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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이런.”

         

       옷을 갈아입기 위해 셔츠가 벗겨지고, 거울에 비친 내 상체는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거울로 보니 좀 심하네.’

         

       목, 쇄골, 가슴, 팔꿈치 안쪽에 프란체가 새긴 붉은 멍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지, 키스 자국이 새겨지지 않는 곳은 깨물어서 남겨뒀다.

         

       마치 자신이 이 남자를 먹었다는 표식을 남긴 것처럼.

         

       이래서 달리아가 그렇게 당황했던 거구나.

         

       “오늘 공작님에게서 봤던 수많은 붉은 멍 자국의 주인이 혹시…?”

       “그러고 보니 어제는 공작님께서 찾지 말라고 하셨지…….”

       “어제는 아예 안 보이셨는데, 설마 온종일 하신 건가…? 그게 가능한 건가…?”

       “원래도 피부가 좋으셨지만, 오늘은 특히나 매끈하시고 탄력도 넘치셨어…….

       “얼마나 강하게 하셨으면 입술 자국도 모자라서 깨문 자국까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눈을 가리는 사용인들. 그래도 호기심은 참지 못했는지 손가락 틈새로 훔쳐봤다.

         

       “탱탱하고 각진 근육 좀 봐… 나도 이런 남자랑… 부럽다…….”

         

       한 사용인의 중얼거림에 헬레나가 크게 호통쳤다.

         

       “공작님의 연인분에게 무슨 소릴…!”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연신 허리를 숙이는 사용인. 나는 멋쩍게 웃었다.

         

       “괜찮으니 준비를.”

       “아, 네!”

       “바로 하겠습니다…!”

       “머리를 부탁해! 너는 옷을 가져오고!”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사용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바삐 움직였다.

         

       해방식이 열리기 전에 먼저 황제를 만나야 하는지라 머리를 깔끔하게 손질했고, 여러 종류의 정장이 옷걸이에 걸려 등장했다.

         

       ‘전부 안드레아가 만든 거군.’

         

       내가 직접 데려온 친구라 재질과 외형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런 고급 기술은 걔밖에 안 되니까.

         

       “저… 그런데요…….”

         

       한 사용인이 거울에 비친 내 몸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더니 얼굴을 붉혔다.

         

       “그… 제일 가리기 힘든 목 쪽에 특히나 자국이 많아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아.

         

       “가슴 쪽에 새겨진 건 그렇다 쳐도, 다른 곳은 꼼꼼하게 가릴 수가 없어요…. 멍 자국도 모자라 깨문 자국까지 있으니…….”

         

       확실히. 목까지 가려지는 공작가의 제복을 입는다고 해도 이 정도면 보이고도 남을 거다.

         

       “어쩔 수 없어. 화장으로 지우는 수밖에.”

       “화장으로도 이건 무리가…….”

       “깨문 자국은 지울 수가 없어요.”

       “얼마나 세게 깨무셨으면 아직도…….”

       “…등에는 할퀸 자국으로 가득하네요.”

         

       …프란체가 좀 격하긴 했지.

         

       “흠, 여성분이셨으면 드레스나 장신구로 가릴 수 있어서 괜찮은데… 남성분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 정도면 옷을 입어도 틈으로 보일 거야.”

         

       그녀들의 얼굴에서 난감함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붕대 같은 거로 가리면 어떨까요?”

       “그건 너무 잘 보여.”

       “스카프도 있긴 해요.”

       “공적인 자리에 스카프는 좀…….”

       “그런가요…?”

         

       다들 고민이 한 바가지구나. 여기선 내 의견을 말하는 수밖에.

         

       “그냥 붕대로 가리지.”

       “네? 하지만……”

       “괜찮아. 적당한 핑곗거리가 있으니까.”

         

       라드리엔과 싸워서 생긴 상처가 치유사의 힘으로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보일 수 있는 멍 자국은 최대한 분칠로 가리고, 목에는 붕대를 감을게요.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으세요.”

         

       나는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감았다. 바렌베르크의 대표로 공적인 자리에서 황제와 대면하는지라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머리는 옆으로 넘겨 이마가 보이는 갈고리의 형태.

         

       의상은 최대한 자국이 보이지 않도록 틈이 없는 새하얀 셔츠와 남색 정장. 큰 마름모 모양의 넥타이와 금색 브로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노력한 게 보인다.

         

       이제야 전 왕족처럼 기품있어 보이는구나.

         

       “후, 다 됐습니다!”

       “레냐, 시간은 얼마나 지났니?”

       “어… 1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남성분이시라 준비가 일찍 끝났구나.”

       “네. 이것도 사실 자국을 가리느라…….”

         

       가릴 곳이 많긴 했다. 목, 쇄골, 어깨에 빈틈이 없도록 깨문 자국과 키스 자국으로 가득했으니.

         

       “이제 끝인가?”

       “네. 다 됐어요.”

       “그렇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들의 얼굴을 살폈다.

         

       “레냐가 누구지?”

       “접니다!”

       “잠시 얘기 좀 하지.”

       “얘기요…?”

       “레냐만 남고 다들 자리를 비워줘.”

         

       헬레나를 포함한 사용인들은 네, 하며 고개를 숙이곤 방을 나갔다. 레냐는 떨리는 눈동자로 숨을 죽였다.

         

       “레냐.”

       “네, 네!”

       “공작님께 대체 어떻게 알려준 거지?”

       “…네?”

       “첫날 밤.”

       “아…….”

         

       레냐는 그제야 뭔지 알았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그게… 공작님께서 남자가 기뻐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시고 여쭤보셨어요. 저는 아는 선에서 답변을 드렸고요.”

         

       네가 원흉이었구나. 프란체가 그런 걸 알고 있을 리가 없지.

         

       “그… 부끄러운 말들도?”

       “부끄러운 말…? 아, 네!”

       “속옷도?”

       “네!”

         

       전부 네 작품이었냐…….

         

       “…다음에 또 여쭤보시면 적당히만.”

       “아, 네…….”

         

       이러면 용건은 끝났고.

         

       “그럼 공작님을 뵈러 가지. 어디에 계시지?”

       “정원으로 가시죠!”

         

         

       * * *

         

         

       프란체가 기다리고 있다는 공작저의 정원으로 가니 케일, 라데아, 카자르도 같이 있었다.

         

       “아, 진 왔구나.”

         

       나를 보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가는 프란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오셨네요.”

       “오, 정장 멋있어요.”

       “아까보단 안색이 괜찮군.”

         

       멍 자국 가리는 김에 얼굴색 좀 좋아 보이라고 분칠까지 했으니까.

         

       “출발까진 시간이 남은 겁니까?”

       “응. 점심은 먹고 가려고. 배고프잖아?”

         

       그렇긴 하다. 어제 프란체의 눈이 돌아가는 바람에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지금까지 굶었지.

         

       “식사하고 출발할 거야.”

         

       프란체는 근처에 있던 사용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단박에 알아차린 사용인은 고개를 숙이곤 바로 자리를 비웠다.

         

       “곧 자리가 만들어질 테니 잠깐 기다리렴.”

         

       나는 네, 하고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모이는 건 오랜만이네.

         

       “그런데 공작님, 오늘따라 피부에서 윤기가 흐르네요. 매끈하고 깨끗한 게 정말 좋으세요.”

         

       프란체를 유심하게 지켜보던 라데아가 말했다.

         

       “그러니? 잘 모르겠는데.”

       “네. 안색도 좋으시고 눈빛도 건강하시고.”

         

       그거 내 정기 빨아서 그래.

         

       “확실히. 오늘따라 안색이 좋군.”

       “음, 자세히 보니 그렇네요.”

         

       케일과 카자르도 긍정했다.

         

       “진 오빠는 몸 괜찮으신가요?”

       “아까보다는 낫다.”

       “다행이네요. 아까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말이 좀 너무하네.

         

       “얼굴은 초췌하고 눈 밑은 시커멓고 볼은 홀쭉하고.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게 지하실에서 고문이라도 받은 줄 알았다니까요.”

         

       다른 의미로 보면 고문이긴 하지…….

         

       주제가 좀 난감하기에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데 어제 공작님은 어디 계셨나요?”

       “일이 좀 있었단다.”

       “일이요?”

       “그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라데아는 전혀 모르는 눈치고, 케일은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아……!”

         

       카자르는 조용히 차를 마시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곤 얼굴을 붉혔다. 보아하니 그 이상한 미약을 만들어준 게 너였구나.

         

       “흠, 사용인들 사이에서 나도는 소문에 의하면 아침 조식 시간에 지하실로 가신 뒤에 모습을 아예 보이시지 않으셨다고 하던데…….”

         

       눈썹을 좁힌 채 진지하게 추리하는 라데아.

         

       “어제 온종일 보이지 않았던 공작님은 건강미 넘치고 매끈해진 얼굴로 등장하셨고, 진 오빠는 초췌하고 시체 같은 모습으로 오늘 감옥에서 나오고. 흐음…….”

         

       설마 라데아도 눈치챘나? 딱히 숨겨야 할 비밀이라 할 건 아니지만, 남들이 안다는 건 좀 창피한데.

         

       “크흠! 식사 준비 끝났을 거 같은데, 슬슬 공작저로 들어가시죠?”

         

       라데아의 추리가 정답에 근접하자, 보다 못한 카자르가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러자꾸나. 적어도 오늘 저녁에는 황도에 도착해야 하니까.”

         

       카자르의 기가 막힌 수비로 다행히 주제가 돌려졌고, 우리는 공작저로 들어왔다.

         

       그녀의 예상대로 사용인들은 이미 만찬의 준비를 완성한 상태였다.

         

       “우리가 다 모인 게 오랜만이어서 좋구나.”

         

       흐뭇하게 미소 짓는 프란체. 나도 같은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모였던 게 수확제 파티였으니.

         

       “그렇네요. 시간으로 보면 얼마 안 됐는데, 일이 많아서 그런지 오래전 같아요.”

       “진 오빠도 온 기념이니 오랜만에 파티나 열까요?”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 불러서.”

         

       다들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동안 케일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기를 썰었다.

         

       “술은 맛있는 거로 준비해줬으면 좋겠군.”

         

       그저 술 먹을 생각으로 가득했나.

         

       “그래, 너는 술 없으면 안 되니까 특별히 비싼 거로 준비할게.”

         

       싱긋 웃으며 받아주는 프란체.

         

       ‘괜찮네.’

         

       분위기가 좋다. 이렇게 평화롭고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 얼마만 인지.

         

       ‘근데 종원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편지만 딸랑 하나 남겨두고 사라져서 당황했을 거 같은데…….

         

       큰일인 만큼 세계 신문으로 소식이 떠들썩했을 테니 어렴풋이 듣기야 했겠지마는.

         

       ‘종원이도 볼 겸, 나중에 다 같이 판테온으로 여행 가자고 말해봐야지.’

         

       괜찮은 계획에 고개를 주억이곤 빠르게 음식을 해치웠다.

         

       “다들 식사 끝났니?”

       “네.”

       “오늘도 맛있었네요.”

       “새로 데려온 요리사가 제대로군.”

       “황실의 유명한 주방장이야.”

         

       응? 나는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그런 사람도 데려오셨어요?”

       “아니, 직접 오겠다고 하더구나.”

       “이유가 있나요?”

       “공작령에서 마도 혁명이 일어났잖니?”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보다 발전된 영지는 아직 없어서 많은 사람이 공작령으로 이주하고 있어. 그만큼 돈은 많이 들지만.”

         

       신시대에서 살고 싶다는 건가. 하긴, 마도 혁명은 엄청난 혁신이니까.

         

       “그렇군요.”

         

       납득이 갔기에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튼, 이제 다 먹은 거 같으니 출발하자꾸나. 내일 아침 일찍 열릴 해방식 전에 미리 폐하를 알현해야 해서 오늘 밤까지는 도착해야 해.”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프란체. 우리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공작저의 정문으로 나오니 기다리고 있던 가문의 기사들이 일렬 좌우로 나뉘어 배웅해주었다.

         

       “그럼 공작님, 저택은 맡겨주시길.”

       “그래, 금방 올 테니 잠시만 힘내주렴.”

         

       황도 저택에 있던 집사장과 인사도 끝나고. 마차에 올라탔다.

         

       라데아와 케일은 말을 타고 소수 정예 기사들과 호위를 진행. 카자르는 집중을 위해 개인 마차를 타고 탐색 마법을 사용.

         

       내가 없던 사이 호위 체계를 만들었나 보다.

         

       “출발하겠습니다!”

         

       마부의 신호와 함께 바퀴가 움직였다.

         

       피곤함에 찌들어 마차에서 잠깐 눈을 붙이려고 했건만.

         

       “사랑해, 진. 츄우…….”

         

       프란체가 꼭 붙어서 바로 입술을 맞춰온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돌변한 공작님. 설마 여기서 끝까지 하진 않겠지? 괜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츄웁… 츄…….”

         

       쏟아지는 프란체의 키스 세례.

         

       “진, 키스 안 해…?”

       “정말 죄송한데 너무 피곤해요…….”

       “…약한 소리 말고 빨리 혀 내밀어.”

         

       말해도 듣지 않는 프란체. 명령까지 내리며 강제로 혀를 집어넣었다.

       

       “우움… 사랑해, 진…….”

         

       그녀의 맹목적인 사랑과 집착이 점점 무겁고, 깊어지고 있다.

         

       “좋아해, 사랑해…!”

         

       좋기야 한데, 설마 황도까지 이러면서 가는 건 아니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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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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