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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백조의 노래.

        

       시즌 5쯤 만났던 친구에게서 처음 들은 표현이었다. 만났던……이라고 해도 되려나. 인터넷에서 만난 거기는 한데.

        

       아무튼.

        

       그 당시 나에게도 그에게도 진정한 세계는 이 쪽이었기에, 큰 위화감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국적이 다르면 어떤가. 인터넷 속도와 게임 실력이 중하지.

        

       그리고 그 친구는 실력이 출중했고, 유럽 거주자 치고는 인터넷 속도도 훌륭했다. 언어는 조금 문제였지만, 뭐 어떠랴. 어설픈 영어는 오히려 서로 잘 통하는 법이다.

        

       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보다, 한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게 편하듯이- 복잡한 표현 하나 쓰지 않는 우리는, 의외로 의사소통에 문제를 딱히 겪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에게 하는 말이라 해봐야 ‘뛰어’, ‘피해’, ‘뚫는다’, ‘빼’, ‘너 게임 존나 못해’, ‘꼬우면 일대일 뜨자’, ‘도적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너는 그냥 파머나 해라’ 정도여서 그런 것 아닌가 싶기는 한데.

        

       진정한 대화는 칼……몸으로 나누는 거니까.

        

       언어가 뭐 중요했겠는가.

        

       그런 그가 처음으로 사용한 알아먹을 수 없는 표현이, ‘Swan Song’ 이었더랬다. 아예 모르겠는 단어는 그냥 ‘피차 영어 못하는데 번역기 다시 돌려와라’라며 꼽을 주고 끝냈지만- 이건 아는 단어 2개였다.

        

       무엇보다, ‘백조의 호수’ 정도야 음악 수업에서 드문드문 깰 때 들었고.

        

       그러니 가벼이, Swan Lake 잘못 말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서도, 하는 생각과 함께. 뭐 새로 나온 노래 제목이라도 되나 하고.

        

       낄낄거리며 이번 게임이 내 백조의 노래라고 한 그 친구는, 그 날 게임이 끝나고 다시는 접속하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시즌 7 무렵의 나오나 인구 급감은 세계적인 현상이었으니까. 비율로 따지면, 오히려 계속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해야 하겠지.

        

       그래도 2년 가까이 그 망겜에서 같이 굴러먹었는데 더 화려한 인사를 하고 떠날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조금은 서운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뭐……막상 어떻게 인사를 하기를 바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긴 한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대충 장례식장에서 틀어도 되는 업적이라는 뜻이더라. 너 아까 그 정도로 캐리하진 않았으니 돌아오라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요즘 안 그래도 실력 슬슬 떨어지더니 도망간 거냐는 도발이 담긴 디스코스 메시지도……읽지 않았고.

        

       -쿵!

        

       음량을 한껏 키워 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 

        

       ……너무 느긋했나.

        

       큐가 잡히는 속도가, 무슨. 마스터 시절보다 빠른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최소 50 명은 큐를 꾸준히 돌리고 있는 속도다.

        

       슬슬 피크타임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

        

       생각에 잠겨있을 시간은 없었다. 몸을 천천히 닦아 내리던 수건을 바삐 놀리고 집어 던진 후, 방으로 돌아가니- 이미 픽은 진행되는 중이었다.

        

       옷- 아, 옷. 바닥에 널브러진, 땀에 젖은 옷은……다시 입기 싫은데. 새 옷가지를 찾아서 입을 시간은 부족하고.

        

       잠시 망설인 끝에, 속옷만 갖춰 입고 VR기기부터 착용하기 시작했다.

        

       아, 양해를 좀 구해야…….

        

       [아따먹: 픽 조금만 천천히 가능할까요]

       [GP 오소독스: 네]

       [GP 오소독스: 어디가시나요]

       [Galaxy HP: 탑 가능할까요]

       [X Heresy: 법사요]

       [GP 르윈: 그럼 저 봇기사 갈게요]

        

       죄다 아이디 앞에 뭐 하나 붙어있는 게, 이번에도 다 프로게이머들인가. 본 적 있는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충 채팅창을 훑어보니, 모두 프로게이머들이라는 짐작은 정답인 듯했다.

        

       나쁠 건 없지.

        

       체감상으로는 프로들 위주로 큐에 잡히면서 플레이가 오히려 편해진 느낌이다.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훨씬 더……기대한 대로 움직이니까.

        

       운영에도 금방 따라붙어 주는 덕분에 승률도 오히려 높아졌고.

        

       과연 프로들이라고 해야 할까. 개념을 몰라서 못했을 뿐이지, 캐치해서 합을 맞추는 속도는 생각 이상이었다.

        

       딱히 똑똑하지 않은 미래인이 된 기분이더라. 학교에서 외운 공식이나 읊으며 미래 지식이니 다들 당황하겠지, 하고 생각했더니 당시의 석학들에게 두어 시간 만에 분석 당하는…….

        

       그래도, 기분은 썩 괜찮았다.

        

       다음 시즌부터는 프로리그를 조금 챙겨볼까. 운영이나 전략에서 내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면, 조금 기쁠 것 같은데.

        

       [GP 오소독스: 아따먹님]

       [GP 오소독스: 도적 가실래요?]

       [GP 오소독스: 제가 맞출게요]

        

       아. 픽.

        

       [아따먹: 네]

        

       [GP 오소독스: 대신 이판 이기고 1등 되셔도 끄지 마시고 한판만 더]

       [GP 오소독스: 상대팀으로 한번만]

        

       [GP 르윈: 추해요 형……]

       [GP 르윈: 질척이는 남자는 매력 없어요]

        

       [GP 오소독스: 아니]

       [GP 오소독스: 넌 헛소리하지 말고]

        

       [X Heresy: 치정싸움인가요]

        

       『오하다 추소독스야……』

       『다시 붙고 싶을만 하긴 해』

       『하필 상대팀 될 때마다 다 져섴ㅋㅋㅋㅋ』

       『월즈 우승자 가오 어디갔냐』

       『프로한테 집착받는 스트리머가 되었다』

       『치정싸움?? 헤레기 저 씨1발새1끼가』

       『우리 아따먹 눈나는 아크만 따먹는다 틀딱독스랑 엮지마라』

        

       어쩐지 번잡스러운 채팅이야 둘째치고……이러면 로머랑 파머만 남은 거니까. 포지션 양보까지 받은 마당에, 기왕이면 도적으로 해야겠지.

        

       [아따먹: 도적 갈게요]

        

       1등을 달성하는 게임이 될지도 모르잖아.

        

       후드를 뒤집어쓴 도적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퍽 새롭더라. 도적을 픽했음에도 방송 채팅창에서는 열광을 하고 있고, 인게임 채팅에서도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초반 전략만 이야기하고 있다.

        

       저 후드의 그림자만 비쳐도 난리가 나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 랭크 등반 이후에는 도적부흥운동은 더 이상 필요 없지 않을까. 지금도 이미 앞다투어 도적을 픽하고 있는 상황이니. 노골적인 증명까지 마무리되고 나면, 누가 감히 뭐라 하겠어.

        

       역으로 광전사부흥운동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는데. 혹시 레반이 그런 위험한 사상을……아니겠지.

        

       이제 기득권이 되었으니, 탄압하는 방법도 슬슬 고민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유비무환이라고 하잖아.

        

       ……내일……아무튼,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는 아니니까.

        

       모든 파츠에서 초록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헤드기어를 뒤집어썼다.

        

       “아. 그러면……가볼까요.”

        

       도적부흥운동의 마무리를 위해.

        

       정상으로.

        

       * * * *

        

       -쾅!

        

       예리하게 급소를 파고들던 단검이 방패와 충돌했다. 또다시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가까스로 방어에 성공한 기사의 호흡이 가빠졌다. 스태미나가 고갈되어간다는 표시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잴 시간이 없었다. 기사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오른손에 들린 검을 치켜들었다. 샌드백이 되더라도, 가시가 붙은 샌드백이 되어야 살아남는다.

        

       손을 머리 근처까지 올리고, 시야와 수평에 가까운 검신으로는 상대의 목을 겨눈 자세.

        

       머리를 노려도 될까. 아니, 조금 전까지 보이던 움직임을 생각하면- 회피하기 쉬운 공격은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흔들, 흔들. 도적이 양 옆으로 가벼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공격의 전조. 흐름을 가져와야만 했다.

        

       한 발자국 크게 뻗으며 찔러 넣은 검 끝이 도적의 가슴팍을 향했으나- 기대하던 손맛은 없었다.

        

       -까드득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검이 도적의 갑주를 스치며 지나갔다. 뒤로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옆으로 피한 건, 역습을 노린다는 거겠지. 도적으로 기사를 아예 잡아내려면, 결국 카운터로 급소를 노려야 하니.

        

       수 읽기를 빠르게 마친 기사가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방패 뒤로 몸을 숨겼다.

        

       기묘한 정적이 흐르는 1초. 들려와야 할 충돌음의 부재는 곧 실착을 의미했다.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기사는 반쯤 주저앉듯 자세를 낮추며 검을 내리깔았다. 하단을 향해 쇄도하는 도적의 단검 끝이 시야에 비쳤다.

        

       -채앵!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허벅지에 박혔을 단검을, 마지막 순간에 검신으로 받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과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 또다시 손해를 본 교환이다. 모든 움직임을 강요당하는…… 실에 걸린 인형 마냥, 상대가 툭툭 휘두르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 대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스태미나다.

        

       기사의 눈동자가 빠르게 우측 상단을 훑었다. 과연 앞으로 몇 번의 동작을 취할 수 있을지. 축적된 경험은 후퇴를 명했다.

        

       이 정도면 아군 도적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벌어줬겠지. 상대 기사도 견제야 했겠지만, 아무리 못해도 상자 1개는 더 열었을 터다.

        

       ‘크게 한번 휘두르고, 빠진다.’

        

       -콰앙!

        

       허공을 가르리라 생각하고 휘두른 검은 강렬한 충격음과 함께 멈춰 섰다.

        

       방패다.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거대한 방패를 든 기사가 도적과 바톤 터치라도 하듯이 생겨났다.

        

       아까부터 슬금슬금 압박을 하며 조금씩 전장을 전진시킨다 싶기에, 상자에 접근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사와 합류하려고 했던 건가.

        

       일대일도 버겁던 참이다. 둘을 상대로는 1분도 버틸 자신이 없었다. 한번의 죽음은 각오해야겠지.

        

       죽을 때 죽더라도 도적한테 데미지를 누적해 둬야 했다. 그리 생각하며, 이를 악문 채 빠르게 주변을 훑었으나-

        

       도적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은신……?’

        

       대체 언제, 어디에서 은신에 돌입한 건지. 하여간, 더러운 플레이 하나는 일품인 놈이었다.

        

       아따먹.

        

       역시 피했어야 했을까. 축제의 현장이 은근 재밌어 보인다고 슬쩍 끼어들었던 건 패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다른 도적과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투야 그러려니 해도, 도적의 특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상대의 흐름을 끊어 먹으며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수준이, 다른 도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장 지금도, 대체 어디에 있을지.

       

       눈앞의 기사, 오소독스와 가벼운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생각은 자꾸만 도적으로 쏠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상자로 뛰었거나, 2대1로 숨통을 끊으려 들 터. 하지만 의표를 찌르는 데 특화된 상대다.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자면, 함부로 뒤로 물러나기도 어려웠다. 퇴로를 점하고 있을 가능성까지 생각해야 할까.

       

       ‘아니, 그러고보니 상자나 기사가 아니라-‘

       

       지상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이렇게 가까웠나. 어느 틈에 여기까지 왔던 건지. 숨가쁜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에, 전장의 의미를 놓쳤다. 

       

       “지상 조심-”

        

       [X Soulless(사제) 님이 처치되었습니다!]

       [아따먹(도적) → X Soulless(사제)]

        

       《이런 씹, 도적이 왜 여기서 나와!》

        

       《센터! 센터 합류해주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귀를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들. 그 안에 담긴 정보들이 기사의 머릿속에서 조합되며 떠오르는 생각은 단순했다.

        

       ‘아, 큐 돌리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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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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