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7

     

    탁, 탁, 탁.

     

    규칙적인 타음.

    누군가가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내는 남성, 그는 의자에 삐딱한 자세로 앉은 채 별 감흥이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후, 역시 오질 않는 구만.”

     

    뭐, 뒷골목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을 바라는 건 욕심이긴 하다.

    이럴 때마다 사람은 말로 다스리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새삼 다시 깨닫고 만다.

    결국 힘이 최고라니까.

     

    남자는 자신의 곁에서 언제든 명령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부하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애들 데리고 가서 끌고와.”

     

    그들이 할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넵.”

     

    달칵, 사무실에서 부하들이 나가자, 그는 의자를 돌려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리고는 한가한 듯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여긴 놀 것도 없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여자라도 불러 놓을 걸 그랬나, 베리튼에서는 그냥 심심하면 복도에 있는 엘프년들 아무나 불러서 시간을 때우면 그만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할 짓을 고민하다가 그냥 낮잠이나 한숨 잘까, 하고 생각을 하고 눈을 붙이던 중.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뭐야, 이 새끼…….”

     

    막 잠에 들 것 같았는데, 방해를 받아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대충 확인해보니, 정문의 경비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별 시덥잖은 일로 전화한 거라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뭐야?”

     

    -저, 보스. 손님이 왔습니다. 여성 엘프 한명과, 수인 꼬맹이 하나요.

     

    전화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뜬금없이 손님이라니, 딱히 여자를 부른 기억은 없다.

     

    “뭐? 걔들 대체 뭐하러 온 새끼들인데?”

     

    -그……. ‘서드를 대신해서 왔다’라고 하는데요.

     

    “뭐야? 그 놈이랑 무슨 사인데?”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십니다. 아, 네. 보호자랑 친구라고 하는데요.

     

    “그놈의 보호자랑 친구?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꼭 보스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뭐, 지원군이라도 부른 모양이지?

    그런데 대놓고 정문으로 들어와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건 또 처음이네.

     

    “이게 뭔.”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약간 얼이 빠지려고 하고 있다.

    적어도 심심했던 기분은 완전히 사라지기는 했지만.

     

    ‘흠…….’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정문에 있는 작자들이 뭐하는 코미디언들인지 얼굴이나 확인해볼 심산으로 그는 말했다.

     

    “화면 연결해봐.”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영상으로 전환되는 전화.

    그리고 나타난 화면에 그는 잠시 모든 행동을 멈췄다.

    숨을 쉬는 것 조차도.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화면에 나온 이 여자, 낯이 익다.

     

    “하, 하하……. 하하하하!!”

     

    이내 그녀를 떠올린 그는 광소했다.

    자신의 콧잔등에 이 상처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으니까 말이다.

     

    “들여보내고 접견실로 안내해. 이 년, 절대 놓치지 마. 내가 갈때까지 무조건 잡아둬, 알겠냐?”

     

    -네! 그럼, 같이 온 여자애는 어떻게 할까요?

     

    “뭐, 애새끼는 시발 알아서 죽이든가 말든가…… 아니, 잠깐만.”

     

    남자는 다시 화면을 살폈다.

     

    그녀 옆에 선 저 꼬맹이…….

    일단 보아하니 수인 혼혈인 것 같다.

     

    그것도 꽤 특이하게 생겨먹었는데.

    고양이귀와 뿔이라……?

     

    그러고보니 저번에 그 늙은이한테 뿔 난 고양이건으로 대차게 까였는데, 저거 완전 그 늙은이새끼 취향 아닌가 싶다.

     

    외모에 모난 곳은 없으니 상품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저거라면 그 늙은이도 꽤 좋아할 것 같은데 말이지.

     

    “흠, 걔는 따로 빼놔. 상품으로 쓸 만해 보이니.”

     

    -네, 알겠습니다.

     

    ———

     

    하아, 남자는 한숨을 쉬며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고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들어오시랍니다.”

     

    “좋아요.”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남자는 그녀의 기세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다보면 가장 먼저 느는 것은 눈치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는 그저 예쁘장한 얼굴과는 달리 눈빛은 날카로운 맹수의 그것같이 위험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절대 다른 경비들이 죄다 맨손으로 제압당하는 걸 보고 쫄아서 그런게 아니란 말이다.

     

    “…….”

     

    ‘제길, 하여튼 엘프라는 것들은.’

     

    남자는 욕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 속으로 중얼거렸다.

     

    겉보기랑은 너무나 다른 종족들이라니까. 대체 평소에 무슨 일을 하길래 저렇게 힘이 센 거지?

     

    하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지.

    아무래도, 보스께서 직접 손을 봐주신다는 것 같으니…….

     

    남자는 그리 생각하며 그녀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

     

    “흠……”

     

    예르나는 안내를 받아 복도를 걸으며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다.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 루크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지, 예르나? 뭔가 불안한 거라도 있나?”

    “아, 그게 말이지. 지금 이 상황,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복도, 경비, 그리고 숲 속의 시설……. 초대받지 않은 손님.

     

    거기서부터 느껴지는 왠지 모를 기시감. 대체 어디서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아마도 별 일 없을 테니까.”

     

    루크로서는 예르나의 그런 느낌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대충 감이 왔다.

    아마도 옛 기억의 트라우마로부터 파생된 ‘잔여감정’이겠지.

     

    예전에 루크 숲의 산책길에서 서로 꽃으로 만든 장신구들을 교환했던 일이 있었다.

    루크는 그 때 예르나에게 꽃반지를 선물하며 ‘기억에 대한 불안감’을 안정화시키는 주문을 인챈트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 영향으로 기억에 남겨진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졌으니, 지금은 조금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음……. 역시 그렇겠지?”

     

    루크가 그렇게 말한다면 아마 그런 거겠지.

    자신이 과민한 것이리라, 예르나는 이내 표정을 풀고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다시 복도를 걷기를 잠시, 안내를 하던 남자가 어떤 문 앞에서 멈춰섰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보스께서 찾아오실 겁니다.”

     

    “수고했어요.”

     

    “잠깐만.”

     

    그렇게 그녀가 별다른 의심 없이 문 안으로 들어가고 루크도 그녀를 따라 들어가려던 순간, 남자가 문을 막았다.

     

    “뭐 하는 거죠?”

    “왜 그러지?”

     

    남자에게 문이 막혀 들어가지 못한 루크가 문을 막은 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는 그런 루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꼬마야. 너는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 보스께서는 어린아이를 별로 안 좋아하시거든.”

     

    딜런트, 그는 과거 고아원의 실패로 아이들을 ‘굉장히’ 싫어하게 되었다.

    그것은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운 형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린이를 상품으로서 다루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아, 그런가요.”

     

    예르나는 납득한 듯 보였고, 루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 이야기하는 장소에 조그만 아이가 끼어있으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도 분명 존재했으니까.

    비록 자신은 아이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자신의 신체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을.

    겉보기로는 누가 보더라도 확실한 아이의 모습이 아닌가.

     

    설득을 위해서는 최대한 상대의 첫인상으로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첫인상에서 결정된 마이너스요소는 설득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다시 벗겨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여기선 그의 말을 따라 다른 곳에 있어주는 것이 올바른 길이리라.

     

    “아무래도 이야기는 예르나, 그대 혼자서 해야겠구나.”

     

    “루크, 너 혼자서 있어도 괜찮겠어?”

     

    “물론 괜찮지. 그보다, 그대는 괜찮겠나?”

     

    “당연하지, 언니는 어른인걸?”

     

    “하하, 그럼 나는 다른 곳에서 기다리며 응원하고 있겠네.”

     

    “알겠어. 혹시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해.”

     

    ————-

     

    그렇게 또 다른 남자의 안내를 받으며 걷고 있으니, 그가 물었다.

     

    “어이, 꼬마. 아까 그 엘프가 보호자라고 했지? 엄마랑 아빠는 어디갔어?”

     

    또 그 질문인가?

    ‘부모님은 어디있니?’라, 그것은 어른들이 혼자 있는 아이에게 으레 건네는 질문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할 말이 없는 건가.

    대체 타인의 부모의 유무가 왜 그렇게 궁금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루크는 한숨을 쉬며 성의 없이 대답했다.

     

    “하아, 없다.”

    “그렇구만.”

     

    그 반응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부모는 꽤 오랫동안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뒷처리도 깔끔하겠지…….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지?”

     

    저런, 이 꼬마는 아직도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불쌍하기도 해라.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이 곳에서 ‘애들’이 가는 곳이지.”

    “음, 그런가.”

     

    루크는 예전에 한번 가보았던 어린이 놀이방이 딸린 카페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론 이래보여도, 복지시설은 제대로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파이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다가와 말을 건넸다.

     

    -루크, 저 아저씨 뭔가 이상해.

     

    “뭐가 말인가?”

     

    -웃는 것도 이상하고, 느낌도 안 좋아.

     

    “파이, 사람을 겉보기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안 좋은 버릇일세.”

     

    -하지만…….

     

    루크는 남자를 스윽 올려다보았다.

    당황했는지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지만, 확실히 웃는 표정이 무슨 범죄자처럼 생기긴 했다.

    파이가 이상하다고 하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는 된다만 그는 그냥 그렇게 생겼을 뿐, 뭔가 나쁜 짓을 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저 남자라고 저렇게 생기고 싶어서 생긴 것이 아닐 터.

    루크는 그런 그를 향해 마주 웃어보이며 말했다.

    “아 참, 아까 예르나에게 꺾인 부분은 괜찮나? 내 대신 사과하지, 용서해주겠는가? 그녀가 원래 조금 과격한 부분이 있어.”

     

    남자는 크게 당황했다.

     

    ‘대체 뭐지. 이 꼬마.’

     

    지금 아무리 자기가 어딜 가는지 모른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더니, 이제는 아예 자신에게 안부까지 묻다니…….

     

    이거 진짜 특이한 꼬마네.

    오랜만에 재밌겠는데.

    그는 입꼬리를 비틀어올렸다. 

    “그러냐?”

    그가 웃자, 또 파이가 날뛰기 시작했다.

    -봐봐, 이상하다니까!

    반면 루크는 파이에게 그러지 말라며 대꾸했다.

    확실히 꺼림칙한 미소이기는 하지만, 방금 전에도 파이에게 말했듯이 겉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되는 법이니까.

    “생긴걸로 그만 놀리거라. 저리 웃으니 보기 좋기만 한데.”

     

    -…….

     

    ——–

     

    접견실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긴장한 듯 다리를 떠는 예르나.

     

    “진정하자, 진정…….”

     

    그녀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긴장되는 걸까, 별 것도 아닐텐데.

    여긴 좀 수상하게 생긴 제약시설일 뿐이고, 사장이 나오면 적당히 설득만 하면 끝이다.

    그런데 왜 이 술렁거리는 기분을 떨쳐내기가 어려운 걸까.

    역시 루크랑 떨어져서 그런건가?

     

    ‘하아, 나는 얼마나 그 애한테 집착하고 있는 거야. 정신 좀 차리자.’

     

    루크하고는 언젠가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데, 그 날이 오면 대체 어쩌려고 그래.

    같이 죽을 게 아니라면 이제부터라도 적응을 해야지.

    안 그래? 그러니까 진정해. 잠깐 떨어지는 것 정도는 말이야.

     

    그렇게 속으로 암시를 걸고 있으니, 주머니에 넣어둔 전화기에서부터 우웅- 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혹시 루크인가 싶어서 재빨리 확인해보았으나, 화면에 나타난 전화번호는 루크의 것이 아니었다.

     

    음, 조금 실망했을지도.

     

    -예르나, 딜런트에 대한 정보다.

     

    “네, 뭔가요?”

     

    -뭐야, 반갑지 않나?

     

    “아뇨, 반가운데요.”

     

    여전히 시큰둥한 예르나의 목소리에 조금 당황한 수화기 너머의 인물.

     

    -전혀 그런 목소리가 아닌데……. 뭐, 그런가. 어쨌든.

     

    “네. 말씀해주세요.”

     

    -뒷골목의 부랑자에게서 들은 정보로는, 그가 찾고 있는 것은 사람이 확실한 것 같다. 누굴 찾는지 알아냈어.

     

    “그게 누구죠?”

     

    -‘서드’라는 사람을 찾고 있다더군.

     

    “예?!”

     

    예르나는 크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뭐야, 누군지 감이 잡히나?

     

    “서드가 확실해요? 그 이름이 확실하냐고요?”

     

    예르나는 거의 고함치듯이 물었다.

     

    -확실해, 몇번이고 들었다고 하더군. 말을 지어낸 것 같지도 않아. 다른 곳에서 들었다는 정보도 있으니까……. 그런데 자네 대체 왜 그러나?

     

    “허.”

     

    서클, 실험, 시설, 뒷세계, 약, 범죄.

     

    그리고 그것을 한데 잇는 ‘서드’라는 단어와 ‘딜런트’.

     

    예르나의 머릿속에서 모든 경황이 퍼즐처럼 짜맞춰졌다.

     

    “맙소사. 서드가…….”

     

    ‘서드가 쫓긴다는 인물이 딜런트였어!’

     

    배신감, 그리고 허무함.

    엄청난 심리적 충격에 마치 힘도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익숙한 느낌, 그건 결코 허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하하하하!! 어-이! 정말 오랜만이야!”

     

    벌컥,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인원들. 예르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자, 익숙한 면상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딜런트…….”

     

    -그래, 그가 어디 있는지 알겠나?

     

    “……네, 지금 눈 앞에 있네요……..”

     

    -뭐? 지금 너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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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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