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7

        

       경고.

         

       무겁게 가라앉는 듯한 그 두 단어 때문에 분위기가 싸하게 변했다.

       괜스레 음산한 숲속에서 시선이 느껴졌고, 목이 없는 지장보살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으며, 입을 꾹 다문 진성에게서 묘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무인은 자기 팔의 솜털이 쭈뼛 솟는 것을 느꼈다.

         

       흐르는 바람에 등골이 오싹해지고, 겨울도 아닌데 얼음을 옷 안에다가 잔뜩 붓기라도 한 것처럼 소름이 오소소 돋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은 채, 태연함을 가장하며 진성에게 물었다.

         

       “그래? 그게 끝이냐?”

       “네? 하하하. 네.”

         

       진성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의미심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무인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여기서 끝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건 끝이긴 하지만 끝이 아니에요.”

       “뭐?”

       “심령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나 미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진성은 무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인식이 곧 현상이 된다는 것.”

         

       무인의 흔들리는 눈 안에서 진성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전화와 같아요. 누군가가 전화를 걸면, 그것을 받은 사람은 건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는 거죠. 괴담이나 미신도 마찬가지. 어떤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것을 인식하게 되고, ‘기회’가 왔을 때 그 괴현상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고 해요. 재미있죠?”

       “그게 뭔….”

       “어쩌면 이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지 능력과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밤중에 구겨진 비닐봉지를 고양이로 인식하고, 창문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강도로 오해하고, 흔들리는 억새를 귀신으로 여기는 것처럼. 무의식으로 품고 있는 생각과 관념이 인식을 거치며 투영되어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걸 수도 있겠죠.”

         

       진성은 무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을 조곤조곤 입 밖으로 내었다. 그리고 이제 되었다는 듯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무인에게 등을 돌렸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사유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심령 체험하는 대학생’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둘.

         

       목이 잘린 채 악취를 풍기고 있는 지장보살 석상 하나.

       그리고, 진성의 이야기에 찝찝하다는 느낌을 도저히 감출 수 없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무인 한 명.

         

       무인은 슬쩍 지장보살을 바라보았다.

         

       “쓰으….”

         

       그는 지장보살 석상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살펴보았다.

         

       언제나 같은 모습의 석상.

       당번이 될 때마다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그의 일상의 한 풍경.

       바닥에 널려있는 돌무더기나 길가에 세워져 있는 나무, 혹은 가로등처럼 그의 인생에 큰 의미가 되지 못한 하잘것없는 풍경이었던 것.

         

       하지만 지금의 무인에게는 저 석상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왔던 돌 아래에 공벌레가 우글거리는 장면을 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늘에서 쉬곤 했던 나무가 옛날에 사람이 목을 잔뜩 매었던 소름 끼치는 벚나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자 평소와 완전히 정반대의 것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망할(くっそ)! 그냥 한 대 쥐어박고 집어 던져버릴걸!”

         

       무인은 머리가 없음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지장보살에게서 눈을 떼고 등을 돌려 수련장으로 돌아갔다.

         

       입으로는 연신 욕을 내뱉고, 몸은 겁을 먹지 않았다는 듯 씩씩하게 움직이면서.

       하지만 그의 발걸음 속도는 이전보다도 훨씬 빨라져 있었다.

         

       이는 그가 느끼는 공포가 그의 등을 밀어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 * *

         

         

         

       시간이 흐르고, 숲에 어둠이 앉았다.

         

       그 어둠은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짐승에게 있어서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시간이 될 것이고, 햇빛을 한껏 받았던 식물들은 몸을 축 늘어뜨리며 잠을 청할 시간일 것이며, 수련장에서 수련을 열심히 했던 무인들은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 꿀 같은 잠을 청할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산의 순찰을 나가야 하는 ‘당번’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한 무인에게는 귀찮고, 짜증 나고.

         

       “아, 젠장, 젠장, 젠장!”

         

       그리고 참으로 두려운 시간이리라.

         

       무인은 커다란 손전등과 목검을 착용하면서도 연신 욕을 내뱉었다.

         

       그의 의식이 어둠이 내려앉은 숲.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 어두컴컴한 숲 안에 존재하는 어떤 석상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더럽게 무섭네. 젠장.”

         

       무인은 평소와 똑같은 모습의, 하지만 평소와 달리 음산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숲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숲은 나무를 입술처럼 쫙 벌리고 어두컴컴한 무저갱에 그를 향해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고, 손전등을 들고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괴물이 쩍 벌린 아가리 안에 멍청하게 자기 몸을 집어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괴.

         

       저 어두컴컴한 숲 자체가 하나의 요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무인은 잠시 그 어두컴컴한 숲을 바라보다가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볼을 짝짝 소리가 나도록 쳤다. 그리고 볼에서 느껴지는 불같은 통증을 용기로 삼아 한 발짝, 두 발짝 발을 디뎠다.

         

       하지만 용기라는 것은 잠깐 솟았다가 사라지는 불과 같은 것.

         

       밤의 냉기와 달의 광기를 머금은 바람은 음산하고 차가웠고, 그것이 불 때마다 무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며 솟아났던 용기를 촛불에 피어난 불꽃처럼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네.”

         

       무인은 조심조심 걸으면서 낮에 만났던 대학생이 한 말을 떠올려보았다.

         

       ‘인식이 뭐, 현상? 현상이 된다고?’

         

       인식이 곧 현상이 된다.

         

       무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꺼낸 그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일본의 유명한 속담을 중얼거렸다.

         

       “귀신인 줄 알았더니 마른 억새더라….”

         

       두려워하던 것이 알고 보니 별것 아니었다는 뜻의 속담.

         

       무인은 그 속담을 중얼거리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예전부터 보아왔던 숲의 풍경을 떠올렸고, 수련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사형과 사매, 그리고 사질들을 떠올렸고, 엄하기 짝이 없던 사부도 생각했으며, 시현류가 강조하는 광기에 가까운 용기 역시 생각해내었다.

         

       “귀신인 줄 알았더니 마른 억새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속담을 중얼거리고 눈을 떴다.

         

       그러자 음산한 기운을 풍기던 숲은 예전 같은 분위기로 돌아왔고, 귀신의 팔처럼 보였던 그림자 역시 마른 나뭇가지로 변해 있었다.

         

       기를 머금은 무인의 눈은 어둠을 꿰뚫어 보았고, 그림자의 형태로 무인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것이 버섯, 나뭇가지, 잎사귀, 낙엽 뭉치, 바위 등의 물건이었음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흐, 그래. 인식이 현상이 되기는 했네.”

         

       무인은 낮에 자신을 겁주려고 한 듯한 ‘인식이 곧 현상이 된다’라고 말했던 대학생의 얼빠진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괜히 별것 아닌 괴담 때문에 겁을 먹었던 자신에게 던지는 비웃음이기도 했으며, 겁을 주려고 했던 대학생의 하찮은 의도가 산산조각이 났음을 알리는 축하의 웃음이기도 했다.

         

       무인은 완전히 용기를 되찾고 손전등을 들고 산을 누비기 시작했다.

         

       기를 머금은 눈으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았고, 기감을 퍼뜨려 짐승과 사람의 기척을 알아내었고, 혹시 수상해 보이는 것이 있다면 손전등을 켜서 천천히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부수입이라는 것처럼 식용이 가능한 버섯을 한두 개를 따서 주머니에 집어넣기도 했고, 순찰로에 몰래 숨겨두었던 술을 조금 따라서 한 모금 하기도 했다.

         

       “크으.”

         

       그는 목구멍을 타고 흘러가는 고구마 소주의 느낌에 작게 탄성을 냈다.

       25도의 낮지 않은 도수를 품은 술이 식도를 뜨겁게 달구고, 위장을 후끈후끈하게 데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잔으로는 아쉬웠는지 도기를 슬쩍 흔들었고, 반절 이상 남은 소주가 내는 찰랑거리는 소리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더 마시면 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뚜껑을 닫고 썩은 낙엽 사이에 잘 숨겨놓았다.

       그리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순찰하였다.

         

       “흐, 지장보살이네.”

         

       그렇게 어느 정도를 걷자 보인 것은 석상.

         

       빨간 보자기를 머리에 모자처럼 두른 지장보살 석상이었다.

       석상은 주변의 나무가 모두 벌목된 곳에 있어 곰팡이 같은 것이 전혀 없이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인은 지장보살 석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그 뒤에 있는 자그마한 나무상자를 열어 나뭇가지들을 엮어 만든 빗자루를 꺼냈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지장보살 근처에 날아온 낙엽을 쓸고 다시 나무상자 안에 빗자루를 넣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서 깨끗한 천 하나를 꺼내서 지장보살을 꼼꼼하게 닦았고, 보자기의 매듭이 풀리지는 않았는지 확인까지 했다.

         

       ‘후, 귀찮다 귀찮아.’

         

       하지만 얼핏 정성스러워 보이는 행동과는 달리 무인의 얼굴에는 지루함과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왜 이것만 관리를 하는 거야? 다른 것처럼 그냥 내버려 둘 것이지.’

         

       하기 싫다.

         

       무인의 얼굴에는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속마음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하기 싫고, 정말로 하기 싫고, 격렬하게 하기 싫으며, 최선을 다해서 하기 싫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이는 그가 지금 관리하는 석상이 시현류가 유일하게 관리하는 석상이며, 석상에 잎이 떨어져 있거나 오물이 묻으면 온갖 폭언과 함께 기합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인은 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리고 그 표정과는 정반대인 꼼꼼하게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지장보살을 잘 관리한 뒤 나무상자에 도구들을 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귀찮은 일을 끝낸 탓인지 그의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져 있었고, 그의 표정에는 홀가분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 돌아올 때 다시 한번 확인해야지.’

         

       무인은 예전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유로 청소했던 석상이 더러워져서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관리를 소홀히 했다.’, ‘제대로 정신이 박히질 않았다’, ‘기합이 부족하다.’, ‘정신이 흐리멍덩해진 것이 분명하니 오랜만에 정신 교육을 해야 한다’라며 온갖 기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무인은 반드시 석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돌아오곤 했다.

         

       어차피 지장보살 석상 세 개는 삼각형처럼 퍼져 있었기 때문에, 다시 확인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쪽부터 가야 하나….”

         

       무인은 두 갈래 길에서 멈추어 섰다.

         

       ‘평소에는 목 잘린 석상부터 갔는데….’

         

       관리해야 하는 석상.

       목 잘린 석상.

       지팡이를 든 석상.

         

       평소 무인은 이러한 순서로 순찰하였고, 이러한 루틴은 깨진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은 저 순서로 가기가 너무 찝찝했다.

         

       ‘그 심령 체험인지 뭔지 한답시고 기어들어 온 대학생 놈 때문이야. 제기랄.’

         

       결국 무인은 평소대로 목 잘린 석상부터 가는 것이 아닌, 지팡이를 든 석상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낡아빠진 석상을 대충 확인한 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목 잘린 석상으로 향했다.

         

       다행히 석상과 석상 사이의 거리는 먼 편이 아니라 금방 도착할 수 있었고, 무인은 저 멀리서 기로 강화한 눈으로 석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이상 없네. 새들이 똥을 싸질렀는지 새똥이 좀 더 두껍게 묻어 있고, 어디 부서진 곳도 없고, 평소처럼 주변도 더럽고.’

         

       무인은 괴담 때문에 찝찝해져서 대충 확인하고 빠르게 석상이 있는 곳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걸어가던 무인의 머릿속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잠깐만.’

         

       그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몸을 움츠렸다.

         

       ‘잠깐만, 잠깐만. 부서진 곳이 없었다고?’

         

       무인은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석상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새똥이 두껍게 쌓여있었고.

       낙엽도 주변에 가득했고.

         

       그리고.

       부서진 곳이 없었다.

         

       몸도, 팔도.

       머리도.

         

       “말도, 안 돼.”

         

       온몸의 털이 쭈뼛 솟는 것 같았다.

         

       ‘확인, 확인을 해야 해.’

         

       그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리고.

         

       “말도 안 돼!”

         

       그는 보았다.

         

       목 잘린 지장보살 석상에 머리가 돋아 있는 것을.

         

       어떤 재질인지 알 수 없는 새까만 머리가, 하얀 돌로 만들어진 깨진 몸 위에 돋아 있는 것을 말이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