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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순수하게, 나리아는 현 상황이 놀라웠다.

     사람들은 그대로 관중석에 앉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룡이 달리는 현장감을 저 스크린이라는 것을 통해 관람할 수 있고, 그 경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하나. 나리아는 이런 환경을 만들어낸 제국의 마도공학 기술이 놀라웠다.

     사람마다 누구나 하나 정도는 재능이 있다고 하더니, 그레이 지브롤터가 비룡을 모는 실력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저걸 비룡을 탄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비룡에게 짐짝처럼 달려 간다고 해야할지는 의문.

     하지만 한 손으로 히포그리프의 발목을 붙잡은 채, 수 km에 이르는 거리는 한 손으로 버티면서 날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레이 지브롤터의 기승 실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둘. 나리아는 누구에게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그레이의 기승 실력이 놀라웠다.

     그런 그레이의 실력이 돋보이는 배경에는 그레이를 중점적으로 찍는 화면과 함께, 그레이 뒤로 쓰지러지고 고꾸라진 비룡들이 보였다.

     누군가는 성벽 위 마법사들의 매직 미사일 포격에 얻어맞아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또 누군가는 선두에서의 경쟁에서 치여 날아오는 기사를 황급히 피하다가 두 비룡끼리 부딪쳐 바닥에 처박히는 모습을 보였다.

     “저게, 비룡 기사단.”

     대륙을 호령하며 천하를 오시하던 그 전설적인 기사단은 과거의 영광이었고, 현실은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물론 경룡은 전쟁이 아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마법사들의 포격이 날아온다거나, 경룡으로 달리는 비룡끼리 부딪친다거나, 속도 경쟁을 한다거나 하는 조각들을 하나하나 짜맞추다보면 결국 ‘전쟁’ 중에 일어나는 과정들이 얼핏 엿보였다.

     실전 상태가 개판이다.

     다리가 아픈 그레이 지브롤터의 뒤로 한 명 한 명 기사들이 탈락할 때마다, 관중석에 있던 귀족들은 심각한 얼굴로 비룡 기사단의 상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셋. 비룡 기사단의 처참한 실력에 나리아는 솔직히, 제일 경악했다.

     “어머니.”

     “묻지 마렴.”

     “비룡 기사단의 관할은 윈체스터 대공 아니셨습니까?”

     “정확히는 ‘비룡’에 대한 관리는 대공의 몫이지. 대공께서도 비룡 기수들이 저 상태라는 걸 비교적 최근에 파악하셨단다.”

     “…공사가 다망한 분이시니, 다들 어련히 잘 훈련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군요.”

     용기사-드라군이라는 건 비룡과 그걸 타는 기수가 합을 맞춰야 한다.

     아무리 비룡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혈통을 가지고 있는 대단한 짐승이라고 하더라도, 그 등 뒤에 올라타는 기수가 형편없으면 비룡은 그저 짐승의 지능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군용 마수에 불과했다.

     “만일 비룡들이 제어나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도망가지 않을까? 인간과 달리, 비룡은 기본적으로 짐승이잖니.”

     “우리…용의 협곡에서 태어나고 자란 비룡들이 과연 야생으로 도망치려고 할까요?”

     “쉽지는 않겠지. 인간으로 치면 노스트럼을 배신하고 제국으로 도망치는 꼴이니. 하지만 자기 목숨이 날아갈 것 같은 상황이라면, 인간보다 더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게 짐승이잖니.”

     “…….”

     경룡은 전쟁이 아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났을 때, 기수가 땅에 처박히고 어쩔 줄 몰라하는 비룡이 가만히 기수를 챙기려고 할까?

     날아오는 수많은 매직 미사일은 물론이거니와, 땅에 떨어져 그다지 높은 고도에서 날지 않으면 화살도 날아올 수 있을텐데?

     “그나마 지금은 비룡 중에 함부로 야생으로 도망치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두머리가 있잖니. 저기.”

     카르멘 왕비는 탈락한 용기병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검은 비룡을 가리켰다.

     “대공의 비룡이 용의 협곡에 살아가는 비룡들의 우두머리란다.”

     “저게 그 ‘흑장미’라고 하는 아이죠?”

     “아이…라고 하기에는 벌써 나이가 50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역이지.”

     펄럭.

     전형적인 드래곤을 연상케하는 몸통의 검은 비늘.

     드래곤과 와이번의 중간 즈음으로 보이는 검은 드래곤은 순수한 드래곤은 아니었으나, 조상 중에 드래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흑장미 데스스타. 대공 전하가 가지고 있는 비룡 중에서 가장 강력한 비룡이지.”

     “…….”

     “비록 자식을 가지지 못하는 몸이라 새끼는 없지만, 저거 보렴. 다른 비룡들이 흑장미를 보고 제 어미처럼 따르고 있잖니.”

     “어미라기보다는, 자신보다 강한 짐승이자 무리의 우두머리를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나리아는 놀랐다.

     

     윈체스터 대공이 자신의 또다른 애룡을, 그것도 ‘전선’에 나선다고 할 때만 타고 나오던 최강의 비룡을 타고 나와서 하는 것이 탈락자 수습이라니.

     하지만 타당했다.

     비룡 데스스타가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비룡 중 일부는 자신의 등에 타고 있던 기수의 추한 추락에 실망하여 그대로 용의 협곡으로 돌아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용의 협곡이면 다행.

     저기 저 멀리, 협곡을 지나 제국 방향으로 떠나버렸을 수도 있다.

     “어머니. 비룡들도 질투라는 걸 할까요?”

     “질투?”

     “예. 자신이 등에 태운 기사는 저 모양으로 추하게 탈락했는데, 저기 앞서나가는 비룡들은 인간을 태운 채로 화려하게 날아가고 있는 모습에.”

     “질투할 수밖에 없겠지? 협곡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을 태우고 날아가는 걸 보고 자란 아이들이니까. 연습 과정에서 이미 몇 번 겪어봤기 때문에 아는 거야. 비룡도 비룡이지만….”

     

     부ㅡㅡ웅.

     “비룡에 탄 기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도.”

     “……탄다는 건 일단 아니긴 합니다만.”

     또다시, 탈락한 비룡의 위로 회색 그림자가 스친다.

     “내년부터 학생들이 경룡을 배우기 시작한다면, 저건 일단 숙련된 조교도 감히 시범을 보이지 못하게 막기는 해야겠군요.”

     “…아예 타는 방법 자체를 ‘그레이 라이딩’이라고 이름 붙이는 건 어떠니?”

     “그게 좋겠습니다. 그레이 지브롤터만큼 탈 수 있는 거 아니면, 감히 비룡의 발목만 붙잡고 하늘을 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마지막으로 놀란 것이 있다면.

     “그런데 어머니. 그레이가 어머니께는 비룡을 잘 탄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까?”

     “…선물해준 시점부터 몇 번 타고 다닌 적은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저 정도로 잘 탈 줄은 몰랐지.”

     “그렇습니까.”

     “너는 알고 있었니?”

     “어느정도는.”

     그레이가 자신에게 약간의 언질을 준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일부 알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

     “어머니는 혹시 누구에게 걸었습니까?”

     “거, 걸어? 흠흠. 무슨 소리니?”

     “헥스 자작님과 그 자작가 가솔들을 통하여 따로 돈을 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배당은 얼마였습니까?”

     “누가 들으면 나의 정치적 아들을 이용해서 돈을 왕창 벌어들이려고 한 줄 알겠어. 그레이 지브롤터는 위험투자야. 안전자산은 저기, 지금도 선두에 달리고 있는 제로스 바르셀 후작이지.”

     “…….”

     대부분, 제로스 바르셀 왕실 제1 기사단장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

     “너는 누구에게 걸었니? 혹시….”

     “그레이 지브롤터가 말했습니다. 지브롤터에 걸라고.”

     “…괘씸하네. 엄마한테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서.”

     “그레이의 어머니는 샤를로트 백작부인이죠, 어머니.”

     “너.”

     “괜찮습니다. 제가 버는 만큼 어머니께 효도한다고 생각하고 드리겠습니다.”

     “너, 은근히 그레이랑 닮아가는 느낌이다?”

     “잘 배우고 있습니다.”

     나리아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닮아있던 걸지도.”

     “응…?”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전생이든, 아니면 어떤 세계든, 그레이 지브롤터와 저는 남매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

     “…엄청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구나. 의남매라는 이야기니?”

     “아니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친남매라는 겁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라는 거죠.”

     나리아의 미소는 어딘가, 스크린에 비친 그레이 지브롤터의 미소와 닮아있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만. 슬슬 1바퀴가 끝나갈 차례입니다. 한 번…지켜보도록 하죠.”

     트랙, 1바퀴 4/5지점.

     “계속 힘을 숨기고 있는 건, 그레이 지브롤터의 스타일이 아니니까.”

     * * *

     20등에서 2등이 되었다.

     내 뒤로 쫓아오던 이들은 전부 탈락했고, 경룡장 시범경기 특수룰에 따라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선두그룹보다는 느리다.

     당연히 내가 지금 쫓고 있는 제로스 바르셀 후작, 기사단장의 비룡보다 한참 느리다.

     즉, 다른 이들의 방해 없이 1등을 추격할 수 있다.

     새ㅡㅡ애액!!

     니드호그가 아무 말 없이 날개만 펄럭인다.

     성벽 위에 있던 마법사들 중에는 충성병자들이라도 있었던 건지, 결승선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나를 향해 엄청난 양의 매직 미사일을 쏟아내며 나를 격추시키려고 했다.

     ‘느려.’

     하지만 니드호그의 가속을 따라붙기에는 역부족.

     

     ‘그건 전부 잔상이야.’

     매직 미사일은 허망하게 우리가 날아간 궤적만을 때렸다.

     스크린으로 본다면 아마 매직 미사일에 관통되는 것처럼 보여서 누군가의 비명을 유발하고 그럴 수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달려나가는 멀쩡한 우리를 보고 비명은 환호성으로 바뀔 것이다.

     ‘진심으로 증오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은 이런 걸 즐기기 마련이지.’

     팬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일상적으로 숨쉬듯이 그레이 지브롤터를 매국노라고 증오하고 질투하는 충성병자, 그들 중에서도 극한이 아니면 대부분은 비룡을 타고 달리는 모습에 열광하고 환호하기 마련이니까.

     특히.

     ‘젊은이가 늙은 꼰대를 넘어선다는 모습을 보인다면?’

     오로솔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있어서, 귀감이 될 수 있다.

     “치ㅡ잇!”

     우리의 추격을 느꼈을까.

     제로스 바르셀 단장이 검을 뽑아들었다.

     심지어 검에 오러까지 생성하며, 그는 어떻게든 우리를 추락시키려고 작정을 했다.

     -오러까지 발현하면서까지 나를 추락시키려고 하느냐?

     말로는 하지 않는다.

     소리를 내는 건 니드호그의 가속에 방해가 될 수 있어, 나는 입모양으로 내 생각을 대신 전했다.

     “!!”

     투구 너머로 보인 제로스 단장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뒤를 슬쩍 흘긴 그의 비룡 또한 아무렇지 않게 따라붙는, 심지어 서서히 간격이 좁아지는 걸로도 모자라 코너를 돌면 추월할 것 같은 니드호그를 주시하며 경계심이 바짝 올라있다.

     펄ㅡ럭!

     제로스 단장의 비룡이 일부러 날개를 크게 펄럭이고 꼬리까지 흔든다.

     명백히 니드호그의 진로를 방해하며 동시에 니드호그의 등 위를 노리는 공격.

     “쯧.”

     학습된 공격이다.

     그래도 단장이라는 자는 훈련을 좀 했는지, 익숙하고도 숙달된 움직임으로 제로스 단장의 비룡은 니드호그의 ‘등’을 노렸다.

     부ㅡㅡ웅!

     니드호그가 가볍게 아래로 날았다.

     일반적인 비룡이었다면 꼬리에 기수의 목이 치여 그대로 뒤로 넘어가 추락했겠지만, 나는 니드호그의 아래에서 발목을 붙잡은 채로 날아갈 뿐이다.

     “이…!”

     코너를 돌며 니드호그가 수직으로 날며 추월하려는 순간, 제로스 단장의 간격에 내 몸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죽어라, 제국벌레놈!!”

     지금, 이라고 생각한 걸까.

     최소한 나를 다리만 병신이 아니라 반신불구로 만들겠다는 듯, 제로스 단장이 날카로운 오러를 발현하며 검을 휘둘렀다.

     “죽기는 무슨.”

     카ㅡ앙.

     “?!”

     

     스크린에도 담기지 못할 빠른 일격.

     지팡이로 단장의 공격이 날아오기 직전, 검날에 빚어진 오러가 순간적으로 흔들린 ‘찰나’에 맞춰 검을 튕겨냈다.

     “‘경기’에서 죽이려고 하기는.”

     파ㅡ앙!

     니드호그가 크게 날개를 펼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허접.”

     “!?!?!!?”

     니드호그가 달린다.

     직선 코스로 들어가자마자 완벽하게 제로스 단장을 추월하여, 1등으로 1바퀴를 마무리 한다.

     그리고 2바퀴는 따로 멈춤 없이, 경기 지속.

     지금부터는 선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은 채, 압도적인 실력으로 달리면 끝-

     “으하하하하ㅡㅡㅡ!”

     이라고 생각했는데, ‘룰 브레이커’가 나타났다.

     “이런 대회에 이 몸이 빠질 수 없지!!”

     1바퀴째에 출전하지도 않았던,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나 경기장에 난입하여 달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광인.

     “1등은 나의 것이다! 날아라, 골든 엠페러, 더 노스터럼!!”

     금색 마갑을 두른 드레이크가 튀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으하하하하하하ㅡㅡㅡㅡ!!”

     “…….”

     어딜 내놔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미친 왕이 술에 잔뜩 취한 채, 경룡장 트랙에 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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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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