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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현재 ‘마력 회복의 가락’을 적용 중입니다.]

       

        [마력 회복량 증가(+400%)]

       

        “저희 조금만 쉬면 안 돼요…?”

        “안 돼.”

        “아하, 하하하, 아하하하…….”

       

        메릴다는 실실 웃으며 통기타를 연주했다. 노동의 기쁨을 안 건지, 눈에선 짠물이 다 흐르고 있었다.

       

        저대로 가면 애가 폐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나는 작업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태눈처럼 퀭한 메릴다의 눈동자가 내 신형을 쫓아 움직였다.

       

        “그래, 쉬자.”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메릴다는 괴성을 내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어떡해. 메릴다가 미쳐버렸어.”

        “손이 정말 아픈가 봐!”

        “솔직히 좀 심하긴 했지.”

       

        우리 셋은 기지개를 하며 몸에 묻은 노곤함을 털어냈다.

       

        로테와 프레이가 탄산수로 목을 축이는 동안, 나는 기분 전환 겸 양장본을 허공에 띄운 채로 열람했다.

       

        [최상급 지계마도 ─ 자유연성]

       

        [해당 마도의 성취 여부는 숙련도로 표현됩니다.]

       

        [숙련도 : 21%]

       

        얼마나 연성을 해댔으면 21퍼센트나 되었을까.

       

        하도 마력수를 빨아댔더니 입에서 시큼한 맛이 났다. 레몬이나 오렌지처럼 상큼한 맛은 아니고, 식초에 가까운 불쾌한 맛이었다.

       

        어쨌든.

       

        헬륨 원자핵을 가속할 싱크로트론은 거의 다 완성됐다. 이제 남은 건 중성자를 응축하여 뇌관에 끼워 넣는 것뿐이다.

       

        “프레이, 다 만들었어?”

        “저 친구 덕분에 일찍 끝냈어.”

        “그럼 오늘 작업으로 끝이네.”

       

        어떻게든 예술제 전날까지 기간을 맞출 수 있었다. 메릴다가 없었더라면 오늘 밤을 꼴딱 새워야 했을 것이다.

       

        나중에 감사라도 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콰앙, 쿵!

       

        “야, 너희 우리 메릴다에게 무슨 짓 했어!”

       

        에리카가 부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

       

        “무슨 짓 했냐니까?!”

       

        목소리에는 노기가 묻어있었다.

       

        로테와 프레이는 눈치를 보느라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입을 열었다.

       

        “24시간 풀코스 통기타 연주.”

        “뭐?”

        “잘못 말했다. 밥 먹는 시간 제외하고 36시간 통기타 연주.”

       

        그녀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에리카는 짝 소리 나게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입에서 웃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해괴망측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숨을 고르더니, 소리를 빽 내질렀다.

       

        “사, 삼십 육시간 통기타 연주? 너희 단체로 미쳤어…? 쉬지도 않고 쟤한테 연주시킨 거야? 마법 버프 좀 받겠다고?”

       

        에리카가 가슴팍을 세차게 두들겼다. 그녀의 흉부에는 훌륭한 완충제가 있었기 때문에, 둔탁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내가 진짜 못 살아!”

        “친구를 버리고 튄 엘프에게 꾸중 듣고 싶지는 않은데.”

        “조, 조용히 해!”

       

        에리카는 다시 뛰쳐나가더니, 곧 메릴다를 데려왔다. 메릴다는 오른손을 덜덜 떨면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얘 어떡할 거야?”

        “뭘 어떻게 해.”

       

        요구한 바를 착실히 따라줬으니 그에 맞는 보상을 내려줄 생각이다.

       

        사락.

       

        내 손에서 허공을 부유하던 양장본이 내려앉았다.

       

        “수고했으니까 알려줄게. 내가 마력초 없이도 마법 쓸 수 있는 이유를.”

        “저, 정말로요?”

       

        그 말 한마디에 메릴다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관심을 보인 건 메릴다 뿐만이 아니었다. 에리카는 물론이고, 로테나 프레이까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내 손에 들린 양장본에 집중했다.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뭔데요?”

        “이거, 그렇게 중요한 거야?”

       

        갑자기 뭐냐는 듯, 메릴다의 미간이 한데 모였다.

       

        “아니, 생각해 봐. 너희 다 마법 쓸 줄 알잖아. 내가 마법 쓰든 못 쓰든 딱히 궁금할 이유 없지 않냐고.”

       

        제아무리 일리야드에 금안족 친구인가 하는 녀석이 있다고는 하지만, 에리카나 메릴다가 알 바는 아니었다.

       

        자기들은 마법을 쓸 줄 아는 데다가, 정령마도까지 잘 다루는 입장이다. 구태여 나나 그 금안족 친구를 도와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구요.”

        “뭐?”

       

        한참이나 입술을 우물거리던 메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불쌍하다구요.”

        “뭐가.”

        “그 친구가 도저히 불쌍해서 못 봐주겠다구요!”

       

        메릴다는 퉁퉁 부은 손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틸레트에 있어서 잘 모를 거예요. 아직도 하이엘프 사이에서는 금안족 차별이 심각해요.”

        “그래?”

        “저번에 제롯이 한 말 못 들었어요? 당신보고 장애가 있다고 말했잖아요. 일리야드에서 마법을 못 쓴다는 건 딱 그 정도 인식이에요!”

       

        요약하자면, 두 사람은 평범한 우드엘프로서 일부 하이엘프의 망나니짓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남 일에 참견하는 꼬라지 하고는.”

       

        이런 호구새끼들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나는 두 엘프에게 양장본을 보여주며 화제를 전환했다.

       

        “이 녀석은 내가 몰래 들고 다니는 마도구인데, 조금이나마 마력을 담을 수 있어.”

        “세상에. 그런 마도구가 있어요?”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든가.”

       

        두 엘프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왔다. 에리카와 메릴다는 동시에 내 책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리고.

       

        [경고]

       

        [허가되지 않은 사용자는 접촉 및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파직! 섬전이 튀며 두 엘프가 순식간에 손을 뗐다.

       

        “꺄악!”

        “으윽! 이게 뭐야!”

       

        두 엘프는 물론이고, 로테와 프레이까지 놀란 눈치였다.

       

        “아, 맞다. 이거 나 말고는 못 들지.”

        “뭐예요. 에고가 있는 책이었어요?”

        “그런가 봐.”

        “자아가 있다면 정령과 대화가 가능할 거야.”

       

        메릴다와 에리카는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발자국 떨어져서 정령을 꺼냈다.

       

        소리를 다스리는 점잖은 정령과, 명랑한 목소리를 지닌 꼬마 정령이 하나씩 나타났다. 

       

        [……이건.]

        [어라어라어라?]

       

        두 중급 정령은 고개를 까딱이며 침묵을 유지했다. 정령들의 이런 태도가 처음이었는지, 에리카와 메릴다는 당황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어라? 이상하네요….”

        “얘네가 왜 이러지?”

       

        긴장감이 돌았다.

       

        설마, 정체를 들킨 건가?

       

        양장본 또한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부실에는 팽팽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꿀꺽. 누군가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나, 나는 다시 돌아갈래.]

        [에리카, 미안해! 나 잠깐만 숨어 있을 테니까!]

       

        아, 사라졌다.

       

        두 사람의 동공이 황망함으로 젖어들었다.

       

        에리카와 메릴다 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하여 부실에 있는 모두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하다…. 얘네가 이랬던 적이 없는데…….”

       

        내가 마수라는 걸 눈치챈 건 아닌 모양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녀석 괴물이에요!’라고 주인에게 귀띔이라도 줬겠지. 두 엘프의 표정을 읽건대, 그런 대화가 오가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 둘은, 그냥 숨거나 도망쳐버린 것이다. 

       

        계약자의 말을 거역하면서까지.

       

        보다 못한 내가 양장본에게 물었다.

       

        ‘너 뭔가 했냐?’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했지만 양장본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뒤로 나는 궁금증이 해결된 두 엘프를 부실 밖으로 내보냈고, 남은 친구들과 함께 싱크로트론을 완성했다.

       

        대답은 그 무렵에 돌아왔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

       

       

        시간이 흘러, 예술제가 시작되었다.

       

        ‘예술제’라고는 하나, 틸레트 아카데미에서는 가을에 열리는 무수한 축제 중 한 부분에 불과하다.

       

        틸레트에서 열리는 축제 자체를 ‘대동제’라고 부른다. 어느 대학 축제를 그리 부르듯이 말이다.

       

        대동제에는 예술제를 포함하여 발명대회나 소논문 경진대회, 포스터 대회나 스크롤 발표 대회 등이 열린다. 제국 최고의 명문 아카데미답게 축제의 규모도, 대회에 걸린 상금의 액수도 어마어마하다.

       

        예술제는 대동제의 처음을 장식하는 중요한 행사다. 당연히 우승 상금의 액수도 상당하고, 매년 참가자들은 모르는 특별한 부상까지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심사관들께서 입장하십니다!”

       

        대동제 개막식과 함께 마차에서 세 사람이 내렸다. 모두 다 고급스러운 플록 코트를 껴입은 중년이었다.

       

        우리는 노천극장에서 열심히 박수를 쳐댔다. 중간고사 기간이 코앞인데 축제라니,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다.

       

        “앗, 나 저 사람 알아!”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로테였다. 

       

        “크로우펠츠 문화원 이사장님이셔. 예술계에서 엄청 권위 있으신 분이라 하더라고.”

       

        그렇군. 저 사람이 예술제 심사를 맡게 되는 건가.

       

        사실, 예술제에서 상을 못 타더라도 상관은 없다. 목적은 차후 연구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굳이 예술제로 얻은 상금이 아니더라도 자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으니까.

       

        뭣하면 발명대회나 소논문 경진대회에 다시 출품해도 된다. 그때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일단은 던져본다는 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근데 저 사람이 작년에도 심사하신 건가?”

        “그럴걸?”

        “우승 작품으로 변기 꼽는 건 좀 그랬다, 야.”

       

        어떻게 그런 거에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지? 가능하면 그 작품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레이디, 제 작품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목덜미 뒤로 나른하고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보니 목소리 이상으로 느끼하게 생긴 남자가 머리를 빗질하고 있었다.

       

        “이런, 로브를 보아하니 이번에 입학하신 분들인가 보군요. 레이디들에게 저번 우승작을 꼭 보여드리고 싶긴 한데…. 안타깝게도 제 작품은 지금 무대 뒤편에서 열심히 제 역할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뭔가 이상한 사람 같다.

       

        “아아, 이것조차도 예술이로군요! 그야말로 신께서 점지하신 미(美)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마치 두 레이디의 조각 같은 얼굴처럼 말이죠!”

       

        정정한다.

       

        뭔가 병신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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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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