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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사실 나는 시골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철저하게 도시에서만 살아왔던지라, 어느 시간에건 생필품을 간단하게 구할 수 있고, 조금만 가도 대형 마트가 있고, 굳이 내 차가 없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일상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도시가 좋았다.

        

       주변이 논이나 밭뿐이거나, 산뿐인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군 생활을 강원도에서 해서 산에 대한 인식이 몹시 나쁘게 박혀 있었다. 평생 탈 산은 여기서 다 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서울에 살 때도 산에는 올라가지 않았고.

        

       아니지, 그건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그냥 내가 게을러서 그랬던 건지도.

        

       물론, 지금 우리가 굳이 산을 타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냥 양혜인 할머니 집이 산에 있었다.

        

       차가 못 들어온다거나, 주변에 집이 한 채도 없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을이 넓은 편도 아니다. 여기서 보면 한눈에 거의 다 내려다보인다.

        

       아마도 과수원인 듯한 곳이 조금 있었고, 나머지는 완전히 산이었다.

        

       시야가 턱 막히는 것이 조금 답답했다.

        

       왜, 나는 좋은데.

        

       툇마루에 나와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사라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시끄럽지 않잖아. 누가 감시하지도 않고.

        

       감시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야 당연히, 앞뒤가 산이니까. 도심에서 사람 사이에 숨으나, 산에서 나무 사이에 숨으나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군에서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겪어본바, 군복의 위장무늬는 생각보다 효과적이다.

        

       ……참 멋없는 소리를 하네.

        

       사라가 투덜거렸다. 입을 삐쭉이는 것이 눈에 보일 것 같아서, 나는 살짝 웃고 말았다.

        

       뭐, 그래도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여기는 공기도 맑고, 아마 밤에 별도 잘 보일 테니까. 산 높이 있는 진지에 올라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던 적도 있었다. 문제는 그게 하루 이틀만 봤을 때나 예쁘다는 거지만.

        

       그러니까 왜 사고가 다 군대 시절 이야기로 흘러가는 거냐고…….

        

       사라가 힘이 쭉쭉 빠진다는 듯 다시 투덜거렸다.

        

       “…….”

        

       나는 사라의 말대로 풍경에 조금 더 집중해 보았다.

        

       아니, 집중하던 것을 그만두었다고 해야 하나.

        

       눈에 힘을 풀고,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본다.

        

       툇마루를 짚은 손끝에 느껴지는 오래되어 퍼석하게 마른 나뭇결.

        

       저 멀리 지나가는 도로로 이따금 들리는 차 소리.

        

       멀리서 우는 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 그리고 멧비둘기 특유의 기묘한 박자의 울음소리.

        

       바람이라도 한 번 훑고 지나가면 싸아, 하고 나무들이 한 방향으로 나뭇가지를 흔들며 내는 소리가 들리고, 시골집 특유의 툇마루 사이로 부드러운 자연풍이 그대로 느껴졌다.

        

       음, 이렇게 느껴보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적어도 이런 날씨에 나와 앉아있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회색빛 담벼락도, 안쪽에는 할머니가 가꿔둔 꽃들이 잔뜩 핀 화단이 있어서 생각보다 엄청 예뻤고.

        

       그렇지? 나도 이런 곳에 작은 집 하나 지어두고 꽃이나 키우고 살고 싶다.

        

       물론 한여름과 한겨울이 오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진짜 끝까지 이러기야?

        

       그렇게 의식 속의 사라와 티격태격하는데, 옆에 누가 와서 털썩 앉는 소리가 들렸다.

        

       소희였다.

        

       소희는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를 한과와 과일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소희는 입에 약과를 하나 물고 있었다.

        

       “머을래?”

        

       입에 약과를 물고 있어서 그런지, 소희의 발음은 불분명했다.

        

       “아니, 나는 괜찮아.”

        

       ……진짜로 괜찮았다. 안 그래도 이제 진짜 위가 가득 찼으니까.

        

       늘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양혜인의 할머니였지만, 이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할머니와 비슷했다. 자기 손주들…… 그리고 그 손주를 따라온 귀여운 아이들을 열심히 먹이면서 보람을 느끼시는, 뭐랄까, 우리가 할머니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런 할머니.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금 더 불편했다.

        

       아니, 할머니가 싫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양혜인이 고향 이야기하면서 부모님께서 살고 계신 집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말은, 지금 그녀에게는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을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할머니가 바라볼 사람은 손녀인 양혜인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불편했다.

        

       “맛있는데.”

        

       소희는 내 거절 의사를 듣고 조금 아쉽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늘이랑 수아는?”

        

       “아직 방에 있어. 할머니 이야기 듣는 중.”

        

       “이야기?”

        

       내 물음에,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 옛날얘기. 액자도 꺼내오셨어.”

        

       “어…….”

        

       걔네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과연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양혜인과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인 나도 그런 식으로 양혜인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엄청나게 불편할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양혜인과 최소한의 친분이 있는 소희가 아니라 하늘이와 수아가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도 조금 이상했다.

        

       “뭐, 나는 너의 메이드니까. 그거 알아? 아직 근무 시간인 거? 양혜인 선배가 휴가 중이니 내가 전속 메이드 노릇을 해야지.”

        

       그리고 소희가 약과를 불쑥 내밀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입으로 받아버리고 말았다.

        

       “…….”

        

       그런 나를 보고, 소희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것도 일종의 학습효과일까?

        

       *

        

       결국 ‘먹을 걸 더 못 먹겠으니 바람이나 좀 쐬겠다’라는 변명도 슬슬 그 지속시간이 다 되어가서, 나는 얌전히 소희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아, 사라야, 여기 좀 봐.”

        

       방에 들어가자마자 하늘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늘이와 수아는 할머니 옆에 앉아서 열심히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여기, 혜인 언니……의 초등학생 때 사진이래.”

        

       우와.

        

       혜인 언니라니.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두 단어의 조합이다.

        

       양혜인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그 셋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흡사 등신대 피규어라도 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를 보는 하늘이의 눈이 도움이 절실해 보였으므로, 나는 하는 수 없이 펼쳐진 앨범 근처로 갔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도,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사진도 아닌, 필름 사진을 인화한 것 같은 사진이었다.

        

       실제보다 조금 더 노란 기가 감도는 그 사진에는, 한 어린아이가 활짝 웃는 사진이 찍혀있었다.

        

       머리카락이 단발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양쪽에는, 아이와 몹시 닮은 어른들이 두 명 서 있었다. 한쪽은 여성이었고, 한쪽은 남성이었다.

        

       아마 가운데 있는 아이가 어린 시절의 양혜인이고, 양쪽에 서 있는 어른들이 양혜인의 부모님이리라.

        

       “아…… 예쁘네.”

        

       나는 그냥 무난한 말을 했다.

        

       그리고, 그건 딱히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어린 시절의 양혜인은 예쁘게 생겼었다. 지금의 양혜인도 아주 예뻤으니 어린 시절에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딱히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그렇지? 우리 혜인이가 어릴 때부터 예뻤어.”

        

       문제는 내 말에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며 엄청나게 좋아하셨다는 거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 부동자세로 앉아있는 양혜인은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여기서 양혜인이 어떻게 반응해도 나는 강렬한 어색함을 느낄 자신이 있었다. 얼굴을 붉히면서 좋아해도 이상했고, 대놓고 싫어했어도 불편했을 거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무반응인 쪽이 가장 덜 불편했다.

        

       그렇다고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따라오겠다고 했을까. 나는 다시 한번 고민해보았다.

        

       “이건, 어, 그러니까…….”

        

       그 불편함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초등학생 때의 모습인가요?”

        

       결국, 나는 그런 무난한 질문을 꺼냈다.

        

       “그럼, 초등학생 때지. 중학생 때부터는 쭉 서울에 살았으니까.”

        

       할머니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

        

       음.

        

       뭐랄까.

        

       여기서 더 파고들면 진짜 엄청나게 불편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혜인이가 어렸을 때—”

        

       “할머니.”

        

       하지만 다행히도,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지기 전에 양혜인이 먼저 할머니의 말을 끊었다.

        

       “밭은 잘 되고 있어요?”

        

       “밭?”

        

       할머니는 양혜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응. 밭. 저 뒷산에 하나 있었잖아요.”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양혜인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가족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말투와 목소리였다.

        

       하지만 묘하게 연기하는 것 같은 분위기이기도 했다.

        

       “그럼, 아직도 하고 있지. 고구마가 나오려면 한참 남았지만…….”

        

       “나, 보러 갈래.”

        

       “지금? 아직 캘 수 있는 시기는 한참 남았는데?”

        

       “굳이 캐지 않아도 얼마나 자랐는지는 알 수 있잖아요. 보러 갈래.”

        

       “그래?”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우리 손녀가 보겠다는데 봐야지. 같이 가자.”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시는 할머니.

        

       “아가씨들도 같이 갈까? 고구마 자라는 거 볼래?”

        

       “굳이 그럴 건 없고.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잖아. 좀 쉬고 있으라고 해요.”

        

       “응? 아, 그럴까…….”

        

       할머니는 묘하게 아쉽다는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양혜인이 하는 말이, 갑자기 억지로 짜낸 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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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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