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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175화. 북부 원정대 ( 5 )

       

       

       

       

       

       눈으로 뒤덮인 북쪽의 땅에서 저녁은 한 걸음 더 빠르게 다가온다. 집집마다 저녁 준비를 위한 굴뚝의 연기가 분주하게 올라가는 시간.

       

       “아, 용사님. 그렇지 않아도 찾아다녔는ㅡ”

       

       한스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케니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

       

       휙.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지나치는 케니스.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에는 싸늘한 냉기만이 가득하다. 한스가 반갑게 들어 올렸던 손을 머쓱하게 내렸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훈련 중 마주쳤을 때도, 개인 정비 시간에 일부러 찾아갔을 때도.

       

       케니스는 그저 한스를 못 본 척, 못 들은 체 하며 빠르게 도망쳤다.

       

       인정하기 싫지만, 결론은 분명했다.

       

       ‘…혹시 나, 뭔가 잘못했나?’

       

       도대체 뭘?

       

       혹시 자신이 용사님에게 굉장한 실례를 저질렀던가? 아니면, 무언가 기분 나빠질 만한 행동을 했나?

       

       그것도 아니라면, 달에 한 번 찾아온다는 ‘그 날’인가?

       

       이유 없는 부당한 폭력이 한스를 향해 쏟아지는 듯하다. 한스가 필사적으로 지난 기억을 되짚었다. 자신이 한 행동 중에서 용사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짓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고민해봐도 도통 알 수가 없다. 답답한 기분만 쌓여간다.

       

       “음? 너 혹시 한스냐?”

       

       “어?”

       

       길 가운데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한스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귀에 익은 목소리다.

       

       휙-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전신에 털이 수북한 아주 반가운 녀석이 보였다.

       

       “로한…? 털북숭이 로한?! 너 맞지? 이게 얼마 만이야!”

       

       “이야, 이거. 한스 맞네! 원정대가 왔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진짜 너도 여기 왔다고?”

       

       언제부터인가 사도 부대에서 다른 부대로 옮겨갔다는 말 이후로는 도통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로한이었는데, 설마 멀리 떨어진 북부에서 마주칠 줄이야.

       

       한스가 로한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아는 얼굴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아니 로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얼굴 보기가 그렇게 힘들어? 다른 부대로 가서 꿀 빨고 있다는 소문…은… 어?”

       

       한스의 말이 점차 흐려진다. 시선은 로한의 머리 위로 향하고 있다. 

       

       그의 머리 위에는 한 쌍의 짐승 귀가 달려 있었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삼각형의 귀.

       

       멋들어지게 뻗은 늑대의 귀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귀가 이리저리 쫑긋거리며 움직인다. 인제 보니 다리 사이로 살랑이는 꼬리도 보였다. 

       

       한스의 턱이 쩍 벌어졌다. 북실북실한 털을 볼 때마다 짐승 같은 놈이라고 놀렸지만, 설마하니 정말 짐승의 피가 흐르고 있었을 줄이야.

       

       “너, 너너… 너! 네가 수인이었다고?!”

       

       “아 이거? 그렇다고 하더라고.”

       

       로한이 태연하게 말하며 귀를 긁적였다. 별일 아니라는 모습이다. 마치 자고 일어나서 사과 하나 먹었다- 이런 일상적인 느낌.

       

       “서로 할 얘기도 많은데, 뭐라도 좀 먹으면서 말하자고. 내가 좋은 가게 알고 있으니까.”

       

       “허. 아니… 이게, 뭔…”

       

       손짓한 로한이 앞서 걸으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좌우로 흔들리는 늑대의 꼬리. 로한 본인은 태연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한스는 뭐라 대꾸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고는 로한의 뒤를 따라 달렸다.

       

       “같이 가!”

       

       

       

       *****

       

       

       

       으하하하ㅡ!

       

       시끄러운 웃음소리, 잡다하게 나누는 대화, 경쾌한 음악 소리가 가득한 주점. 노릇하게 구워진 이름 모를 고기, 각종 채소와 고기를 넣고 팔팔 끓인 수프 따위의 고소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로한은 주점에 들어서자 곧장 무슨 요리를 잔뜩 주문하더니, 차례대로 나오는 음식들을 미친 듯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가득 채우는 고기의 향연. 고기, 고기, 고기. 오직 고기만으로 가득하다.

       

       나온 음식들을 보는 한스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어떤 인간이 무식하게 이딴 식으로 고기만 처먹는가.

       

       “아니, 야. 좀 다른 것도 시켜야 되는거 아니야? 뭔 음식이 죄다 구운 고기, 훈제 고기, 삶은 고기 이런거 밖에 없어.”

       

       “몸이 이렇게 되고 나서 고기가 엄청 땡기더라고. 약간 몸에서 원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래?”

       

       자신이 본 다른 수인들은 저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한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쩌면 로한의 수북한 털은 정말로 수인의 피가 진하게 흘러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먹어 치우기를 한참. 중간중간 대화도 나누면서 먹었더니,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음식들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가는 이야기도 다양했다.

       

       로한이 옮겨간 부대에 관한 이야기, 꼬리털이 날려서 불편하다는 한탄, 그간 사도 부대에서 있었던 잡다한 사건사고…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어갈 때쯤, 한스는 용사님이 자신을 피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 했다. 

       

       “우걱… 그래서, 쩝. 네가 후룹- 뭐라고 했지?”

       

       “…”

       

       로한이 입을 열 때마다 작은 부스러기들이 튀어나온다. 번들거리는 기름이 잔뜩 묻은 입술과 고기 찌꺼기가 튀어나오는 저 모양새라니.

       

       며칠 굶은 거지도 저렇게 먹지는 않을 것이다. 로한을 바라보는 한스의 눈이 차게 식어 있었다.

       

       “…내가 용사님한테 왜 무시당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으음- 꿀꺽. 어으, 맛있다! 꺼으윽-!”

       

       걸쭉한 트림 소리. 로한의 뱃속에는 분명 커다란 뿔 나팔이 박혀 있을 것이다.

       

       한스가 눈을 잔뜩 찌푸렸다. 

       

       “제발 로한! 오크 새끼들도 너처럼은 안 먹겠다!”

       

       “끄윽ㅡ! 후우. 난 척 보니까 대충 이유가 보이는구만. 넌 이걸 모르냐?”

       

       “…뭐?”

       

       한스가 몸을 앞으로 잔뜩 기울였다. 별생각없이 하소연한 것인데, 뜻밖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이빨 사이에 낀 고기 조각을 빼던 로한이 씩 웃었다. 딱 보니까 한스는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는 모양. 그렇다면 쉽게 알려줄 수 없는 노릇이다.

       

       “뭐, 뭔데. 왜 웃는 건데.”

       

       “끄윽ㅡ 설마 공짜로 알려달라 할 셈이야?”

       

        “여기 내가 살게!”

       

       “좋아.”

       

       빠르게 이루어진 거래.

       

       로한이 자세를 고쳐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겉보기에는 이유도, 원인도 모를 용사님의 일방적인 외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 원인이 보이는 법.

       

       “야 한스. 만신전에 그 뭐냐… 에로프? 에로후? 뭔 귀 긴 여자 한 명 왔다고 하지 않았냐?”

       

       “에스텔 양? 그리고 에로프가 아니라 엘프야.”

       

       “그러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너 이 새끼…”

       

       로한이 커다란 고기를 한 입 쭈욱 뜯어 먹으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봐. 엘프가 존나 이쁘다던데. 너, 용사님 앞에서 그 엘프랑 얘기하거나 딴눈 판 적 있는 거 아니야?”

       

       “어, 어? 아, 아니 그게 여기서 왜 나와?”

       

       한스의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짐작 가는 게 있는 모양. 단서를 잡은 로한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있지? 있네, 이 새끼.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있긴 한데, 그게 왜.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지. 그것도 아주 많이.”

       

       손깍지를 낀 로한이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질투하는 거다.”

       

       “…뭐?”

       

       이 무슨 오크가 경전 읽는 소리란 말인가?

       

       질투? 용사님이? 왜?

       

       수많은 물음표가 한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로한이 삶은 고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그 왜, 어? 딱 보니까 네가 에스엠? 에스퍼? 아무튼 그 여자한테 시선을 자꾸 주니까 심통이 나신 거 같은데. 잘 좀 하지 그랬냐.”

       

       “…에이. 그건 너무 억측 아니야?”

       

       한스가 머뭇거리며 로한의 추측을 부정했다. 용사님이 매력적인 여자라는 것은 틀림없고, 용사님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자신에게 질투라니?

       

       “용사님이 나 같은 녀석 때문에 왜 질투하겠어? 뭐가 아쉬워서. 더 멋지고 잘생긴 사람들이 널렸는데.”

       

       “…이래서 기생오라비 같은 놈들은.”

       

       로한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주변의 소음이 워낙 커서 한스의 예민한 귀로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였다.

       

       “뭐라고?”

       

       “아냐 됐다.”

       

       한숨을 푹 내쉰 로한이 또 다른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댔다.

       

       “뭐, 내 생각은 그렇다고.”

       

       “뭐야, 이게 끝? 밥값도 내주는데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야?”

       

       “딱 이만큼이 밥값의 조언이다, 인마.”

       

       이 털보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란 자신이 바보였다. 한스가 그럼 그렇지ㅡ하는 표정으로 로한을 바라봤다.

       

       테이블 가득하던 음식들은 어느새 처참한 흔적만이 가득했다. 살점 하나 없이 깨끗한 뼈 따위가 나뒹굴었다.

       

       “끄윽ㅡ! 어우, 잘 먹었다 한스. 요즘 여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너도 그렇고, 다른 녀석들도 조심하라고 좀 전해줘.”

       

       “뭐? 아니, 야 어디가! 이렇게 낼름 처먹고 말 같지도 않은 조언이나 던진 다음에 도망친다고?” 

       

       “나는 다음 작전이 있어서 먼저 가본다. 다음에도 살아서 만나자고. 북부의 차가운 눈에 잠들지 않도록 조심해라. 눈보라는 모든 걸 집어삼키니.”

       

       로한이 멋들어진 대사를 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인 딴에는 가장 멋질 것 같은 말을 한 것이겠지만, 한스에게는 헛소리나 씨부리면서 먹고 튀는 놈, 그 자체였다.

       

       딸랑ㅡ

       

       경쾌한 종 울림과 함께 로한이 눈 내리는 밤거리로 사라졌다. 어찌나 재빠른지 한스가 멍청하게 쳐다보는 잠깐의 사이에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허… 저 미친놈.”

       

       오랜만에 만나도 여전히 미친놈이다.

       

       “저, 저기이… 아까 나가신 분이 손님께서 계산할 거라고 하시던데요…”

       

       주근깨 가득한 종업원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나이를 보아하니 14살쯤 되었을까? 묘하게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수줍음이 많은 모양이다.

       

       “아, 네. 저한테 주세요.”

       

       한숨을 내쉬며 계산서를 받아 든 한스. 

       

       그래,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밥 한 끼 정도는 사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음? 어? 어어?!’

       

       계산서를 보는 한스의 눈이 점점 커진다. 예상했던 액수를 까마득히 초과한다. 이걸 두 명, 아니 혼자서 처먹었다고?

       

       한스가 곧장 주점의 문을 박차고 달려나가 우렁차게 외쳤다.

       

       “로한ㅡ!!! 야 이 개새끼야!!”

       

       비명과도 같은 외침.

       

       그날, 한스의 주머니는 한껏 얄팍해졌다.

       

       

       

       

       

       *****

       

       

       

       

       

       “하아암…”

       

       심심하다.

       

       성지에서 엘프들이 활도 잘 만들어 내고 있고, 드워프와도 큰 마찰 없이 잘 지내는 중이다. 아주 화기애애하게 술도 마시고,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와 비례해서 내 심심함은 늘어간다.

       

       요즘 엘프랑 드워프, 이베르를 구경한다고 ‘세계 탐험 모드’를 소홀히 한 것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지경.

       

       ‘오랜만에 구경이나 해 볼까?’

       

       간만에 케니스랑 프리가, 이스칼 같은 애들도 구경 좀 하고. 뭐시기 퍼리 후작한테 수인 모으라고 시킨 것도 확인이나 좀 해야겠다.

       

       – 휘이이잉ㅡ

       

       “어, 뭐야?”

       

       화면에 보이는 것은 눈 내리는 풍경. 쏟아지는 눈보라가 온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몰아치고 있다. 당연히 성도에 있을 줄 알았기에 살짝 당황했다.

       

       케니스의 위치로 찾아왔을 텐데, 지금 이런 곳에 와 있다고?

       

       꾹. 꾹.

       

       프리가, 이스칼, 셀리나, 퍼리 후작, 에스텔… 즐겨찾기된 이름들을 이리저리 눌러봐도 전부 같은 곳이다. 모두 북부 몬테그로스라는 곳에 모여 있는 것이다.

       

       “이건 또 뭔 일이야?”

       

       잠깐 안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치형 임티 MK.2의 외주가 완료됐습니다. 이번에는 한 명의 캐릭터로 만들어 봤는데… 조금 두근두근하네요.

    – ‘신선우’님!!! 든든한 순대 국밥같은 후원!! 감사합니다!! 착한 악마는 죽은 악마 뿐입니다.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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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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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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