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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이주라는 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흘렀다.

       

       내 배민황과 나비린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아직 한참은 남았거늘 내일이 대회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얼마나 당혹스러워 했던가.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다고?!’

       

       본인의 일상이라고 해봐야 학교를 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엔리의 팀원들이 스크림을 하는 걸 구경하고 나비린과 배민황을 굴린 후 화룡무인의 세상에 들어가서 화산파에 속한 이들이 성장을 지켜보고 마지막으로 바루와 놀아주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은근히 알찬 하루들을 보낸 것 같기도 하구나.

       

       어쨌건 하루 종일 비슷비슷한 일상을 보내다보니 시간이 지나가는 줄을 몰랐다.

       

       그래서 전날 상황이 다급함을 알게 된 나는 다급히 나비린과 배민황을 불렀다.

       

       두 사람은 대회 전 날이니 자신들의 컨디션을 최선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난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네 놈들 따위에게 컨디션은 무슨 컨디션이냐.

       

       그런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개화한 인간들이 조금이라도 더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찾는 것이다.

       

       애초에 부족한 녀석들은 컨디션을 신경 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배움과 경험을 쌓는 편이 낫지.

       

       그리고 말이다. 그 정도는 어련히 조정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냐?

       

       본인이 아무리 사람을 굴리는 걸 좋아한다고는 하나 사리분별 정도는 할 줄 안다.

       

       대회 당일에 피곤해서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꼴로 만들 리가 있나.

       

       그러니 반항을 포기하고 내 말에 따르거라.

       

       아직 가르치기 못한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휴식은 무슨 휴식이더냐.

       

       전날까지 가열차게 구른 덕분에 다음 날 있는 대회에서 두 사람은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배민황! 혼자서 상대의 에이스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저게 정말 플레 4의 수문장이 맞나요?!>

       <배민황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 저 아저씨 오늘따라 왜 저럼?

       – 요새 점점 폼이 오르더니 오늘 절정이네.

       – 방송 시작부터 밴픽하는 내내 피곤하단 소리만 하더니 경기와선 왜 잘함?

       

       <상대팀의 뒤편에서 기습을 노리는 것 같은데요?!>

       <뒤 편을 경계하던 나비린! 홀로 적과 마주합니다!>

       <큰일 났습니다! 여기서 한 명이 짤려버리면 그대로 라인이 밀리거든요?!>

       <오?! 나비린. 버팁니다! 버텨냈습니다!>

       <상대의 기습을 무위로 돌려버리는 슈퍼 플레이! 나비린! 승부의 향방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냅니다!>

       

       – 이게 그 치아 학살자 맞냐.

       – 치아 학살자(상대의 이빨을 학살함)

       – 무친. 이 정도면 장례식 매드무비 각인데.

       – 지금부터 고인의 개쩌는 플레이를 보시겠습니다.

       – 이게 대한민국의 브론즈?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멋진 활약을 선보였다.

       

       에이스면서 활약이 없단 소리를 듣던 바니는 상대편 에이스와의 일기토를 벌이는 순간마다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기세를 몰아 붙였고.

       

       엔리는 우리팀이 밀리는 것 같다 싶은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어 승부가 기우는 것을 막아내는 역할을 했고.

       

       나희는… 글쎄.

       

       아무래도 본인이 무인이다 보니 마법이란 생소한 힘을 다루는 이의 활약상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다만 같이 경기를 보던 달빛이 활약해주고 있다 소리치던 것을 보면 나름대로 잘 해준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엔리의 팀원들은 6개의 팀이 참가하는 토너먼트에서 가뿐히 본선에 올라갔고, 4강의 적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결국에 결승까지 진출을 하는 데 성공했다.

       

       경기를 보는 이들은 대이변이니 언더독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지껄였지만 본인은 그리 놀랍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본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저 정도 성적을 거두지 못할 리가 있나.

       

       만일 그랬더라면 내 이 대회가 끝난 후에도 배민황과 나비린을 다른 이들을 가르칠 적에 같이 불러서 굴리려 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겠거니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짧았던 대회의 일정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대회 결승전 당일 VR캡슐의 앞에 선 엔리는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 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방송을 하면서 대회를 나오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 왜 대회를 할 때만 되면 이토록 긴장이 되는 걸까.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의 새가슴을 다스리려던 엔리는 결국 그를 포기하고 방송용 방 바깥으로 나와서는 청심환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 나니까 조금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이주간은 정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강행군이었다.

       

       잠자고 밥먹고 잠시 학교를 들렀다가 아피스를 하길 반복하는 일상.

       

       당장 다른 팀과 아피스의 스크림을 하는 시간만 해도 거의 여느 프로게이머들에 비견될 지경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바니님의 가르침과 아라 씨의 교육까지 더해지니 쉴 틈이 없다시피 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하도 졸았던 나머지 집에 돌아올 적에 목이 뻐근한 날들이 많아질 지경이었으니.

       

       그런데 신기한 건 아라씨도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조금도 피곤한 기색을 드러낸 적이 없단 점이었다.

       

       그 분은 게임서도 현실에서도 초인이신걸까.

       

       어쨌든 이 고된 일상도 오늘로 끝이야.

       

       우승을 해서 주인공이 되건 준우승을 해서 불쌍한 조연이 되건 대회가 끝나버리니까.

       

       한 번 숨을 들이키고서 캡슐 안에 들어가 VR세상에 접속을 한 그녀는 방송을 키기 전에 먼저 아피스에서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방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이미 다른 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바니. 배민황. 나비린. 나희. 달빛.

       

       하나 같이 익숙한 얼굴들이었지만 그 표정에 담긴 것들은 다들 달랐다.

       

       바니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가 죽어선 자기는 쓰레기인 것 같다며 중얼거리고 있었고.

       

       나희는 그 옆에서 바니를 위로해 주고 있었으며.

       

       나비린과 배민황은 자신들의 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복수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이제는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그 복수심의 대상은 대회의 상대팀이 아니었다.

       

       대회 결승까지 올라오는 동안 적팀을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복수심을 품겠는가.

       

       저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아라 씨에 대한 복수였다.

       

       이주 동안 아라 씨에게 험하게 굴렀으니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겪은 수모를 되갚아 줄 수 있을까.

       

       두 사람이 논의하는 건 이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엔리는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방송을 위한 과몰입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끔 보면 진심이 아닐까 의심되는 순간도 있었다.

       

       으음. 저 두 사람이 현실의 아라 씨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방송에서 쓰는 VR아바타랑 똑 닮은 아라 씨를 보면 분명 놀라겠지.

       

       어쩌면 여태까지 당한 관성 때문에 지래 겁을 먹을지도 몰라.

       

       말을 해 놓은 게 있어서 강하게 나가다 아라가 무슨 말을 꺼내는 순간 겁먹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던 엔리는 절로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아. 그래도 조금 아쉽긴 하다.

       

       아라 씨의 현실 모습은 방송하는 사람 중에선 나만 아는 거였는데 말야.

       

       “엔리. 왔느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엔리는 고갤 돌리지 않았다.

       

       워낙에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화령씨. 미리 와 있었어요?”

       “저 둘과 바니를 마지막으로 점검해봐야 했으니까 말이다.”

       

       점검을 하셨다는 건 오늘도 굴리셨다는 이야기려나?

       

       “점검이요? 그게요?!”

       “맞아요! 그게 무슨 점검이에요! 저희 기를 다 꺾어 놓고는!”

       “보십시오! 저희 에이스인 바니님의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 사람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아라 씨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사내가 되어서는 겨우 그것정도로 기가 죽다니.”

       “그거 성차별이에요!”

       “남자도 연약하단 말입니다!”

       

       와아. 와아. 하며 점차 소란을 키워나가는 팀원들을 보고 있자니 엔리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사로잡던 긴장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

       

       <네! 그럼 이번 대회 속에 언더독 스토리를 만들어내신 분들이죠? 팀 복수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팀명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코치인 화령님에게 복수를 하고 싶단 마음을 담아서군요.>

       <저도 화령님 방송으로 보긴 했는데 엄청 빡세긴 했어요.>

       

       <가장 먼저 이 팀의 에이스죠? 바니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바니입니다.>

       <네. 바니님. 오늘 결승전을 임하는 각오를 말씀해 주시죠!>

       <오늘 에이스 대전이 당소일님하고 저인데. 솔직히 당소일님. 화령님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잖아요? 깔끔하게 이기겠습니다.>

       <화령님이랑 비교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긴 하네요.>

       

       <다음은 엔리님입니다.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여태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 밋밋하고 재미없는 인터뷰 감사합니다>

       <공식방송 인터뷰는 이게 정상 아니에요?!>

       

       …

       

       <달빛님.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제가 감독이긴 하지만 정신적인 지주 역할은 화령님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감독 답게 마지막에 멋진 밴픽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걸로 결승전 인터뷰를 끝마치려 합니다만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저요! 저요!>

       <네. 나비린님. 한 말씀 해주시죠.>

       <화령님! 우승하면 뒤풀이 나오기로 한 거 기억하고 계시죠?! 이렇게 박제 해놨으니까 꼭 나오셔야 해요?!>

       

       *

       

       “네놈들은 그렇게 본인을 현실에서 보고 싶은 것이냐?”

       

       거의 몇 만명이라는 시청자가 보는 마당에 저런 소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보통 저런 자리에서는 자신들의 결의같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기세를 드높이는 것 아니더냐?!

       

       “물론이죠! 그거 하나 보자고 여기까지 온 건데!”

       “저게 곧 우리의 결의고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승이 아니라?”

       “우승 그까짓 건 다음에 나와서 할 수도 있지만 화령님은 아니잖아요!”

       

       당혹스럽군.

       

       이 경우에는 내가 비정상이 아니라 저들이 이상한 것이겠지?

       

       공식방송의 시청자들도 하나 같이 미친놈들이라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분명 그럴 것이다.

       

       하아. 이러다 정말 내가 안 나가겠다는 말을 하면 엔리에게 따져 물어서 내 집까지 찾아올 것만 같구나.

       

       어차피 나갈 생각이긴 했다만 우승을 했다면서 의기양양한 모습을 볼 바에야 준우승을 해서 기가 살짝 죽어있는 채로 만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지. 그러면 본인이 가르친 이들이 실력에서 밀려나는 것 아닌가.

       

       그는 본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하는 일이다.

       

       모순되는 두 가지 사안에서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대회는 저 알아 진행되었고 엔리와 그녀의 팀원들은 결승을 치르기 위해 떠나가 버렸다.

       

       그래도 저 저 놈들이 이기는 편이 낫긴 하겠구나.

       

       어느 쪽이더라도 내가 시달리는 것은 똑같을 테고 그 기간은 하루일 테니까.

       

       뭣보다 엔리가 기죽은 모습을 보기가 싫으니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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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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