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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아무튼, 어떻게든 물에 나중에 들어가려는 나의 발버둥은 그런대로 잘 먹혀들었다.

        

       해안가에 와서 마냥 놀기만 할 게 아니니까. 이것저것 먹기도 하고, 같이 뛰어다니기도 하고, 뜨거운 햇살을 피부로 한참 받아들인 뒤 물에 들어가서 식힌다.

        

       누가 제일 먼저 들어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물속에 있었을 뿐.

        

       그러고 보니 바다에 놀러 와본 게 얼마 만이지.

        

       몇 년은 고사하고, 거의 전생에나 와본 곳이 바다였다. 황궁에 있을 때는 이런 곳에 올 생각 자체를 잘하지 못했었다.

        

       매번 앨리스를 보고 너무 많이 긴장하고 있다고 하는 주제에, 정작 나도 한껏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놀이하면서 무표정을 제대로 유지했는지 모르겠다. 클레어랑 앨리스는 엄청 즐거워 보였는데.

        

       굳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았기에 우리는 굳이 수영할 필요는 없었다. 클레어 나름대로 배려하기라도 한 걸까?

        

       “크로우필드 영애.”

        

       물론, 물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듯 완고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굽!?”

        

       아, 딱히 완고한 표정은 아니었다.

        

       입안에 과일을 한가득 넣고 씹고 있던 미아 크로우필드는 내가 말을 걸자 체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금 미안하네.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일부러 이런 모래만 모아두기라도 한 듯 백사장의 모래는 몹시 고왔다. 날카로운 돌 같은 것이 섞여 있지도 않았고.

        

       미아 크로우필드 옆쪽에는 아이들이 벗어둔 슬리퍼가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었다. 처음 물에 들어갈 때만 해도 다들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어느새 다들 맨발이 되어있었다.

        

       “아, 네, 네.”

        

       어떻게든 입 안의 과일을 씹어 삼킨 뒤 미아 크로우필드가 대답했다.

        

       나는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옆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돗자리 정도는 펴 두었다. 파라솔도 있었고. 다만, 모래 알갱이가 너무 가늘어서 그런지, 바람에 날리기라도 한 듯 돗자리 위를 서서히 침범하고 있었다.

        

       미아 크로우필드가 접시를 손에 들고 있는 이유는, 아마 과일에 모래가 묻을까 걱정되어서가 아닐까.

        

       딱히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아 크로우필드의 다리 쪽에도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안에 들어갈 생각은 없으십니까?”

        

       기껏 수영복까지 입었는데.

        

       내가 자리에 앉자 내 몸에서 흐른 물이 모래사장 위에 펼쳐진 돗자리 위를 흘러서 작게 고였다. 아주 조금 떠올랐던 모래는 금세 가라앉았다.

        

       “아…… 그게.”

        

       미아 크로우필드는 잠깐 고민했다.

        

       “아직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요…… 조금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지.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 꽤 있으니까. 바다에 와서 물에 들어가지는 않고 그냥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

        

       “그렇습니까.”

        

       나는 그저 그렇게 짧게 대답했다.

        

       “…….”

        

       “…….”

        

       우리 둘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왜 여기 앉았을까?

        

       그 어색함을 곱씹으면서 나는 몇 초 전의 나를 탓했다.

        

       아니, 돗자리는 크잖아. 여기 말고도 앉을 곳이 많은데 굳이 미아 크로우필드 옆자리에 딱 앉은 걸까?

        

       물론 여기가 파라솔 그늘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어색하다고 해서 괜히 먼 자리에 앉으면 그건 그거대로 더 어색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연회 때는 그 분위기를 타고 슬쩍 말을 걸었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은 딱히 그럴 이유까지는 없었다.

        

       괜히 친한 척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

        

       하지만 미아 크로우필드는 다행히 나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을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째서 저를 이렇게 챙겨주시는 건가요?”

        

       챙겨—

        

       아니, 딱히 챙긴 건 아닌데.

        

       ……아닌가? 나도 모르게 자꾸 이쪽으로 오는 걸 보면 챙겨주는 것 맞나?

        

       미아 크로우필드는 우리가 아니면 딱히 대화하는 사람이 없었다. 얼굴은 예쁘지만, 아무래도 황실과 별로 좋지 않게 엮인 데다가, 안 좋은 소문도 돌았고.

        

       게다가 생각해보면 크로우필드 영지는 원래 벨부르 영토였다. 벨부르와 인접한 국경지대 중에서 가장 큰 영지인 크로우필드 영지에는 벨부르계 사람들도 꽤 있었고.

        

       그렇다고 크로우필드 가가 벨부르 혈통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꽤 곤란한 이야기가 마구 뒤섞여서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것은 맞았다. 아마 별생각 없이 미아 크로우필드를 초청할 수 있는 사람은 학생회장 같은 공작가 사람뿐이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다가가기 힘들게 하는 이유 중에는 미아 크로우필드 본인의 분위기도 있었다.

        

       언제나 앞머리로 얼굴을 슬쩍 가리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학기 초에는 대놓고 나를 적대하기도 했고.

        

       하긴, 그런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으니 성격이 마냥 밝게 되지는 못하겠지. 복수를 거의 주입식 교육처럼 받았으니까.

        

       “혹시, 이전에 얽힌 이야기 때문에 그러신가요?”

        

       그렇게 물어보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꺼내기 싫은 이야기일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사실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될 짓들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백작을 죽인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은 아이가…… 그렇게 되었을 테니까. 게다가 나도 그 비슷한 꼴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그렇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은 아이가 불쌍한 것은 불쌍한 거다.

        

       만약 내가 원작에서 이 아이를 보지 못했고, 그저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다면 그저 막연하게 적대적인 감정만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했던 일을 인정하고,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노력하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저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거겠지.

        

       “종종, 생각을 하긴 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어머니가 그렇게 날카로워지지 않으셨을지 모르고,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르잖아요.”

        

       “…….”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아이들도, 계속 그렇게 죽어 나갔겠죠.”

        

       “다른 방법이 있었기를 바랍니까?”

        

       “……잘 모르겠어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초점 없는 눈으로 앞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방학 내내 방에 틀어박힌 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면……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저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말없이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 평범한 삶이, 끝까지 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마약을 하시고, 그 아이들과……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보셨을까요? 그저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보았을까요? 정말 조금의 질투도 느끼지 않았을까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하셨다지만, 그런 짓을 하는 남편을 참아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

        

       “어쩌면, 지금 죽은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완성되었을지도 몰라요. 그저 복수심에 몸을 맡기고, 다른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고 가셨는지도요.”

        

       “그런 분위기를 느꼈습니까?”

        

       “어머니와 독대할 때면, 어머니는 언제나 복수 이야기를 하시니까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계속 말했다.

        

       “예전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상했어요. 왜 엄마는 나와 대화할 때는 그런 이야기만 하는 걸까? 어째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 걸까.”

        

       미아 크로우필드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서 쟁반이 떨어질 것 같아, 나는 얼른 그 쟁반을 잡아주었다. “감사합니다,”하고 작게 중얼거린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시도해봤어요. 엄마랑 단둘이 이야기하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는데.”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그래서 알았어요. 아, 나는 지금까지 괜찮지 않은 곳에서 살아왔구나 하고.”

        

       “…….”

        

       어, 음.

        

       아니 뭐,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마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더니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제가 아버지를 죽인 것을 원망합니까?”

        

       “…….”

        

       미아 크로우필드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황녀님은, 아버지를 살려두실 생각이 있으셨나요?”

        

       “…….”

        

       없었지.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라면 그냥 임무 거부하고 도망갈 생각이었지만, 몇 번이고 찾아본 증거는 끔찍한 것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저 평행선이겠습니다.”

        

       “그럴 거 같아요.”

        

       생각에 빠졌던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미아 크로우필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 왜 그랬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네.”

        

       미아 크로우필드는 가만히 앞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해야 할 일도 찾았고요. 복수 말고, 새로운 일.”

        

       “그 일이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잘 되어야겠죠.”

        

       나는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과일 쟁반을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제야 자기가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깨달은 듯,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이 붉어졌다.

        

       왠지, 지금부터는 이름만으로 불러도 될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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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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