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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이건….”

       

       나는 레키온이 내민 작은 큐브를 받아 들었다. 

       

       “저희 파메라 기사단의 단패입니다.”

       “그냥 단패가 아닌데요? 이거 설마….”

       “네. 단장패죠. 옆 부분을 누르면 저희 기사단의 문양이 나타날 겁니다.”

       

       레키온의 말대로 큐브의 옆 부분을 꾹 누르자, 마력 반응이 일어나더니 큐브의 위쪽 허공에 마치 홀로그램처럼 푸른 마력이 기사단의 고유 문양을 그려 냈다. 

       

       사실 홀로그램이라고 해서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 크기도 아주 작고, 잠깐 나왔다가 흩어지는 거라 별게 없긴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문양을 담고 있는 아티팩트란 거지.’

       

       보통 용병단 혹은 기사단의 단패는 나무로 깎아 만들거나 작은 쇳조각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렇게 문양을 나타내는 ‘공인 아티팩트’는 제국에서 직접 임명한 기사단의 단장만이 제공받을 수 있다. 

       

       “파메라 성 인근 어디서든, 혹은 저의 연이 닿는 곳이라면 이 패가 도움이 될 거예요.”

       “도움이 되는 수준이 아닐 것 같은데요.”

       

       이것만 있으면 이 근방에서 어딜 가든 프리 패스 수준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고.

       

       심지어 이 용사 레키온이 파메라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패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저희 기사단을 도와주신다면 의뢰에 대한 보수는 건마다 따로 지급해 드릴 겁니다. 그건 그냥 귀찮은 일 있을 때 써먹으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저희 성에 찾아오실 때라든지.”

       “아하….”

       

       솔직히 왜 갑자기 이렇게까지 잘해 주는 거냐고 묻고 싶기는 했다. 

       

       ‘기사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한테 단장패까지 주면서 사실상 반 정도 계약 영입 제안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니까.’

       

       물론 아까 같이 용병 길드에 들어가서 길드장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그간 다른 지역의 용병 길드에서 수행했던 굵직한 의뢰들을 확인한 바, 어느 정도 우리에게 실력이 있다는 것 정도는 확인했을 것이다. 

       

       ‘그간 내가 「레키온 사가」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선점한 꿀 의뢰들이 꽤 짭짤했었으니.’

       

       꽤 굵직한 의뢰를 전부 깔끔하게 완료한 건 물론이거니와 다른 용병을 고용하지도 않고 소수정예로 죄다 격파하고 다녔으니 일단 서류 상으로는 믿을 만한 용병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상적인 기사단장이라면 기껏해야 단건 계약이나 두세 건 묶음 의뢰 계약 같은 걸 제안하며 계약금을 찔끔 던져 주고 간을 보는 정도에서 그쳤을 것이다. 

       

       ‘실비아 씨도 지금 공식적으론 B급 용병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두 눈으로 실력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이 정도 대우를 해 주며 뭔갈 제안한다면 찜찜해서라도 거절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레키온인데?’

       

       나는 알고 있다. 

       

       레키온이란 사람은 뼛속부터 영웅의 자질을 타고났고, 정의감에 불타 인류를 위해 악을 처단하는 용사라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황실에 충성하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숨을 걸고 하무트교를 찾아 작살 내러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레키온이 우리를 상대로 뭔가 사기를 치기 위해 구린 속내를 감추고 있다?

       

       ‘그거야말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그래서 나는 그냥 잠자코 레키온의 선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쨌든 내 목적을 더 쉽게 이룰 수 있게 됐는데 여기서 괜히 의심하면서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일단 감사히 받겠습니다.”

       “좋습니다! 파메라 성으로 찾아오시면 의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 드리지요. 아, 물론 오늘 바로 오셔도 됩니다.”

       “음…. 오늘은 시간이 좀 애매하니,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찾아가 볼게요.”

       

       곧 베나콘에 도착한다고 마차 안에서 군것질도 안 하고 있었는데, 또 파메라 성까지 지금 가는 건 좀 그랬다. 

       

       “쀼우.”

       

       아르도 마침 배가 고픈 듯 자신의 배에 젤리를 올린 채 작게 쀼 소리를 냈다. 

       

       “아아, 아쉽군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레키온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럼.”

       “잠깐만요.”

       

       내가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레키온이 별안간 나를 불러세웠다.

       

       “그….”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내 품에 안겨 있는 아르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아르야, 마지막으로 악수 한 번만 더 해도 될까?”

       “쀼우? 쀼.”

       

       아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빨리 보내고 밥을 먹고 싶었는지 얼른 손을 내밀었다. 

       

       꾸욱.

       

       레키온은 아르의 손을 잡고는 잠시 헤벌쭉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에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놓았다. 

       

       “크흠. 그럼 살펴 들어가세요!”

       “네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쀼우.”

       

       아르도 기사단장에 대한 예우인지 공손하게 손을 모은 채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레키온은 아르를 보고 밝아진 표정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르야, 내일 보자!”

       

       그러고는 주변의 기사들과 함께 돌아갔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여관 방을 잡고 저녁을 먹었다. 

       

       아르가 간만에 메밀국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시원한 얼음을 동동 띄운 국수를 만들어 셋이 호로록 먹었다. 

       

       “쀼우! 역시 씨원하구 마시써!”

       

       후루루룹.

       

       원래 크기로 돌아온 아르는 두툼한 손으로 젓가락을 잘도 잡고 면을 후룹 빨아들였다. 

       

       그때 옆에 있던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기사단장 말이에요.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생각보다 너무 저희한테 잘해 주던데…. 저도 용병 생활을 많이 했지만 기사단장이 만난 첫날에 단장패를 주는 건 정말 처음 봤어요.”

       “저도 처음 보긴 했어요.”

       “쀼우! 구게 엄청 귀한 고야? 째그만 큐브 가튼 거?”

       

       후루룩. 

       아르는 아예 그릇을 왼손으로 들고 입 가까이에 가져가 흡입하며 물었다. 

       

       “그럼. 특히 이 큐브 아티팩트로 된 단장패는 제국에서 지급하는 거라 한 기사단에 딱 2개밖에 없는 거야. 그중 하나를 우리가 받은 거지.”

       

       근데 그게 용사 레키온이 준 거니, 근방에선 거의 암행어사의 마패 정도 되는 위력을 발휘할 거다. 

       

       “우아…. 엄청 조은 사람이네!”

       “좋은 사람이긴 하지. 근데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을 뿐이지.”

       

       그 말에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혹시 아르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런 걸까요? 사실 아까부터 단장의 시선이 자꾸 아르 쪽으로 가긴 했거든요.”

       “흐음, 그러고 보니…. 제가 경험한 원작에서 레키온이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이 나오긴 했어요.”

       

       스토리와 관련 없는 장면이고 자주 나온 것도 아니라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설마 이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그럼 진짜로 이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일단 아르 인형을 저렇게 갖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보통은 아니잖아요?”

       

       실비아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요….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용병들한테 사역마가 귀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장패를 내 주는 건 좀…. 레키온이니까 나쁜 뜻은 아니겠지만 일단 살짝은 경계를 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그건 그래요.”

       

       실비아도 최소한의 의심은 해 보자는 말에 동의했다. 

       

       “쀼! 레온, 한 그릇 더 조!”

       

       ***

       

       “왔어?”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데보라는 성에 돌아온 레키온을 보려 고개를 들었다. 

       

       “응! 나 왔어, 데비!”

       “…뭐야, 그 기분 나쁜 표정은?”

       

       레키온은 누가 봐도 행복한 상상을 하는 듯 헤벌레한 표정을 지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늘 아르를 만나고 왔거든! 하아,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있지?”

       “결국 보고 왔구나. 꼭두새벽부터 나가더니….”

       

       데보라는 벌써부터 몸을 베베 꼬고 있는 레키온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레키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아르 인형을 꺼내서 손으로 인형의 손을 잡고 활짝 펼치면서 입으로 ‘쀼우!’ 소리를 흉내냈다. 

       

       “가서 악수도 하고 왔는데 손이 얼마나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던지…. 작게 쀼 소리를 내는데 정말 하아…. 대만족이었어.” 

       “아주 좋아 죽는구나.”

       “그럼. 알렉스가 말해 준 것도 그렇고, 길드에서 기록도 확인해 봤는데 용병 분들도 확실히 다 실력 있으신 분들이신 것 같더라고. 내일 우리 성으로 찾아오신대. 단장패까지 드렸으니 아마 반드시 오실 거야.”

       

       레키온은 벌써부터 내일 아르를 또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흐흐흐, 하고 웃었다. 

       

       “뭐? 단장패를 줬다고?”

       

       듣고만 있던 데보라가 벌떡 일어났다. 

       

       “응. 뭐 어때. 아직 하나 더 남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 사람들이 그걸 남용이라도 하면….”

       “걱정 마. 얘기를 좀 나눠 봤는데 좋은 분들이었거든. 악용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야.”

       “아니, 하…. 너 진짜….”

       

       뭐라고 말을 하려던 데보라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레키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깐만. 좋은 분들이라고?”

       “응. 알렉스한테도 들었지만 만나서 얘기해 보고 더 확신이 들었지.”

       “그 사람들 중에 여자 있지?”

       

       데보라의 갑작스런 물음에 레키온의 동작이 잠깐 굳었다. 

       

       “어…. 갑자기 그건 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기에 되물었을 뿐인데, 데보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있네. 어쩐지 귀여운 거 보러 간 사람치고 너무 좋아하더라.”

       

       데보라는 이제 거의 짓씹듯 발음을 하고 있었다. 

       

       쿵.

       

       데보라는 거의 탁자가 부서져라 펜을 내려놓고, 레키온 쪽으로 걸어왔다.

       

       “데비? 갑자기 왜 그래?”

       

       레키온은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 채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쳤다. 

       

       “내일 나 임무 나가는 거 취소하고 메그한테 맡긴다.”

       “어?”

       “내가 직접 봐야겠어. 뭐 얼마나 예쁜 사람인지 한번 보자고.”

       

       데보라는 그 말만을 남기고 쾅, 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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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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