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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나는 눈앞에 보이는 시골집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지은 지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거무칙칙한 시멘트로 된 담을 가진 전원주택이었다. 그나마 지붕은 새로 한 듯 선명한 파란 색의 기와……는 아니고, 단독주택에서 종종 보이는 기와 모양의 판으로 이루어진 지붕을 가진 빨간 벽돌집이었다.

        

       그 선명한 색감과 오래된 담의 칙칙한 회색이 엄청나게 대비되어서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집이었다.

        

       바로 뒤에 있는 산이 선명한 녹색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더욱 이상했으리라. 배경 자체가 칙칙한 회색이 되어버렸을 테니까.

        

       “어이구, 우리 손녀 왔어?”

        

       그리고 그 마당에서 물을 틀어놓고 뭔가 하던 노인이, 얼른 이쪽으로 달려오며 말했다.

        

       “……할머니.”

        

       양혜인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양혜인보다 머리 두 개는 작아 보이는 그 할머니는 양혜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우리 손녀가 왔구나!”

        

       뭐랄까, 그야말로 할머니가 오랜만에 손녀를 만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누구니?”

        

       양혜인의 할머니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사라보다도 키가 작아 보이는 그 할머니의 얼굴은 묘하게 양혜인과 닮아 보였다. 물론 아직 젊은 20대인 양혜인과 얼굴에 주글주글하게 주름이 생긴 노인의 비교라 아주 정확하게 매칭이 되지는 않았지만.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꼬불꼬불하게 파마한 머리라 더 매칭이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양혜인은 여러모로 세련된 도시여자 같은 분위기가 풍겼으니까.

        

       “이분들은……”

        

       “일하다가 만난 지인이에요.”

        

       양혜인이 나를 아가씨나 고용주라고 부르기 전에 나는 얼른 말했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그래도 나이 한참 어린 어린애한테 고용되어있다고 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니까.

        

       양혜인 본인은 크게 신경 쓰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아니, 그보다는 그냥 평소의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긴 했지만, 지금 우리들의 앞에 있는 양혜인의 할머니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단순히 양혜인이 내 아래에 있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 조금 더 길게 이야기를 하면서 들은 바로, 양혜인은 내가 전생에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서울 내의 좋은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당연히 양혜인의 ‘유일한 가족’이라는 이 할머니는 자기 손녀에 관한 자부심이 대단할 것이다.

        

       그런 손녀가, 자기 졸업장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하면, 설령 돈을 아무리 많이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좋게는 들리지 않을 거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명목상 양혜인의 고용주인 사라는 양혜인보다 훨씬 어려 보였으니까.

        

       “그러니?”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휴, 친구들이 엄청나게 동안이네!”

        

       할머니는 웃으면서 나와 양혜인을 번갈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

        

       양혜인은 적어도 나의 의도를 파악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말은 못 하겠는지, 지금 당장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 자, 이렇게 밖에만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가자.”

        

       할머니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이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

        

       오늘부터 3일을 어떻게 버틸지, 벌써 앞이 막막했다.

        

       *

        

       내가 어쩌다가 양혜인의 할머니 집까지 따라오게 되었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양혜인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고, 그 말에 내가 양혜인이 휴가 갈만한 곳을 가면 양혜인이 따라올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대답을 하는 것이 계속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어색하던 대화도, 말을 섞을수록 서서히 편해졌다.

        

       그걸 나나 양혜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저택에 남은 고용인은 두 명입니다. 지금 제가 그만둔다면 저택을 전체적으로 관리할 인원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저택 며칠 청소 안 하는 걸로 큰일 안 나요. 그만두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사흘 쉬고 오라는 건데.”

        

       그렇다. 솔직히 내가 자취할 때도 귀찮으면 일주일 정도는 그냥 내버려 두곤 했다. 아니, 사실 그보다 더 오래 방치한 적도 있고, 특히 방학 때는 본가로 올라가곤 했으니 방치되는 일수로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저택이 고작 삼 일 방치된다고 큰일이 생길까? 커다란 건물에는 몇 개월씩 청소 한 번 하지 않고 방치되는 곳이 어느 정도 있는 법이었다.

        

       “제가 이곳에 있지 않으면 이 건물에는 아가씨와 아가씨 친구분들 외에 사설 경비업체 직원들만 남게 됩니다. 최나경 회장이 아직 잡히지 않은 이상 아무나 믿을 수는 없습니다.”

        

       “제대로 돈 주고 고용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큰 회사로 골랐고. 저에게 문제가 생기면 회사 전체가 흔들리지 않겠어요?”

        

       사실 그런 식으로 아무도 믿지 않게 되면 정말로 믿을 사람이 없어진다.

        

       아니, 그보다 아예 사복 입은 경찰들이 꾸준히 잠복 중인 집에서 그런 사건이 추가로 일어날 수가 있나? 무서워서라도 못하지 않을까?

        

       게다가 경비 인력 중에는 여성도 있었다. 그 정도의 인력을 구할 수 있으니까 믿을 수 있었던 건데.

        

       무엇보다 그 회사를 쓰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건 양혜인 본인이었고.

        

       “좋아요, 그럼.”

        

       말싸움을 하다가 지지 않으려고 계속 물러나지 않던 나는 결국,

        

       “그럼, 제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오겠다는 말이죠?”

        

       하고 말해버렸다.

        

       그 결과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었다.

        

       *

        

       “아휴, 아가씨들이 왜 다들 이렇게 말랐어?”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연신 뭔가를 들고나오셨다.

        

       “아, 아뇨, 할머니, 저희 여기까지 오면서 식사하고 와서요. 굳이 이렇게까지 많이 주시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여기 오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챙겨 먹고 왔기 때문이다. 그리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이건 점심 아니고 그냥 과일이니 괜찮아~”

        

       점심이 아니고 그냥 과일이고 뭐고 배에 안 들어간다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주신 것을 차마 거절할 수도 없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사과 한 조각을 찍어서 최대한 천천히 입에 넣고 씹었다.

        

       여기서 더 먹으면 진짜로 배가 아플 것 같았으니까.

        

       간식으로 주시는 것이 이 정도인데, 진짜 저녁에는 얼마나 주실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뭐,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저 무표정한 양혜인이 어떻게 이런 할머니 아래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그래도 나 말고, 소희, 수아, 하늘이는 훨씬 잘 먹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십 대 청소년이라 그런지 먹어 치우는 속도가 굉장했다.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해서 어떻게든 먹는 것으로 대화를 모면하려는 거던가.

        

       ……그래, 이해한다. 나도 지금 똑같은 심정이니까.

        

       상대가 아무리 잘해주더라도, 내 할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할머니였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이다. 어색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당장 평소에 볼일 없는 친척 노인 분들만 만나도 어색한데, 친구도 아니고 사용인 할머니를 만나버렸으니 더더욱 어색하다.

        

       평소에 쓰던 상호 존칭도 어째 쓰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데, 아가씨들은 우리 혜인이랑은 무슨 사이야?”

        

       그렇다.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이 엄청나게 걱정스러웠다.

        

       아까 전, 양혜인이 운전하던 차에 탄 상태에서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용주와 사용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영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관계에 대해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그러니까…….”

        

       나는 양혜인을 흘끗 보았다. 양혜인은 뭔가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 쟁반에 올려진 과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직장 상사의 딸이에요.”

        

       내가 시간을 끌고 있으니, 양혜인이 드디어 생각을 정리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덕분에 살았다.

        

       ……그래, 그렇게 설명하는 법도 있었구나.

        

       굳이 따지자면 지금은 내 직속이기도 했고, 전 고용주였던 최나경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랬던 적’도 있으니까.

        

       “직장에 놀러 왔다가 그대로 친해져서요.”

        

       “그랬구나! 아휴, 왠지 어려 보인다 했어.”

        

       다행히 할머니는 바로 이해해주신 모양이었다.

        

       “그런 관계라면 더 잘 해줘야 하겠네. 편하게 있다가 가요. 내 집이다 생각하고.”

        

       “……네에…….”

        

       ……역시, 오기를 부리지 말았어야 했다.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상황을 모면한 것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 앞에서 손녀의 진짜 직장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영 죄송스러웠다.

        

       양혜인과는 악연이 있지만, 그 할머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여기까지 오고 나서야 나는 양혜인이 할머니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떤 이유에선지 양혜인의 부모님이 아니라 할머니에게로 바로 왔다는 건, 진짜로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으니까.

        

       “…….”

        

       아, 진짜 불편하다.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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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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