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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표국주는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는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그런 표국주의 모습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거래할 생각이 없다면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

        “자,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대신 후한 보상을 드릴 테니…”

        ​

        “제 목적은 처음부터 삼보검결이었습니다.”

        ​

        삼보검결 아니면 할 이유가 없지.

        ​

        귀찮게 대리 비무를 하면서까지 상승 무공을 얻으려는 건데, 상승 무공을 정작 안 주겠다 하면 내 입장에선 아무런 이득이 없는 셈이 된다.

        ​

        뭐, 막대한 보상금?

        ​

        막말로 초절정고수라면 이름을 슬쩍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얻을 수 있는 게 중원이다. 이런 세상에서 금전적으로 날 매수하려고 하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지.

        ​

        “삼보검결에 대해서 어떻게 아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은!”

        ​

        “나중에 뵙시다. 물론 나중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

        “협상! 협상합시다!”

        ​

        협상이라.

        ​

        나는 그제야 몸을 돌려 다시 자리에 앉았다.

        ​

        뒤이어 급하게 자리에 앉은 표국주가 소매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는 , 간절한 눈으로 내게 부탁했다.

        ​

        “삼보검결을 제외한 어떤 것이라도 드릴 테니…안 되겠습니까?”

        ​

        “삼보검결은 왜 안 되는 겁니까?”

        ​

        니들이 그거 가지고 있다고 무공을 온전히 쓸 수 있지도 않을 텐데.

        ​

        상승 무공이 왜 상승 무공인데.

        ​

        평범한 사람은 봐도 이해 못 할 정도의 복잡한 무리를 담고 있기에 상승 무리라고 불리는 것.

        ​

        비교적 직설적이고 실전적으로 가르치는 서양조차 상급 아츠를 배우는 데에는 큰 노력이 필요했다. 

        ​

        특히, 상승 무공은 스승이 없으면 제대로 익힐 수 없다.

        ​

        복잡한 무리를 풀어서 설명해줄 사람이 없으면 무공을 잘못 익힐 가능성이 한없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

        마스터인 나나 칠성검왕이라면야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보다 아래인 무인이 삼보검결을 얻어봤자 약간의 성취를 빼고는 큰 이득을 보기 힘드리라.

        ​

        무협지 속의 주인공처럼 불합리할 정도의 오성으로 무공을 독학으로 익힐 수는 없을 테니.

        ​

        “…아버지께서 삼보검결만은 집안의 무공으로 삼아서 세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시곤 하셨습니다.”

        ​

        “상승 무공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텐데, 익힐 수는 있습니까?”

        ​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이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돈으로 해결하긴 힘들 겁니다. 금괴 백 개보다 비급이 더 가치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보아하니 아직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손을 떼는 게 나을 겁니다.”

        ​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표국주를 향해 경고를 던졌다.

        ​

        괜히 고집부리다 큰 화를 입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떄문이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기사였던 자로서 뻔히 보이는 미래를 두고 참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

        “…사자겁협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니 필히 진실이겠지요. 하지만 상단의 굴레를 넘어 세가로 발돋움할 기회를 위해 아버지께서 그리 노력하셨는데, 어찌 제가 팔아넘길 수 있겠습니까?”

        ​

        그의 목소리가 침울해졌다. 

        ​

        가족.

        ​

        가족이라.

        ​

        “하나만 묻겠습니다. 삼보검결의 비급은 어디에 있습니까?”

        ​

        “검결은 제가, 벽력삼보는 형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

        어느 쪽이든 이긴 쪽이 모든 것을 가진다는 건가.

        ​

        내 입장에서야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

        다만, 이 인간은 어떻게든 삼보검결을 보상에서 빼고 싶은 모양이니 조금 다른 방법을 써야겠네.

        ​

        “그런 거래 내용을 조금 바꿉시다.”

        ​

        “거래 내용을…말입니까?”

        ​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표정이 격렬하게 바뀌네.

        ​

        말 몇 마디에 희로애락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

        “당신도, 저도 원하는 것이 있으니 둘 다 이득을 보는 방향으로 계약을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

        “…어떻게 말입니까? 삼보검결은-”

        ​

        “제게 열람권을 주면 됩니다.”

        ​

        “열람권이라 하면…”

        ​

        표국주는 알아듣긴 했지만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내가 한 걸음 물러났다는 사실이 이상한 걸까. 

        ​

        하지만 이 협상은 처음부터 내가 휘두르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판.

        ​

        어차피 비급은 몇 번 읽어보면 내용을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 비급을 가져가지 않는 대신 뜯어먹는 것도 고려해 봐야지.

        ​

        하오문에 맡긴 돈도 언제 떨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

        “어차피 그대로 두면 빼앗길 것이 뻔한데, 저와 거래해 열람권과 추가 보수를 건네주는 선에서 계약할 수 있다면 이득 아니겠습니까?”

        ​

        “…하지만-”

        ​

        “잘 생각해보십시오. 표국주님. 표국주님은…선택권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느냐, 출혈을 감수하고 저를 고용할 것이냐. 하나만 선택하십시오. 어차피 반쪽짜리 비급 아닙니까?”

        ​

        “그, 그걸 어떻게!”

        ​

        “제가 어떻게 성천상단에 삼보검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왔겠습니까?”

        ​

        나는 품속에서 삼보검결 하권을 꺼내 들었다.

        ​

        그들이 애타게 찾고 있었을, 하지만 절대 찾지 못할 하권의 등장에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성천상단이 예전에 찾으려다 지반 붕괴로 끝내 얻지 못한 하권입니다. 삼보검결의 후반부 초식과 상승 무리가 적혀 있는 서책이니, 이것이 있어야 삼보검결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물론 스승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겠지만, 그건 내가 신경 쓸 거리가 아니다. 언젠가 상단에서 천재가 태어나면 해석할 수 있을 테니.

        ​

        아니면…주석본을 써주는 대가로 더 뜯어먹거나.

        ​

        성천상단이 중원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진 거대상단이니, 작정하고 뜯어먹으면 삼대가 먹고 살 정도의 재산 정도는 얻을 수 있으리라.

        ​

        “…진품이 맞다면…되려 우리 쪽에서 거래를 시도해야 할 것 같구려.”

        ​

        “어차피 저는 닳도록 읽어서 내용을 전부 알고 있으니, 어차피 그쪽이 가진다 한들 큰 타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걸 거저 넘길 수는 없으니, 거래 내용을 바꿔봅시다.

        ​

        만약 제가 이겨서 성천상단의 주인이 된다면 저는 이 서책을 성천상단에 팔겠습니다.

        ​

        성천상단은 어차피 이 책을 얻지 못하면 반쪽짜리 무공을 가지고 있어야 할 뿐이니, 이 서책을 꼭 얻어야만 하겠지요. 물론 헐값에 팔 생각은 없습니다.”

        ​

        “사, 상승 무공을 헐값에 사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암…”

        ​

        표국주가 어색한 얼굴로 맞장구를 치며 내 눈치를 보았다. 이미 거래의 주도권이 온전히 내게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

        하긴, 그것도 못 하면 상단주 될 생각은 접었어야지.

        ​

        “그러니 저는 승리의 대가와 이 책의 판매에 대한 대가로 열람권과 제가 원하는 물건 3개를 구해주시면 됩니다.”

        ​

        내 요구에 표국주는 고뇌에 찬 얼굴로 표두를 쳐다보았다. 표두는 자기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

        “3개라니…”

        ​

        3개.

        ​

        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요구인가.

        ​

        내가 무엇을 요구할지에 따라 거래의 대가는 하늘을 뚫을 수도, 거저 얻는 수준이 될 수도 있으리라.

        ​

        “…과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거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칠성검왕과 맞설만한 무인이 상단에 올지는 모르겠군요.”

        ​

        할래?

        ​

        안 할래?

        ​

        나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그가 대답하길 기다렸다.

        ​

        그가 대답을 꺼낸 것은 내가 차를 전부 마셨을 즈음이었다.

        ​

        “알았네! 거래함세!”

        ​

        “훌륭한 선택입니다.”

        ​

        이제 평생 일 안 해도 돈 펑펑 쓰면서 먹고살 돈이 생겼구나. 

        ​

        물론 이겨야 얻는 돈이지만.

        ​

        “위 대협,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었구려…”

        ​

        “무림에 발을 들이게 되면 그런 생각은 전부 사라질 겁니다.”

        ​

        나처럼 양심 있고 신사적인 사람이 어딨다고.

        ​

        나는 유려한 글씨체로 작성되어가는 계약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거 참. 이런 귀찮은 절차는 왜 하는지. 그냥 다 때려 부수면…”

        ​

        ‘초절정고수만 아니었어도…’

        ​

        성천상단의 부단주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앞을 바라보았다. 

        ​

        마음 같아서는 흘겨보고 싶었지만, 저 눈치 빠른 인간이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

        “곧 어르신께서 원하는 것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니 조금만 인내심을 가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그래. 알고 있으니 말 안 해도 된다.”

        ​

        대리 비무 사흘 전.

        ​

        서로의 대리인을 데리고 오기로 약속한 그는 칠성검왕을 데리고 왔지만, 그의 적수이자 동생인 표국주가 나타나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

        ‘이놈이 왜 안 오는 거지? 설마?’

        ​

        그의 미간이 한층 더 찌푸려질 찰나, 성천상단의 대문이 열리고 표국주와 함께 삿갓을 쓴 거구의 무인이 들어왔다.

        ​

        “하! 어디서 사람을 구해오긴 했나 보군. 아우야, 내가 아직 자비롭게 널 대할 수 있을 때 항복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형님이야말로 지금 비시는 게 어떻습니까!”

        ​

        두 사람을 견원지간처럼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을 펼쳤다.

        ​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

        윌리엄은 둘의 신경전이 계속되자 삿갓을 벗었다.

        ​

        그것만으로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윌리엄에게로 집중되었다.

        ​

        “거구의 색목인 검객이라면…사자검협!”

        ​

        “맹주와도 대등하게 겨루었다는 그 검객 아니오!”

        ​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상단 측 사람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

        사자검협이라니, 소문대로라면 칠성검왕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 아닌가.

        ​

        서로의 나이 차가 두 배에 가까울지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 그것이 사자검협.

        ​

        윌리엄은 그런 분위기에도 아무렇지 않게 포권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

        “본인은 위리엄이라 하오. 세간에서는 사자검협이라 불리고 있소.”

        ​

        ‘슬슬 지루하던 차였는데, 아주 재밌겠군!’

        ​

        예상치 못한 비무 상대에 칠성검왕의 얼굴이 환희에 물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벌써 3월이 끝나가네요.

    시간이 너무 빠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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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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