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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그 뒤, 무학 2기생 중간 평가가 끝마쳤다.

   당연히 라헬른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은 물론 1기생까지 이번 시험의 결과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어진 결과 발표는 이러하였다.

     

   1위 크라슈 발하임

   2위 하링 라그렌

   공동 3위 글렌 다이아나 / 발락 호그마

   5위 카란디스 포세우스

   6위 아서 그라말테

   …

     

   이어진 결과 발표를 듣고, 누구는 역시 그렇냐고 생각했다.

     

   특급과가 괜히 창설된 게 아니라는 양.

   특급과의 인물들 대부분이 상위권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크라슈의 경우에는 더더욱 1기생 사이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던 이였는데.

   이번 중간 평가에서도 무려 7성급 침식종을 쓰러트렸다고 하니 난리가 난 것이다.

     

   물론 다른 이들의 도움이 있었고, 마법으로 만들어진 만큼 기존 침식종보다 부족하긴 하나.

   그런 것을 전부 감안해도 그의 실력이 거품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렇게 또다시 크라슈의 이름이 라헬른 아카데미를 휘젓는 사이.

   이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도 있었다.

     

   “메리, 이 멍청이가 결국 져서는.”

     

   바다 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 짜증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파니아의 제 3황녀

   시그린 에파니아

     

   그녀는 들려온 소식을 듣고 짜증부터 부렸다.

     

   솔직히 말해 조금은 기대했다.

     

   그 신창이라 불리던 메리니까.

   크라슈를 꺾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웬걸.

   기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메리는 그야말로 박살이 나버렸다.

     

   이 처참한 결과는 그야말로 말할 것도 없었다.

   크라슈의 압도적인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보고를 들은 시그린의 얼굴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입학식 때까지만 해도 크라슈를 아직까지는 저주 받이 취급하던 그녀였다.

   그도 그럴 게 그 정도 성장이야 샬롯이 있다면 상정 내였으니까.

     

   그러나 최근 행보는 솔직하게 말해 상정을 아득히 넘어섰다.

     

   ‘이상해.‘

     

   아무리 샬롯이 있었다 하더라도 크라슈의 성장은 명백히 이상했다.

   그야,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단시간에 이렇게 강해지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샬롯이 크라슈에게 무슨 짓을 했다.

   쭉 그렇게 가정을 하고 지내던 시그린도 서서히 수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회귀 정도의 기연을 얻지 않고서야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녀는 최근에 생긴 사건을 떠올리며 한 번 더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그건 다름 아닌 펠레이의 소식이었다.

     

   평민의 영웅, 펠레이.

   그가 제니칼렌 부교수가 저지르려 했던 악행을 막았다는 소식이었다.

     

   귀족가의 학생들에게 핍박받던 부교수가 저지른 대사건.

   제니칼렌 부교수를 막는 과정에서 크게 다친 그는 급하게 병실로 이송되었으나.

   다행히 그의 목숨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대신 펠레이는 그렇게 부상을 입은 상태로도 연거푸 제니칼렌 부교수를 옹호했다.

   그가 결국 저지른 범죄를 부디 천편일륜 적인 사고로 취급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거기에 평소 귀족가 자제들이 저질렀던 악행들이 드러나며 펠레이의 말은 더더욱 힘을 얻었다.

   그들의 악행을 잘 알던 부교수들마저 옹호하며 나섰기 때문이었다.

     

   호송된 제니칼렌 부교수의 처우는 우선, 뒤로 미루어졌다.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된 시점에서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그였으나 전 투황 듀란달이 직접 나서서 그를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세간에 소문에 의하면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되었어도 주종 관계를 끊어 낼 방법이 있는 이를 그가 안다는 말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덕분에 펠레이의 위상은 전에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평민들은 당연히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고, 귀족들은 이런 사건을 벌인 귀족 자제들을 헐뜯어 펠레이의 이름을 높이 샀다.

     

   평민이 없으면 귀족도 없다는 걸 잘 아는 이들이 눈치 빠르게 대처한 것이다.

     

   덕분에 이번 사건으로 인지도를 더 높이려 했던 시그린은 강의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펠레이가 어떻게 이번 사건에 개입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녀로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메리에 이어서 펠레이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웃음조차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시그린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어떻게 된 게 주위에 도움이 되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다.

     

   더불어 펠레이의 경우 샬롯의 개입도 의심되었다.

   펠레이가 최근 수상쩍게 변한 것이 하덴하르츠 사건 이후였으니까.

     

   “하아.”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군.”

     

   그 순간이었다.

   시그린은 어느새 문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지닌 이가 서 있었다.

   시그린은 그를 보자마자 살짝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다름 아닌 가짜 아서 그라말테였기 때문이다.

     

   “무슨 볼일이죠. 말도 없이.”

     

   순간이지만 자신이 기척을 못 느꼈다.

   그 사실이 거슬렸지만, 시그린은 그를 타박하지 않았다.

     

   그야, 그는 아서와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으니 말이다.

     

   “그저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말이지.”

     

   가짜 아서의 차가운 눈이 시그린에게 닿았다.

   묘하게 진짜 아서와 비슷한 분위기를 보이는 그의 눈빛에 시그린이 몸을 움츠러트렸다.

     

   “하, 무슨 소리예요? 어차피 상황은 계속 잘 흘러가고 있어요.”

   “검황의 유산을 얻은 것 말인가?”

     

   다음 말은 시그린의 기분을 제대로 잡치게 만들었다.

     

   “당신, 지금까지 방관자처럼 지켜보기만 한 주제에 어디까지 끼어들려는 거죠?”

     

   시그린의 두 눈에 표독스러운 기운이 흘렀다.

   동시에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들이 주변의 미약한 진동을 만들었다.

     

   서리 바람이 분 듯 한순간에 온도가 낮아진 방 속.

   시그린의 푸른 두 눈이 가짜 아서를 노려보았다.

     

   “아서 님인 척 연기하고 있으니 당신이 정말 아서 님이라도 된 줄 아는 건가요? 당신은 그저 메신저일 뿐이에요. 아서 님과 이어줄 수 있는 메신저. 그 역할을 망각했나요?”

     

   그녀의 날 선 반응이 이어지자 가짜 아서는 침묵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는 핏하니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래, 난 진짜 아서 님이 아니지.”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르는 시그린이 의문을 보였을 때.

   한순간에 웃음을 거둔 가짜 아서는 무표정하게 그녀에게 고했다.

     

   “그러니 진짜 아서 님의 명이다. 크라슈 발하임, 그를 무조건 끌어들여라.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넌 영영 아서 님을 뵐 수 없을 거다.”

   “뭐요? 잠깐, 그게 무슨.”

   “기억해라.”

     

   가짜 아서는 그 말을 남기고,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덩그러니 혼자 남아 버린 시그린은 양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가짜 아서가 진짜 아서 님의 명이라고 하였다.

   저자도 자신의 화를 건드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저 말은 진짜일 터.

     

   ‘아서 님을 영영 못 본다고?‘

     

   그 말은 설마 아서 님이 직접 한 말인 걸까.

   지금까지 굳건하게 견디던 시그린의 마음속의 일말의 불안감이 생겼다.

     

   아서는 그녀에게 있어서 전부다.

   그런 아서가 자신을 버린다면 그녀 또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그린의 이가 바드득 갈렸다.

   왜냐하면 이번 일에 원흉이 누군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메리, 이 멍청한 년이.”

     

   양 주먹을 떨던 시그린이 이내 책상으로 걸어와 서랍을 열었다.

   그러고는 상자를 하나 꺼내든 시그린은 그대로 서랍을 닫고 몸을 돌렸다.

     

   쓸모없는 개는 개만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메리는 그걸 해줄 시간이었다.

     

   방문을 박찬 그녀의 걸음이 뚜벅뚜벅 복도에 그리 울려 퍼졌다.

     

     

   * * *

     

     

   시험이 끝마친 당일날 밤.

     

   크라슈는 멸천수라와 멸설침식까지 쓴 대가로 휴식에 취하고 있었다.

   덤으로 아스트리아에게 맞은 등짝이 아직도 아린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몇 번 맞아본 적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손이 매운 느낌이었다.

     

   「아카데미 시험에서까지 이럴 거야! 당신 나 화나라고 일부러 그러지!」

     

   타박하는 아스트리아의 말이 떠오르자 크라슈는 잠시 쓰게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 걱정을 안 끼칠 자신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이번 시험을 통해 크라슈는 멸설침식을 실전에서도 운용할 수 있음을 느꼈다.

   이게 가능하다면 분명 앞으로 여러 방식으로 응용이 가능하겠지.

     

   ‘멸화침식의 출력도 지금보다 높일 수 있을 거고.’

     

   무엇보다 메리 그 여자를 꺾은 게 가장 컸다.

     

   ‘남은 자물쇠는 이제 둘.’

     

   이제 그 두 개만 더 풀어내면 메리의 엑셀이 손에 들어온다.

   엑셀을 얻는다면 당연히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을 터.

     

   ‘응용 방법의 폭이 훨씬 늘어난다.’

     

   멸망을 막을 길이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손에 쥐어진 힘이 강해질 때마다 느껴진다.

     

   이번 회차에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

     

   똑똑-

     

   그 순간이었다.

   크라슈는 자신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쉬느라 뒤늦게 반응한 제 육감과 함께 창문 바깥에 있는 이의 정체를 알아차린 크라슈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왜냐하면 머릿속에 얼마 전 달링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삐걱-

     

   침대에서 일어난 크라슈가 창문 앞에 다가와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이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로브를 뒤집어썼음에도 굴곡이 드러나는 몸과 로브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의 머리카락.

   거기에 음영이 진 로브 안쪽 한없이 그늘진 얼굴.

     

   메리 다이아나였다.

     

   “남자 기숙사에 무슨 볼일이냐.”

     

   지금은 한밤중인 상황이다.

   자칫해서 기숙사 사감에게 걸리는 순간 꼼짝없이 심문받을 판.

     

   그런 상황에 남자 기숙사에 무슨 볼일이냐며 묻자 메리가 주저하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 그게, 크라슈랑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

     

   딱 봐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춘 감정은 한없이 비굴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평소에 쭈그러져 있던 모습보다도 더했다.

   비굴하게 억지로 지은 웃음과 식은땀.

     

   그 모습에서 이제 예전의 신창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크라슈는 메리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더더욱 초조한 기색을 보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들어와.”

     

   얼마 뒤 창문에서 돌아선 크라슈가 메리를 들였다.

   그러자 메리는 겨우 화색을 보이며 안으로 주섬주섬 들어왔다.

   

   

   

   

     

   로브 사이, 맨다리가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그걸 보고 괜히 언짢은 기분을 느낀 크라슈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거기 앉아.”

     

   쭈뼛거리는 메리에게 의자를 권유하자 그녀가 겨우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는 로브를 잘 정리하더니 한차례 심호흡했다.

     

   “차, 차라도 좀 마실 수 있을까? 목이 타서.”

     

   남의 방에 찾아온 주제에 차부터 찾다니 어이가 없군.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속으로 혀를 찬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러던가.”

     

   크라슈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자 마침, 평소 취미 삼아 뜨개질을 한 채로 꾸벅꾸벅 졸던 알리샤가 흠칫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크라슈와 눈이 마주치더니 서둘러 입가를 닦으며 웃었다.

     

   “크라슈 님, 무슨 일 있사옵니까?”

   “손님이 왔어. 차 두 잔만 좀 준비해줄래? 준비해준 뒤에는 바로 자도 괜찮아.”

   “금방 준비하겠사옵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알리샤가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준비된 차를 받은 크라슈는 그대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내, 내가 받을게.”

     

   그러자 메리가 급히 크라슈가 들고 온 차를 받았다.

   그러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크라슈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 뒤 크라슈는 방문을 덜컹 닫았다.

     

   “그래서 왜 이 시간에 찾아온 거냐.”

     

   자꾸 둘러서 행동하는 건 이쯤하고 본론을 말하라며 크라슈가 재촉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오, 오늘, 내가 졌을 때. 그때가 좀 감명 깊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라구! 하하.”

     

   한껏 어색한 웃음을 흩뿌리며 메리가 대답했다.

     

   저러려면 자신의 눈가에 드리운 퀭한 얼굴부터 어찌하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미안, 너, 너무 갑작스러웠지.”

     

   그러자 크라슈의 눈치를 한껏 본 메리가 주저하며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잠시동안 침묵하던 크라슈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정말 그것뿐이냐.”

     

   메리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녀의 커다란 눈은 어느 때보다도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라면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오지는 않을 거라고 보는데.”

     

   크라슈의 의미심장한 말이 메리의 어깨를 더더욱 좁히게 했다.

     

   평생을 자신의 적수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오늘 그런 그에게 이토록 처참하게 깨지고 나니.

   메리는 이제 크라슈의 앞에서만 있어도 몸이 오들거렸다.

     

   두렵다.

   그를 앞에 두면 자신이 전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당장 도망가고 싶지만 메리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야, 시그린의 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방에 틀어박힌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던 메리에게 찾아온 시그린은 매몰차게 그녀를 무릎 꿇렸다.

     

   「메리,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명령이에요.」

     

   마지막 명령을 내뱉던 시그린의 눈은 정말로 차디찼다.

     

   「그 남자를 덮쳐서 아이를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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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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