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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학살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의 시야는 밝혀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은신한 도적이 도사리고 있을까 두려워,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쉽지 않을 지경. 모든 영역을 장악당한 팀의 말로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지하가 아니었다. 지하를 통해서 급습당하는 지상은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나는 중이었으니.

        

       사제에 이어서 마법사, 궁수까지. 도적의 단검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고, 매번 피를 뽑아냈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성기사가 허겁지겁 뒷라인을 지키러 오면, 2대1로 상대하며 시간을 벌다가 유유히 이탈한다. 그리고, 다시 지하에서 성장해서 돌아오니-

        

       우리 도적은 어디서 뭐하고 있냐는 비명에 가까운 질책이 레드팀의 보이스를 메웠다. 구설수가 두려운 프로들이 아니었다면, 대화의 7할은 욕설이었으리라.

        

       어느새 제 역할은 반쯤 유기한 채 생존에만 급급한 처지의 뒷라인은 사실상 게임에서 이탈당했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앞라인은 체급에서 밀리고 있었다.

        

       속이 갑갑해지는 상황의 연속.

        

       높은 레벨의 게임은 잘 뒤집히지 않는다. 고로, 레드팀은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는 뒤늦게 막을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갑자기 레어템을 찾아내는 도적이라지만……상자 주도권마저 적에게 온전히 넘어간 마당이니.

        

       서렌을 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버티고 있는 건, 오로지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렇게 쉽게 무릎 꿇을 수는 없다는.

        

       그리 버틴 덕분일까.

       

       기회는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수호병을 낀 수성 교전이 또다시 레드팀의 후퇴로 끝나려던 순간. 수호병의 사망 직전 돌진 패턴에 블루팀의 마법사와 사제가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빠르게 첨탑을 점령하고, 위에서 지원을 퍼부으면 게임을 끝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몇 걸음 급하게 들어갔던 대가였다.

       

       방심과 조급함의 조합. 그 결과, 치명적인 틈이 열렸고-

        

       게임 내내 짓밟히던 레드팀의 도적이 이를 악문 채 그 틈새로 달려들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도적에 매진해보니, 암살자는 하루종일 헛짓거리를 했어도 상대 뒷라인 한번 끊어내면 싹 세탁할 수 있더랬다.

        

       그리고 도적은 본능적으로 지금이 그리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느꼈다.

        

       뒤늦게 경로를 차단하려 달려오는, 푸른 휘장을 두른 성기사. 앞세워진 방패를 노려보는 도적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건 아따먹이 몇 번이고 선보였던 곡예질이었다. 부딪히기 직전까지 접근하고, 생존기를 앞으로 시전하며, 오른손을 있는 힘껏-

        

       -퍼억!

        

       치명타를 알리는 경쾌한 소리.

       

        도착지점에 있던 마법사의 목에서 피분수가 솟았다.

          

        조금 전의 교전에서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던 걸까. 로브를 두른 노인은 단 일격에 끈 떨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지며 흙바닥을 굴렀다.

       

       “법사 다운!”

        

       -푹

       -푹

        

       몰려오는 아드레날린에 고함치며 내지른 브리핑.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상대 사제의 머리에 2개의 화살이 연달아 돋아났다. 끈질기게 들러붙던 아따먹을 대체 어떻게 떨쳐낸 건지. 아군 궁수마저 드디어 한 건을 해냈다.

        

       역전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하며, 도적은 땀이 스미는 손을 불끈 쥐었다.

        

       * * * *

       

       [작성자: 갱생도질]

       [제목: 컄ㅋㅋ 킹따먹 1등 달성 10분전]

       [도적 장인으로서 판단하건데 이건 게임 끝났다.

        

       자존심 강짜 부리느라 서렌 안 치는 거지

        

       드디어 도적의 대업이 완성되는구나……

        

       1등 기념 팬미팅같은거 하겠지?]

       –     선생님…….

       –     얼굴도 안 까는데 팬미팅을 하겠냐……

       –     ㄴ 사이버 팬미팅이어도 좋아 일대일 대화같은 거 있을거잖아

       –     ㄴㄴ 선생님…….

       –     어 뭐야 이거 잘못하면 역전 나오겠는데?

       –     ㄴ 육수의 저주 오졌다

       –     ㄴㄴ 입 닫아라

       

       * * * * 

       

       등수에 집착하던 시절도 있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던 시절. 아직 프로 씬이 정돈되기 전이었던 시즌 2 무렵에는, 높은 랭킹의 유저들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진다는 소문이 팽배했더랬다. 400등 안쪽으로 들어가면 쪽지 하나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에 몇 시간을 게임에 던졌는지.

         

        아마, 여기서도 비슷하겠지. 지금쯤 이메일 함에는 이런 저런 팀에서 온 연락이 쌓여 있지 않을까.

         

        아니, 아니려나. 나는 예외일지도 모르겠다. 프로들은 합숙을 해야 하니까.

        

       여자는 곤란하겠지.

         

        그리 생각하면, 조금은 아쉬울 만도 한데. 마음 속에선 자그마한 아쉬움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미련을 삭혀서 버릴 시간은 한없이 길었으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남은 건 작은 호기심뿐이다.

        

       그러면, 왜 이리도 힘겹게 1등을 찍으려는 걸까.

         

        떠오르는 답은 많았다. 증명……실력을, 도적을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이 여정에 힘을 실어준 시청자들에게 보답하고 싶기도 했고. 

        

       또……200등의 벽에 머리를 거하게 부딪히고 300등까지 굴러 떨어진 누구를 놀리기 좋을 것 같기도……응.

        

       모두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욱씬거리는 통증과 피로로 몽롱한 머리가 내놓는, 조금 더 솔직한 답변은 달리 떠오르더라.

         

        이름을 새기고 싶어.

         

       어느 날 이곳에 왔듯이, 어느 날 추방당하지 않을까. 그게 두려워 작은 요새에 숨어살던 세월이 얼마였는지.

        

       적응을 하려 애쓰면서도, 너무 익숙해지지는 않으려 했었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겠다고 관심을 모으다가도, 너무 많은 관심이 몰리는 것 같으면 화들짝 놀라서 도망갔더랬다.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했다.

       

       무서워서. 뭐가 무서운지 떠올리는 것도 무서워서, 생각조차 애써 지우며 살았다.

        

       이제는 아니다.

        

       언제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그렇게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그저 여기서, 이렇게……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다. 고마운 사람들에게는 고맙다고 말하고, 보고싶은 사람들을 굳이 이상한 짓으로 밀쳐내지 않으며.

        

       그러다가 어느 날 떠나가게 된다면- 뭐, 어떤가.

        

       내가 여기 있었노라고, 이름 석 자 새기고 가면 그만이다.

        

       그거면 만족할 수 있어.

        

       그리고 내 이름을 남기기에, 나오나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이 작은 교각에 매달려, 팬도 생기고……친구도 생기고. 또, 시청자들……그러니까, 인터넷 동료도 생겼으니까.

        

       -흐으…

        

       늘어트렸던 두 팔을 다시 끌어올리는 순간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가슴 인대가 더 아파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아프네.

        

       전황은 좋지 않았다.

        

       아군 마법사에 이어, 사제까지 아웃. 저 기사는 포지션이 이미 시체고. 나머지는……둘 중 하나는 포위당했고, 하나는 대치 중이라.

        

       전멸당하고 리스폰 타임을 맞추는 게 나을 지경이다. 몸 상태만 아니었으면 그랬을 텐데. 쉽지 않네.

        

       그래도, 괜찮아.

        

       장기전을 갈 여력이 없으면, 단기 결전으로 숨통을 끊으면 그만이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자세가 무너진 도적이었다. 돌진기를 공격과 결합하는 건 좋은데, 도착할 때 자세는 신경 써야지.

        

       이렇게.

        

       -퍼억!

        

       마법사의 시체 위로 고꾸라지는 상대 도적. 빨리 치워져서 다행이었다.

        

       현실 체력도, 게임 속 스태미나도. 소중하게 관리해야 하는 자원이니까. 그것도 급속도로 소멸하고 있는.

        

       하지만,

        

       충분해.

        

       * * * *

        

       -파앙!

        

       도적의 볼을 스치고 지나간 화살이 허공에 붉은 액체를 흩뿌렸다. 얕은 공격. 데미지는 줬으나, 경직은 없다.

        

       저 화살이 빗나갈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미리 연계기를 시전한 기사에겐 최악의 소식이었다.

        

       -부웅!

        

       반 보를 물러난 도적의 콧잔등을 스치며,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가르는 검날.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는 거리 감각이었다. 짧은 아밍 소드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는 순간이었으나, 쓸데없는 후회를 할 여유는 없었다. 시간은 분명 저들의 편이었으니.

        

       그러나 어떻게든 이 도적만 끊어낸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중앙 첨탑까지도 수복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역전의 발판이 생겨난다. 

        

       기사는 도적이 파고들 경로를 방패로 차단하며 검을 휘둘렀다. 다시, 회피. 최적의 타이밍에 회피했음을 알리는 이펙트가 터져 나오고- 단검을 높이 휘두르는 듯하던 도적이 바닥으로 넘어지듯 낮은 자세를 취했다.

        

       상단 페이크 후 하단인가. 예상한 공격이었으니,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설령 저 공격을 허용하더라도 치고 받으면 도적의 손해다.

        

       ‘방패 내리고, 검은 깊게-‘

        

       -퍼억!

        

       유효타를 알리는 타격음. 그러나 어째서인지, 정면에서 들려와야 할 소리는 등 뒤에서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돌아본 건 탱커의 본능 때문이었다. 후열이 공격당하고 있다면 조금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빠르게 합류해야 하기에.  

        

       허나, 의미 없는 움직임이었다. 메즈를 시전하겠다던 마법사는 이미 쓰러지는 중이었던 고로. 

        

       동료의 자리에 남은 건 시체뿐이었다.

       

       이마에 단검이 깊이 박힌.

        

       ‘투척을……? 언제? 아니, 모션 없었잖아?’

        

       저스트 회피 모션으로 투척 모션을 캔슬 시키는 기술. 스킬과 버그의 중간 지대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다가 막바지에나 스킬로 인정받은 기술이었다. 그러나 시즌을 몇 개고 거슬러 올라온 고인물이 선보인 기예를, 처음 본 사람이 어찌 파악할까.

        

       몰려오는 당혹감에 일순 혼란에 빠진 기사가 다시 시선을 정면에 향했을 때, 도적은 빈 왼손을 슬쩍 내밀고 있었다. 손을 감싼 판금 건틀릿이 번쩍, 하고 빛나는 순간.

        

       허리를 깊게 숙인 도적이 땅을 박찼다.

       

       이어서, 일격.

       

       깊었다.

       

       움찔, 굳어버린 움직임을 확인하자마자 경직 상태를 이용한 연격이 퍼부어지고-

        

       기사의 피가 흙바닥을 덮어버릴 기세로 쏟아졌다. 상당한 양.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피해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기사가 방패를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급소만 막으면 된다. 잠시나마 본대의 수적 우위가 있으니까, 조금만 버티면…….

        

       그 안일한 생각은 분명 실수였으나- 경험 부족을 탓할 수밖에.

        

       싸움 도중에 은신을 하는 경우의 수를 떠올리기엔, 도적을 상대해본 횟수가 너무 적었을 뿐이다.

        

       이미 허공으로 흩어진 도적의 흔적을 찾아 다급하게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나마 들리는 발걸음 소리로도 정확한 방향은 확인되지 않는 상황.

        

       다친 기사에게 힐을 주기 위해 다가오던 사제의 뒤에서 나타난 도적을 포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뒤! 뒤!”

        

       -푸욱

        

       기사의 비명에 묻힐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목덜미의 얇은 피부를 뚫고, 경추의 틈새를 비틀어 열며, 신경을 끊어버리는. 필요 이상으로 사실적인 피격음이 귀를 가득 메웠다.

        

       이어서 실이 끊긴 인형마냥, 사제가 천천히 허물어지고-

        

       남은 건 저 쪽에서 오소독스와 대치하고 있는 기사와, 스킬이 모두 빠진 궁수. 그리고, 출혈 상태로 죽어가고 있는 자신. 그나마 한 명이 상대와 동귀어진을 한 덕분에 수적 우위는 3:2로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저걸 한 명으로 쳐도 되는 걸까.

        

       날아드는 화살을 건틀릿으로 흘려가며 궁수에게 접근하는 도적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기사는 마음 속에서 타오르던 전의가 사그라드는 것을 절감했다.

        

       .

       .

       .

        

       성문을 두들기는 기사들의 공격이 거셌다.

        

       벼랑 끝까지 몰린 채 수성하는 전사들은, 지켜보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최후의 최후까지 항전하고 있었으나- 그리 바쁘게 병장기를 휘두르는 모두가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 싸움은 끝났다.

        

       그래서였을까.

        

       석양에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성벽이 훤히 보이는 첨탑 위. 전장에서 벗어난 도적은, 난간에 걸터앉은 채 오연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깊이 눌러쓴 후드에 얼굴을 감추고, 한 자루밖에 남지 않은 단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며.

        

       그럼에도, 왜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승리를 만끽하냐며 비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압도적으로 적을 짓누르고, 우연한 역전의 기회를 다시 손수 부숴버린 장본인이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여기 있었어요.》

        

       그보다는, 어쩐지 후련한 듯한. 조금은 떨리는 그 목소리에 무어라 말을 얹기 어려운 탓이었으리라.

        

       《여기, 있었어요.》

        

       수 만명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말.

        

       《여기……있을게요.》

        

       -흐흫

        

       그와 함께, 작은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곳저곳을 피로 물들이고 불태워가며 빼앗은 왕좌에 앉은 사람치고는 퍽 부드럽고- 또, 아련한 웃음이었다.

        

        

        

        

        

       아따먹.

        

       주 캐릭터, 도적.

        

       MMR 2830.

        

       랭킹 1등.

       

       

       

       첫 시즌의 우승자가 탄생하는 순간.

       

       그 주인공인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의 방송에,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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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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