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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이야, 시설 좋네. 여기가 한국인가. 어디 보자, 이름이…인천? 인천의 공항이라고 읽는 건가?”

        

       “괜히 깝죽대지 말고 이리 와, 빅토르. 공항 구경이 좋은 건 대충 이해해도 숙소 도착해서 할 일이 많다고. 시차 적응도 생각해야지.”

        

       “도착하기 5분 전에 위키에서 대충 읽어본 지식으로 잘난 척하지 마, 옐레나. 어차피 VR만 있으면 시차 적응은 금방인데.”

        

       “야야, 조용히 해. 곧 있으면 미하일 코치 돌아온다.”

        

        

        

        그에 잠시 파득거리던 이들이 입을 합 하고 다물었다.

        

        구태여 오래 짐작할 필요조차 없이, 이들은 당연히도 러시아를 대변하는 국가대표였다. 빅토르라 불린 사람이 주변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환영 인파라도 있음 좋긴 하겠지만, 있을 턱이 없었다.

        

        인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20명에 달하는 인원이 분산되어 오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스무 명이 움직이기에는 신경써야 할 것이 상당히 많았기도 했고 – 물론 2일 안으로 전부 도착할 예정이긴 했지만.

         

        왜 이런 방법을 택했는지는 조금만 골똘히 생각해보면 답이 나왔다.

        

        만약 20명 전부가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당장 이동에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스무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타국의 지리가 어떤 줄 알고 마음 놓고 호텔 바깥을 돌아다니겠는가. 길이나 안 잊어버리면 다행이지.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이들이 입을 다문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미하일 코치. 러시아의 특수부대 하면 떠오르는 스페츠나츠, 그 중에서도 FSB의 빔펠 그룹 소속이었다는 썰이 도는 이 남자는 국가대표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코치 중 하나였다.

        

        비록 과거의 일은 시간에 파묻히고, 이제는 유행과 기술의 첨단이라는 VR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포스라는 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 적어도 미하일은 은연중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한편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는 한국의 소문처럼, 그에 대한 말을 입에 올리던 와중, 슬라브 족 특유의 부리부리하면서도 굳건한 인상을 지닌 미하일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로 더 굳어진 듯한 표정. 러시아의 국가대표들로 하여금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동으로 하게 만드는 외모였다. 평소에 비해 기분이 그다지 영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건 덤이었고.

        

        물론 반쯤은 착각이었다. 반은 실제로 그러했단 소리였지만.

        

        묵직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출발하지. 그리 늦거나 하진 않았으니, 예정 시간 안에 호텔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저녁은 호텔 뷔페라고 들었으니, 주변 탐방은 시차가 적응된 후부터나 가능하다. 명심해라.”

        

       “넵.”

        

       “날씨 꽤 덥든데, 보드카 한두 병 정도는 호텔 방 냉장고에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이카루스 담당 직원에게 문의해보지.”

        

        

        

        물론, 그래도 코칭 스태프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는 일은 했지만.

        

        전략과 전술을 짜는 것 말고도 코칭 스태프로서 해야 할 일은 꽤나 여럿이었다. 만약 전직 동료들이 보았더라면 그 우락부락한 몸으로 애새끼들 수발이나 들고 다닌다면서 놀려댔겠지만, 미하일로서는 그리 싫은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만사에 성실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이는 특수부대원으로서의 마음가짐 뿐만이 아니라 전역한 이후 새 직장을 찾은 이후에도 모티베이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런 조용함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물론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 하나 있었다.

        

        

        

       ‘…무언가 굉장히 찜찜하군.’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어째서일까. 이번의 여행은 무언가 시작부터 조짐이 매우 좋지 않았다.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단순하고도 개인적인 생각에 가까웠지만.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묵직한 압박감. 마치 쩍 벌어져있는 호랑이의 아가리에 얼굴을 들이미는 듯한 느낌. 그는 사적인 감정이 일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 프로였지만, 동시에 인간이란 그런 느낌을 전부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였다.

        

        

        후우.

        

        9월을 지나 10월로 접어드는 대한민국의 청명한 하늘. 그 아래에 선 리무진에 탑승한 상태에서도, 아무도 모르게 작게나마 내쉰 한숨.

        

        언제부터 이랬을까를 묻는다면, 유진을 본 이후부터 그랬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커리큘럼을 따른 이들이 잘 할 수 있을지의 여부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무언가 그것보다 좀 더 다른 차원의 무언가.

        

        묘하게 가슴과 머리 한 켠이 시큰거렸다. 긴장감이라고 표현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러한 감정과 별반 다를 바도 없었다.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았다.

        

        일상생활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궁금증과 짜증의 경계를 왔다갔다하고 있으나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어느샌가 쪽잠이 들었다.

        

        얕게 잤기에 꾸었던 꿈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

        

        

        

        다크 존의 배경을 그대로 따온 듯한 뉴욕의 건물.

        

        그는 거기서 동료들과 함께 시가지를 가로지르며 누군가와 총질을 하고 있었다. 급박하게 오고가는 통신. 하나둘씩 잘려나가는 팀원들. 그리고 최후의 순간 가슴을 몇 번이고 관통하는 탄환.

        

        그 후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실루엣.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건 그 자신이 최근 눈여겨보던 유진을 닮았다. 하지만 그 실루엣이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건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탕 소리와 함께, 그는 잠에서 튕기듯 깨어났다.

        

        

        

       “…으음.”

        

        

        

        이게 무슨 미친 꿈인지.

        

        하도 유진 유저의 플레이를 분석하다 보니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호텔에 도착하면 이카루스 직원에게 몸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 있냐고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았다.

        

        리무진은 러시아 국가대표와 코치를 태운 채 서울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이러면 안 되는데.” 

        

        

        

        언박싱이 끝나지를 않는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언박싱이 끝나지 않는다기보단 광고 요청이 끊이지를 않는다. 예삿일도 보통 예삿일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3주차 돌입 즈음엔 전부 소화했어야만 할 광고들이 끝없이 몰려든다.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좀 해보고 싶긴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우선 알아야만 할 게 있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켜지는 무언가.

        

        

        

       -〔유진〕 언박싱이라며! 언박싱이라며!!!!! [광고 및 언박싱 후기]

        

       -[조회수 : 5,992,731 // <10일 전>] 

        

        

        

        무엇을 숨기랴.

        

        지난 번 언박싱 영상이 너무 과도하게 대박이 터져버렸다.

        

        더군다나 심지어는 편집 영상 뿐만이 아니라 대략 세네 시간 정도 걸리는 full 길이의 영상 –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면 언박싱 영상에서 부득이하게 생략된 광고 및 협찬 물품까지 포함된 – 의 조회수 역시도 80만을 돌파했다.

        

        광고주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특히 내가 박스를 뜯고 자물쇠를 부술 때도 아주 요긴하게 썼던 택티컬 도끼와 그 자매품인 택티컬 스파이크 해머의 주문량이 아주 미쳐버린 수준이란다.

        

        그 외에도 나한테 쓸데없이 어울리는 아바타용 액세서리라든가, 지갑, 겨울도 안 됐는데 뜬금없이 무진장 인기를 구가했던 패딩까지.

        

        그냥 난장판 그 자체였다.

        

        

        그리하여 치사량의 광고 특수를 누린 수많은 광고주들은 이제는 대놓고 나를 콕 집어, 3주차는커녕 아시아 예선전까지 전부 소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광고 및 협찬을 요청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수많은 택배의 산. 게다가 이때다 싶어 SSM은 내 집으로 배송을 오는 오만가지 상품과 계약 건수를 적절히 관리해주겠다며 온갖 좋은 조건이 달린 계약서를 은근슬쩍 내밀어보기까지.

        

        안 그래도 당장 내일부터 스크림이 시작인데, 이게 다 무슨 일이래.

        

        

        

       “하아.”

        

        

        

        꼬리가 걸리지 않도록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또한 받은 것이었다. 이건 그래도 쓸모가 많을 것 같았기에 광고를 찍었다. 물론 공중파에 나가는 형태는 아니었고, 지난 번 언박싱처럼 이 소파에 앉아 여러 방송 컨텐츠를 했다.

        

        물론 이 또한 반응이 꽤 괜찮았다.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어. 그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광고까지 받았는데 조금 무책임한 반응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소파라는 게 ‘와! 유진이 광고하네! 사야겠다!’ 하고 바로 들여놓을 수 있는 가격도 크기도 아닌 만큼 내가 조언할 수도 없고.

        

         그런 느낌이다.

        

        

        아무튼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게 아니라, 다시 스크림 준비 이야기.

        

        어느덧 4주차가 하루 앞까지 다가왔다. 요즘은 이런 내 상황으로 인해 다이스가 꽤나 많은 일을 진행 중이다. 나는 큰 줄기만 보고, 굉장히 세세한 부분은 다이스가 직접 감독하는 식.

        

        내가 직접 일일히 신경쓰는 것보다야 효과가 덜 나오겠지만, 이미 2주 가량의 훈련으로 인해 나와 다이스를 제외한 18명의 국가대표들 또한 나아갈 방향을 어느 정도 잡아준 상태이니만큼 크게 문제는 없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이것이었다.

        

        다이스가 보낸 메시지.

        

        

        

       -[다이스 : 유진씨유진씨유진씨]

        

       -[다이스 : 요즘 얘네들이 느끼는 게 꽤나 많은가봐요 ㅎㅎㅎ]

        

       -[유진 : ?]

        

       -[다이스 : 태스크포스가 부여한 커리큘럼 수행이 작년보다 수월하다고 다들 그러네요 ㅋㅋㅋ]

        

       -[다이스 : 이게 다 유진씨 덕분???]

        

       

        

        서예린이 며칠 전에 보내왔던 메시지.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조금 알쏭달쏭하여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작년에 비해 이들의 교전 수행 능력이 대략적으로 14% 가량 증가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14퍼센트.

        

        작다고 하면 작겠지만, 이들이 꼴랑 2주 가량밖에 안 되는 하드 트레이닝을 반복한 후 나온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특히 이미 정점에 올라섰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더 올라갈 길이 있다는 점을 찾아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었고.

        

        이들 중 많아봐야 네 명…나와 다이스 자리가 이미 배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명만이 본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아쉬워지긴 했지만.

        

        

        그건 그렇고, 메시지 창을 열자 또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다이스 : 며칠 후에 스크림 시작이니, 유진 씨도 각 선수 분석 결과 간략하게 훑어보셔야 하지 않아요?]

        

       -[다이스 : 첨부파일 보낼 테니 시간 날 때마다 읽어보세요!]

        

        

        

        그 아래 첨부파일 칸에 들어있는 PDF 파일.

        

        이미 몇 번 정도 읽어보았다. 내용이야 대강 파악하고 있고. 물론 ‘대강으로 되냐?’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었지만, 글쎄다. 내용 숙지와는 별개로 익숙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애초에 내가 과거에 적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싸웠던 것도 아니고. 그냥 나한테, 그리고 대거(Dagger) 팀원들에게 총질해대는 애들 있으면 전부 대가리를 추수해버렸었는데…라고는 해도, 고위험 목표물은 또 데이터를 상세하게 숙지하고 갔었으니.

        

        귀찮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런 ‘준비’ 없이 내 실력이 어디까지 통용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일 수도 있었고.

        

        그리고 이런 불필요한 절차에 익숙해지는 것이야말로, 4년의 시간을 거치며 상실했던 사회성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전부 다 핑계일 수도.

        

        

        

       “하아.”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런 잡다한 생각이 간간히 들기 마련이었다. 어쩌면 헬스에 매진하는 것도 이 때문일 수도 있었고.

        

        과거에도 이런 적은 많았다. 집은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무사히 이곳에 정착할 수 있을지. 물론 실력이 쌓이고 실적이 늘며, 그리고 이카루스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새 정착지가 생겨나는 걸 보며 위안을 삼았지만…그래도 그리운 건 그리운 거고.

        

        게다가 기껏 돌아왔더니 뭐가 어떻게 바뀌었길래, 기억과는 다르게 부모님은 모 기업 해외 지사장으로 발령이 났다면서 만나보지도 못하고…뭐어,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혼자 사격장에 가서 풀었는데. 여긴 그런 것도 만들 수 없으니 원.

        

        요런 생각도 못 하도록 몸을 조져놓을 홈짐 같은 거라도 들여놔야 하려나.

        

        

        그러나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던 와중, 통화가 걸려왔다. 이전처럼 아바타 경유 통신이 아니라, 이젠 진짜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통화. 다이스로부터 온 것이었다.

        

        언제나 듣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유진 씨! 아직 안 자고 계시네요. 뭐하세요?”

        

       “오늘도 언박싱, 내일도 언박싱이에요.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저희 집 좀 들러서 이것저것 가져가시겠어요? 허리에 좋은 의자도 있는데.”

        

       “어, 들고 가는 게 어려워서. 택배로 보내주면 아주 감사히 받겠습니당….”

        

       “배송비는 착불이고, 내용물은 랜덤이네요. 기껏 받았더니 슬퍼하는 개구리 눈안대 같은 거나 프로펠러가 달린 모자 같은 게 올 수도 있어요. 집에서 키우는 콩나물 키트라든가.”

        

       “받기 싫은 것만 골라 주시는 재주도 있으시네요.”

        

       “사람이 다재다능해야죠.”

        

        

        

        서로간 한 치도 지지 않는 치열한 극딜이었으나, 결국 다이스는 내일이나 모레 즈음에 슬그머니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언박싱을 도와주기로 했다.

        

        영상 출연도 은근슬쩍 물어보니, 처음엔 난색을 표했지만, 모션 캡쳐 – 아바타 변환 장비가 있다고 하니 되려 꽤 재밌을 것 같다면서 흔쾌히 승낙했…는데. 이러면 따로 내 방송을 보지는 않은 것 같고.

        

        혹여나 해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였다. 물론 커리큘럼을 빠뜨렸거나 한 건 아니었기에 그다지 신경 안 쓰고 넘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 방송 좀 안 보고 살 수도 있지.

        

        

        두 번째 안건이 이어졌다.

        

        

        

       “지난 주에 러시아의 첫 번째 선수단이 입국했어요. 즈베즈다, MKVS, 스푸트니크, 스트렐카. 그리고 코칭 스태프는 미하일이구요. 하루의 간격을 두고 20명이 입국한 셈이죠.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긴 한데, 아예 신경도 안 쓸 것 같아서 말해드리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신경을 안 쓰지는 않았어요. 보내준 PDF 파일도 전부 읽어봤구요.”

        

       “우와.”

        

        

        

        날 도대체 뭘로 보는 거래, 이 사람은. 

        

        한편, 키워드에 반응한 머리가 자동으로 기억들을 꺼냈다. 다이스가 보내주었던 파일 내부에 든 러시아 유저들의 특징이었다. 손속이 잔혹하며 야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선호하는 총기는 동구권과 서구권을 가리지 않는다.

        

        사실 크게 신경쓰는 부분은 아니었다. 어차피 총이야 개별적으로는 약간씩 차이가 있을지언정, 목적은 전부 적의 사살이었으니. 손속이 잔혹하며 야성적이라는 건 사실 러시아의 스테레오타입 느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소위 말해, 슬라브 하면 떠오르는 그런 강인하고도 투박한 느낌. 스페츠나츠의 향취가 짙게 배어든 러시아 다크 존 프로게이머의 플레이는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랬겠지만….

        

        

        

       ‘크게 대비해야 할 부분은 없다.’

        

        

        

        같은 오퍼레이터를 살해하는 법 이상으로 내 전문이었던, 그리고 모든 팀원들의 전문이었던 건 바로 본토에 침투한 고도로 훈련받은 적성국 출신 군인을 사살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그 중에서도 스페츠나츠의 피는 허드슨 강을 몇 번이고 붉게 염색할 수 있을 만큼 손에 묻혀보았으니까.

        

        …너무 깊게 생각했나.

        

        

        

       “아무튼, 뭐 대책 없어요? 적들 상대하는 데 특효약이라든가, 뭐 그런.”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세요. 배운 곳에서 다 나와요.”

        

       “…으휴.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럼 이번에도 유진 씨만 믿을게요. 됐죠?”

        

       “자기 자신을 믿어야지, 남을 믿으면 안 되죠.”

        

       “어련하시겠어요. 그건 그렇고───”

        

        

        

        익숙한 목소리는 머릿속을 맴돌던 잡다한 생각들을 지워낸다.

        

        오만가지 쓸모없는 가정들과 과거가 뒤섞여 만들어진 기괴한 논리회로가 천천히 쓸려내려가는 사이, 다이스는 이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계속해서 조잘대었다.

        

        

        그렇게, 러시아 선수에 대한 대비책 확인을 위해 연락해온 다이스와의 통화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수다로 변질되었다.

        

        흔한 일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죽은 사람들은 기억이 없다

    혹은 꿈이라고 생각하거나

    다음 화부터는 다시 언박싱의 턴!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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