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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176 – 미리 보는 멸망의 분기>

     

    저주는 질병과 유사하다.

    치사성 질병의 경우, 초반에는 잠복상태를 유지하며 경미한 증세만을 일으키다가 중기에 돌입하면 본격적인 고통을 선사하기 시작한다.

    몸의 생체신호를 교란하고 면역체계를 파괴한 뒤에 최종적으로 말기에 돌입해서는 생명을 앗아간다.

     

    저주는 전파의 과정이 없다.

    대신, 저주의 발생원을 쉽사리 눈치 채지 못하도록 초반에는 경미한 증세만이 일어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증세는 악화되고 말기에 접어들어서는 생명을 앗아간다.

     

    ‘하지만 사망체험의 저주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수도 있다니. 학회에 보고한다면 세상 모두가 깜짝 놀라겠군.’

     

    당장 전세계적으로 저주술사의 수가 폭증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광경.

    인세의 종말이 오크노디의 악몽 속에서 펼쳐졌다.

     

    구오오오오.

     

    태초의 산맥이 일어난다.

    오래도록 잠들었던 생명이 자신의 피륙으로부터 비롯된 하찮은 부산물에 대한 분노를 터뜨린다.

    도대체 무슨 개판이 나면 사망체험의 저주가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걸까.

    그가 아는 이 저주는 저런 저주가 아니었다.

    보통은 길거리의 행인이 갑자기 칼을 들고 덤벼든다.

    행상인이 독이 든 사과를 건네서 먹고 쓰러지고.

    치맛바람으로 유혹하던 아녀자가 허벅지에서 비수를 꺼내 뒷덜미를 찍는 그런 저주다.

     

    저주는 끊임없이 분석한다.

    이 사람이 언제 방심할지.

    어떤 저주에 당할지.

    갈수록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을 택한다.

    그 끝에 나오는 것은 보통 한 사람이 인지하는 현실적인 최강의 위협.

    영지기사나 정체불명의 마법사에 불과하다.

    해결책도 간단하다.

    꿈속에 들어온 해주술사가 실제 기사와 마법사는 무적의 존재가 아님을 이론으로 설명하고, 자신의 대응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설명한다.

    그것에 납득한 본인이 기사와 마법사의 실력을 낮추고 해주술사의 실력을 높게 보면 사태는 종료.

    무력으로 저주의 형상을 죽이고 탈출할 수 있다.

     

    그것이 커지고 커져서 태초의 거인이 일어나다니.

    어린아이의 상상 정도를 아득히 넘어섰다.

     

    “앗, 디스트로이어 교수님!”

    “도와주러왔다. 사다코 교수만으로는 힘에 벅찰 것 같더라니 오기를 잘했군. 현재 진행도는?”

    “96번째…”

    “저주의 역산결과는?”

    “이거 뒤로도 네 번은 더 남아있어. 100번째까지 이어져…”

     

    이쯤 되면 오크노디보다는 재단이 더 놀랍다.

    학구열이 미친 제국귀족들도 이 정도로 과한 조기교육은 하지 않는다.

    대체 조기교육 진도를 어디까지 뽑아낸 건지, 재단의 이사장이 자신의 후계자 교육이라도 시킨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오크노디. 시간이 없으니 우선 저주의 파훼법부터 알려주지. 네가 아는 상상 속의 강력한 위험요소에 대한 상세한 스펙에는 구멍이 존재한다.”

    “구멍이요?”

    “거인이 크다는 사실을 구전으로만 들은 사람은 그 규모를 구현하더라도 근밀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큰 육체를 어떻게 지탱하는지는 모르지.”

     

    일단은 거인에 대한 정보공백을 파고들어서 저 거대한 존재를 조금이라도 약화시킨다.

     

    “생각해본 적 있나? 태초의 거인이 왜 오래도록 잠들었는지. 그건 척추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에엥???”

    “덤으로 저 거대한 몸을 유지할 열량도 부족해서 반쯤 가사상태에 빠진 채로 자신의 위에서 자라나는 토목의 생명력을 흡수하여 겨우 연명만 해왔지.”

     

    악몽보스토벌의 노하우.

    그것은 가스라이팅에 있다.

     

    “즉, 저 녀석은 두 발로 똑바로 서있을 수도 없는 중환자에 한 번 일어나면 1분도 제대로 못 움직이고 금방 도로 쓰러질 얼간이에 불과하다.”

    “아닌데요? 태초의 거인은 화산의 정수를 동력원으로 삼아서 움직이고 척추에 만년한철 광맥 심어져있는데요.”

    “…모든 거인의 약점은 아킬레스건이다. 아무리 거대한 생물체도 발뒤꿈치만 일격에 잘 날리면 전신의 모든 피를 쏟아내며 죽음을 맞이하지.”

    “아닌데요? 태초의 거인은 입안으로 들어가서 태양의 정수에 재해급 이상의 극빙마법이나 저주 써야하는데요? 풉풉. 고생물학 공부 좀 더 하셔야겠네요.”

    “…열받네.”

    “아얏!”

     

    머리통을 쥐어 박힌 오크노디가 찡찡거리며 허리춤에 대고 쿵쿵 주먹질을 해댔다.

    한 대 더 쥐어박자 그제야 머리를 쥐어 싸매고 바닥을 구르며 얌전해졌다.

     

    “쓸데없이 아는 것만 많아가지고는. 네가 고증을 그렇게 자꾸 따지니까 악몽격퇴가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 하늘같은 스승이 말하면 고분고분 따라라.”

    “흥! 고증이 틀린 헛소리를 들어주면 보상이 줄어들거든요?”

    “보상? 이런 짓을 한다고 누가 너한테 보상을 준다는 거냐.”

    “앗. 그게…”

    “…재단이냐?”

    “아닌데요!”

    “그럼 어디서? 누가?”

    “…재단 맞아요!”

    “정말 막장이군. 이건 재단이 아카데미에 보내는 경고라는 건가.”

     

    우리는 아카데미를 파멸시키기 위해 어떤 학생이라도 마력폭주와 마력재해를 일으키게 만들 수 있다.

    수틀리면 세계도 부술 거다.

    그러니 도발하지 마라.

    오크노디를 빼앗으려는 제스쳐도 취하지 마라.

    그런 뜻이 틀림없다.

    브론즈 교수가 재단의 재보를 훔치고 자신과 사다코 교수가 재단의 뒤를 캐던 행적이 들키자 면회를 통해 접촉한 오크노디에게 저주를 심어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이 모든 사태가 이해되었다.

     

    “오크노디. 재단과 아카데미 중 하나를 고른다면 어느 쪽을 택하고 싶냐.”

    “제가 왜 하나만 골라야 해요?”

    “엄마와 아빠도 누굴 더 좋아하는지 고르라고 보채지 않냐? 그거랑 같은 거다.”

    “우웅. 전 엄마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가엾어.”

     

    언데드의 차가운 품에 안기고도 뭐가 그리 좋은지 헤헤 웃으며 가슴에 고개를 묻는 모습을 보니 괜히 배알이 꼴렸다.

     

    “어리광부리면서 놀 시간에 네가 불러낸 괴물부터 어떻게든 해라.”

    “치. 알았어요. 가면 되잖아요.”

    “…뭐냐, 그건?”

    “화염마탑의 센티널 코어요!”

    “아무리 꿈속이라도 마탑의 존속을 책임지는 귀보를 대체 어느 틈에… 정말 넌 타고난 도적감이군.”

    “칭찬 맞죠?”

    “원래 도적은 손버릇이 나빠야 한다.”

     

    칭찬이지만 칭찬이 아닌 것 같은 칭찬!

     

    “센티널 코어는 뭐하러 훔쳤지?”

    “태초의 거인이 화가 나는 이유는 자기 생명줄인 태양의 정수를 누가 멋대로 훔쳐가거나 파손시켜서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체할 연료를 공급해야죠!”

    “…과연. 죽이기 위해 극빙마법이나 동결저주를 쓰러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군.”

     

    월드보스를 상대로도 척척 나오는 해결책.

    그것이 재단이 지닌 지식이라는 사실은 뒤로 하고 세 사람은 태초의 거인을 진정시키기 위한 침투에 나섰다.

    교수 클래스의 기동력에도 조금 뒤처질 뿐, 금방 가뿐히 따라잡는 오크노디.

     

    “뱃속에는 네가 들어가라. 나는 밖에서 시간을 끌어주지.”

     

    디스트로이어가 밖에서 시간을 끄는 사이, 안에서는 사다코가 수축하는 식도에 대고 저주를 걸었다.

     

    “가시가 꽂힌 기분이 들면 고통 때문에라도 목을 조이지 못하겠지.”

     

    두 교수님이 열어준 길을 따라 태양의 정수가 있던 심장부근에 적색마탑의 센티널 코어를 집어넣으니 생명력을 되찾은 태초의 거인은 폭주를 중지.

    세상의 멸망을 부르던 태초의 거인의 세계멸망 급 사태가 거짓말처럼 끝났다.

     

    [96번째 죽음 <태초의 거인>을 돌파했습니다.]

     

    이쯤 되면 현직 용사조차도 어지간한 시대에는 절명하거나 용사생명을 걸고 간신히 이룩할만한 위업을 연이어 성공시키는 오크노디.

    이를 돕는 디스트로이어는 무척이나 그리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현역시절 용사파티에서 니알라토텝과 함께 활동했던 바로 그 느낌.

    심지어 그때보다 나은 점도 있다.

    언제나 뒷맛이 찝찝했던 미봉책만 썼던 니알라토텝.

    그와 달리 오크노디의 선택은 하나같이 ‘정답’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 정도로 행동의 이유와 그것이 통하는 원리가 오롯이 이해되었다.

     

    ‘학생들과 아카데미에 대한 이해만 완벽한 것이 아니다. 세계의 재해와 재앙에 대한 이해 또한 완벽하니, 바른 길로 인도하면 인류는 다음 백년의 안전을 확정적으로 보장받는다.’

     

    머릿속으로 뚜렷이 그려졌다.

    이 작은 아이의 너머.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큭큭 웃고 있을 흑막.

    와이히엠하이 재단 이사장의 모습이.

    이 가능성을 못본 척 할 수 있겠냐고.

    그녀에게 최고의 가르침을 베풀지 않을 수 있겠냐고.

    내게서 이 아이를 뺏어갈 수 있겠냐고 승부를 던지는 것만 같은 모습이.

     

    ‘이번 시대의 용사가 맞이할 최대의 적수는 마왕이 아니었군. 바로 저기에 있었어.’

     

    저 작은 아이를 통해 아카데미에 시대의 명운을 건 승부를 하지 않겠냐며 선포하는 존재야말로 이번 시대 최흉의 존재, 인류의 적이다.

     

    [97번째 죽음 <신들의 황혼>을 돌파했습니다.]

    [98번째 죽음 <미식의 마왕>을 돌파했습니다.]

     

    신과 마왕조차 농락하는 기가 막힌 꼬맹이.

    아카데미의 지원을 받아낸다면 빛의 세계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디스트로이어.

     

    [99번째 죽음 <아카데미 최후의 날> 개시]

     

    그 믿음이 저 멀리, 아카데미를 제 발로 짓밟아 부수는 드래곤 교장의 모습을 보며 덜컥 멎었다.

    괴팍하기는 해도 인류의 든든한 수호자라고 여겼던 드래곤 교장이.

    고룡 <오모시로이>가 인류 최고의 교육기관을, 인류의 미래를 스스로 부순다.

     

    교장이 인류를 등지는 가능성.

    그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명확한 ‘현실성’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오크노디의 악몽 속에서 벌어졌다.

    이것은 악몽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능성이 아닌 현실세계에서도 일어날지 모를 가능성.

     

    인류가 맞이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

    그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교장과 아카데미에 오크노디의 이상성에 대해 상담하고 지원을 바랬다가 그가 배신한다면 그때야말로 인류의 마지막이다!’

     

    오크노디를 빛의 세계로 끌어들여 재단의 품으로부터 그녀를 빼앗고자 한다면.

    교장의 도움은.

    아카데미의 지원은.

    결코 받을 수도 없고, 받으려 해서도 안 된다.

    오직 자신들이.

    이 악몽을 직접 체험한 사다코 교수와 자신만이.

    이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전직용사의 어깨에 인류의 미래가, 세계의 평화가, 막중한 책임감이 얹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착한아이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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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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