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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기사들과 병사들이 어디 한 군데 부러진 채로 사방에 널브러진 저택. 검은 제복을 입은 자들이 저승사자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중심에는 겁에 질린 영주가 있었다.

       

       『둥지 입구 폐쇄 작전』의 연장선, 말살대는 엘메스트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에게 영지 내 이상징후와 서큐버스 발생 여부를 물었고, 공격받았으며, 이겼다.

       

       불리한 처지가 된 영주는 관련 혐의점에 대해서 일체 부인하고, 말살대의 영지 전수조사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2황자의 명령서를 내밀어도 위조의 가능성이 있다며, 그가 찾아와서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면 믿지 않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생떼를 쓰고 있다.

       

       영주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좌우로 각 잡힌 채 도열한 말살대원들에게서 심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나 완강하다면, 서큐버스들과 한 패일 가능성이 높다. 말살대를 공격한 시점에서 9할 정도는 확신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상대는 귀족이고, 말살대에게 부여된 권한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이 이상의 압박은 문제가 발생한다.

       

       세리스가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합니까⋯⋯ 선배님?”

       

       “돌발적인 단독 행동이 필요하겠군요. 지원자 있습니까?”

       

       유리 랜스터의 그 말에, 말살대원 몇몇이 거수했다. 그중에는 소년에게 조언을 남겼던 애꾸 노인도 있었다.

       

       그를 지목하고 말했다.

       

       “래트. 은퇴할 준비는 되었습니까?”

       

       “그래, 이미 다 이뤘으니 슬슬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소일거리로 후배들 뒷바라지 해주는 것도 질렸어. 떠날 때가 됐지.”

       

       애꾸 노인은 단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흉악한 연쇄살인범에 의해 가족을 잃었고, 약 10년 전에 범인을 죽여 복수에 성공했다. 숙원을 이룬 그에게 남은 건, 가족이 없는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아주 길고 무거운 시간뿐이었다.

       

       새로이 관계를 쌓고 행복을 손에 쥘 에너지도 없다. 다 타버리고 남은 잿더미에는 불이 붙지 않는다. 애꾸 노인은 지쳤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스러운 시간에도 마지막은 있는 법. 이제 끝낼 때가 온 모양이다. 그는 엘메스트 영주에게 다가가며 후배에게 조언을 남겼다.

       

       “분홍 머리 랜스터.”

       

       “예, 래트.”

       

       “너는⋯⋯ 한 번 말살대를 나갔었지. 놀라운 일이었어. 우리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게 굴던 년이, 여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기쁨을 느꼈다.”

       

       그들에게 있어서 희망을 암시하는 일이기도 했다.

       

       가장 사납게 날뛰던 유리 랜스터가⋯⋯ 평온과 행복이 가득한 빛의 길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말살대의 다른 모두가 그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복수를 위해 자신조차 내버린 인간군상들에도,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버렸던 자신을 주워 담을 수 있노라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노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는 여기로 돌아왔지. 왜 돌아왔나?”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돌아오지 말지 그랬나. 네 얼굴을 다시 보니 살기가 싫군.”

       

       “미안하다고는 않겠습니다. 전원, 뒤로 돌아.”

       

       척.

       

       검은 제복을 입은 자들이 일제히 돌아선다. 그러자, 그들 무리는 두터운 검은 커튼처럼 보였다. 

       

       애꾸 노인은 커튼의 너머에서 ‘돌발적인 단독 행동’을 시작했다.

       

       “뭐, 뭘 하려는 거냐⋯⋯?!”

       

       “아는 모든 것을 내뱉고,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그렇게 가벼워지기 전에는 이승을 떠나지 못할 거다. 손가락부터 시작하지.”

       

       “귀, 귀족을 건드리려는 거냐! 마, 막아! 이 자식을 막아! 이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비명이 울렸다.

       

       말살대원들이 무방비하게 휴식을 취하는 사이, 그들이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전 말살대원이었던 애꾸 노인은 엘메스트 영주를 끔찍하게 살해했다.

       

       말살대가 범행 현장을 발견했을 때는 사방이 피 칠갑인 채였다.

       

       “왜 그러셨습니까?”

       

       “귀족 놈들이 그렇게 싫더군.”

       

       그는 낄낄대고 웃었다.

       

       애꾸 노인은 귀족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시인, 자수했다. 말살대는 그를 체포하고 임시 구류 조치했다.

       

       엘메스트 영주가 흑마법사 세력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이걸로 명분이 충분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황실의 권위를 조금이나마 억누르기 위해 귀족들이 입을 모아서 성토할 수도 있다.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칼을 댄 것은 귀족에 대한 모독이라며 분개할 수도 있다.

       

       그렇게 혹시 모를 책임 소재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을 때, 애꾸 노인은 목매달려 죽을 것이다. 그는 평온 속에서 눈을 감으리라.

       

       말살대식 꼬리 자르기였다.

       

       ===============================================================

       

       수단과 방법을 고르지 않으니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영주를 고문해 정보를 뽑아낸 결과, 『둥지』 입구는 엘메스트 여신교 교단 건물 지하에 있음을 알아냈다. 말살대는 딜레이 없이 들이쳤다.

       

       예배를 보고 있던 수녀들과 영지민들을 밀치며 들어가, 당황한 얼굴로 손을 휘젓는 신부를 우선 제압한다.

       

       “여,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여신께서 보고 계시는, 억!”

       

       “1조가 심문하십시오. 2조는 나와 함께 돌파합니다.”

       

       “예!”

       

       터엉. 유리 랜스터는 발을 굴렀다. 신체의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려, 진동이 공간을 만나 울리는 것을 느낀다. 여신상의 아래다.

       

       분명 근처에 비밀 장치가 있으리라. 촛대라든가를 지정한 방향으로 돌리면 지하 통로가 드러나겠지. 하지만 보다 간편한 방법이 있다.

       

       “폭파 준비.”

       

       “폭파 준비!”

       

       몇몇 말살대원이 품 안에 붙이고 있었던 자폭용 스크롤을 떼어, 여신상에 붙였다. 우상을 부수는 데에 망설임은 없다.

       

       갑자기 들이닥친 검은 제복인들에게 어안이 벙벙하던 영지민들도, 그즈음에서는 강렬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카운트를 센 후, 스크롤을 작동시킨다.

       

       콰광-!!

       

       여신의 자애로운 얼굴이 수십 조각으로 깨어져 비산한다. 몇몇 유약한 수녀는 아찔할 정도의 신성모독에 혼절까지 해버렸다.

       

       유리 랜스터는 여신상의 남은 부분을 걷어차고 발을 굴러, 으직, 하고 지하 통로를 드러냈다. 그녀는 코끝을 스치는 꿉꿉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내려간다.

       

       횃불 하나 없는 어두운 계단을 예민한 오감에 의존해서 걷는다. 흑마법사, 그리고 서큐버스의 중요 시설이다. 마법사가 준비된 공간에서 얼마나 강해지는지는 잘 알고 있다.

       

       미친 마법사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그의 연구실에서는 신에 가까운 전능을 뽐내지 않았던가. 유리 랜스터는 아직도 그 생생하던 가상 세계를 기억하고 있었다.

       

       미숙한 시절에도 완숙한 우화의 경지에 이른 일레인 크라운을 속였다. 만약 그에게 악의가 있었더라면, 감히 저항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는 분명 수십 개가 넘는 함정이 있을 테고, 아찔할 정도의 위험이 있을 터다.

       

       벽돌로 지어진 긴긴 통로가 나왔다.

       

       “선배님, 아티팩트 반응이 있습니다. 저희 장비로는 해제할 수 없는 고도의 함정입니다.”

       

       “그렇습니까.”

       

       유리 랜스터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반쯤 으깨졌던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전신에 붕대를 둘둘 감은 채로, 각인된 공포에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네가 삶으로 도망치는 겁쟁이를 증오한다면, 이제는 스스로가 겁쟁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때다.

       

       “⋯⋯⋯⋯.”

       

       소년은 숨을 헐떡였다. 함정이 감지된 통로를,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는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다.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린다. 등골이 서늘한 공포가 치고 올라온다. 망설이는 소년에게, 유리 랜스터는 조용히 물었다.

       

       “용기가 나지 않습니까?”

       

       “⋯⋯나, 나는, 저는⋯⋯.”

       

       그 모습을 본 세리스가 격분했다. 입으로는 그렇게 떠들던 주제에, 이제 와서 자기 목숨이 아까워졌다는 걸까? 그녀는 독하게 쏘아붙였다.

       

       “이제 와서 망설이는 꼴이라니, 한심하기 그지없어. 선배님에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대들던 주제에⋯⋯ 선배님, 제가 던져 넣을까요?”

       

       유리 랜스터는 손을 들어 올려 세리스를 막았다. 그리고 무심하게 말했다.

       

       “제복을 벗고 올라가도 좋습니다.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그 의미는 분명하다. 할 수 없다면, 말살대에서 나가.

       

       “으, 우우⋯⋯ 으아아아아악-!!”

       

       소년은 스크래치 난 자존심과, 공포와, 두려움과, 분노 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통로를 향해 내달렸다.

       

       몇 걸음 가기도 전에 통로에 새겨진 마법진이 적색 광채를 뿌리며 작동했다. 마법은 소년의 정신에 스며들었고, 함정에 당한 그는 머리를 흔들며 날뛰기 시작했다. 춤을 추듯이.

       

       소년의 팔목에 미리 채워 둔 정신방벽 아티팩트가 끊임없이 빛을 발했다. 방비를 했음에도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상당히 강력한 함정이다.

       

       그 모습을, 말살대원들은 차분히 지켜보면서 분석했다.

       

       “광분, 색욕 증폭⋯⋯ 대부분 정신계 함정으로 보입니다. 선배님.”

       

       “물리계 함정은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이 시설을 무너뜨리거나 할 여지를 두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서큐버스의 소굴답다고 해야 할까.”

       

       분석 결과는 정신계 함정투성이.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편하게 지나갈 수 있다. 그녀가 나서기만 한다면.

       

       유리 랜스터는 감정으로 영혼을 물들였다. 지난 기억을 반추한다.

       

       서로 정답고 행복하게 지내던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찔러 죽이면서 웃고 있었던 그날. 작은 호기심이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그날.

       

       모두가 쾌락에 잠겨 죽어가던 그 한가운데에서, 맹세했다.

       

       억누르자.

       

       억누르자.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말자. 꿈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서, 시체를 무게추 삼아 매달아, 저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혀 두자. 

       

       언젠가 여왕을 죽일 때까지⋯⋯.

       

       “우화(羽化) -『본망구속(本望拘束) : 전희(前戱)』.”

       

       차르르르르륵⋯⋯.

       

       사슬이 느긋하게 유리 랜스터의 마음을 묶었다. 머릿속을 울리던 여러 감정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호수는 파문 한 점 없는 맑은 상태가 되었다.

       

       걸었다.

       

       여러 마법진이 발동하며, 유리 랜스터의 마음을 노리고 독하게 찔러 들어간다. 어지럽히고, 부추긴다.

       

       죄책감을 쥐고 흔든다. 소년을 이용해서 함정을 파악했지. 그 행동이 여왕과 무엇이 다른가? 네게는 누군가를 욕할 자격이 없다. 유리 랜스터.

       

       가라앉힌다.

       

       성욕을 충동질하고 흔든다. 네 내밀한 마음과 호기심, 그리고 흥미를 안다. 자고 싶었겠지. 참을 필요는 없다. 네 본능에 맡기면 된다. 유리 랜스터.

       

       가라앉힌다.

       

       모든 함정을 몸으로 받아내며 나아간다. 쇠사슬이 조여든다. 팔과 다리를 뱀처럼 휘감아 타고 올라가며, 피가 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묶는다.

       

       그리고, 말살대는 제단에 도달했다.

       

       커다란 제단에는, 꿈꾸는 사람들 수백 명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그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제단의 중앙에는 『둥지』로 통하는 출입구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부유했다. 그것은 허공에 난 틈처럼 보였다. 틈의 너머로는 분홍색의 색채로 가득한 낙원이 보였다.

       

       환희로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는 서큐버스들이, 저마다 사람을 낚아챈 채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닌다.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듯한 기하학적인 구조물들이 빼곡하다.

       

       저 틈의 너머는 꿈의 땅이다. 저 틈은 꿈과 현실을 잇는 틈새다.

       

       사람들의 꿈을 기워 붙여서 입구를 열고 있는 걸까. 저들이 괜히 누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서큐버스의 마법에 필요하니까 존재하고 있을 터다.

       

       그렇다면, 가장 간편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은 하나다. 유리 랜스터는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비정하게 선언했다.

       

       “제가 입구를 막을 테니, 전원. 잠든 부속물들을 모두 죽입니다.”

       

       “저런⋯⋯ 이들은 모두 무고한 사람들인데, 그런데도 죽이려는 건가요? 유리.”

       

       “⋯⋯⋯⋯.”

       

       유리 랜스터의 전신에 힘이 들어간다. 쟁반에서 옥구슬을 굴리는 듯한, 귓구멍에 끈적거리는 꿀을 흘려 넣는 듯한 목소리가, 뒤에서.

       

       천천히 발끝을 틀어 몸을 돌린다.

       

       어느샌가 네발로 기어 엎드린 세리스의 위에서 새하얀 여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랫배가 욱신거리고, 몸에 열기가 돈다.

       

       그녀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느냐고 하면⋯⋯ 아니다.

       

       서큐버스의 최중요시설을 타격하는 작전이다. 머저리가 아니라면, 여왕은 당연히 모습을 드러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비도 마쳤다. 소년에게 채워 둔 정신방벽 아티팩트와 같은 물건을, 말살대 전원에게 장착해 두었다. 그럼에도.

       

       “허억, 헉, 허윽⋯⋯.”

       

       주변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하나둘 흘러나온다.

       

       새하얀 여인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말살대는 대부분이 무력화되었다. 유리 랜스터를 비롯한 몇몇만이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꽈악.

       

       쇠사슬로 자신을 조금 더 묶는다. 파도에 쓸려나가지 않도록.

       

       그 가련한 저항이 귀엽다는 듯이, 서큐버스의 여왕은 움트는 꽃봉오리처럼 웃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을 걸듯이, 친밀하고 정답게 말을 걸어 온다.

       

       “나는, 유리가 나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어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어머. 하지만 유리는⋯⋯ 오래도록 나를 보러 오지 않았는걸?”

       

       “당신이 이런 곳에 꽁꽁 숨어 있었으니까.”

       

       숨었다라. 그것도 맞는 말이라며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침을 질질 흘려대는 세리스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나긋하게 말했다.

       

       유리 랜스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여왕의 주변은 기이할 정도의 압박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한 일이다.

       

       자신의 우화(羽化)⋯⋯ 『본망구속(本望拘束)』은 틀림없이 여왕의 카운터다.

       

       모든 정신계 마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우화. 정신을 흔드는 것을 제외하면 물리적 능력이 거의 없는 서큐버스에게는, 완벽한 상성 관계일 텐데.

       

       이대로 근접전을 걸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여왕의 목을 꺾어버릴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자신은, 망설이고 있는가⋯⋯?

       

       유리 랜스터의 턱선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 툭 떨어졌다. 그리고 발견해 냈다. 여왕이 소중하게 품 안에 안고 있는⋯⋯ 새까맣게 물든 석상을.

       

       저렇게 눈에 띄는 물건을 왜 지금에서야 발견할 수 있었는가. 여왕의 신체는 온통 흰색투성이이니, 검은 석상을 안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 건.”

       

       깨달았다.

       

       여왕이 환상 마법으로 숨긴 게 아니다. 유리 랜스터의 본능이, 저 불온한 석상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거다. 포식자를 만난 타조가 지면의 구멍에 머리를 처박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불길함에, 무의식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던 거다.

       

       여왕이 말을 잇는다.

       

       “저, 재미있는 물건을 만들고 있었거든요. 정말이지 멋지고, 아름다운 물건이라서⋯⋯ 유리도 분명 마음에 들 거예요.”

       

       “⋯⋯⋯⋯.”

       

       “쾌락의 악신상(惡神像), 악신의 네 얼굴 중 하나. 후후후⋯⋯ 나는 이걸로 드디어, 꼭두각시가 아니라 사람이 될 수 있어.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여왕은 환희에 가까운 표정으로 악신상을 소중히 쓰다듬었다. 단순히 강력한 아티팩트가 아니라, 무언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걸까.

       

       움직여. 움직여라, 유리 랜스터.

       

       움직여야 한다.

       

       그녀가 저 아티팩트로 무언가를 저지르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막아야 한다. 얼어붙어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살았다. 이 순간을 위해서, 예정된 행복도 뒤로 미뤘다. 친구의 곁을 떠났다. 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 거냐. 

       

       버린 것들의 무게를 생각하면, 아까워서라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서!

       

       “으⋯⋯ 크, 으아아아아아──!!”

       

       유리 랜스터는 기합을 넣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여왕은, 가볍게 읊조렸다.

       

       “승계승화(承繼昇華) – 『톱니바퀴 : 히로인』.”

       

       찰칵.

       

       거대한 무언가가 맞물려 돌아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러면 여러분⋯⋯ 다함께 외쳐볼까요⋯⋯!
    내일 쉬고, 월요일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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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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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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