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5


   ​
   새카맣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공허.
   ​
   ​
   아이리스에겐 너무나 익숙하지만 리안이 있기에 괜찮았었던 마음속 상처가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
   ​
   [ 거봐, 이렇게 될 거라고 했잖아. ]
   “…”
   ​
   ​
   언제나 아이리스의 정신을 무너뜨리던 목소리가 다정함을 품은 채 속닥거렸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는 제 아이를 품에 안은 부모의 목소리처럼 따스했지만, 어투 속에 숨기지 못한 조소가 아른거렸다.
   ​
   ​
   아이리스는 차갑고 쿰쿰한 냄새가 나던 감옥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아무런 말도 뱉지 못했다.
   ​
   ​
   쿠드득.
   ​
   ​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눈에 보일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갔다. 그녀에게 악독한 말을 속닥이는 존재 또한 이를 알고 있는지 더더욱 잔혹한 말을 쏟아냈다.
   ​
   ​
   [ 차라리, 마을에서 헤어질 껄. 차라리 공작을 구하겠다는 걸 뜯어말릴걸. 이제 와 그런 말을 되뇌며 뭐 하겠어? 이미 다 늦었는데. ]
   [ 애초부터 바라지 말았어야지. 그랬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렇지? ]
   [ 언제나 남 탓만 하는구나? 그를 찔러 죽인 것도 너고, 그를 죽을 장소로 이끈 것도 너 인데. ]
   ​
   ​
   키득거리는 목소리는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참아왔던 말을 퍼부었다. 아이리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릴수록 그 안에 자리 잡은 공허가 몸집을 불렸다.
   ​
   ​
   [ ‘하, 그래 이거지.’ ]
   ​
   ​
   그녀의 몸속에 자리 잡은 ‘어둠’ -… 아니, 기생충처럼 자리 잡은 외신은 속으로 시원한 웃음을 흘리며 마음속 어둠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리스의 주변을 맴돌았다.
   ​
   ​
   [ ‘그 망할 놈만 아니었다면 이 몸을 차지하고도 남았을 텐데.’ ]
   ​
   ​
   외신은 새하얀 머리카락에 금안을 가진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간을 구겼다.
   ​
   ​
   [ ‘공평하게 나눌 줄도 알아야지, 가질 것도 아니면서 방해만 해대던 망할 새끼!’ ]
   ​
   ​
   외신은 리안을 ‘또 다른 외신’이라 단정 지으며 속으로 한참을 욕설을 내뱉었다.
   ​
   ​
   [ ‘뻔히 내가 이 몸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면서도…후우, 뭐 이젠 소멸한 것 같으니 상관없나?’ ]
   ​
   ​
   그녀는 기분 좋게 웃음을 흘리며 바닥을 살금살금 채워나가는 어둠이 아이리스의 몸을 타고 오르는 걸 지켜보았다. 
   ​
   ​
   [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
   ​
   ​
   하루 정도의 시간만 흐른다면 오랜 시간 작업해오던 이 귀한 몸을 드디어 얻을 수 있게 된다.
   ​
   ​
   [ ‘그렇게만 된다면 그 망할 놈들도 다 쓸어버릴 수 있겠지. 이 육체는 무려 ‘용사’의 육체니까.’ ]
   ​
   ​
   그녀는 놀랍게도 아이리스가 용사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또한 다크 판타지 세계 속에 숨어든 수 많은 외신 세력들 중 마왕쪽 세력이 가장 크고 강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
   ​
   그녀가 굳이 아이리스의 몸에서 오랜 시간 버텨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
   ​
   [ ‘마왕을 대적하기 위해선 용사의 몸이 최적이지.’ ]
   ​
   ​
   그녀는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리스에게 다가가 조용히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흐릿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외신의 몸이 흩어지고 주변 환경이 뿌옇게 물들었다.
   ​
   ​
   끼이익,철컹.
   ​
   ​
   어느새 주변 풍경은 아이리스에게 익숙한 장소로 바뀌어있었고, 아이리스는 두 발로 정면을 본 채 서 있었다.
   ​
   ​
   “여..긴..?”
   ​
   ​
   건조한 모래의 냄새, 발끝에 닿는 까끌까끌한 감촉, 밖에서 들려오는 환호성, 어둑한 통로 끝에 스며들어오는 환한 빛과 쏟아져 들어오는 뿌연 연기.
   ​
   ​
   멍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던 아이리스의 옆으로 익숙한 누군가가 스쳐 지나갔다.
   ​
   ​
   “…!”
   ​
   ​
   찰랑거리는 새하얀 머리카락, 굳은 의지가 가득한 금안. 
   ​
   ​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작은 키를 가진 과거의 자신이 성큼성큼 통로 끝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그제야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이 어떤 장면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
   ​
   “아, 안돼!”
   ​
   ​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통로 밖으로 이동하는 어린 자신에게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을 휘저은 손이 아래로 훅 처지는 것과 동시에.
   ​
   ​
   푸욱!
   ​
   ​
   “아…아아..”
   ​
   ​
   어느새 아이리스는 손에 검을 든 채 두 손이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
   익숙한 피 냄새가 난다.
   익숙한 피 냄새가 난다.
   익숙한 피 냄새가 난다.
   ​
   ​
   머릿속이 마비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귓가에 삐 -.. 하는 이명이 울려 퍼졌다. 숨이 턱 막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피범벅이 된 손이 제 목을 틀어쥔 채 긁어내렸다. 
   ​
   ​
   “아니, 아니야! 오빠는… 오빠는 살아있어!”
   ​
   ​
   아이리스는 뒤를 돌아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고 눈앞을 흐리는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
   ​
   까악.
   ​
   ​
   기분 나쁜 까마귀 소리와 함께 살이 무참하게 뜯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체 처리장은 구역질 나는 냄새로 가득했다. 
   ​
   ​
   어느새 그녀는 차갑게 식어버린 제 오빠의 시체 앞에 서 있었다. 
   ​
   ​
   털썩.
   ​
   ​
   “아냐, 오빠는… 오빠는 살아있어. 살아날 거야.”
   ​
   ​
   그녀의 눈동자 속엔 불안과 함께 절박한 희망이 넘실거렸다. 과거의 기억 속 리안이 기적처럼 깨어나 자신을 보듬었을 때 처럼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
   ​
   조금 전에 제 손으로 오빠를 죽인 탓일까, 그 집착과 두려움이 선을 넘은 상태였다. 아이리스는 차게 식은 오빠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
   ​
   다 커버린 아이리스와 달리 작은오빠의 몸은 너무나 작고 여렸다. 아이리스는 제 오빠를 품에 안은 채 가슴팍에 귀를 댔다.
   ​
   ​
   무섭도록 차가운 공허가 그곳에 있었다.
   ​
   ​
   ‘분명… 분명 괜찮을 거야.’
   ​
   ​
   본인이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기에 리안의 심장이 결국 멀쩡하게 뛸 거라는 걸 알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특히 정신적으로 몰릴 대로 몰린 아이리스는 더했다.
   ​
   ​
   오로지 그녀를 무너뜨리기 위해 준비된 기억들은 현실과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
   ​
   “오..빠, 오빠 그만… 그만 일어나. 응?”
   ​
   ​
   꿈쩍도 하지 않는 시체가 그런 요소 중 하나였지만 아이리스가 이를 알아차릴 방법은 없었다.
   ​
   ​
   그저 딱딱하게 굳은 몸을 절박한 얼굴로 흔들다가.
   ​
   ​
   우드득.
   ​
   ​
   붙잡고 있던 팔을 그대로 부러뜨리고 말았다. 
   ​
   ​
   “아,아아…아…”
   ​
   ​
   그녀는 멍한 얼굴로 비현실적인 장면을 내려다보았다.
   ​
   ​
   쩌적, 우드득.
   ​
   ​
   그녀의 마음이 더욱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외신은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더더욱 잔인한 기억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
   ​
   [ ‘흐흥… 이 몸을 얻게 되면 반드시 그 녀석에게 복수를 해주겠어.’ ]
   ​
   ​
   그녀는 ‘개그’의 권능을 가진 리안이 자신을 수정구를 통해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 발언’을 해버리고 말았다.
   ​
   ​
   쿠구구궁.
   ​
   ​
   [ ‘아핫! 역시 충격이 큰가 보네? 이번에는 꽤 큰 상처가 -…어?’ ]
   ​
   ​
   이는 곧 ‘개그’의 권능이 아이리스의 내부로 침투할 명분을 주었고… 외신의 손아귀에 주물러지던 아이리스의 정신 속에 유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저..게 뭐야? ]
   ​
   ​
   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한 바위들이 붉은빛을 머금은 채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시체 처리장과 밖을 나누는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
   “캬우우우!”
   ​
   ​
   콰르르릉! 
   ​
   ​
   그 밖에서 등장한 건 거대한 주둥이와 짧은 팔을 가진 거대한 공룡이었다. 외신의 머릿속에 무수한 갈고리가 쏟아졌다.
   ​
   ​
   [ 이게..이게 대체 무슨..? ]
   ​
   ​
   그녀가 멍하니 입을 헤벌린 채 굳어있는 찰나의 사이 거대한 공룡들이 우루루 시체 처리장 안으로 들어와 환호성이 들려오는 콜로세움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대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
   ​
   콰르르릉!
   콰아아앙!
   ​
   ​
   [ 꺄아아악! ]
   ​
   ​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유성이 결국 땅에 떨어져 거대한 폭음을 쏟아냈다. 태풍이라고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
   ​
   [ 대체..대체 누가 이런 짓을… 에이잇! ]
   ​
   ​
   그녀는 뒤늦게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아이리스에게서 떨어져선 두 손을 허공에 들어 올린 채 제힘을 넓게 펼쳤지만…
   ​
   ​
   “키이잉?”
   “쿠르륵?”
   ​
   ​
   도리어 공룡들의 시선을 끌어버리고 말았다.
   ​
   ​
   [ 힉…! ]
   ​
   ​
   무수히 많은 공룡이 쿠르릉! 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
   ​
   [ 으,…으으..! 젠장! ]
   ​
   ​
   그녀는 욕설을 내뱉으며 결국 멀찍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떨어져 나가자 아이리스의 트라우마를 무한히 재생시켜주던 주변 풍경이 뭉그러져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공룡들도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겨우 이성을 되찾은 후 생각했다.
   
   
   [ ‘도대체 어떤 놈이 공격한 거지?’ ]
   ​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런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녀와 같은 외신 뿐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녀가 감히 감지하지도 못한 외신이 그녀를 공격해왔다는 말과 같았다.
   
   
   
   
   [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응을….어?’ ]
   
   
   
   
   눈을 부릅뜬 채 예정된 어둠과 공허를 기다리던 외신은 예상치 못한 장면에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이게.. 다 뭐야? ]
   
   
   
   
   파스텔 톤의 유원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참고로 공룡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다.
   
   
   
   
   감히 ‘외신’ 정도의 격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펼쳐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관측 당해버린 외신씨..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새카맣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공허.

아이리스에겐 너무나 익숙하지만 리안이 있기에 괜찮았었던 마음속 상처가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 거봐, 이렇게 될 거라고 했잖아. ]

“…”

언제나 아이리스의 정신을 무너뜨리던 목소리가 다정함을 품은 채 속닥거렸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는 제 아이를 품에 안은 부모의 목소리처럼 따스했지만, 어투 속에 숨기지 못한 조소가 아른거렸다.

아이리스는 차갑고 쿰쿰한 냄새가 나던 감옥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아무런 말도 뱉지 못했다.

쿠드득.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눈에 보일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갔다. 그녀에게 악독한 말을 속닥이는 존재 또한 이를 알고 있는지 더더욱 잔혹한 말을 쏟아냈다.

[ 차라리, 마을에서 헤어질 껄. 차라리 공작을 구하겠다는 걸 뜯어말릴걸. 이제 와 그런 말을 되뇌며 뭐 하겠어? 이미 다 늦었는데. ]

[ 애초부터 바라지 말았어야지. 그랬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렇지? ]

[ 언제나 남 탓만 하는구나? 그를 찔러 죽인 것도 너고, 그를 죽을 장소로 이끈 것도 너 인데. ]

키득거리는 목소리는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참아왔던 말을 퍼부었다. 아이리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릴수록 그 안에 자리 잡은 공허가 몸집을 불렸다.

[ ‘하, 그래 이거지.’ ]

그녀의 몸속에 자리 잡은 ‘어둠’ -… 아니, 기생충처럼 자리 잡은 외신은 속으로 시원한 웃음을 흘리며 마음속 어둠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리스의 주변을 맴돌았다.

[ ‘그 망할 놈만 아니었다면 이 몸을 차지하고도 남았을 텐데.’ ]

외신은 새하얀 머리카락에 금안을 가진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간을 구겼다.

[ ‘공평하게 나눌 줄도 알아야지, 가질 것도 아니면서 방해만 해대던 망할 새끼!’ ]

외신은 리안을 ‘또 다른 외신’이라 단정 지으며 속으로 한참을 욕설을 내뱉었다.

[ ‘뻔히 내가 이 몸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면서도…후우, 뭐 이젠 소멸한 것 같으니 상관없나?’ ]

그녀는 기분 좋게 웃음을 흘리며 바닥을 살금살금 채워나가는 어둠이 아이리스의 몸을 타고 오르는 걸 지켜보았다.

[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

하루 정도의 시간만 흐른다면 오랜 시간 작업해오던 이 귀한 몸을 드디어 얻을 수 있게 된다.

[ ‘그렇게만 된다면 그 망할 놈들도 다 쓸어버릴 수 있겠지. 이 육체는 무려 ‘용사’의 육체니까.’ ]

그녀는 놀랍게도 아이리스가 용사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또한 다크 판타지 세계 속에 숨어든 수 많은 외신 세력들 중 마왕쪽 세력이 가장 크고 강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가 굳이 아이리스의 몸에서 오랜 시간 버텨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 ‘마왕을 대적하기 위해선 용사의 몸이 최적이지.’ ]

그녀는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리스에게 다가가 조용히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흐릿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외신의 몸이 흩어지고 주변 환경이 뿌옇게 물들었다.

끼이익,철컹.

어느새 주변 풍경은 아이리스에게 익숙한 장소로 바뀌어있었고, 아이리스는 두 발로 정면을 본 채 서 있었다.

“여..긴..?”

건조한 모래의 냄새, 발끝에 닿는 까끌까끌한 감촉, 밖에서 들려오는 환호성, 어둑한 통로 끝에 스며들어오는 환한 빛과 쏟아져 들어오는 뿌연 연기.

멍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던 아이리스의 옆으로 익숙한 누군가가 스쳐 지나갔다.

“…!”

찰랑거리는 새하얀 머리카락, 굳은 의지가 가득한 금안.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작은 키를 가진 과거의 자신이 성큼성큼 통로 끝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그제야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이 어떤 장면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아, 안돼!”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통로 밖으로 이동하는 어린 자신에게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을 휘저은 손이 아래로 훅 처지는 것과 동시에.

푸욱!

“아…아아..”

어느새 아이리스는 손에 검을 든 채 두 손이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익숙한 피 냄새가 난다.

익숙한 피 냄새가 난다.

익숙한 피 냄새가 난다.

머릿속이 마비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귓가에 삐 -.. 하는 이명이 울려 퍼졌다. 숨이 턱 막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피범벅이 된 손이 제 목을 틀어쥔 채 긁어내렸다.

“아니, 아니야! 오빠는… 오빠는 살아있어!”

아이리스는 뒤를 돌아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고 눈앞을 흐리는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까악.

기분 나쁜 까마귀 소리와 함께 살이 무참하게 뜯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체 처리장은 구역질 나는 냄새로 가득했다.

어느새 그녀는 차갑게 식어버린 제 오빠의 시체 앞에 서 있었다.

털썩.

“아냐, 오빠는… 오빠는 살아있어. 살아날 거야.”

그녀의 눈동자 속엔 불안과 함께 절박한 희망이 넘실거렸다. 과거의 기억 속 리안이 기적처럼 깨어나 자신을 보듬었을 때 처럼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조금 전에 제 손으로 오빠를 죽인 탓일까, 그 집착과 두려움이 선을 넘은 상태였다. 아이리스는 차게 식은 오빠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다 커버린 아이리스와 달리 작은오빠의 몸은 너무나 작고 여렸다. 아이리스는 제 오빠를 품에 안은 채 가슴팍에 귀를 댔다.

무섭도록 차가운 공허가 그곳에 있었다.

‘분명… 분명 괜찮을 거야.’

본인이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기에 리안의 심장이 결국 멀쩡하게 뛸 거라는 걸 알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특히 정신적으로 몰릴 대로 몰린 아이리스는 더했다.

오로지 그녀를 무너뜨리기 위해 준비된 기억들은 현실과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오..빠, 오빠 그만… 그만 일어나. 응?”

꿈쩍도 하지 않는 시체가 그런 요소 중 하나였지만 아이리스가 이를 알아차릴 방법은 없었다.

그저 딱딱하게 굳은 몸을 절박한 얼굴로 흔들다가.

우드득.

붙잡고 있던 팔을 그대로 부러뜨리고 말았다.

“아,아아…아…”

그녀는 멍한 얼굴로 비현실적인 장면을 내려다보았다.

쩌적, 우드득.

그녀의 마음이 더욱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외신은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더더욱 잔인한 기억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 ‘흐흥… 이 몸을 얻게 되면 반드시 그 녀석에게 복수를 해주겠어.’ ]

그녀는 ‘개그’의 권능을 가진 리안이 자신을 수정구를 통해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 발언’을 해버리고 말았다.

쿠구구궁.

[ ‘아핫! 역시 충격이 큰가 보네? 이번에는 꽤 큰 상처가 -…어?’ ]

이는 곧 ‘개그’의 권능이 아이리스의 내부로 침투할 명분을 주었고… 외신의 손아귀에 주물러지던 아이리스의 정신 속에 유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저..게 뭐야? ]

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한 바위들이 붉은빛을 머금은 채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시체 처리장과 밖을 나누는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캬우우우!”

콰르르릉!

그 밖에서 등장한 건 거대한 주둥이와 짧은 팔을 가진 거대한 공룡이었다. 외신의 머릿속에 무수한 갈고리가 쏟아졌다.

[ 이게..이게 대체 무슨..? ]

그녀가 멍하니 입을 헤벌린 채 굳어있는 찰나의 사이 거대한 공룡들이 우루루 시체 처리장 안으로 들어와 환호성이 들려오는 콜로세움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대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콰르르릉!

콰아아앙!

[ 꺄아아악! ]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유성이 결국 땅에 떨어져 거대한 폭음을 쏟아냈다. 태풍이라고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 대체..대체 누가 이런 짓을… 에이잇! ]

그녀는 뒤늦게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아이리스에게서 떨어져선 두 손을 허공에 들어 올린 채 제힘을 넓게 펼쳤지만…

“키이잉?”

“쿠르륵?”

도리어 공룡들의 시선을 끌어버리고 말았다.

[ 힉…! ]

무수히 많은 공룡이 쿠르릉! 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 으,…으으..! 젠장! ]

그녀는 욕설을 내뱉으며 결국 멀찍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떨어져 나가자 아이리스의 트라우마를 무한히 재생시켜주던 주변 풍경이 뭉그러져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공룡들도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겨우 이성을 되찾은 후 생각했다.

[ ‘도대체 어떤 놈이 공격한 거지?’ ]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런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녀와 같은 외신 뿐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녀가 감히 감지하지도 못한 외신이 그녀를 공격해왔다는 말과 같았다.

[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응을….어?’ ]

눈을 부릅뜬 채 예정된 어둠과 공허를 기다리던 외신은 예상치 못한 장면에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이게.. 다 뭐야? ]

파스텔 톤의 유원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참고로 공룡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다.

감히 ‘외신’ 정도의 격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펼쳐졌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