에 있는 무인이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큰소리도 치지 못한 채 자신의 처분을 눈앞의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창피함까지.

         

       진성의 목소리는, 진성이 하는 연기는 ‘심령 체험하러 몰래 사유지로 들어왔다가 관리인에게 걸린 철없는 대학생’ 그 자체였다.

         

       무인은 진성의 말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심령 체험?”

         

       무인은 짜증을 삭히기라도 하려는 듯 푹푹 한숨을 쉬고는 진성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보아하니 능력자는 아닌 것 같은데….”

       “네? 네.”

       “후.”

         

       무인은 얼빠진 진성의 대답을 듣고 목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진성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그의 목덜미를 확 손으로 잡아채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왔어요?”

       “네? 그….”

       “여기 사유지예요, 사유지. 그것도 시현류에서 수련장으로 쓰는 사유지라고.”

         

       그는 으르렁거리듯 진성에게 말했다.

         

       “칼 차고 다니고, 무공으로 베지 못하는 게 없는 시현류의 무인들의, 사유지.”

       “네….”

       “이해했어요?”

         

       무인은 위협하듯 진성의 가슴을 검지로 콕콕 찔렀다.

         

       “뭐 자위대 주둔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게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이라 이겁니다. 당신이 갑자기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고, 반사적으로 우리 무인들이 칼 휘둘렀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는 분노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진성에게 훈계하기 시작했다.

         

       “기가 실려 있으면 당신 몸은 두 쪽이 나고, 기가 실려있지 않아도 당신 머리통이 깨져서 죽었을 겁니다. 아니면 간신히 살아도 어디 뇌사 상태가 되어서 평생 누워서 지내거나.”

       “허억.”

       “게다가 말이에요. 사유지인 거 다 알고 나서도 들어온 것 같은데…. 심령 체험이 다 그래요? 자기 즐거워지자고 남의 땅에 막 발을 들이고, 마구잡이로 돌아다녀도 되냐 이 말이에요.”

         

       무인은 목덜미가 잡힌 진성을 그대로 바위 쪽으로 질질 끌고 간 뒤 강제로 앉혔다.

       그리고 화난 목소리로 진성에게 협박에 가까운 훈계를 이어갔다.

         

       “게다가 능력자도 아닌데 목숨이 열 개라도 되나 봅니다? 심령 체험? 말이 심령 체험이지 지금 귀신 있나 없나 보러 다니는 거 아니에요?”

       “네.”

       “악령이나 악귀가 진짜로 튀어나오면, 뭐 감당이나 할 수는 있고?”

         

       진성은 무인의 말에 발끈한 듯 옷 주머니에서 비닐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하얀 소금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여기 소금도 준비해왔어요. 이거면 안전합니다!”

       “허? 소금? 와…. 진짜….”

         

       진성의 철없는 대학생이 발끈하는 듯한 연기에 무인은 기가 차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소금을, 그것도 한주먹도 안되는 양으로 퇴치하려고 했다고요? 이런 미친….”

       “왜요. 이거면 된다고 들었는데!”

       “와, 사형, 사매들이 가끔 이런 사람이 온다고 하기는 했는데…. 직접 만나니까 어이가 없네 진짜.”

         

       무인은 머리가 아파지는지 관자놀이를 만지며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진성의 멱살을 잡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이 새끼야. 목숨 아까우면 이딴 병신 짓 하지 말고 똑바로 살아.”

       “허, 헉.”

         

       진성은 무인의 행동에 겁먹은 듯 표정을 만들었다.

         

       “너 오늘부터 이 짓거리 그냥 끝내. 알았어?”

       “아니, 왜….”

       “왜? 그냥 끊어. 만약 안 끊는다? 그런데 그게 내 귀에 들어가거나 내 눈에 보인다? 그럼 내가 목검으로 온몸의 뼈를 부숴버릴 거야. 알겠어?”

         

       무인의 협박에 진성은 겁을 먹기라도 한 듯 몸을 슬쩍 떨고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무인은 만족한 듯 멱살을 풀었고, 진성은 힘이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바위 위에 축 늘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진정한 듯 몸에 힘을 주고 다시 제대로 된 자세를 취했고, 눈치를 보는 듯 슬쩍슬쩍 무인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나는 그냥 이야기 보고 궁금해서 찾아왔는데….”

         

       그 중얼거림을 들은 무인은 진성의 말에 의아한 듯 물었다.

         

       “이야기?”

       “네….”

       “무슨 이야기?”

       “그냥 무서운 이야기요.”

       “어디서 봤는데?”

       “네? 당연히 인터넷이죠.”

         

       무인은 호기심이 생긴 것인지 진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얼른 말을 하라는 듯 눈짓했고, 진성은 그 눈짓을 받으면서도 ‘눈치 없는 대학생’처럼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그러자 무인은 눈치를 몇 번이고 주어도 알아채지 못하는 진성의 모습에 속이 터져버리기라도 한 듯 버럭 화를 내었다.

         

       “이야기해 보라고!”

       “어, 네. 네!”

         

       진성은 무인의 재촉에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게, 언제쯤이었더라. 날짜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제가 언제나처럼 넷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다니고 있었을 때였을 겁니다….”

         

       그렇게 진성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진성이 지어낸.

       시현류와 정치인 우치카와 료스케를 옭아매고, 진성이 앞으로 만들어낼 재앙에 당위성을 만들어낼 이야기가.

       한없이 미신에 가깝지만, 사람을 선동하고, 공포를 매개로 들불처럼 광기를 퍼져나가게 할 허구의 이야기가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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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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