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75

       “……저 자의 말을 정말 믿으시는 겁니까?”

         

       그동안 입을 닫고 있던 키엘이 물었다. 멜리나는 말을 듣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직접 마신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나섰다. 아리아는 언제나처럼 홍차를 들이키며 말했다.

         

       “믿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느냐.”

        “하지만 폐하. 세계선을 넘는 작업은 진리에 닿지 않고서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작업인 것을 기사인 저조차도 아옵니다. 하지만 저 자는…….”

       “짐처럼 진리에 닿지 않았지. 그래, 짐도 그것을 아느니라. 그러니 더 신기한 것이지.”

         

       아리아의 통찰은 단순히 지적인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검을 쥐어도, 책을 쥐어도, 능히 진리에 닿을 오성(悟性)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올리비아를 만나기 전까지 그 능력을 썩히고 있던 것이지만.

         

       물론 황제가 된 이후에도 아리아가 검과 마법을 익히는 일은 없었다. 국정 운영에 있어 그것들을 익히는 것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세상을 등진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애초에 아리아는 친우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위인이 아니었다.

         

       시간을 되돌리든, 올리비아를 되살리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올리비아를 만나, 작별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죽음을 전해듣는, 그런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이 관계의 끝을 맺고 싶지 않았다.

         

       자그마치 15년 동안 마법을 익힌 것은 그 때문이었다.

         

       “흠.”

         

       아리아는 방금까지 읽고 있던 책의 표지를 보았다.

         

       [시공간학개론]

         

       이 세계선의 멜리나가 죽기 직전 집필했던 이론서.

         

       다만 완결하기 전에 세상을 등져버렸기에, 미완으로 남아버린 비운의 이론서.

         

       “……우연이 계속되면 운명이라지.”

         

       진리에 닿지 못한 멜리나가 세계선을 넘은 것도 말도 안될 지인데, 하필 넘어온 세계가 시간 마법을 익힘에 있어 애를 먹고 있는 ‘황제 아리아’가 있는 세계선이라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키엘. 너무나도 공교롭지 않느냐? 만약 이게 함정이라면, 고안한 녀석은 엄청난 천재일게다.”

         

       뛰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니.

         

       키엘은 쓰게 웃었다. 오랜 세월 아리아를 모시며 확신한 것이다.

         

       “저 자와 뜻을 함께하실 생각이시로군요.”

       “그렇노라.”

        “하지만 폐하, 너무 위험합니다.”

       “알고 있노라.”

       “…….”

         

       아리아는 소리 없이 웃었다.

         

       “이제 알 때도 되었지 않느냐. 짐의 뜻을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대현자 앞에서도 좀 그러시지 그랬습니까.”

       “어허, 무엄하도다.”

       

       아리아는 고개를 돌려 자료를 찾는 데 열중하는 멜리나를 바라보았다.

         

       [전생에서, 올리비아는 대륙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올리비아의 본의가 아니었지. 황제 당신의 말대로라면 올리비아를 조종한 것은 아스모데우스가 아니라 마신의 잔재였을 것이다.]

         

       아리아가 생각하기에, 멜리나의 주장에는 몇 가지 어폐가 있었다.

         

       첫째로, 올리비아는 고작 마신의 잔재에 무너질 위인이 아니다.

         

       “키엘,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정말 올리비아가 그런 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무리 대현자라고 해도, 영겁의 시간 앞에서는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올리비아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다 죽여서 화풀이나 하자’라고 할 위인이라는 소리더냐?”

       “…….”

       “에잉, 이래서 기사 놈들은. 저쪽 세계의 키엘은 올리비아와 친우라던데, 너도 친해질 노력 좀 하지 그랬느냐?”

         

       아리아의 말에 키엘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리아는 입술을 비틀었다.

         

       “올리비아는 그럴 위인이 아니느니라. 어린아이와 자신 중에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어린아이를 구하라고 할 위인이지.”

         

       아리아는 바깥을 노니는 푸른 등불을 응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건,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심장 한 켠을 아려오게 한다.

         

       “……몰살을 저질렀다면, 그 또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현실 부정이 아니라, 확신에서 비롯된 발로였다.

         

       다만 왜 굳이 ‘몰살’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아리아조차 알 수 없었다.

         

       아리아는 멜리나에게 다가가 말했다.

         

       “짐에게 시공간 마법을 알려다오.”

       “……시간이 없다.”

         

       멜리나는 이 세계선에 영구히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년이라는 대가를 치뤘지만,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사흘.

         

       사흘이 지나면, 얄짤없이 원래 세계로 추방될 것이다.

         

       귀한 시간을 황제를 가르치는 데 낭비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마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멜리나가 책들로 고개를 돌리던 찰나, 파문처럼 번지는 아리아의 마력. 멜리나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

         

       정신을 차려보니 도서관은 온데간데 없고, 자그마한 나룻배에 올라타 있었다.

         

       츠츠츠츠츳……!

         

       맑은 수면 위를, 푸르른 등불들이 수논다. 방금 전, 올리비아의 추모식 때 날아다니던 등불들과 비슷한 생김새였다.

         

       수면에 손가락을 뻗자, 차가운 감각이 느껴진다.

         

       한없이 현실에 가까운 환상.

         

       멜리나는 이 마법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환상향(幻像向).

         

       “이건, 짐이 화(火)계 마법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 깨달은 마법이느니라.”

         

       나룻배의 정반대편에는 아리아가 앉아 있었다.

         

       “……자랑이라도 하려는건가?”

        “아니, 짐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자네에게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은 안다. 잔존 마력으로 추측하건데 기껏해야 사흘 정도 남았겠지.”

       “아무리 진리에 도달했어도, 사흘 만에 시공간 마법을 전부 이해하는 건 무리다.”

         

       아리아가 웃었다.

         

       “후후. ‘이론’으로 한정하면 가능하느니라.”

       “……그래도 마찬가지다. 가르칠 시간이 없다.”

         

       사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아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가 세계선을 넘으려던 진짜 이유는, 올리비아의 ‘몰살’을 없던 일로 만들어, 곧 일어날 전쟁을 막기 위함 아닌가?”

       “…….”

       “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선에 떨어져버렸으니, 이제 그 목적을 이루기는 요원할테지. 하지만 짐이 돕는다면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느니라.”

         

       멜리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 방법이 뭐지?”

       “짐이 회귀하면 되느니라.”

         

       아리아는, 어느새 멜리나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수십, 수백, 수천 번을 회귀하여, 자네와 올리비아의 시간을 따라잡은 다음.”

         

       설마…….

         

       그녀가 하려는 것은.

         

       “그 ‘아리아’의 인격을, 짐이 집어삼켜주면 되는 것 아닌가?”

         

       싸울 일도, 전쟁이 일어날 일도 없다.

         

       ‘황제’ 아리아는, 사건의 전말을 완전히 알고 있으므로.

         

       사아아악…….

         

       환상향이 무너지며, 다시 황궁 서고로 되돌아온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네에게 시간 마법에 대해 배워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아리아의 얼굴은.

         

       “어찌하겠나? 다른 세계선의 금탑주여.”

         

       올리비아와, 한없이 닮아 있었다.

         

         

       *****

         

         

       멜리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 어떤 해결책보다, 확실한 해결책이 눈 앞에 있었으므로.

         

       다만 걱정되는 것은…….

         

       “폐하, 너무 위험합니다.”

       “후후. 짐은 견뎌낼 수 있다. 올리비아가 한 일을 짐이 못할 것 같으냐? 그리고, 짐의 회귀는 아무리 길어도 올리비아의 회귀보다 짧을 것이다.”

         

       ‘황제 아리아’ 이전에 존재했을 세계선들에는 갈 수 없을테니 말이다.

         

       아무튼.

         

       “그러니, 괜찮다.”

       “…….”

         

       키엘은 입을 다문다. 그는 제국의 대공이기 전에, 주군을 모시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키엘의 마음을 읽으며, 아리아가 걱정 말라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짐이 지금 당장 회귀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어차피 후대에게 선위(禪位)를 마치고, 시간 마법의 극에 도달한 후에야 겨우 시도해볼 수 있을것이니.”

        “……그렇습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니, 키엘로서는 더는 아리아를 저지할 명분이 없었다.

         

       “짐은, 오히려 기대가 되는구나. 수천 개의 세계선을 넘나드며, 수천 번 올리비아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니.”

         

       그렇게 말하는 아리아의 눈빛에는, 정말로 아이같은 열의가 깃들어 있었다.

         

       십 수년 간 잃었던 생기를, 방금 막 되찾은 사람처럼.

         

       “…….”

         

       잠시 말문이 막혔던 키엘은, 곧 은은한 미소를 띄웠다. 기사로서, 주군의 행복을 볼 때 짓게 되는 미소였다.

         

       주군이 저렇게 기뻐하시는데, 그 어떤 기사가 막을 수 있겠나.

         

       설령 그 길의 끝이 파멸일지라도, 기쁘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키엘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 지금부터 소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소서.”

       “앞으로 사흘 동안, 황궁 서고에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

       “명, 받들겠습니다.”

         

       한치의 망설임조차 없는 대답.

         

       그것이면 되었다.

         

       앞으로 사흘은, 시간 마법에만 집중할 수 있다.

         

       어느새, 아리아의 입가에는 유쾌한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자아, 금탑주여!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짐을 가르치거라! 찰나라도 허투로 가르쳤다간, 짐이 시간 마법의 극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니!”

       

       멜리나 또한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에게 가장 값질 사흘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친구는 서로 닮습니다.

    닮았기에 친구가 되는 걸까요, 아니면 친구가 되면서 닮는것일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블랙베리0님 3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연참 대신, 맛좋은 화를 가져왔습니다!

    -뀨이잉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 아스모데우스 음모론은 아마 성녀 가스라이팅때부터 생긴 것으로 압니다. ㅎㅎ
    – 우리 모데우스 일러는 곧 뽑힐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