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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177 – 내성작의 최후>

     

    억까(0.1%)에 억까(0.1%)가 겹치면 거다이맥스 만드라고라 이벤트로 아카데미 초가삼간이 박살난다는 사실은 이미 되짚었지.

    그런 억까가 몇 번이고 거듭 반복되면 더욱 굉장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아카데미 최후의 날.

     

    드래곤 교장이 아카데미에 환멸을 느끼는 순간.

    졸업이고 나발이고 아카데미가 개박살이 나버리는 엔딩이다.

     

    ‘아카데미에 단일성향 재학생만 모조리 모여서 따분할 정도의 평화가 찾아오거나 괴로울 정도로 이간질과 시기 질투가 빗발칠 때 찾아오는 미래!’

     

    쉽게 찾아오는 이벤트는 아니다.

    한 학년에 이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입학하니까.

    이벤트 발동에는 정말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재해이벤트로 아카데미 재학생이 팍팍 줄어들어야 한다.

    세계정세 불안정으로 신규입학생도 끊겨야 하고.

    선배들은 졸업하거나 고국으로 송환되는.

    전쟁세대에 주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벤트다.

     

    ‘시간이 지나면 평화의 시대에도 일어날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고인물인 내가 있으니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

    각 지역의 지역붕괴 이벤트를 하나도 막지 못해서 전세계가 개차반이 나는 사태가 아닌 이상에야 학생들이 잔뜩 아카데미를 이탈할 일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 억까가 정말 일어난다면?

    가뜩이나 줄어든 학생들이 하필 단일 성격으로 전부 세팅이 된다면?

     

    <재산축적>

     

    대외적으로 알려진 탐욕스러운 본능 외에 드래곤 교장이 지닌 또 다른 본능.

     

    <균형의 적>

     

    세계평화.

    단일질서.

    영구통일.

    절대불변.

    변치 않는 모든 것들에서 지루함이라는 이름의 독에 중독되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교장이 미쳐 날뛰게 된다.

     

    불균형. 혼돈.

     

    교장이 원하는 카오스한 아카데미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그는 지상의 유희에 싫증을 보인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카데미는 한 순간에 그의 재미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보상 없는 노동.

    가치 없는 낭비.

    의미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을 끝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아카데미는 하루아침에 폭삭 무너진다.

    교장은 아카데미를 때려치운다는 결론을 내리며 곱게 훌훌 떠나는 것도 아니고 제 거대한 몸통으로 들이받고 발로 부수고 브레스로 불태우기까지 한다.

    깡그리 개박살을 내고 폐허가 된 아카데미를 떠나버리는 잿더미 엔딩!

     

    “교장님!”

     

    “뭐냐 인간.”

     

    “저 신입생이 되고 싶어요!”

     

    아카데미에 남은 신입생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재빨리 그에 해당하지 않는 성격을 연기한다.

     

    “저는 착하고 따분하고 소심한 아이가 아니에요!”

     

    지금 이 학교에 남은 아이들은 돌아갈 고향도 사라지고 망연자실해서 막막한 마음에 아카데미에 눌러앉은 순둥순둥하고 착하고 의욕 없는 학생들.

    사악사악하고 나쁘고 의욕 넘치는 학생을 연기한다면 이 엽기엔딩은 전투난이도의 극악함과는 별개로 아주 간단히 물리칠 수 있다.

     

    “호오?”

     

    “물론 배만 볼록 튀어나온 비만도마뱀 따위가 절 가르칠 재주는 없겠지만요! 그래도 아카데미를 한 번 체험해보고 싶기는 해요!”

     

    “요것 봐라?”

     

    호기심을 보인 교장에게서 파괴욕구가 사라지며 아카데미의 악몽은 마침내 끝났다.

     

    [99번째 죽음 <아카데미 최후의 날>을 돌파했습니다.]

    [마지막 100번째 죽음]

    <몰살엔딩>

     

    세상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던 사상최악의 20년차 대학원생 루트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건… 무리야.”

    “저건… 오크노디의 스승?”

     

    과거의 나.

    2m 30cm시절의 거대하고도 우람한 체격을 지닌 근육 마초 상남자.

    그런 나를 무려 20년이나 아카데미에 묶어버린 미친 교수에게 시달리다 못해 이딴 세계는 부숴버리겠다며 세상 모든 생명체를 지워버리던 회차.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할 지옥.

    그 끔찍한 광경이 재생되는 세계 속에서 20년치 스펙업을 한 나를 상대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하다.

     

    4년만 해도 뽕을 뽑는데.

    20년이라니 저걸 어떻게 싸워서 이겨.

     

    감정적으로도 공감이 간다.

    20년은 진짜 선 넘었지.

    어떻게 박사학위도 안 주고 20년을 노예처럼 부려먹을 생각을 다 해?

    제국진영 교수들을 괜히 싫어하는 게 아니다.

    아주 순 쓰레기들!

     

    “오크노디. 죽음으로 ‘리셋’해라. 더 늦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저것이 다가오기 전에…!”

     

    다급한 디스트로이어의 외침.

    소리치는 그의 뒤로 막대한 에너지가 날아든다.

     

    <크로이트의 사령역장 G형>

     

    사다코 교수가 반사적으로 펼친 마법역장이 산산조각 나며 두 사람이 동시에 튕겨나갔다.

    바닥을 구르며 자세를 고치는 디스트로이어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는 사다코 교수.

    일격에 교수 클래스 두 명을 초긴장 상태로 만든 대학원생 회차의 내가 교수들을 향한 무한한 분노와 증오를 불태우며 다가온다.

     

    “잠깐만!”

    “죽어라.”

    “졸업시켜줄게!”

     

    손가락 너머로 뿜어져 나왔던 <원초적인 파멸> 주문이 경로를 바꾸어 좌우를 스쳐지나가 저 멀리 산맥을 세 토막으로 나누었다.

    기믹을 안다면 이처럼 간단하게 막을 수 있지만 모른다면 절대로 막을 수 없는 20년차 대학원생 루트의 플레이어 공략!

     

    “졸…업?”

    “여길 봐. 예전에 제국파 교수들한테 쫓겨났던 변방출신 교수님들을 다시 모셔왔어!”

    “사다코 교수… 디스트로이어 교수…?”

     

    자동번역 된다는 설정의 이세계 언어가 아닌 원래의 고향 한국의 한글을 쓰는 우리 둘.

    과연 또 다른 나답게 20년차 대학원생 루트의 나는 사태의 이상성을 눈치 챘다.

     

    “요즘 제일 핫한 코인은?”

    “해남파 코인!”

    “숨기 경험치가 1000을 넘기면 나타나는 기능은?”

    “절대은신!”

    “역시. 넌 NPC가 아니군. 나올 리가 없는 NPC가 나왔으니 이건 정상적인 상황도 아니고. 혹시 너는 내 무의식의 소환체이고 여긴 환영 속인가?”

    “반대로야! 네가 내 무의식의 소환체고 여긴 내 악몽 속이래!”

    “거짓말 치지 마라. 그럼 근육마초떡대남캐 외길만 고집해온 딜뽕에 미친 내가 허리춤에나 겨우 머리가 닿는 여캐를 했다는 뜻이 아닌가!”

     

    과연 고인물답게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을 빠르게 짚어내는 무의식의 나!

     

    “아니야. 거꾸로 생각해봐. 내가 진짜라면 무의식적으로 근육마초떡대남캐를 소환한 거지만 네가 진짜라면 무의식적으로 단신미소녀여캐를 소환한 거야!”

    “그건 에바지.”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로 수긍한 또 다른 나!

    그에게서 투지가 사라졌다.

     

    “오크노디. 저 괴물과 말이 통해…?”

    “그건 대체 어느 나라의 언어냐. 전 세계를 돌아다녔던 전직용사파티의 일원이었던 이 나조차도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다니.”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교수님들에게는 또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고 있자니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애쓸 필요 없다며 당당하게 나서서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저 생김새. 투쟁의 악몽에서 본 오크노디 네 스승이 틀림없군.”

    “에엑. 저 그런 저주도 걸려있었어요!?”

    “지금은 괜찮다. 그보다 네 스승에 대해서다. 저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의 소유자는 대체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지?”

     

    당장이야 싸울 마음이 사라졌지만 혹시나 갑자기 해남파 코인이 떡락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쳐 날뛸지도 모르는 상황.

    여기서는 안정빵으로 확실하게 또 다른 나를 쫓아낼 방도를 실행해야 했다.

     

    “간단해요!”

     

    마왕이나 드래곤보다 두려운 힘의 소유자.

    세계멸망이 인간의 몸을 빌려 강림한다면 이럴까 싶은 인세의 종말.

    모든 참극의 경험자이자 재현 가능한 자.

    최강의 스펙을 지닌 또 다른 나.

    그리고 20년차 대학원생.

     

    “졸업증서를 써주세요!”

     

    그를 격퇴할 부탁을 꺼냈다.

     

    “…오크노디의 스승은 아카데미 졸업증서를 얻으면 물러난다고? 도대체 왜…?”

     

    언제나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져 속을 알아보기 힘든 사다코 교수님이야 그렇다 쳐도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은 당연히 혼란에 빠졌다.

     

    “정말 그런거면 된다고?”

    “네!”

     

    밑져야 본전이라고 졸업증서를 건네준 디스트로이어 교수님.

    증서를 쥔 230cm의 내가 성불하는 유령처럼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너는 대학원생 같은 거 하지 마라…”

     

    세상 소중한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졸업증서를 품에 꼭 쥔 내가 하늘로 떠오르며 끝나지 않던 악몽도 비로소 끝을 맞이하였다.

     

     

    * *

     

     

    [사망체험의 상급저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극악한 현실성으로 재구성된 저주에서 탈출한 결과, 보상등급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관찰 경험치+100]

    [행동예측 경험치+100]

    [훔치기 경험치+80]

    [설득 경험치+65]

    [잠입 경험치+44]

    [착한아이 경험치+30]

     

    [고난이도 악몽에서 생환하였습니다.]

    [칭호 <악몽의 산증인>을 습득합니다.]

     

    [종말의 순간으로부터 살아남았습니다.]

    [칭호 <묵시록의 경험자>를 습득합니다.]

     

    [마력폭주 및 마력재해, 세계멸망을 유발하는 파국으로 치달은 생명체들을 올바른 해결책 및 타협안을 찾아내어 구해내었습니다.]

    [칭호 <구원의 인도자>를 습득합니다.]

     

    [도전과제 <이딴 게 상급저주> 달성보상으로 10만 포인트를 지급받습니다.]

    [도전과제 <꿈에서 다른 회차의 자신과 만나기> 달성보상으로 20만 포인트를 지급받습니다.]

    [도전과제 <어떻게 깨셨어요> 달성보상으로 30만 포인트를 지급받습니다.]

     

    *악몽의 산증인* : 사람이 개미처럼 죽어나가는 악몽에서 무사히 생환했습니다.

    -칭호장착효과 : 공포저항 보정치 100 증가

    -칭호보유효과 : 공포저항 보정치 10 증가

     

    *묵시록의 경험자* :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에서 종말이 일어나는 순간을 다수 목도했습니다.

    -칭호장착효과 : 세계단위의 영역에 완전저항

    -칭호보유효과 : 세계단위의 영역에 부분저항

     

    *구원의 인도자* :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를 수차례 구해낸 결과, 당신은 세계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칭호장착효과 : 가호 <무한한 존경심> 활성화

    -칭호보유효과 : 세상만물의 기본호감도 10 증가

     

    *무한의 존경심(가호)* : 가호를 활성화하면 세상만물이 당신에게 존경심을 표현한다.

     

    대박이 터졌다.

    60만 포인트 습득.

    기능 경험치 종합상승수치 600.

     

    “히으으.”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억까에 망한 회차는 숨만 쉬어도 우울하지만 억빠의 축복을 받은 회차는 숨만 쉬어도 행복한 것처럼 금수저를 물어버린 기분!

    노력하지 않고도 날로 먹은 것처럼 행복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고인물에게 이 정도는 딱히 노력한 것도 아니지!

    하지만 인생 1회차 NPC 뉴비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걸까.

     

    “오크노디!”

    “윽. 이사벨?”

     

    침대 곁에서 와락 고개를 안는 이사벨.

    포옹은 좋지만 품에 당기는 팔의 힘이 너무 강하다.

    마치 손을 떼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풍선줄을 손에 쥐는 것처럼 필사적인 태도.

     

    “저 숨 막혀요.”

    “죽는 줄 알았잖아. 대체 어쩌다 이런 위험한 저주에 걸린 거야?”

    “그래, 쥐방울아. 뭘 하다가 교수가 셋이나 오게 만든 거냐?”

     

    남자이기도 하고 이사벨이 안고 있는 통에 함께 안을 수 없게 된 손오천은 옆에서 타박을 했다.

    내성작 하려고 담아온 저주가 잭팟이 터져서 조금 길어졌어요.

    같은 소리를 하면 당장 날 끌어안은 이사벨부터 뒤지게 등짝스매시를 날리겠지?

     

    “몰?루.”

     

    시치미 뚝 떼고 그리 말하며 이불 안을 열심히 손으로 뒤적거렸다.

    …어라.

    이쯤에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가 아닌가?

    아무리 침대를 훑어도 저주보관장치가 손에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여긴 악몽 속이 아니야.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땅이 꺼지거나 갑자기 악몽 속으로 변하고 그러지는 않아.”

     

    딱히 불안해서 그런 게 아닌데.

    딱하게 보는 시선에 눈치를 보고 있는데 손오천의 반대편으로 침대조명 옆에 우두커니 서있던 장발의 사다코 교수님이 보였다.

    긴 머리카락 너머로 뚫어져라 이쪽을 쳐다보는 사다코 교수님의 손에는 저주보관 장치가 들려있었다.

     

    ‘들켰구나!’

     

    내성작 시도, 개같이 발각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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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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