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5

        

         “음……? 뭐여, 전투 드로이드? 저런 게 왜 있지. …아, 우리도 드디어 편의성 로봇류 사용 허가가 났나? 창고에서 쓸 화물 로봇은 비품으로 신청하면 되는 건가?”

         

         “꿈 깨 4분대장 이 멍청아, 윗분의 애완 로봇이란다. 바리케이드 가설 작업 끝났으면 거기 가서 놀아. 괜히 여기서 기웃거리지 말고.”

         

         – ……. –

         

         묵묵히 서있는 제로를 두고 제멋대로인 추측이나 담화가 이어졌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은 채 다만 흘러드는 정보들을 차곡차곡 저장했다.

         

         4분대장, 메인 브리핑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음. 별다른 문책이 없는 걸로 보아 그럴만한 권한이 있거나, 업무 수행 능력은 확실하다고 판단됨. 북동쪽 바리케이드 담당이니 이후 퇴각 시 주의 요망.

         

         욕을 퍼부은 2분대장은 현재 포위망 본대 소속. 이름으로 부르지 않은 걸로 보건대 따로 사적인 친분은 없어 보임. 그리고…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가진 게 느껴짐.

         

         그들의 사견을 귀담아듣되, 좋고 싫음은 가지지 않는다. 어떤 반응도 돌려주지 않는다.

         자신은 외부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탈출을 원활하게 돕기 위한 포석. 괜한 시비에 엮여 들어가는 불상사가 발생해서는 절대 안 되니까.

         

         …아, 그라는 케어봇 객체를 지칭한 표현 자체는 마음에 들어 했다.

         애완愛玩,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 훌륭한 비유다.

         

         분대장들은 당연히 부정적이고 비꼬는 의미로 썼겠지만, 당사자인 제로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으니까.

         

         까드득! 하고.

         양손목을 한 바퀴, 거기에 열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는 것으로 전력이 몸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잘 전달되는지 확인한 제로가 안구의 확대율을 조정했다.

         

         저 너머의, 개인 사유지가 많은 탓에 계획적으로 설계된 재활 구역의 다음 블록을 바라보기 위해.

         

         – …어수선하군요. –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무질서로 정의할지 논의의 여지가 있다는 걸 고려하면, 객관적이지 않은 감상을 함부로 품는 건 제로답지 않았지만.

         

         세부 소속을 의미하는 휘장과 새겨진 글귀를 제외한다면 이쪽과 동일한 제복을 갖춰 입은 카사네 측 병사들이 슬금슬금 긴장을 높이고.

         단순히 정해진 위치를 사수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돌아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건… 누가 보더라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무래도 사교회가 무르익은 별장 쪽과 다르게 유달리 조용해진, 고요한 걸 넘어 숫제 스산해진 주변 분위기를 수상쩍게 여긴 책임감 넘치는 인물이 상대 경비팀에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그 변화를 멀리서 확인한 습격자들은 여기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게 정답일까?

         

         일 번, 발각되기 전에 성대한 선제 공격을 가한다.

         이 번, 형성한 포위망을 약간 뒤로 물려서 발각의 위험성을 낮춘다.

         ……삼 번, 당장 근거 없는 작전을 일체 중단하라고 거세게 항의하는 본사 파견팀장을 설득하거나 기절시킨다.

         

         “카이쥰 비서, 당신이 상임 이사님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건 더는 상관없습니다. 체포 동의안 최종 승인을 위한 자료를 현장에서 건네준다는 것부터 억지였는데, 정식으로 승인이 나기도 전에 별동대를 투입하다니…! 손실한 추적자들을 대체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에헤이, 제 통신 임플란트가 상태가 영 안 좋아서 다운로드가 늦어지는 것뿐이랍니다? 차분히 기다려 주신다면 금방 필수 자료는 제출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뭐라고 건방지게 별동대 같은 걸 운용하겠습니까! 다 저쪽이 우리 VIP에게 감히 손을 대려다 자폭한 결과일진대, 책임을 저에게 전가하시는 건 굉장히 곤란합니다?”

         

         “……저 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알고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는지 저의가 의심스럽군요. 그냥 채널 링크를 넘기시면 제가 직접 전송받아서 살펴보겠습니다.”

         

         이후에도 ‘왜 이렇게 급하게 구냐, 설마 죄인을 편을 드는 거냐.’ ‘진짜 공정성이 결여된 게 뭔지 보여주기 전에 적당히 해라.’ 등등 별의별 변명과 고함이 오갔으니.

         

         …아나스타샤가 신용은 없지만 능력은 있는 인간이기에 당장은 이용해야 한다고 부탁한 게 아니었다면 진작 처단했을 간교한 사기꾼을 제로는 노려보았다. 계속 응시했다. 허튼 수작을 부리지 말라는 경고를 담아서.

         

         전체적인 계획을 조율하는데 그 입안자만큼 알맞은 사람도 없다지만. 제로의 눈에는 카이쥰이 이렇게 후방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일하는 반면, 적의 심장부에 들어간 그녀에게 집중된 부담이 지나치게 커 보였다.

         

         안전 장치라고는 고무줄 하나밖에 없는 열악한 번지 점프처럼. 자칫 삐끗하면 모든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위치.

         

         마땅한 인재가 안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변명이다. 이건… 거의 고의적으로 아나스타샤를 험지에 내몬 것이다.

         

         마치 껄끄러운 골칫거리를 멀리 밀어내듯이, 혹은 경계 대상을 몰아붙여서 그 진면목을 살피려는 것처럼.

         

         “자자, 인내심을 가지시니 이렇게 전송이 원활하지 않습니까? 통탄할 노릇이지만 카사네 사장님이 사조직을 만드시고, 약품 원료 구입량을 이중으로 작성하신 문서까지…!”

         

         “후……… 작전 개시를 허가하겠습니다. 상부 지시대로 최종 체포 및 판결은 저희 쪽에서, 진압을 담당한 병사들에겐 가급적 투항 권고를 우선시하라 전달하십쇼.”

         

         과장된 말투와 마지못한 수긍.

         대치하던 두 현장 책임자가 극적 타협에 성공하자, 곳곳에서 신호 교환이 이루어지고 순식간에 진군이 이루어졌다.

         

         탕—! 타앙—!! 드드득…!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부를 찾아서 송달했다는 전언도 들어온 데다가, 밤의 어둠을 뚫고 곳곳에서 총성과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으니.

         

         – …무사히 끝나셨다면 다행입니다. 곧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EP(Extraction Point; 탈출 집결지)는 예정대로 본관 뒷문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

         

         그럼 이제 자신은 그녀를 마중나간 뒤에, 기다리면서 파악한 최적의 탈출 경로로 모시는 이를 이끌면 그만이다.

         

         쓸데없는 분쟁에 끼어들어서 다치지 말라는 말을 정확히 23회 정도 강조해서 들은만큼, 볼일이 끝난 에나마의 정쟁에 굳이 손을 거들 이유나 의리도 그들에게 없었겠다.

         때마침 제로의 달팽이관을 담당하는 전파 수신기에 소녀의 고함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면 그는 전장을 피해 빙 돌아서 본관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 야!! 제로! 긴급 상황 발생…!! –

         

         – !? –

         

         사전에 정말 정말 저어어엉말 그녀 선에서 해결하기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만 발동하기로 한 구조 요청(Mayday Call)이 들어왔다.

         내용은 대략 ‘웬 미친 헤이롱 군인이 마주치자마자 달려든다! 빨리 와봐아악!!’ 정도로 요란하지만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었고.

         

         공교로운 순간에 일어난 우연 같은 불행에.

         제로는 거두어들였던 시선을 바로 카이쥰에게 처박았다.

         

         동공의 확장, 흐트러진 호흡, 가속된 혈액 순환 등등 놀랐다는 감정을 느낀 징후 전혀 없음.

         통신 고장 고의성 다분, 아나스타샤와 카이쥰 서로에게 남은 효용성 가치 비교 결과 전자가 아득히 불리함, 권한 격차는 더 커다람.

         ……놈의 유죄(Guilty) 가능성 약 91%.

         

         서걱—!

         

         – 운 좋은 줄 아시기를…! –

         

         카이쥰의 근처를 스치듯 지나가며 팔을 회전시키는 것으로, 장비한 칼날을 뽑아내는 척 그의 목덜미 근처 머리카락을 후두둑 잘라냈다.

         머리를 도려내지 않은 건, 저것이 아나스타샤가 사라진 후처리를 책임지려면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 오직 그것뿐이었다.

         

          “헙!? 드로이드 오작동…? 살벌하기도 하군요. 이래서 세이프티 트리거 설정을 소홀히 하시면 안 됩니다.”

         “…………예, 뭐. 조금 소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돌발 해프닝에 흠칫한 팀장과 오싹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더듬는 카이쥰을 뒤로 한 채, 존나게 열 받은 케어봇은 으르렁거리며 진행 방향을 최단 거리로 재설정했다.

         

         탈출 집결지 설정 취소, 경로 재배치. 새로운 목적지는 본관 최상층 사장실.

         장전된 탄약 확인 및 보유한 특제 프로그램과 무장을 토대로 자신의 한계 전투력 계산. 격전지 최속 돌파 시 소요 예상 시간은…… 약 2분 11초…!

         

         콰앙!!

         

         “반복한다! 카사네 아마기 사장의 의약품 생산 라이센스 및 임원 직위는 현 시간부로 일시 정지되었다! 산하 직원 일동은 무장을 해제하고 이후 지시를 기다리……?”

         

         확성기를 통해 항복을 종용하던 직원이 갑자기 자기 머리 위쪽 조명의 불빛이 가려지자 말꼬리를 흐렸다.

         어쩌면 주변 분대원들과 적들의 시선이 묘하게 허공을 향해 들려지는 걸 보고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고.

         

         돌연 대치 한중간에 날아서 난입한 강철의 병사를 보고. 착지하기 전 1, 2초 정도의 시간 동안 짧은 공백이 생겼다.

         에다마츠 이사 측은 ‘음, 저거 우리편이었지 아마.’ 하는 감상을, 카사네 사장 측은 ‘저 씹새들이 투항을 권고해 놓고 드로이드까지 동원했구나.’ 하는 한탄을 하기엔 충분한 간극이었다.

         

         “발사… 발사아아아아—!!”

         “쏴라!! 파갑탄을 장착한 사수들은 집중적으로 중보병이랑 저 로봇부터…!”

         

         – 방어 매트릭스 가동. –

         

         와장창! 하고, 지면에 설치되어 있던 휴대용 전자식 바리케이드가 무더기로 튕겨 날아갔다.

         

         타격이나 공격에 노출된 것도 아니거늘. 땅에 단단히 파고들었던 나사가 자기 혼자서 역회전을 하고 그 거친 반동으로 인해 사방팔방으로 철판이 비산하자, 수비 측의 진영이 일순간 붕괴.

         

         당겨졌어야 할 방아쇠가 지연되고 일선 병력들이 환경에 의해 무너지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씨발! 이게 뭔 개 같은, 컥!?”

         

         그나마 운이 좋게 방벽의 모서리가 아니라 면 쪽에 머리를 맞아서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던 남자의 머리를 제로가 틀어쥐었다.

         

         역시 메가 코프 병력들인지라, 파갑탄이 기본 무장으로 준비되어 있다면 상응하는 추가 장갑-방패-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선 것.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괜히 의식이 남아있어서 일어선 건 당사자에겐 악운이었을지도.

         

         “크아아아아악!!? 씹, 놔, 놔줘!!”

         

         타다다당!! 드가가갓!

         

         이미 난전은 벌어졌다.

         어떻게든 열 하나를 넘어가면 지나친 인간들은 정면에서 제압 작전을 개시한 에다마츠 이사의 병력을 상대해야 했기에 함부로 뒤를 돌아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잔챙이들을 일일이 사살할 시간도 없는 제로는 측면과 정면 틈새로 빗발치는 총탄에 의한 장갑 손상을 감수하면서, 그저 간간히 견제 사격을 했을 뿐이다.

         

         – ……1분 52초. –

         

         예상보다 빠른 타이밍에 고지가 앞에 보였지만 그는 재차 인내했다.

         수직으로 상승하는 건 쉽다. 다만 지나치게 최적 경로만 집착하면 예측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걸 과거의 데이터가 경고했으니 더 변칙적인 기동을 시행해야 한다.

         

         또한 전투 수행 능력을 어느 정도 온존한 상태로 도착해야 하고. 적어도 실력과 센스가 상당하다는 헤이롱 장교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은.

         

         ……발판이 필요하다. 차근차근 잡고 올라갈 틈이 아니라, 이 육중한 몸체에 반동을 온전히 실어줄 수 있는 견고한 도약대가.

         

         “그헉!”

         

         네번째로 집어 들었던 추가 장갑을 매정하게 등 뒤편으로 던져버린 다음, 대신 널려 있던 조명 케이블 다발을 쥔 제로가 본관 건물 벽을 박찼다. 여기서 1회 가속.

         

         그렇게 포화에 스치면서도, 본관으로부터 멀어지는 몸의 방향을 제어해 근처 가로등 꼭대기 근처에 간신히 착지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무지막지한 물리력을 가로등이 견딜 리 만무했고 점차 바깥쪽으로 기울었는데….

         

         끽… 끼긱…!!

         

         가로등과 사장실 사이, 싸움터를 비추던 높은 조명대가 전선을 잡아당겨져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한껏 반동을 머금은 합성 고무 케이블, 거기에 이 거대한 활을 발사할 탄성도 충분했기에. 묵직한 공기 가르는 소음과 함께 케어봇은 이번엔 진짜로 하늘을 날았다.

         

         체공 높이는 최소 요구치를 충족했으며 장갑은 다소 망가졌지만 신경 계통은 전부 무사했으니.

         심지어 넉넉한 5초의 여유까지 가지고 그는 주인의 기대에 부응했다.

         

         – 2분, 6초. –

         

       

       

         콰지지지직…! 콰장창!!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집념의 기계 vs 집념의 인간은 다음 화에서 계속.

    실은 이거, 원래는 절대 나누면 안 되는 화였는데… 제가 오랜만에 외출하느라 그만….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