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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메네스테일 10층을 공략하고 다음 날.

   

   11층부터 공략을 시작한 나는 던전을 공략하는 게 한층 쾌적해졌음을 느꼈다.

   

   온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직 목걸이를 끼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시원함을 느끼겠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험가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는 거야.

   

   이유는 여럿이겠지. 10층의 수문장 역을 하는 보스를 뚫은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도 이유일 테고.

   

   메네스테일 던전의 이상에 관해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공략을 망설이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거야.

   

   어쨌건 그 덕분에 난 20층까지 돌파를 하는 동안 모험가 하나를 만나지 않았다.

   

   던전을 공략하는 데 아무런 변수가 없으면 어떻게 될 지야 뻔하지.

   

   전 날 더위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던 나는 이를 악물고 스피드런을 했다.

   

   20층을 돌파한 후 시원함을 손에 넣기 위해서.

   

   “하. 죽어라 달리는 것도 힘든 일이군요.”

   “이 정도로 지치는 건가? 아직 많이 부족하군.”

   “저는 정보원이지 기사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최단거리로 던전을 주파한 후 보스룸의 전투마저도 칼과 알새틴에게 전담시켜버린 나는 21층에 도착하자마자 목걸이를 꺼내서 착용했다.

   

   그러자 내 주변을 짓누르던 뜨거운 공기가 사라지고 목걸이로부터 서늘함이 퍼졌다.

   

   그 서늘함은 뼈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냉기를 새겼지만 1층에서 착용했을 때처럼 나를 얼어죽일 것 같진 않았다.

   

   그보다는 시원함이 더 컸지.

   

   열기와 냉기가 충돌한 끝에 냉기가 판정승을 거두었기에 닭살이 살짝 돋았지만 이틀 내내 더위 속에서 살다 보니 차라리 추위가 반가웠다.

   

   좋아. 이거 하나만 해도 여태까지 받았던 스트레스 중 일부가 날아가는 느낌이야.

   

   절로 기운이 나서 주먹을 꼭 쥔 나는 친해져서 투닥거리고 있는 칼과 알새틴 쪽으로 다가갔다.

   

   ‘두 분…’

   “야. 허접들. 아직 안 힘들지? 그치? 설마 나 같은 여자애보다 후달리는 개허접들인 거 아니지?”

   

   “물론입니다. 아가씨.”

   

   “…어. 더 가실 겁니까?”

   

   두 사람의 반응은 상반됐다.

   

   알른 가문의 지옥 같은 생활에 익숙한 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비교적 일반인에 가까운 알새틴은 입술을 부들거렸다.

   

   알새틴. 약간 지쳤구나?

   

   그럴 만 하지. 전투하고 달리고 전투하고 달리고를 몇 시간 동안 반복했으니까.

   

   나야 어느 정도 쉴 시간이 있었지만 이 두 사람은 아예 틈이 안 났으니까 난색을 표하는 게 당연해.

   

   근데 있지. 아래로 빨리 가는 게 알새틴 너한테도 이득이 되는 일이잖아.

   

   그치?

   

   그러니까 내가 힘이 나게 해줄게.

   

   “진짜?♡ 너 나보다 약해 빠진 벌레였던 거야?♡ 하긴 뒷골목 출신의 개허접이니까♡ 내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줄게♡ 푸후훗♡”

   

   알새틴의 앞에서 대놓고 비웃었더니 그의 이마에 힘줄이 새겨졌다.

   

   “…아뇨. 할 수 있습니다.”

   “못 하겠으면 못 하겠다고 해도 돼♡ 자그마한 여자애보다 못한 약골이라고 인정하면 되는 거잖아?♡ 틀린 말도 아닌 데 뭐 어때♡”

   “괜찮습니다. 해보겠습니다.”

   

   네가 한다고 그랬다? 내가 억지로 시킨 거 아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나보고 악덕사장이라고 그러면 안 된다?

   

   알겠지?

   

   *

   

   최근 메네스테일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 중 한 사람인 차르제는 저녁이 다가오는 게 무서웠다.

   

   원래 그에게 저녁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노을이 진다는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퇴근할 수 있다는 것.

   

   매일 밤마다 주점에 가서 맥주 큰 잔 두 개를 마시며 꼬치모듬을 뜯는 걸 행복으로 여기는 그다. 어찌 저녁이 다가오는 게 행복하지 않겠는가.

   

   허나 그런 그가 최근 저녁을 두려워하게 된 까닭은 오롯이 한 사람 때문이었다.

   

   벌컥.

   

   문이 열리고 그 쪽으로 모험가들의 시선이 모여 들었다가 이내 흩어진다.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지금 길드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을 뿐.

   

   왜 이렇게 시간을 끄냐거나, 여기에 전세를 냈냐거나, 늦게 온 주제에 왜 이렇게 재촉을 하냐거나 소리치며 접수대 앞에서 싸우던 모험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가 오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그들이지만 지금 길드에 들어온 사람은 예외였다.

   

   바람에 단풍이 흩어지듯 모험가들이 흩어진 곳을 지나 등장한 여자아이의 모습에 차르제는 최대한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려 노력했다.

   

   “떡대. 왜 이렇게 짐승처럼 생긴 거야? 하마터면 먹이를 줄 뻔했잖아.”

   “이렇게 생겨서 죄송합니다!”

   

   루시 알른.

   

   대륙 전체에 명성을 날렸던 영웅 베네딕 알른의 유일한 자식이자, 왕이고 귀족이고 가리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어뜯고 보는 망나니.

   

   대체 무슨 변덕이 생겨서 메네스테일 던전을 공략하러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의에 의해 루시 알른을 전담하게 된 차르제는 매일 저녁마다 위가 뚫릴 것 같은 것을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 느려터진 떡대. 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면 알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루시 알른이 소문만큼이나 험악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입이 무척 험한데다가 남을 비난해 화나게 만드는 걸 즐기는 듯한 루시 알른이지만 딱 거기까지.

   

   그녀는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보고 웃을 뿐 그 이상을 하진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어제 던전에서 다른 모험가들을 구해준 일도 있고 해서 길드에 드나드는 모험가들 사이에선 루시 알른이 입만 험할 뿐 괜찮은 사람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어떤 중견 모험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망나니마냥 살다 철이 든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그 모든 소문과 차르제는 무관했다.

   

   루시 알른의 비꼼과 경멸어린 시선 아래에서 일을 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루시 알른은 그저 스트레스의 근원일 뿐이었다.

   

   “진짜 생긴 것보다도 더 둔하다니까. 전리품 정산하는 데 이만큼이나 걸리다니.”

   “죄송합니다. 알른 영애.”

   

   드디어 끝났다.

   

   이제 이 사람이 가고 나면 드디어 마음 편하게 퇴근을 준비할 수 있어!

   

   차르제는 기쁜 마음으로 루시 알른에게 돈을 전달하려다 문득 전달해야 할 이야기가 있음을 깨닫고 손을 멈췄다.

   

   “뭐야. 떡대.”

   “알른 영애. 최근 던전에 이상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던전 출입에 주의를…”

   “풋.”

   

   차르제의 경고를 듣던 루시 알른은 비웃음을 흘리더니 광대를 보듯 차르제를 바라봤다.

   

   “날 걱정하는 거야? 관심 끌려고 그래? 여자애를 좋아하는 페도였구나? 변태. 짐승. 역겨워.”

   “아뇨! 결코 그런 것이.”

   “우와. 얼굴 벌게졌어. 여자애한테 놀아나는 허접 떡대. 완전 한심해.”

   

   키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루시 알른이 떠나간 후 차르제는 접수대에 이마를 박았다.

   

   흐아아악.

   

   싫어.

   

   너무 싫어.

   

   저 분 대체 언제 돌아가는 거야?!

   

   메네스테일 던전은 대형 던전 중에서도 환경이 험악해서 여러 귀족 자제들이 치를 떨고 돌아간 곳인데 저 사람은 왜 투정을 안 부리는 거야!?

   

   돌아가라고!

   

   소문대로 까탈스럽게 굴어서 영지로 돌아가란 말야!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던 차르제는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저기. 차르제. 혹시 진짜로.”

   “아냐! 아니라고! 난 나올 데 나온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야!”

   “어쩐지 여자를 못 사귀더라니.”

   “아니라니까아아아!”

   

   억울함이 잔뜩 서린 차르제의 울부짖음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길드의 분위기가 살짝이나마 풀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또 다시 길드의 문이 열리고 길드에 침묵이 찾아왔다.

   

   루시 알른이 재방문 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이 곳을 찾은 것은 메네스테일을 관리하는 게오르크 백작 가의 장남인 메그 게오르크였다.

   

   길드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귀족의 행차에 길드 안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차르제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 고함을 지르던 그는 메그 게오르크에게 다급히 인사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뭐지? 평소엔 가문에서 놀고 먹고 여자나 부르던 인간이 왜 여기에.

   

   “게오르크 영식!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메그의 방문에 길드장이 다급히 뛰쳐나와 굽실거렸지만 메그의 얼굴은 무심했다.

   

   뭐지? 평소 같았으면 공손하지 못하다며 한 소리를 했을 텐데.

   

   저 인간도 성격 더럽기로는 어디가서지지 않는 인간이니까.

   

   “던전의 폭주에 관해 할 말이 있다. 조사대를 꾸밀 생각이다만”

   “아! 예.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지요! 준비를 해두고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아니. 자잘한 설명은 여기 있는 집사에게 해라. 나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메그 게오르크는 그리 대답을 하고는 길드의 창 바깥을 쳐다봤다.

   

   “이봐. 길드장.”

   “예?”

   “방금 전 여기에서 나간 여자아이는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입맛을 다시는 메그 게오르크의 모습을 본 차르제는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싸한 느낌에 입술을 곱씹었다.

   

   *

   

   메네스테일은 모험가와 평민의 거리다.

   

   왜냐고?

   

   메네스테일 던전의 환경을 봐! 귀족 자제가 여기를 공략하고 싶겠냐?!

   

   나도 힘들어서 뒤질 것 같은데 어지간한 귀족 놈들이 저 더위를 참고 견디겠냐고. 못 하지.

   

   인생 역전을 노리고 대형 던전을 공략하려는 귀족 가의 삼남 같은 애들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런 녀석들은 보통 더 쾌적한 곳을 찾지. 이런 험하고 불쾌한 곳에는 안 온다고.

   

   그래서 메네스테일은 다른 곳보다 귀족 비율이 압도적으로 적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 고객이 평민과 모험가들이다보니 이 곳의 가게나 시장도 거기에 맞춰져있지.

   

   왜 아카데미의 거리 식당은 귀족 자제를 기준으로 맞춰져 있잖아?

   

   그래서 고급스럽고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느낌적인 느낌을 중시한단 말이지.

   

   그것도 맛있긴 하지만 만날 그런 것만 먹다 보면 가끔 불량식품이 끌리는 날이 와.

   

   재료 본연의 맛이고 나발이고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듯 폭력적인 그 맛이.

   

   나는 오늘 그를 충족시키기 위해 메네스테일 거리의 한 식당을 찾았다.

   

   평민의 거리인 이 곳은 그런 음식을 전문으로 하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거. 저거 봐요. 엄청나지 않아요?!’

   

   와. 저기 돼지 다리를 붙잡고 뜯는 거봐.

   

   완전 폭력적이야! 엄청 맛있을 거 같아!

   

   <본인의 취향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만…>

   ‘할아버지! 언제까지 옛날에 갇혀 있을 생각이에요! 새로운 문화를 즐겨야죠!’

   

   할배에게 호들갑을 떨며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던 때에 가게 안으로 한 무리가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비싼 옷과 여러 장식품으로 치장을 한 남자와 그를 호위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

   

   저거… 분명 메네스테일의 장남이었지?

   

   인성이 더러운데다 여자 놀음을 좋아하는 쓰레기.

   

   메네스테일 관련 스토리에서 발암요소를 담당하던 놈.

   

   쟤가 왜 여기 있어?

   

   귀족이자 재능 있는 마법사라는 지위에 환장해서 평민과 모험가를 혐오하는 녀석이잖아.

   

   이런 곳에 올 이유가.

   

   “아아. 거기 있었군.”

   

   가게 안을 둘러보던 메그는 나와 눈을 마주하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씨발?

   

   저게 뭐지?

   

   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징그러운 웃음과 눈빛의 정체가 뭐야?!

   

   잠깐! 왜 여기로 오는 건데!

   

   너 루시 알른 모르냐?!

   

   알른 가문의 미친 망나니 루시가 나라고! 건드리면 물린다니까?!

   

   오지마! 오지말라고!

   

   “반갑네. 아름다운 여성이여. 나의 이름은 메그 게오르크. 메네스테일을 관리하는 게오르크 백작 가문의 장남이라네.”

   

   멋있는 척 하려는 건지 잔뜩 깐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페도는 내 눈을 마주하더니 재차 웃음을 지었다.

   

   하아. 진짜 인생 시이이이발.

   

   왜 나한테 먼저 다가오는 놈들은 페도 변태 새끼들 밖에 없는 거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면 허접 주신도 그 쪽에서 먼저 접근한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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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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