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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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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던 외신은 뒤늦게 제 몸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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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뭣..?! 나 어째서 육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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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혼이 어째서인지 멀쩡한 몸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몸에. 그녀가 혼란을 숨기지 못하고 있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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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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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 적..?!’이라는 생각이 그대로 적힌 얼굴로 고개를 휙 돌린 순간, 상상도 못 한 장면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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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진짜 이런 말 하는 공룡은 아닌데… 하, 참..”
    “야야, 제대로 말해.”
    “알았어 잠깐만 크흠, 저… 저랑 같이 호수에서 목 좀 축이시지 않을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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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m가 넘는 크기의 공룡이 짧은 팔로 턱 언저리를 쓰다듬으며 제 딴에는 가장 잘생겨 보이는 각도로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친..구로 추정되는 공룡이 킬킬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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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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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멍청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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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웅!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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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거대한 존재가 다가오는지 그녀와 데이트를 신청한 공룡까지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지길 반복했다. 순간 균형을 잃을까 걱정되어 두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기이할 정도로 땅에 착하고 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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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내가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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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들다 못해 뒤로 꺾어야 겨우 머리가 보일만한 크기의 공룡이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물 5층 높이는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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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그런데 제 여 자 친 구에겐 무슨 볼일?”
    “헉.. 죄, 죄송합니다!”
    “야,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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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공룡이 후다닥 자리를 떠나자 거대한 공룡이 얼굴을 숙여 그녀의 앞에서 윙크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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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괜찮으세요? 곤란해 보이셔서 도와준다는 게 괜한 오해를 만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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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멍한 얼굴로 거대한 공룡을 바라보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말을 뱉지 못했다. 뇌가 정지한 것만 같았다. 이 상황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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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의 쓰나미가 그녀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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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이 ‘개그’의 맛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무렵, 아이리스는 외신과 꽤 멀리 떨어진 곳에 멍하니 주저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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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롱 ~ 삐로롱 ~
    꺄하하 ~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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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나갈 것 같은 경쾌하고 귀여운 음악과 공룡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정신에 극심한 타격을 받은 아이리스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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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품에는 어린 아이만 한 인형이 안겨있었는데, 리안을 인형으로 만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신이 빚어낸 기억 속에서 끌어안고 있던 리안의 시체가 개그 필터로 인해 인형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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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껴지는 감촉은 부드럽고 말랑한 인형이었지만 아이리스에겐 여전히 차갑게 식은 시체처럼 느껴졌다. 인형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엔 여전히 필로 얼룩진 시체만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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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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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그녀의 뒤로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왔다. 뒤에서 칼로 찌른다고 해도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아이리스는 그저 제 오빠의 인형을 어루만질 뿐 기척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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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륵,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따스한 온기가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녀의 얼굴 옆으로 익숙한 하얀 머리카락과 온기가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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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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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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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서 힘이 풀려 제 생명줄 마냥 소중하게 안고 있던 인형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더듬더듬 떨리는 손이 제 어깨를 휘감은 따스한 온기를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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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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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떡거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가 겨우 그를 입에 담았다. 아이리스는 따스한 품속에서 환희와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이 온기가 다시 창백하게 식어 한 줌의 핏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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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어깨를 끌어안았던 팔이 슬그머니 떨어져 나가려 했다. 느슨해지는 압박감에 아이리스는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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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 흑…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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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울음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넘실거렸지만 뱉어지지 못했다. 멍청하게 우는 사이 그가 떠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아이리스에게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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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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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늪에 빠져드는 것 같은 안온함이 아이리스의 불안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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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괜찮아. 아이리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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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차 들려오는 봄볕 같은 목소리에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팔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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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잠깐의 포옹이었지만 온기가 떠나가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녀의 불안이 재차 부피를 키우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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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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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아이리스의 옆에 리안이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제나와 같은 다정한 얼굴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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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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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내밀어 리안의 얼굴을 잡았다. 그러자 리안이 눈웃음지으며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 제 얼굴을 꾹 눌러주었다. 곱고 부드러운 감촉과 온기가 서슴없이 손바닥 안쪽을 파고들었다. 어깨가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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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거의 못 잤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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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감 없이 다가온 다정한 손길이 아이리스의 눈가를 쓸어내렸다. 불안으로 떨리던 심장이 이젠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걱정스럽다는 듯 끝을 알 수 없는 온기를 품은 눈동자 속에서 그녀는 아득한 온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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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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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온갖 말이 너무나 무거워 쏟아지지 못하고 눈가에 맺힌 눈물처럼 넘실거리기만 했다. 리안은 아이리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다는 듯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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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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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사과를 듣자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거슬리고 화가 났다. 그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저런 말을 들어버리니 제 마음의 아픔을 전부 그의 탓으로 돌리고만 싶어지는 자신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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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아이의 눈가를 쓸어내리듯 다정한 손길이 이내 부드러운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긴장으로 바짝 굳어있던 어깨가 슬금슬금 힘이 풀리고 온몸이 따뜻한 욕조 물에 들어간 것처럼 이완되었다. 마법 같은 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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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빨리 돌아오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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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정말 별거 아닌 사고에 휘말렸다는 것처럼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해 아이리스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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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볕에 파스스 쏟아지는 따스한 바람을 즐기는 것처럼, 안온한 목소리를 그저 귀에 담던 와중 들려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아이리스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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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오빠가 지금…-”
    “응, 마왕성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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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술가 덕분에 아이리스의 정신 속을 일시적으로 방문할 수 있게 된 리안은 제 소식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것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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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믿어줄까 싶긴 하지만… 다크 판타지라고 해도 판타지는 판타지니까 믿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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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두 사람을 중심으로 새하얀 꽃밭이 만들어졌다. 향긋한 향기가 혼란으로 하얗게 질린 아아리스의 볼을 쓰다듬었다. 누그러지는 표정을 보자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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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은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이라서 빠져나갈 순 없을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위험한 건 아니니까 기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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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빼앗기고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라고 말하면 그나마 풀린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릴 것 같아, 감옥에 갇혔다는 말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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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린 말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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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생각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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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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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텔 톤의 세계가 점차 깨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안은 기민하게 아이리스의 정신이 깨어나려는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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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제 깨려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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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별의 순간에 아이리스가 다급히 두 팔을 뻗어 리안을 끌어안았다. 그를 놓아줄 수 없다는 듯 절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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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한 온기를 품에 안자 쿵쾅거리는 심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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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핫, 나도 보고 싶을 거야 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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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가에 흩어지는 다정한 웃음소리, 거부하지 않고 허리를 끌어안는 손길에 혼란과 공포로 가득하던 아이리스의 머릿속이 일순 조용해졌다. 쿵쿵쿵!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만이 온몸을 잠식했다. 손끝이 저릿하고 이유를 알 수 없이 귀가 홧홧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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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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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에 안긴 온기가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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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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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순… 이럴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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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당한 외신은 절망감에 입술을 짓씹으며 충혈된 눈으로 중얼중얼 자신이 저지른 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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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날을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려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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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의 기억은 아이리스가 갓난아기 시절보다 더 오래전 -… 이젠 죽어 사라진 용사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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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는 공작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검사였다. 그런 그가 사천왕 최약체에게 죽었다는 사실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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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면에 존재하던 미지의 힘이 바로 절망에 잠겨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외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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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사천왕의 몸을 집어삼킨 채 용사를 죽이고 그 몸을 빼앗으려 했지만 거대한 신성력에 몰매를 맞고 그대로 소멸 직전까지 가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용사와 같은 핏줄을 가진 아이리스의 몸속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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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의 뱃속에서 점차 자라나고 있던 아이리스는 너무나 연약하여 외신의 침입을 막지 못했다. 이후 외신은 아이리스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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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난아기 시절의 아이리스를 마왕의 땅으로 빼돌린 것도, 끔찍한 실험을 즐기는 흑마법사에게 인도된 것도 -… 전부 이 외신의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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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온갖 노력을 쏟아부은 결과가 눈앞에서 흐지부지되다 못해 사라질 상황이었다. 분노를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성이 흐려지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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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잖은 개수작은 그만두고 당장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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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에 찬 목소리가 파스텔 톤 세계에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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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벅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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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기척이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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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어디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몰라 어버버거리기 바쁜 외신씨.
이후 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늘어질 것 같아 생략했습니다..ㅎㅎ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던 외신은 뒤늦게 제 몸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뭣..?! 나 어째서 육체가..?!”

거대한 혼이 어째서인지 멀쩡한 몸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몸에. 그녀가 혼란을 숨기지 못하고 있던 그때.

툭툭.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 적..?!’이라는 생각이 그대로 적힌 얼굴로 고개를 휙 돌린 순간, 상상도 못 한 장면이 펼쳐졌다.

“제가 진짜 이런 말 하는 공룡은 아닌데… 하, 참..”

“야야, 제대로 말해.”

“알았어 잠깐만 크흠, 저… 저랑 같이 호수에서 목 좀 축이시지 않을실래요?”

2m가 넘는 크기의 공룡이 짧은 팔로 턱 언저리를 쓰다듬으며 제 딴에는 가장 잘생겨 보이는 각도로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친..구로 추정되는 공룡이 킬킬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게 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멍청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웅! 쿵!

얼마나 거대한 존재가 다가오는지 그녀와 데이트를 신청한 공룡까지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지길 반복했다. 순간 균형을 잃을까 걱정되어 두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기이할 정도로 땅에 착하고 착지했다.

“미안 내가 늦었지?”

고개를 들다 못해 뒤로 꺾어야 겨우 머리가 보일만한 크기의 공룡이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물 5층 높이는 되어 보였다.

“저, 그런데 제 여 자 친 구에겐 무슨 볼일?”

“헉.. 죄, 죄송합니다!”

“야,야! 가자!”

두 공룡이 후다닥 자리를 떠나자 거대한 공룡이 얼굴을 숙여 그녀의 앞에서 윙크하며 말했다.

“이런… 괜찮으세요? 곤란해 보이셔서 도와준다는 게 괜한 오해를 만들었네요.”

그녀는 멍한 얼굴로 거대한 공룡을 바라보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말을 뱉지 못했다. 뇌가 정지한 것만 같았다. 이 상황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그의 쓰나미가 그녀를 덮쳤다.

외신이 ‘개그’의 맛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무렵, 아이리스는 외신과 꽤 멀리 떨어진 곳에 멍하니 주저앉아있었다.

삐롱 ~ 삐로롱 ~

꺄하하 ~ 크르릉!

정신 나갈 것 같은 경쾌하고 귀여운 음악과 공룡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정신에 극심한 타격을 받은 아이리스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품에는 어린 아이만 한 인형이 안겨있었는데, 리안을 인형으로 만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신이 빚어낸 기억 속에서 끌어안고 있던 리안의 시체가 개그 필터로 인해 인형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느껴지는 감촉은 부드럽고 말랑한 인형이었지만 아이리스에겐 여전히 차갑게 식은 시체처럼 느껴졌다. 인형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엔 여전히 필로 얼룩진 시체만이 아른거렸다.

저벅.

그런 그녀의 뒤로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왔다. 뒤에서 칼로 찌른다고 해도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아이리스는 그저 제 오빠의 인형을 어루만질 뿐 기척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스륵,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따스한 온기가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녀의 얼굴 옆으로 익숙한 하얀 머리카락과 온기가 쏟아져 내렸다.

“아이리스.”

“…!”

툭.

손에서 힘이 풀려 제 생명줄 마냥 소중하게 안고 있던 인형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더듬더듬 떨리는 손이 제 어깨를 휘감은 따스한 온기를 더듬었다.

“오,오..빠?”

헐떡거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가 겨우 그를 입에 담았다. 아이리스는 따스한 품속에서 환희와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이 온기가 다시 창백하게 식어 한 줌의 핏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어깨를 끌어안았던 팔이 슬그머니 떨어져 나가려 했다. 느슨해지는 압박감에 아이리스는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가지, 흑…가지마..”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울음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넘실거렸지만 뱉어지지 못했다. 멍청하게 우는 사이 그가 떠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아이리스에게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닿았다.

“괜찮아.”

천천히 늪에 빠져드는 것 같은 안온함이 아이리스의 불안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난 괜찮아. 아이리스.”

“아..”

재차 들려오는 봄볕 같은 목소리에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팔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아주 잠깐의 포옹이었지만 온기가 떠나가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녀의 불안이 재차 부피를 키우려는 순간.

“잘 있었어?”

그런 아이리스의 옆에 리안이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제나와 같은 다정한 얼굴을 하고.

“아..”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내밀어 리안의 얼굴을 잡았다. 그러자 리안이 눈웃음지으며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 제 얼굴을 꾹 눌러주었다. 곱고 부드러운 감촉과 온기가 서슴없이 손바닥 안쪽을 파고들었다. 어깨가 움찔거렸다.

“잠을 거의 못 잤나 보네.”

거리감 없이 다가온 다정한 손길이 아이리스의 눈가를 쓸어내렸다. 불안으로 떨리던 심장이 이젠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걱정스럽다는 듯 끝을 알 수 없는 온기를 품은 눈동자 속에서 그녀는 아득한 온기를 느꼈다.

“오빠… 난…”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온갖 말이 너무나 무거워 쏟아지지 못하고 눈가에 맺힌 눈물처럼 넘실거리기만 했다. 리안은 아이리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다는 듯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그의 사과를 듣자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거슬리고 화가 났다. 그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저런 말을 들어버리니 제 마음의 아픔을 전부 그의 탓으로 돌리고만 싶어지는 자신이 미웠다.

제 아이의 눈가를 쓸어내리듯 다정한 손길이 이내 부드러운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긴장으로 바짝 굳어있던 어깨가 슬금슬금 힘이 풀리고 온몸이 따뜻한 욕조 물에 들어간 것처럼 이완되었다. 마법 같은 효과였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져서…”

리안은 정말 별거 아닌 사고에 휘말렸다는 것처럼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해 아이리스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봄볕에 파스스 쏟아지는 따스한 바람을 즐기는 것처럼, 안온한 목소리를 그저 귀에 담던 와중 들려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아이리스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니까… 오빠가 지금…-”

“응, 마왕성에 있어.”

점술가 덕분에 아이리스의 정신 속을 일시적으로 방문할 수 있게 된 리안은 제 소식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것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다들 믿어줄까 싶긴 하지만… 다크 판타지라고 해도 판타지는 판타지니까 믿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두 사람을 중심으로 새하얀 꽃밭이 만들어졌다. 향긋한 향기가 혼란으로 하얗게 질린 아아리스의 볼을 쓰다듬었다. 누그러지는 표정을 보자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당장은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이라서 빠져나갈 순 없을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위험한 건 아니니까 기다려줄래?”

몸을 빼앗기고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라고 말하면 그나마 풀린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릴 것 같아, 감옥에 갇혔다는 말로 바꾸었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그리 생각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쩌저적.

파스텔 톤의 세계가 점차 깨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안은 기민하게 아이리스의 정신이 깨어나려는 걸 알아차렸다.

“아, 이제 깨려나 보다.”

“…!”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별의 순간에 아이리스가 다급히 두 팔을 뻗어 리안을 끌어안았다. 그를 놓아줄 수 없다는 듯 절박하게.

따스한 온기를 품에 안자 쿵쾅거리는 심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핫, 나도 보고 싶을 거야 아이리스.”

귓가에 흩어지는 다정한 웃음소리, 거부하지 않고 허리를 끌어안는 손길에 혼란과 공포로 가득하던 아이리스의 머릿속이 일순 조용해졌다. 쿵쿵쿵!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만이 온몸을 잠식했다. 손끝이 저릿하고 이유를 알 수 없이 귀가 홧홧해졌다.

“기다릴게.”

품에 안긴 온기가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

“이럴 순… 이럴 순 없어..”

‘개그’당한 외신은 절망감에 입술을 짓씹으며 충혈된 눈으로 중얼중얼 자신이 저지른 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가 이날을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려왔는데..!”

외신의 기억은 아이리스가 갓난아기 시절보다 더 오래전 -… 이젠 죽어 사라진 용사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용사는 공작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검사였다. 그런 그가 사천왕 최약체에게 죽었다는 사실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이면에 존재하던 미지의 힘이 바로 절망에 잠겨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외신이었다.

그녀는 사천왕의 몸을 집어삼킨 채 용사를 죽이고 그 몸을 빼앗으려 했지만 거대한 신성력에 몰매를 맞고 그대로 소멸 직전까지 가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용사와 같은 핏줄을 가진 아이리스의 몸속을 파고든다.

공작의 뱃속에서 점차 자라나고 있던 아이리스는 너무나 연약하여 외신의 침입을 막지 못했다. 이후 외신은 아이리스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갓난아기 시절의 아이리스를 마왕의 땅으로 빼돌린 것도, 끔찍한 실험을 즐기는 흑마법사에게 인도된 것도 -… 전부 이 외신의 짓이었다.

오랜 시간 온갖 노력을 쏟아부은 결과가 눈앞에서 흐지부지되다 못해 사라질 상황이었다. 분노를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성이 흐려지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같잖은 개수작은 그만두고 당장 나와!”

분노에 찬 목소리가 파스텔 톤 세계에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저벅저벅.

낯선 기척이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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