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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퍽!

       

        “후우~!”

       

        아나티샤는 쪼개진 나무토막(장작)을 한쪽에 던진 후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도끼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도끼를 들고 있는 그녀의 근육이 잡힌 팔뚝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아, 오셨어요 라그나님?”

       

        “그래.”

       

        쿵!

       

        그리고 나 역시 들고 있던 짐승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늘 먹을 식량이었다.

       

        내가 내려놓은 짐승 시체에 다가온 아나티샤는, 팔뚝을 걷어붙이며 콧김을 세게 내뱉었다.

       

        “실한 놈으로 잡아 오셨네요?”

       

        “가능하면, 가장 큰 놈으로 잡아 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피도 다 뺐고요.”

       

        “음.”

       

        솔직히 왜 고기에서 피를 따로 빼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나티샤가 그걸 원하니 그렇게 했다.

        피가 고기에 스며들면 비린내가 심하다고 했던가?

       

        ‘그게 좋은 건데.’

       

        뭐, 비린내가 없는 고기는 그것대로 맛이 있으니, 딱히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내가 그런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내가 만들어 주었던 검을 꺼내온 아나티샤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도축 시작할게요!”

       

        “그러려무나.”

       

        촤아악!

       

        그렇게 내가 잡아 온 사냥감은, 아나티샤의 손에 의해 산산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            *            *

       

       

        – 뭐임?

        – 공주님 아니었음?

        – 역변 뭐야?!

        – ㅋㅋㅋㅋㅋ

        – 미친ㅋㅋㅋㅋ

       

        = “어…… 그게 2년 만에 일어난 변화라고요?”

       

        “아마도?”

       

        사실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짧으면 1년 정도고, 길면 한 3년 정도라고 생각할 뿐이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아나티샤는 잘 성장해 주었단다.”

       

        = “아닠ㅋㅋㅋ 도축은 또 어디서 배웠대욬ㅋㅋㅋ?”

       

        “요리를 자기가 맡기 시작한 지 4일 정도가 지난 이후였던가?”

       

        한참 요리하던 아나티샤가 나에게 말했다.

        제대로 된 요리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재료와 도구, 그리고 ‘조미료’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요리 자체는 자신이 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인간들의 마을에 데려가 주었단다.”

       

        그리고 그곳에 갈 때마다 항상 뭔가를 배워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딱히 아나티샤에게 안 좋은 영향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제지하지 않았고 말이다.

        돈? 황금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마구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나와 함께 제국을 떠났을 때의 아나티샤와는 완전히 다르게 변해 버린 것이란다.”

       

        뭐, 나야 오히려 좋았지만 말이다.

        생존하는 데는 역시 육체 능력이 좋은 것이 가장 기본이지 않는가?

        아이가 튼튼해졌다면, 부모의 입장으로서 이보다 좋을 수는 없지.

       

        – 엌ㅋㅋㅋㅋ

        – 아닠ㅋㅋㅋㅋ

        – 앜ㅋㅋㅋㅋㅋㅋㅋ

        – 아! 살려면 배워야짘ㅋㅋㅋㅋ

        – ㅋㅋㅋㅋ

        – 이해되는 변화닼ㅋㅋㅋㅋㅋㅋ

       

        = “푸하하하핰ㅋㅋㅋㅋ”

       

        시청자들과 도돌순이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다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            *            *

       

       

        식사가 끝났다.

        식기를 정리한 후, 식후마다 아나티샤가 끓여 오는 ‘차(茶)’를 받았다.

        음…… 씁쓸한 맛과 달콤한 향이 특이하군.

       

        “라그나님.”

       

        “음?”

       

        벽난로 앞에 앉은 채 차를 마시고 있을 때.

        나를 부른 아나티샤가 굳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이거, 글자가 틀렸어요.”

       

        “……이런.”

       

        이쪽 차원의 문자는 하필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반쯤 섞인 방식이라, 나조차도 학습하기가 상당히 난해하다.

        드래곤의 지능으로도 힘들 만큼.

        아, 단순히 문자가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암기해야 하는 법칙과 문자의 숫자가 상당하기에 그런 것이다.

       

        아나티샤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글을 썼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쓴 글을 읽어 본 아나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습니다. 이걸로 오늘의 일기도 끝났네요.”

       

        “그렇구나.”

       

        내가 이 세계의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아나티샤는, 나에게 글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기는 내 글공부의 일환이었다.

        서로 낮에는 할 일이 있으니, 밤에 일기를 쓰며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아나티샤야.”

       

        “네?”

       

        “재미있느냐?”

       

        나는 일기장으로 사용한 금속판을 옆에 쌓았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양피지로 만든 자기 일기장을 잘 접은 아나티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네. 요즘 너무 재미있네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

        이전의 아나티샤가 삶의 의욕을 전부 잃어버린 얼굴이었다면, 지금의 아나티샤는 활기가 넘치는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그래도 내가 육아를 잘한 것이 아닐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상당히 단호하구나.”

       

        “아닌 것은 아닌 거죠.”

       

        아나티샤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거리낄 것이 없는 나는 당당하게 아나티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귀여운 녀석.

       

        입술을 쭉 내민 ‘삐진 표정’을 짓는 아나티샤.

        하지만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싫지 않은지, 은근슬쩍 내 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역시 귀여운 아이다.

       

        “정말이지……. 전 이제 어른이라고요. 언제까지 아이 취급할 거예요?”

       

        “음? 아이가 맞지 않느냐?”

       

        그러고 보니 인간들은 언제 성체가 되는 것일까?

        드래곤들은…… 개체마다 달라서 좀 그러네.

       

        내 아이들의 경우에는 대략 50년 정도가 걸렸다.

        육체적 성장은 5년이면 충분하지만, 우리 드래곤들은 스스로 DNA에 인위적인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남은 45년 정도의 시간 동안, 부모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진화 방향을 결정짓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교육’이라고 해야할까?’

       

        그렇기에 ‘육체적 성장 단계’로 따지자면, 우리 드래곤들은 5년이면 ‘성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이 가능한 나이를 따지자면 짧게는 10년 정도고, 길면 100년까지도 간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드래곤이라면, 제대로 독립시키려면 100년 정도는 준비해야…….”

       

        “인간은 100년 지나면 죽어요!”

       

        아나티샤가 버럭 소리 질렀다.

        아니, 아니라면 아닌 거지. 왜 소리를 지르느냐?

       

        작게 한숨을 내쉰 아나티샤가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남은 차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이미 성인이에요.”

       

        “그렇구나.”

       

        하긴.

        육체적 성장으로만 보면, 아나티샤의 성장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아나티샤는 점점 노화될 일만 남았겠지.

       

        “하지만 내가 너의 부모와 맺은 계약은, 네가 제대로 독립할 때까지란다.”

       

        사실은 무사히 키워달라고만 했지만, 그냥 나 스스로 ‘무사히 독립할 때까지’라고 정했다.

        이렇게 명확한 기준을 정해 놓아야 내가 할 일이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대로 먹이를 사냥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아직도 사냥감 하나 제대로 사냥할 수 없으니 원.

        쯧쯧쯧…….

       

        “인간은 드래곤이랑 다릅니다!”

       

        아나티샤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인간은 하루 먹을 것을 사냥하면서 살아가지 않아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인간도 있지 않으냐?”

       

        무리 동물의 기본 특징은 ‘분업’이다.

        각자에게 특화된 능력, 혹은 잘하는 분야를 담당하여 무리를 발전시키는 것.

        그렇기에 인간의 독립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사회는 어렵구나.

       

        “그건 그렇지만…… 전 아니거든요!”

       

        “음? 사냥꾼이었나? 그런 직업을 할 것 아니었느냐?”

       

        이전에 마을에 갔을 때 활과 화살을 사 오더니, 그걸로 작은 동물들을 사냥했으면서?

        그래서 요즘 진지하게 ‘사냥’에 대해서 가르쳐 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냥꾼 안 할 거에욧!”

       

        “…….”

       

        그런가? 조금 아쉽다.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으려니, 아나티샤가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 여인이 독립하는 것은, 결혼했을 때거든요!”

       

        “?!!”

       

        결혼?!

       

        “짝짓기 말인가?!”

       

        “짝짓기라고 하지 마세요!!”‘

       

        그게 그거 아닌가?

        버럭 화를 내는 아나티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시에 천천히 시간을 셈해 보았다.

        이번 달에는…….

       

        “아나티샤. 너의 발정기가 분명히…….”

       

        “발정기라고 하지 마!!!!”

       

        콰아아앙!

       

        오러가 실린 아나티샤의 발차기가 내 얼굴을 차고, 그대로 오두막 벽을 박살 내며 밖으로 날려 버렸다.

        물론 나에겐 조금의 타격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런. 누군지는 몰라도, 저 아이와 짝을 맺는 수컷은 고생 좀 하겠구나.”

       

        내 남편도 고생했으려나?

        화를 내는 아나티샤의 모습에,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푸드득!

       

        “음?”

       

        박혀 있던 바위에서 몸을 빼내고 먼지를 탁탁 털어내던 내 귀에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 차원에서 살아가는 야행성 조류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전생의 지구식으로 말하자면…… 부엉? 대충 그런 이름의 새라고 할 수 있겠지.

       

        이런 한밤중에 숲속에서 야행성 조류가 활동하는 것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조류가 ‘마나’를 휘감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흠……. 어찌할까.”

       

        둥지에서 잠자고 있던 본체가 눈을 뜬다.

        그리고 아바타인 나를 통해 ‘눈’을 떴다.

        저 야행성 조류를 휘감은 마나를 추적하고, 그 끝에 존재하는 이들을 본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금속이 나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무려 수백 km나 떨어진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금속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니.

        초월자의 힘은 사용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다.

        ……이런 힘을 나에게 남겨 준 남편의 기억도 함께 떠오르고.

       

        어쨌든 이런 정찰조를 보낸 이들은 알아냈다.

        그러니 이제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에 대해 고민해야 하겠지만…….

       

        “……아직 어떤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마.”

       

        푸드드득!

       

        나의 기세에 굳어 있던 야행성 조류가 몸을 떤다.

        그리고 저 조류의 눈을 빌려 나를 바라보고 있을 이에게, 나는 조용히 경고했다.

       

        “자비는 이번 한 번뿐이다.”

       

        파닥파닥!

       

        나의 기세에 겁먹은 조류가 황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밤하늘 너머로 사라져가는 조류를 바라보고 있자니, 오두막에서 아나티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잘 거에요! 빨리 오세요!”

       

        “그래. 금방 가마.”

       

        나는 금속을 일으켜 오두막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이는 살기 위해서 성장해야만 했습니다.

    드래곤이 요리를 진짜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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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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