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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6

   EP.176

     

   밤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까놓고 말하면 도둑놈이라는 뜻인데 굳이 순화하는 이유라면 물건을 조금 점잖게 훔쳐 가기를 바라는 집 주인들의 염원이라고 설명하면 될 듯싶다.

     

   태풍에 예쁜 이름이나 약해 보이는 이름을 짓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그리고 이곳 연금술사의 탑. ‘이세계의 대부’를 봉인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엔리코의 거처에는 공교롭게도 그 밤손님이 자주 찾아오는 편이었다.

     

   따악.

     

   누군가가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리자 동시에 연금술사의 탑 내부에 위치한 집회장에 불빛이 번쩍였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등잔들에 스파크가 튀자 주위가 환해지며 무릎을 꿇은 상태로 헤라클레스에 제압당해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남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앞에 뒷짐을 지고 그를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그 두 사람을 중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백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채,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용기가 대단하시군요. 그 충성심도 그렇고.”

   “……젠장.”

   “아, 그 끈기도 칭찬해드리고 싶군요. 이번에는 좀 아까웠습니다. 성좌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저를 먼저 노린다라…… 앞으로는 저도 조심해야겠군요.”

     

   엔리코의 빈정거림에 제압당한 남자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성좌 ‘이세계의 대부’가 거둬들였던 화신 무리들 중 배신에 가담하지 않은 자. 현재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는 이 남자는 대부가 거둬들인 화신들 중 꽤 높은 계급을 이루고 있던 화신이었다.

     

   “배신자 새끼! 대부께서 너를 얼마나 아끼셨는지 잘 알면서…!”

   “아끼셨다라……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감에 어폐가 있군요. 소중히 대한다는 느낌보다는 아껴 쓰는 칼에 더 가까웠던지라.”

   “그분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지껄이지 마라. 너는 그분의 신뢰를 한 몸에 받던 화신이었다. 지금은 주인을 물어뜯은 짐승보다 못한 새끼지만 말이야.”

     

   그의 말에 엔리코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평소라면 이런 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오늘 낮에 있었던 한 성좌와의 만남으로 좀 피곤한 탓인 것 같았다.

     

   “오늘은 좀 지치는군요. 아 물론 당신이 와서 지쳤다는 건 아닙니다. 나름 과거에 동료였던 분이 안부 차 제 거처를 방문해주니 오히려 힘이 나는 걸요.”

   “……미친.”

   “너무 저를 미워하지는 마십시오. 이 평화로운 세상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만약 제가 일으킨 혁명이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평화란 말입니다.”

     

   그의 말에 남자가 코웃음을 치며 그를 올려봤다. 무릎을 꿇고 상대를 나무라는 자와 그를 내려다보며 경청하는 자.

     

   허나 남자의 눈에 엔리코는 그저 가식에 찌든 독재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순이군. 나는 지금 이 시기가 전례 없이 위태로운 순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만.”

   “왜 그렇습니까?”

   “성좌는 자신의 화신에게 배신당해 죽어 간다. 그를 따르던 화신들은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네놈들은 그런 위대한 자들의 목숨을 욕망에 빠져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거두어 간다.”

     

   실제로 수많은 싸움이 있었다. 성좌를 구하려는 자들과 현재를 지키려는 자들의 대립.

     

   “그것이 네가 말한 평화더냐?”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몇몇 수하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엔리코는 호흡을 짧게 가져가더니 가만히 말을 이었다.

     

   “그거 아십니까? 연금술사의 탑에 찾아온 모든 화신들이 당신과 비슷한 말을 했다는 거?”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지.”

   “과연 그럴까요?”

     

   이전에도 연금술사의 탑을 찾아온 화신들은 종종 있었다. 성좌의 봉인을 풀기 위해 습격을 감행한 화신들. 하지만 아직까지 성좌의 봉인을 푸는데 성공한 화신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껏 저는 성좌를 ‘극단적’으로 구하려는 자들과 대립했습니다. 대화가 통한다면 말로 최대한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중 많은 화신들이 저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요.”

     

   엔리코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듯 말을 멈추더니 가만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이 왜 저를 따르기로 선택했을까요?”

   “세뇌 당한 거겠지. 네놈의 특기이지 않은가?”

     

   성좌를 따랐었지만 결국 자신과 함께 등을 돌린 화신들. 감화되었다 말하자면 감화된 것이고 세뇌되었다 말한다면 세뇌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모두 스스로의 판단으로 엔리코를 따르기로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선 그는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 되는 위치에 올라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각자에게는 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엔리코를 믿고 그저 따르기로 한 자, 성좌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등을 돌린 자, 그리고 별생각 없이 살다가 남들 따라 선택을 당한 자 모두.

     

   “그들은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알고 있었죠. 그랬기에 성좌 따위가 없는 세상이 필요했습니다. 감히 인간의 일에 참견하는 자 하나 없이 오로지 우리의 힘으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엔리코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따르기로 한 사람들을 돌아봤다.

     

   마법사의 로브를 입은 자, 기사의 갑옷을 입은 자.

   농부의 일상복을 입고 예술가의 앞치마와 건축가의 바지를 입은 다양한 군상들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당신은 탑의 다음 층을 향해 내몰린 적이 있습니까?”

   “그게 무슨 헛소리냐. 화신의 숙명은 성좌의 뒤를 묵묵히 따르는 것. 그것이 지옥 불구덩이라도 보좌하는 것이 화신의 임무가 아니더냐.”

   “쯧.”

     

   엔리코의 머릿속에 잊고 싶었던 과거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6층에서 성좌가 되기 직전의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았다. 그의 두 번째 화신이 되어 한때는 검으로, 한때는 방패로 살아갔고 그것이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11층에서 그에게 감화되어 화신이 되었지요. 아니, 저와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그쯤에서 화신이 되었을 겁니다.”

     

   탑을 오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위험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탑을 오르며 수많은 화신들이 목숨을 잃었고 엔리코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성좌의 오른팔이었다.

     

   “처음 그를 따랐던 화신들은 힘에 대한 욕망 따위가 없는 남자를 따랐던 겁니다. 탑을 오르고자 하는 욕심이 없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화신을 희생해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머릿속 어디에도 없던 순수한 남자를 말이죠.”

     

   그의 성좌는 변했다. 10층을 돌파하는 순간까지만 했어도 별다른 문제없이 ‘따를 만한 주군’으로 그 위치를 지켜갔었다.

     

   하지만 11층에 다다르며 성좌의 위를 받게 되는 순간,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인지 탑을 오르는데 광적인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는 저와 같은 세상에서 화신이 되었던 모든 동료를 잃었습니다. 싸움이라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형제들까지 말이죠.”

   “성좌의 화신이 탑을 함께 오르며 사망하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세상이 그러한데 너는 왜……”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엔리코가 남자의 말을 끊었다.

    

   그들은 모두 11층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끝끝내 성좌와 함께 12층에 도달하는데 성공했지만 남은 것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린 ‘격’이라는 힘뿐이었다.

    

   “당신이 따르고자 했던 성좌와 제가 따랐던 성좌가 달랐던 겁니다. 당신은 당신의 성좌를 구하십시오. 저는 저의 대적을 풀어 줄 생각이 없으니.”

     

   말을 마친 엔리코가 헤라클레스에게 손짓하니 그를 붙잡고 있던 헤라클레스가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당신도 잠시만 쉬고 계십시오. 모든 것이 끝나는 그때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마력의 방출과 함께 서서히 잠이 드는 남자. 성좌에게서 뽑아낸 마력의 농도를 생각한다면 그는 성좌가 완전히 힘을 잃기 전까지는 일어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

     

   ‘나름대로 사연이 있긴 했군.’

     

   운이 좋았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 연금술사의 탑 전체에 비상 장치가 울리기에 한바탕 난리를 쳐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난리의 주범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밤손님이었다.

     

   지금 내가 몸을 숨긴 장소는 천장 구석에 장식된 등잔 아래.

   어두컴컴한 옷을 입고 기척을 완전히 죽인 덕분에 들키지 않고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음?’

     

   상황이 정리되자 엔리코의 옆으로 다가오는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

     

   마법사의 로브가 퍽이나 잘 어울리는 노인. 마력의 양으로 봐서는 헤라클레스의 연결과 관련된 일을 하는 꽤 고위급 마법사가 아닐까 싶었다.

     

   “괜찮소?”

   “예, 뭐…… 이젠 익숙해져야지요.”

   “쯧. 도대체 나는 저 광기 어린 집단을 왜 그렇게 옹호하는지 모르겠소. 탑을 올라서 좋을 것이 도대체 무엇이요?”

     

   노인의 말에 나는 봉인되었다는 성좌의 출신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이탈리아의 마피아 출신. 정확히 그들의 일이나 삶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여유롭고 윤택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면 범죄와 관련된 집단에 몸을 의탁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심리는 꿰뚫고 있지 않았을까?’

     

   그는 수많은 화신을 자신의 아래로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성좌를 따르게 된 사회적 약자들은 처음으로 힘이란 것을 얻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그들에게 감히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도파민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를 ‘도전하는 자’로 둔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약 같은 성장. 그들이 곧 성좌를 구하자는 자들의 입장일 터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조금 전의 대화에 따르자면 엔리코라는 화신은 그의 모든 동료를 11층에서 잃은 상태.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의 혈육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배신자’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저희가 머물기를 선택했듯 탑을 오르는 데에도 각자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나는 왜 저들이 당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지 도저히 모르겠소. 성좌의 목적에 때문에 친구를 잃고 모든 가족을 잃은 자에게 어찌 그런 말을……”

     

   노인의 말에 엔리코가 가만히 미소를 짓는다. 가족을 잃었다는 말. 그 말에 대해서 전혀 의구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이젠 어린애도 아닌데 누나가 보고 싶다고 질질 짤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미안하네. 내가 결례를 범했군.”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12층에 온 성좌에게 붙였던 패밀리어는 여전히 소식이 없……

     

   다른 화신들이 흩어지고 집회장에 남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하지만 지금 내가 거슬리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분명히 내가 엔리카의 집에서 헤라클레스랑 싸웠던 영상 기록을 봤다고 하지 않았었나?’

     

   자신의 누나의 생존 소식을 모를 리가 없는 그가 영문 모를 소리를 떠들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계속해서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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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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