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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황도로 향하는 마차 안.

         

       다행히 프란체의 사랑 가득한 키스 공세는 짧게 끝났다. 더 하다간 도중에 멈출 수 없을 거 같다는 이유였다.

         

       “후음, 진은 냄새가 좋아.”

         

       내게 찰싹 달라붙어서 목에 코를 들이밀곤 냄새를 맡는 프란체. 눈을 감고 호흡을 들이쉬는 게 천천히 음미하는 듯했다.

         

       “…붕대 냄새밖에 안 날 거 같은데요?”

       “아니야. 너만 가진 특유의 냄새가 있어.”

         

       프란체는 몸을 더 밀착시키며 숨을 들이켰다. 여자들만 맡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네 냄새를 맡으면 심신이 안정되는 거 같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할까.”

         

       푸근한 느낌이 물씬 드는 게 정말로 그녀의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프란체도 좋은 냄새가 나요.”

         

       그녀의 붉은 머리에선 수많은 장미가 늘어진 것처럼 꽃향기가 자욱했다.

         

       “그래? 다행이네.”

         

       프란체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더 세게 안았다.

         

       완전히 밀착한 만큼 몸이 불편하긴 하지만, 항상 지켜만 봐야 했던 프란체를 안아줄 수 있어 기쁜 마음이 앞섰다. 나는 그녀를 살포시 품어주었다.

         

       “진.”

       “예.”

       “나 임신했을까?”

       “…당연히 하지 않았을까요?”

         

       첫날밤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계를 가졌다. 그렇게나 뽑혔는데 안 생기면 내가 억울한 수준.

         

       “그랬으면 좋겠네.”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너의 아이를 임신하다니, 나 너무 행복해.”

       “저도 프란체와 이어져서 꿈 같아요.”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선을 마주했다.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프란체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정말로 사랑받는 기분.

         

       “그런데 얼굴에 생기가 없구나.”

       “그럴 수밖에 없죠.”

       “내가 너무 많이 했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네요.”

         

       내 몸이 정상이었다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체력이 너무 빠져있었다.

         

       굳이 이유를 더 캐보자면, 나는 이 세상에서 존재가 사라졌다가 되돌아온지라 힘이 불안정했다.

         

       프란체의 마도구 영향도 있었고.

         

       ‘그러고 보니 내 존재가 프란체에게 귀속됨에 따라 힘이 약해진다고 했는데.’

         

       얼마나 약해졌는지는 모르겠다마는, 그래도 이 세계에서 나보다 강한 자는 없을 거다. 초월자의 영역은 쉽게 들일 수 없으니.

         

       프란체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미안해. 그때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주체를 못 했어…….”

         

       그리 말하곤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입술을 삐죽이는 프란체. 난 픽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를 사랑해서 그러신 거잖아요?”

         

       끊임없이 사랑 공세를 퍼붓던 프란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나를 원하는데 화가 나 거나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게 이상하지.

         

       “그러면 매일 어제처럼 해도 되니? 난 그게 좋은데.”

         

       사냥감을 눈앞에 둔 독사처럼 눈빛이 돌변한 프란체. 침이 돌처럼 삼켜져 목울대가 무겁게 넘어갔다.

         

       “…휴식은 취하게 해주세요.”

       “당연하지. 널 말려 죽일 생각은 없단다.”

         

       내가 그때 눈빛을 봤는데? 이건 먹히는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다.

         

       “흠, 아닌데. 완전히 말려 죽일 생각으로 명령을 내리시던데…?”

         

       어깨를 으쓱이며 능글맞게 웃자 볼을 부풀린 채 나를 응시하는 프란체. 화내는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그렇게 나와도 되겠어?”

       “뭐가요?”

       “밤에 어떡하려고?”

       “…….”

         

       오늘은 이례적이었던 것뿐이지, 힘이 돌아오면 모른다. 아무튼, 나는 지지 않았다.

         

       “…오늘처럼 되진 않을 거예요.”

       “흐응…….”

         

       프란체는 음흉하게 웃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등골이 오싹해지는데.

         

       “뭐, 좋아. 기대할게.”

         

       그리 말하곤 픽 웃은 프란체는 다시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사실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뭔가요?”

       “약해진 네 모습이 엄청 흥분되거든.”

       “…….”

         

       뜬금없는 취향 고백에 눈만 끔뻑이고 있자 프란체는 얼굴을 붉혔다.

         

       “너의 연약한 모습을 나만 볼 수 있다는 거에서 우월감이 느껴진달까… 그래서 힘을 계속 뺏고 싶어져. 앞으로도 어떻게 안 될까…?”

         

       갑자기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의 서늘함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이거로 확실해졌다.

         

       프란체의 취향은 범하는 쪽이다.

         

       “응? 표정이 안 좋은데?”

       “…잠와서 그래요.”

       “그러니…?”

         

       프란체는 자신의 무릎을 베개 삼아 나를 눕혔다.

         

       “많이 피곤할 텐데 억지 부려서 미안해. 얘기는 나중에 하던가 하고, 도착할 때까지 편히 쉬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따스한 손길. 푹신한 그녀의 무릎. 사랑 가득한 눈빛.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녀와 눈빛을 마주하다 몸이 풀어져 눈꺼풀이 감겼고,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 * *

         

         

       프란체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맞대고 잠든 진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엄청 좋았지.’

         

       처음 할 때는 처녀인 만큼 고통이 섞여 있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완전 다르게 쾌락만 느껴졌다. 뇌가 미약으로 절여지는 기분.

         

       ‘또 하고 싶은데.’

         

       마치 이 남자와 이어지기 위해 태어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엄청난 행복감이 몰려왔고 형용할 수 없는 황홀함에 빠졌다.

         

       이게 운명의 상대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어떡하지.’

         

       21년의 인생을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생기지 않았던 성욕이 진만 보면 폭발해서 터져 나오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난감할 따름이다.

         

       ‘…공작저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하는 건 좀 그렇겠지?’

         

       또 몸을 요구하기엔 진의 상태가 그닥 좋지 않다. 안 그래도 계속 힘을 뺏고 있던지라 지쳤을 텐데,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 명령까지 동원해가며 강제로 관계를 이어갔으니.

         

       ‘그래도 하고 싶은데…….’

         

       내적갈등이 심해진다. 어제처럼 명령을 사용해 진을 강제로 취할 것인지, 아니면 나중을 도모하며 참을 것인지.

         

       “흐으음.”

         

       오랜 고민 끝에 결정했다. 지금은 진을 생각해 참기로.

         

       ‘사랑에는 배려도 있어야지.’

         

       프란체는 미소 지으며 곤히 잠든 진의 머리를 쓰다듬곤 이마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진.”

         

         

       * * *

         

         

       누군가 내 몸을 흔들고 있다.

         

       “진? 일어나렴. 다 왔어.”

         

       들려오는 프란체의 목소리.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깨어났구나. 잘 잤니?”

       “…예. 덕분에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족했던 잠이 채워져 나름 상태가 괜찮아졌다.

         

       “몸은 어때?”

       “괜찮네요.”

       “그래? 그럼 황궁으로 들어가자.”

         

       적당히 마른 세수를 하곤 마차의 문을 열었다. 따스하고 밝은 노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시각은 저녁 직전인가.

         

       “가시죠.”

         

       내가 먼저 내려서 프란체의 손을 잡아주었다.

         

       “고마워.”

       “아닙니다.”

         

       싱긋 웃더니 자연스레 손에 깍지를 끼는 프란체. 아쉽게도 시선을 마주하는 것도 잠시.

         

       “진 오빠, 괜찮으세요?”

       “아까보단 상태가 좋아졌군.”

         

       라데아와 케일이 다가왔다.

         

       “눈을 조금 붙였더니 좋아졌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이젠 시체까진 아니고 환자처럼 보이는군.”

       “…좋아진 거 맞나?”

         

       말 같지도 않은 케일의 비유에 눈썹을 일그리고 있자니, 뒤에 있던 마차의 문이 열리며 카자르가 내려왔다.

         

       “우우, 힘들다…….”

         

       이어서 짐가방을 든 헬레나까지.

         

       “어? 진 씨 안색이 조금 좋아지셨네요?”

       “오는 동안 잠시나마 눈을 좀 붙여서.”

       “그래요? 확실히 초월자셔서 그런지 회복이 빠르시네요.”

         

       회복이라기 보다는 프란체가 빼앗았던 힘이 돌아오고 있어서 그런 거지만.

         

       모두와 사소한 잡담을 나누던 그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작님.”

         

       재상이 직접 배웅하러 나왔다. 그의 뒤로는 황실 기사단과 궁정 마법사단. 그리고 긴 물결처럼 이어진 하인들까지 보였다.

         

       과할 정도로 격한 환영. 이번 황제가 데카르트 공작, 프란체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직접 공작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 말하곤 깍듯이 인사까지.

         

       “반가워요, 재상.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상은 공손히 손을 뻗으며 안내했고, 우리는 황궁을 거닐었다.

         

       “그럼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세력 편입을 환대하는 의미로 황제와 만찬의 자리를 가진다. 나와 프란체만 참석이 가능할 거라고 했고.

         

       두 번째, 저녁에 황실 관료들을 소집해 작위 수여식. 지방 세력의 왕족임을 인정받아 후작위가 내려질 거라 한다.

         

       세 번째, 내일 아침 일찍 열리는 해방식에 참가.

         

       “이상입니다.”

       “생각보다 일정이 널널하군요.”

       “아, 그건 따로 이유가 있습니다.”

         

       프란체가 “이유요?”하고 묻자 재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원래라면 연회도 개최해야 하고 만남의 자리도 주선해야 하지만, 괜히 다른 귀족들과 엮이면 좋을 게 없다 하셔서 과감히 넘기셨습니다.”

         

       과연.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새로운 권력인 나를 귀족들에게 내보이지 않겠다는 건가. 머리가 좀 돌아가는군.

         

       ‘황실에서 나를 직접 관리할 생각이겠지.’

         

       그런데 어쩌나, 나는 프란체와 혼인할 건데.

         

       “그렇군요.”

         

       재상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프란체. 살짝 좁혀진 미간에서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의도가 뭔지 눈치챈 거 같네.’

         

       이젠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구나. 뿌듯하군.

         

       “그럼 다른 분들은 손님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재상은 기다리고 있던 하인들을 불러내 모두를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가시지요.”

         

       그렇게 프란체와 나는 황제가 기다리고 있는 만찬의 자리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라.”

       “예!”

         

       황실 기사들에 의해 거대한 아치형 문이 갈라지며 붉은 식탁보가 깔린 커다란 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오게, 데카르트 공작. 그리고 진 바렌베르크.”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며 환대하는 황제, 라자 페델리안. 예전까지만 해도 얘가 황제가 될 줄 몰랐는데, 기분이 묘하군.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나와 프란체는 예의를 차리며 인사하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음식은 곧 나올 테니 대화라도 하고 있지. 할 얘기도 많으니 말일세.”

         

       라자는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언뜻 보기에 가벼운 미소지만, 경계심으로 가득한 표정.

         

       “우선 진 바렌베르크, 그대에게 묻고 싶은데. 해방식이 끝나면 진정 제국의 편에 서줄 것인가?”

         

       확답을 듣고 싶나 보다.

         

       “지금은 미천한 신분이 되었다곤 하지만, 저 역시 왕족이 되는 자. 바렌베르크의 남은 백성을 위한다면 그래야지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라자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좋군. 그래서 그대에게 하는 제안이네만, 제3 황녀 레일리아와 정략혼은 어떤가?”

         

       그건 제안이 아니라 사실상 통보잖아.

         

       “제안은 황공하오나, 저는……”

         

       거절의 기미가 보이자 라자의 눈썹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폐하. 그는 아직 제국의 시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시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시지요.”

         

       프란체가 중간에서 대화를 끊었다. 따로 생각해둔 게 있나 본데.

         

       ‘여기선 프란체를 믿어볼까.’

         

       내가 없던 사이 어엿한 공작으로 거듭난 프란체다. 이제 내가 일일이 관여하지 않아도 문제없겠지.

         

       “…그러도록 하지.”

         

       내키지 않아 보이지만, 프란체의 말끔한 절단으로 정략혼 얘기는 이어갈 수 없었다.

       

       “폐하, 저번에 나눈 대화이옵니다만…….”

       

       프란체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대화를 이끌어가며 의도적으로 주제를 돌렸다. 내용은 제국의 안위, 군사 발전, 마도 혁명. 정치적인 것들이었다.

         

        “만찬이 나왔군.”

       “그럼 남은 건 중앙 회의 날에 하시지요.”

       “그러지.”

         

       음식이 나오자 대화는 끝. 라자가 먼저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고, 만찬의 자리가 시작됐다.

         

       “아, 진 바렌베르크. 식사가 끝나면 그대와 레일리아의 만남을 주선할 예정인데, 문제없겠지?”

         

       어떻게든 나와 제3 황녀를 이을 생각이구나.

         

       “저는……”

         

       대답하려던 순간, 탁! 프란체가 식기를 세게 내려놓았다. 덕분에 불편한 대화가 확 끊어졌다마는.

         

       “폐하, 그에 관한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눈을 부릅뜬 채 라자를 노려보는 프란체. 분위기가 좀 그렇다.

         

       “…데카르트 공작. 저번부터 묘하게 불쾌함을 보이던데, 이 정략혼에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그 말에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불만 있습니다. 그것도 엄청 많이요. 진은 제 남자이고, 저의 주인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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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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