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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부웅!

        

       자로 잰 듯이 깔끔한 움직임이 연속되는 정교한 연계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움직임을 강요하고, 그 자리에 다시 예측된 공격을 찔러 넣는 동작의 반복. 단순하지만, 승리를 향하는 계단을 조금씩 올라가는 방법을 아는 자의 싸움이다.

        

       평소 현실에서 반 걸음쯤은 벗어난 듯이 보이던. 싸움이 일어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것처럼 보이던, 그런 모습들은 혹시 모두 의도된 위장에 불과한 것 아닐까. 냉정하다 못해 기계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연격이었다. 

        

       저 단검의 맞은편에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올 정도로.

        

       겪어본 적 있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쯤 상대 광전사는 늪에 빠져드는 듯한 감각 속에서, 차츰차츰 깎여 나가는 스태미나의 압박감에 숨통이 조여오는 고통을 느끼고 있으리라.

       

       그리 견뎌내다가 단 한 순간이라도 집중력을 놓치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아와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고 빠져나간다. 저 도적의 움직임에 당하고 있노라면, 얄밉다 못해 분통이 터질 정도였더랬다.

        

       그럼에도, 저격이 가능한 레이팅의 아이디가 없는 게 이토록 아쉬운 이유가 무엇인지.

        

       단순히 호승심 때문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레반은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씁쓸한 감각을 물과 함께 흘러 넘겼다.

        

       이어서 촉촉하게 구워 후추와 파프리카 가루로 시즈닝한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한 점 크게 썰어 입에 넣으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지만-

        

       막상 음식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정신은 어느새 화면 속 게임에 몰입한 채였으니.

        

       수준 높은- 보는 맛이 있는 게임이었다.

        

       큐가 안 잡히고 있으니 한두판만 해달라는 부탁을 얼마나 진심으로 받아들인 건지. 오소독스는 벌써 아홉 번째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그것도, 나머지 GP멤버들 중 솔로 랭크 MMR이 높은 이들까지 소집해서.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 프로게이머들은 생각보다 인터넷방송과 가까운 이들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구단 방침에 따라 팀원들과 함께 랭크를 돌리는 방송을 하거나, 개인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일도 있었으니.

        

       그러나 월드시리즈 우승팀 멤버들이 일제히 함께 큐를 돌리는 건 드문 일이다. 시즌 마지막 날이라면 더더욱.

        

       심지어 이를 보던 다른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한 두번씩 큐를 돌리기 시작했으니- 연달아 일어나는 프로들의 격돌 덕분에, 시즌 마지막 날은 그야말로 모두의 축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오나 관련 커뮤니티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들썩이고- 몇몇 사이트들은 심각하게 렉이 걸릴 정도로 인원이 몰리는 상황.

        

       그리 되는 게 납득이 될 정도의 게임이었다.

        

       -부웅!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광전사가 도끼를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모기처럼 달라붙는 도적을 떼어내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 이후는 어찌되든 좋으니, 일단 제발 저리 가라는 간절함이 담긴 공격이다.

        

       그런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다.

        

       허리춤을 노리는 도끼날은 회피하기 어렵지 않아 보였다. 생존기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세 걸음 정도 뒤로 빠르게 물러나면 넉넉하게 피할 수 있고, 두 걸음 반 정도 물러나면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할 수 있는-

        

       그 순간, 도적의 일인칭 시야를 비추는 화면에 짙은 갈색의 토양이 가득 잡혔다.

        

       이어서,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시야가 움직이며, 광전사의 다리가 얼핏 비치고-

        

       -퍼억!

        

       카운터 공격의 성공을 알리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상대의 복부 갑옷 틈새에 꽂힌 단검이 화면에 나타났다.

        

       ‘밑으로 피하고……카운터?’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음에도, 상황을 인지하는 데조차 잠시 시간이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조금 전의 움직임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이예나는 앞으로 넘어지듯 깊게 몸을 숙여 자신의 허리춤을 노린 중단 공격을 피했고, 그와 동시에 파고들었다.

        

       높이가 조금만 어긋났어도 숙인 머리에 도끼가 깔끔하게 박혔을 무모한 동작. 심지어 성공했음에도 절반 가까이 증발한 스태미나가 조금 전의 움직임이 얼마나 무리한 시도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교한 전투 설계로 야금야금 이득을 챙긴 끝에 우위에 선 자가 던질 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 생각함과 동시에, 레반은 이예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니까 하는 거예요. 예상 못하잖아.’라고, 말하는.

        

       하여간, 보는 맛이 있는 게임이었다. 함께 할 수만 있었으면……따위의 생각이 레반의 머릿속을 넘실거리는 사이, 이예나는 몸을 일으키는 힘까지 온전히 실은 공격을 상대의 복부에 박아 넣고 있었다.

        

       이어서, 비틀리며 올라가는 시야.

        

       멀끔하던 턱에 어느새 단검 손잡이 모양 수염이 돋아난 광경을 마지막으로, 거구의 전사는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한동안 커뮤니티를 봐서는 안 될 프로게이머가 또 한 명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신경 쓸 리가……없지만.’

        

       그래도, 이상한 도발은 안 해서 다행이었다. 게임에 집중한 덕분인지, 숨쉬듯이 내뱉던 광전사 혐오는 잠시 멈춘 상태였으니.

        

       프로게이머의 멱을 따고, ‘그런 캐릭터 하니까 그런 거예요. 프로 별거 없네’ 따위의 말을 할까 두려워 조마조마했던 건, 결코 레반 한 명은 아니었으리라.

        

       《스태 싸움, 이네요. 하. 현실, 체력이, 회복이 너무 느린데. 하아, 하. 왜, 키마로는 이런 동작 커맨드 안 넣어, 주는, 거야. VR, 사기예요. 다같이, 보이콧, 해야 공정한데.》

        

       그래도 무언가 하나는 혐오해야 한다는 원칙이라도 있는 걸까.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이예나는 캐릭터 혐오에 갈음하여 VR에 대한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하기야, 전날부터 벌써 몇 시간째던가.

        

       VR에 대해 불평 한두 마디 하는 정도야 이상할 것 없었다. 아무리 중간중간 큐를 잡는 시간에 쉬었다고 하더라도, 체력적으로 제법 힘에 겨울 여정이었으니.

        

       힘들어 죽겠는데 뇌파로 생각만 해도 플레이 되는 VR 언제 나오냐는 불만이야, 나오나 스트리머들의 단골 멘트 아닌가.

        

       40대는 되는 게이머마냥 키보드 마우스를 요구하는 건 조금 이상했지만- 문제될 건 없으리라.

        

       《하아, 하.》

        

       『ㅗㅜㅑㅗㅜㅑㅗㅜㅑㅗㅜㅑ』

       『VR 최곤데? VR 최곤데? VR 최곤데? VR 최곤데? VR 최곤데? VR 최곤데?』

       『전력질주해주세요』

       『와 미친』

       『화면은 눈에도 안 들어오는 아붕이는 개추』

       『님들 이거 눈 감고 들어보셈 개쩜』

       『프로 다 따고 다니네 시발ㅋㅋㅋㅋㅋ개쩐다』

       『아따먹! 킹따먹! 갓따먹! 황따먹!』

       『심리전 개지렸다 진짜』

       『시1발 피지컬 미쳤네 진짜 ㅋㅋㅋㅋ』

       『와』

       『갤럭시는 제발 저 병신 방출 좀 해라 씨1발 이제 하다하다 여자한테 따이고 앉았네』

       『존나 잘한다 진짜』

       『뭘 어케 피한거임??』

       『3인칭으로 보고싶음 ㄹㅇ루다가』

        

       이번엔, 시청자들도 잔뜩 만족하고 있었으니.

        

       “쯧.”

        

       정작 불만이 생기는 건 레반 본인이었다. 저런 플레이를 보고도 고작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리에 더 집중하는 이들이 있다니. 정말이지, 방송을 볼 자격도 없는 이들이었다.

        

       《하아아……후. 그러면, 다시 가볼까요. 아, 땀……찝찝해. 저, 이번 판 끝나면 빠르게 샤워 좀 하고 올게요. 아. 큐……큐, 나 빼고 잡히려나. 잡고 갈까요. 음……옷을 미리 벗어 둬야 하려나.》

        

       ……정말로, 그러했다.

        

       * * * *

        

       =승리!=

        

       9번째 게임. 8번째 승리.

        

       1등과의 격차, 13점.

        

       프로게이머들의 적극성이 급작스럽게 치솟은 덕분에 시간은 넉넉했다. 고마운 일이야. 이게 다 GP 선수들이 대거 참전한 덕분인 것 같은데. 나중에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있다면……체력인데.

        

       조금 무리한 걸까. VR장비를 벗는 사이에도 급격하게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겨우 이 정도 게임을 하고 피곤하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리에 앉아 키보드 마우스를 두들기는 것과, 몸으로 직접 움직이는 건 체력 소모의 수준이 다르더라.

        

       어쩌면, 시간이 넉넉하게 남은 건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늦어도 두어판 내에 달성하지 못한다면, VR을 계속하는 건 정말로 무리다. 1시간 전부터 온 몸에 근육통이 느껴지고 있었으니.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조금은 낫겠지. 그래야 할 텐데.

        

       “그러면, 씻고 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인사말과 함께 큐를 돌리고, 수락이 자동으로 눌리도록 키보드의 엔터키에 동전을 꼽아 두고……무거운 몸을 화장실로 옮겼다.

        

       ……피곤하네.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얼굴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젠 익숙한 모습이다. 흠칫 놀랄 것도, 새삼스럽게 예쁘다는 생각을 할 이유도 없는.

        

       눈 밑에 다크서클이 조금 진해진 게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다.

        

       피곤하긴 피곤하구나. 그리 생각하는 사이에도, 입술은 자그마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뜨거운 물을 가장 강한 세기로 틀었다. 세찬 물줄기가 가슴팍을 두들기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직 1등은 달성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상쾌한 이유가 대체 뭔지.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월요일(1/21) 연재분은 오전 중으로 업로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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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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