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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아, 선배, 집이 서울이 아니라고 했던가요?”

        

       우리가 대화하면서 그나마 어색함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소희라는 존재 덕분이었다. 그래도 같은 직장의 선배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말을 붙였던 걸까.

        

       ……하긴, 과묵한 선배와 활기찬 후배가 같이 일하면 활기찬 쪽이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 나가려고 노력하게 되는 법이다. 그래도 계속 직장에서 얼굴을 볼 텐데, 그래도 최소한의 친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일부러 침묵을 도모하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소희는 원래 친구가 꽤 많은 애였으니까. 그냥 입 다물고 묵묵히 일만 하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소희는 내 메이드로 지내는 것을 굉장히 즐기고 있었으니까. 내가 실제로 업무 과정을 본 것이 아니라 업무 강도가 높다 낮다 말은 못 하겠지만, 저택에 있을 때의 소희는 따분한 표정으로 교실에 앉아있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렇게 대놓고 밝은 표정을 하는 것도 우리들끼리 있을 때뿐이었고. 학교에서 이런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그 대상도 우리와 대화할 때 한정이었다.

        

       우리 외에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상대는 선도위원 손아름 정도뿐이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거의 적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으르렁거렸으니까.

        

       상대가 선생이라면 그 태도가 훨씬 더했고.

        

       뭐랄까, 나 대신 화를 내주는 것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고향은 강원도입니다. 저는 중학생 때부터 거의 서울에서 지냈지만…….”

        

       “강원도?”

        

       순간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어울린다 아니라는 문제가 아니라, 양혜인의 고향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 자체가 없던 탓이었다. 하긴, 내가 강원도 쪽에서 군 생활을 했을 때도 강원도 사람들이 사투리를 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사투리 같은 것은 거의 쓰지 않게 되기는 할 거다.

        

       아무래도 군대 문제와 대학 문제 때문에 몇 년간 다른 지역에서 거주했던 것만 제외하면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던 나였기에 서울에서 일하고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당연히 고향도 서울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묘하게 변명이 길어지긴 했는데, 아무튼 내가 되물어본 이유는 그런 사실 때문이었다.

        

       “네. 할머니께서 거기 살고 계십니다.”

        

       “아, 그런가요?”

        

       할머니께서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는 말은, 어쩌면 ‘고향이 강원도’ 같은 말과 비슷할지 모른다. 어린 시절에 서울에 이사 와서 살았다면 중학교부터 대학생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다는 말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부모님은 어디 살고 계신 거지? 서울에 살고 있나?

        

       그 외에 다른 가족은?

        

       ……이런저런 의문이 떠올랐지만, 역시 묘하게 물어보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친구끼리라면 그런 개인사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가겠지만, 양혜인과 나는 ‘그럭저럭 오래된’ 관계는 맞지만 그렇게까지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사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그런 가족관계는 별로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야기하다 보면 어쩌다 보니 튀어나오곤 할 뿐이지.

        

       ……아니, 잠깐만.

        

       양혜인에게 가족이 있다는 말은…….

        

       “저, 혹시, 일 년에 며칠이나 집에 가세요?”

        

       나는 그렇게 물었다.

        

       양혜인은 사라의 기억 속에서 거의 항상 존재했었다. 적어도 사라가 방 밖으로 나갈 때는 거의 항상 같이 나갔으니까.

        

       사라가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날 중에선 양혜인이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라가 밖에 나갈 때마다’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타이밍 좋게 휴가를 냈다기보다는 ‘그냥 휴가가 없었다’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떠올리기 쉬웠다.

        

       “……제가 지내는 곳은 이곳입니다.”

        

       나의 질문에 양혜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렇게 대답했다.

        

       “…….”

        

       침묵.

        

       양혜인의 이야기를 듣던 다른 아이들도 순간 멍하니 입을 벌렸을 정도로, 양혜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지낸다’는 뜻은 굳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거 아닌가……?

        

       “……혹시 근무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침착하게 그렇게 물었다. 그래, 소희도 근무시간 끝나면 편하게 갈아입고 쉬잖아. 혹시 부모님이 엄청나게 가까운 곳에 살아서, 저녁에는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얼굴 정도는 비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굳이 휴가를 신청하지 않아도 가족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근무시간은 법과 계약에 따라 준수하고 있습니다.”

        

       “…….”

        

       양혜인 연봉이 5억이라고 했던가. 일의 자리 수까지 다 하면 오억보다 몇백만원 정도 더 받기는 하겠지만.

        

       한 사람에게 5억을 주면서 이런저런 일을 시킨다면, 하루에 몇 시간까지 부려 먹을 수 있을까?

        

       물론 법으로 정해진 근무시간이 분명 존재하고, 추가 근무 수당으로 주는 돈까지 포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밤에 자는 시간 정도는, 그리고 중간중간에 본인 방에서 쉬는 시간은 근무시간이 아니라고 칠 수도 있겠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사실상 퇴근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던가?

        

       내가 이쪽 세상으로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내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양혜인이 바로 방으로 들어왔으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콧잔등을 꾹 눌렀다.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현기증이 올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퇴근했던 적이 언제죠?”

        

       “……퇴근은 매일 하고 있습니다.”

        

       “이 저택에서 먹고 자는 시간 말구요. 제대로 저택 밖으로 나가서,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간 적이 언제인지 물어보고 있는 거예요.”

        

       “…….”

        

       나의 말에, 양혜인은 한참 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게 그렇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나요?”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이유는 아닌데…….”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뭐랄까, 미련한 건지, 일에 미친 사람인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그렇게까지 일에 미쳐야 받을 수 있는 것이 5억이었을까?

        

       “…….”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 사람을 그냥 이대로 두는 게 옳은 일일까?

        

       개인적인 감정은 전부 떠나서, 왠지 고용주로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악덕 고용주 같잖아. 이제는 최나경 핑계도 못 대는데.

        

       “그럼, 차라리 이참에 휴가라도 다녀오지 않을래요? 유급 휴가로 줄 테니까.”

        

       “예?”

        

       내 제안이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양혜인은 정말 드물게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제는 그렇게까지 드문 표정은 아니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평소에 무표정할 뿐이지, 양혜인은 정말로 로봇같이 아무 표정도 짓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내 말에 따라서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긴 했으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일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요.”

        

       “아닙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도, 양혜인은 고개를 저으며 확실하게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네?”

        

       이번에는 내가 놀랄 차례였다.

        

       아니, 보통은 유급 휴가 준다고 하면 신나서 나가지 않나? 아무리 평소에 즐기는 일이 직장에서도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라고는 하지만, 그걸 마음 놓고 실컷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일하는 틈틈이 소설을 보는 것 보다는, 일을 쉬면서 침대 위를 뒹굴뒹굴하며 소설을 보는 편이 훨씬 편하고 재미있게 소설을 보는 행위 아니던가.

        

       물론 십자수는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할 수 있는 취미는 아니었지만.

        

       ……아닌가?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법적으로는 쉬는 날 취급받는다고 해도, 그리고 집에서 하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직장 기숙사에서 쉬는 것과 자택에서 쉬는 것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었다.

        

       문제는—

        

       “아직 최나경 전 회장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서 쫓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가씨의 생활에는 큰 위협이 됩니다.”

        

       양혜인은 그렇게 주장하면서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

        

       어…… 뭐, 양혜인이 지난번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양혜인이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로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니까. 지금쯤 어디 지하실 같은 곳에 감금당해 끔찍한 시간을 보내며 절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양혜인 한 명이 빠진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최나경 같은 사람이 와서 나 혼자만 따로 불러 만날 일이 없었고, 이미 한 번 큰일을 겪은 학교에서 허용하지도 않을 거다.

        

       무엇보다 내가 거절할 생각이다.

        

       최나경이 경찰에 신고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알게 모르게 내 뒤를 다른 경찰들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신문에서는 경찰 고위 간부가 잘리니 마니 소리도 나오고 있었고. 그게 나 때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니까…… 양혜인 한 명이 빠진다고 해서 큰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걸 본인 앞에다 대고 어떻게 말하겠어.

        

       당신은 당장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

        

       그리고 양혜인은 여전히 무표정하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선 묘하게 절박함이 묻어나오기도 했다.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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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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