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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길들이기 전공의 건물은 기적궁의 후원에 있었다.

       아무래도 동물을 돌보는 과목의 특성상 넓고 트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원에 들어선 청강생들은 곳곳에 남은 코끼리의 발자국이나 호랑이가 할퀸 자국 같은 것을 가리키며 서로 수군댔다.

         

       도대체 어떤 동물들을 데리고 어떤 훈련을 하는 것일까?

         

       길들이기는 굳이 재주를 부리지 않아도 그저 관찰하는 것만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잔뜩 흥분해서 기대하는 동물들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정원의 끝에는 아담한 크기의 탑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탑의 입구에는 한 마리의 짐승이 앉아 있었다.

       엘라를 비롯한 많은 학생이 녀석을 알아봤다.

         

       독수리의 머리에 새하얀 날개를 가진 네발짐승.

       입학시험 때 과제로 나왔던 그리폰이었다.

         

       “빼악!”

         

       녀석은 낯선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가오자 몸을 일으키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부리를 딱 소리 내게 닫고는 콧김을 내뿜었다.

       발톱으로 땅바닥을 긁으며 그들을 위협했다.

         

       청강생들은 두려운 눈으로 놈을 바라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리폰은 농가를 습격해 큰 송아지도 채가곤 하는 맹수였다.

       자칫 날뛰기라도 한다면, 여럿이 다치거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은 제 뒤에 있으세요. 이 아이가 놀랄 수도 있으니까요.”

         

       클라라가 짐짓 심각한 톤으로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이 그리폰은 학생 중에서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고집 센 녀석이었다.

       클라라 역시 이 녀석과 마주하는 것이 그리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 3주 동안 매일 이곳을 찾아왔었다.

       입학시험에서 그녀가 저지른 짓을 덮어주는 대신, 그녀는 교수님의 부탁 몇 가지를 들어주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그리폰을 마주하는 데 익숙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엘라가 입학시험에서 보인 최고 점수도 앞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자 그리폰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클라라는 녀석에게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어주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폰은 날개를 접고 목을 쭉 뺐다.

       경계를 풀고 친근감을 표하는 녀석 특유의 자세였다.

         

       그녀 역시 두 팔을 늘어뜨리고 편안하게 다가갔다.

       녀석도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뒤에서 청강생들이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 들렸다.

         

       클라라는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끼며 그리폰의 부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것을 쓰다듬어주는 것이 녀석에게 친교의 표시였다.

         

       “그래. 여기. 이리로…….”

         

       그러나 그녀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얌전하게 굴던 그리폰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든 것이다.

         

       “빼애액!”

         

       그것은 그리폰이 흥분했을 때 내는 소리였다.

       녀석은 클라라를 지나쳐 청강생들에게 달려들었다.

         

       “아, 안 돼! 다들 물러서세요!”

         

       클라라가 소리쳤다.

         

       그리폰은 벌써 청강생 한 명을 덮치고 있었다.

       물빛 체육복을 입은 아이 한 명이 흥분한 녀석 밑에 깔려 버둥거렸다.

         

       클라라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께 통제할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망신이람.

         

       클라라는 품에서 단도 한 자루를 꺼냈다.

       코끼리도 잠재울 수 있는 마취제가 그 끝에 발려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녀석의 목을 향해 던지는 순간.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리폰이 덮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하하, 간지러워. 그만해. 3주 만이지? 너 나 기억하는구나. 그래, 그래. 착하다. 착하지.”

         

       목소리의 주인은 엘라였다.

       그녀는 공격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폰은 그녀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든 것이었다.

       녀석이 부리 사이로 혀를 내밀어 그녀의 손등을 날름날름 핥았다.

         

       아이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저 난폭한 맹수를 마치 강아지처럼 다루다니.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부, 부리를 쓰다듬어야…….”

         

       클라라는 자신이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리폰에게 친교의 행동을 할 것을 엘라에게 지시했다.

         

       마치 그녀의 조언 덕분에 그리폰을 잘 다루게 되는 그림이 나오도록.

         

       그러나 엘라는 그녀의 조언을 무시했다.

       그녀는 그리폰의 부리 대신 녀석의 목 뒤를 쓰다듬어주었다.

         

       딱 봐도 녀석이 지금은 그쪽을 원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폰은 기분 좋은 듯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손길을 따라 세웠던 깃털을 눕혔다.

         

       엘라는 그리폰이라는 동물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녀석을 다루는 솜씨는 전문적인 그리폰 라이더 못지않았다.

       .

       그녀는 순간순간 비치는 눈빛이나 작은 버릇을 통해 녀석이 원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었다.

         

       클라라는 이제는 엘라의 배에 머리를 비벼대고 있는 그리폰을 바라봤다.

         

       자신 있게 나섰는데 보기 좋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기고 말았다.

         

       고집 세기로 이름난 녀석이 어떻게 몇 번 본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자신은 몇 년을 이 학교에 다니면서 겨우 인사를 나눌 정도가 되었는데…….

         

       엘라가 녀석을 달래준 덕분에 멀찌감치 떨어졌던 아이들도 하나둘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리폰의 용맹한 생김새나 멋들어진 깃털과 날개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거 돌려줄게.”

         

       레이나가 클라라에게 불쑥 단검 한 자루를 내밀었다.

       아까 그녀가 던진 물건이었다.

         

       클라라는 허탈함에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던진 칼을 그녀는 너무나 쉽게 낚아채 버렸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레이나가 내민 단검을 품에 갈무리했다.

       연이은 정신적 충격에 그녀는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도 까먹었다.

         

       청강생들은 그리폰과 충분히 논 다음, 탑 안으로 들어갔다.

         

       “으아.”

       “이게 다 뭐야.”

         

       아이들은 방 안의 풍경을 보고 일부는 경탄의 함성을 일부는 경악의 비명을 내질렀다.

         

       길들이기 교수의 사무실답게 안은 동물들로 가득했다.

       아까 정원에서 봤던 흔적의 주인들이 보였다.

       그리폰에 버금가는 맹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들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동정심이 우러나왔다.

         

       그들은 모두 갇혀 있었다.

       방 한쪽 선반 가득히 진열된 유리병 속에.

         

       “저게 그 소문의 그 능력인가 봐.”

       “이렇게 모아서 보니 조금 소름 끼치는데.”

         

       그때, 사무실 구석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친절한 미소를 띤 3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반가워요. 저는 길들이기 교수인 파이렌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선반에 놓인 유리병들을 흥미 반 걱정 반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미소지었다.

         

       “이미 구경 중이었군요. 매력적인 아이들이지 않나요?”

         

       그녀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의문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엘라가 그들을 대표해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동물들은 괜찮나요? 좁고 갑갑해 보이는데요?”

       “학생은 그것이 걱정이었군요.”

         

       파이렌은 선반에 놓인 유리병 하나를 들었다.

       그 안에는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은 평범한 유리병에 불과하지만, 어떤 생물이 들어가는 순간 이 안은 이 세상과 전혀 별개의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그녀는 유리병을 갑자기 거꾸로 들었다.

       아이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그들이 걱정했던 것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리병 속의 코끼리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는 듯 여전히 병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실제로 이 동물들은 병 안에 들어있는 게 아니에요.”

         

       파이렌은 자신의 인스피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과 계약을 맺은 동물을 유리병 속에 넣을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편의상 그걸 유리병 속에 넣었다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유리병이 하는 역할은 동물들이 있는 세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매개에 불과했다.

         

       “이들은 이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답니다.”

       “거기가 어디죠?”

       “무엇보다 편안하고 무엇보다 안락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곳에 있으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요. 밥을 먹거나 대소변을 처리할 필요도 없고요. 제 생각에는 키르쿠스가 자신의 영역 어딘가에 구축한 특별한 공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녀는 청강생들을 이끌고 유리병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그 동물을 어디서 만나게 되었는지, 그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또, 어떤 재주를 익혔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들 하나하나 각자만의 사연이나 이야기가 없는 놈이 없었다.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는 박장대소를 했고, 어떤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찔끔 보였으며, 어떤 이야기를 듣고는 분노를 표했다.

         

       원래 이른 오후쯤이면 청강생들은 해산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에 시간을 크게 소비한 덕에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그날의 견학 일정을 종료할 수 있었다.

         

         

       ***

         

         

       나는 엘라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했던 시간이 됐음에도 소식이 없어 음향실을 통해 그녀와 마야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곳이 아이들의 호응이 좋아 시간을 좀 더 보냈을 뿐이었다.

         

       “그랬습니까?”

         

       나는 파이렌 교수에 대한 그녀의 호의어린 평가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걱정은 기우였던 것일까.

       TT2에서 광기를 보였던 그녀도, 지금은 그저 동물 마니아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게임에서 나왔던 그녀도 동물들을 포획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지옥의 현장에서도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유리병을 들고 다녔다.

         

       서브 퀘스트 몇 가지를 들어주면, 플레이어들을 자신의 아지트로 초대해 수집품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건……?”

       “우욱.”

         

       기사의 표정이 굳어졌고. 도적은 당장 토를 할 것만 같은 얼굴을 했다.

       마야만이 무감정한 얼굴로 파이렌이 수집한 것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녀의 병 안에 있는 것들은 평범한 생물이 아니었다.

         

       “끄으으, 주, 죽여 주세요. 끼에엑…….”

       “다리가 제멋대로 찢어져서 이렇게. 끄아악!”

         

       원더스타인의 힘에 당해 신체 일부가 변해버린 희생자들.

       바로 괴물로 완전히 변성되기 전에 멈춘 사람들이었다.

         

       “저건 사람이지 않습니까?”

         

       기사의 말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요? 아뇨. 그럴 리 없어요. 제 능력은 사람으로 인식한 것은 못 담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무실 구석에 있는 병 하나를 꺼내왔다.

       둥근 몸체에 기다란 주둥이를 가진 병이었다.

         

       “스승님. 손님들 오셨어요.”

         

       그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용사들에게 내밀었다.

         

       “인사하세요. 제 스승님이세요.”

         

       혹시나 그 안에도 괴물로 변한 사람이 들어있는 것일까.

         

       병 속을 자세히 살피던 도적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안에는 사람은커녕 살아있는 생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유리병 한쪽도 깨져 있었다.

         

       그 안에는 깨진 게딱지 같은 것에 다 말라붙은 피딱지가 달라붙어 있을 뿐이었다.

         

       “스승님! 스승님! 손님들이 오셨어요!”

         

       그녀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는 깨진 유리병을 들고 수십 년 전에 죽었다는 스승을 찾았다.

         

       “역시 이 여자도 좀 미쳤군.”

       “원더스타인의 광기에 지배당한 도시에서 이 정도도 감지덕지 아니겠나.”

         

       꺼림칙한 인물이긴 했지만, 다른 도시의 조력자들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었다.

       적어도 사람을 해치는 인물은 아니니까.

         

       다만, 저주 역병에 걸린 ‘환자’에 불과한 사람들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이 내게 꺼림칙하게 다가왔다.

         

         

       ***

         

         

       학생들이 떠난 탑 안에 파이렌 혼자 남았다.

       그녀는 커튼을 치고 방문을 잠가 걸고는 책상 뒤에 있는 책꽂이에 다가갔다.

         

       그녀가 거기 있는 물건 몇 가지를 건드리자 책꽂이가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났다.

       그것 뒤에는 숨겨진 통로가 있었고, 그것은 숨겨진 공간으로 통했다.

         

       통로를 지나친 그녀는 벽에 달린 스위치를 찾아 방 안에 불을 켰다.

       이곳은 창문이 하나도 없는 방이기에 불빛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전등이 어두운 공간을 밝혔다.

       그녀의 집무실보다 몇 배는 큰 공간이 드러났다.

         

       커다란 선반 여러 개가 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수백 개의 유리병이 선반마다 가득했다.

         

       그 안에는 역시 각자 하나의 생물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밖에서 볼 수 있었던 것들과 그 생김새가 달랐다.

         

       그것들은 원래 존재하던 생물들의 한쪽 귀퉁이를 잡아다가 크게 일그러뜨려 놓음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물론 어비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태였다.

         

       그런 끔찍한 것들을 눈앞에 두고도 파이렌의 표정은 평온했다.

       애초에 그녀가 이것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 그녀의 인스피라로 포획한 것들이니까.

         

       그녀는 방의 중앙을 응시했다.

       전등의 불빛이 잘 닿지 않는 그곳에는 새까만 어둠이 고여 있었다.

         

       그곳에서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느냐.”

         

       어둠 속에는 어떤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둥근 몸체에 주둥이가 긴 유리병 하나가 단단한 고정쇠에 결박된 채 책상 위에 있을 뿐이었다.

       목소리는 그 안에서 나왔다.

         

       둥근 바닥의 플라스크 안에는 이 세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생물이 들어있었다.

         

       마치 어느 해산물 가게의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보일 법한 게딱지와 소라를 겹겹이 쌓은 것 같은 것이 검은 살덩이를 품고 꿈틀대고 있었다.

         

       파이렌은 존경심과 애정을 담아 그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앞에 부복했다.

         

       “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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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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