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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왜 아까부터 핑거 푸드가 리필이 안 되는 거야? …웨이터가 안 돌아왔다는 게 합당한 변명이야??”

         

         술을 머금어도.

         

         “……난 아직도 자네가 굳이 그런 싸구려 업소에서도, 수술할 돈조차 없어서 너저분한 몸뚱아리로 꾸역꾸역 출근하는 인간만 지명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어.”

         “쯧쯧, 그렇게 모르는 티를 내기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서비스의 질은 떨어져도 팁 한 번에 울고 웃는 그 절박함이 맛있는 거거늘…!”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흐음, 세렌디피티 부티크(Boutique; 양품점, 개성적인 의류나 액세서리를 취급하는 가게)의 디자이너 분께서는 질리지도 않고 저런 걸 즐기시나 보네요? 작년에도 성전환 시술 직후에 저러시더니.”

         “주기적으로 쾌락 중추의 역치를 낮추고, 특수한 약물을 처방받는 걸로 도파민 단식 상태를 유발한다고 하시네요. 그래야 매번 새롭게 즐길 수 있다나, 뭐라나.”

         “어쩜… 겁도 없으시지. 뇌는 검증된 의약품이랑 임플란트로만 건드리시는 게 좋을 텐데….”

         

         어느 방향으로 귀를 열어도.

         

         “아으아아아! 비정한 세상이여—! 나를 가두기엔 너무나 좁은 감옥이여~! 어찌하여 나를 위성 방송 채널이 34792개밖에 없는 삭막한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나이끄아아…..!!”

         “…저 기자 친구는 왜 저런대?”

         “약효를 빨리 체감해야 기사를 쓸 수 있다면서 브랜디에 타서 한방에 쭉 들이키더라고? 아마 곧 쓰러지지 않을까.”

         

         “…….”

         

         영양가가 있기는커녕, 자신의 흥미를 정말 눈곱만큼이라도 끌 인물이나 주제조차 보이지 않는 무가치한 광경에.

         

         에다마츠 아마기, 최근 쓰일 일이 없던 애칭 겸 아명인 쇼우로 불리는 일이 잦아진 그는 참지 못하고 모든 외부 자극을 일시적으로 차단해버렸다.

         

         뒤쪽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성관계를 한껏 즐기다가 나온 탓에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건 양반.

         

         술기운이 전혀 가시질 않아서 흐느적거리는 인간이나, 심하면 몸 곳곳에서 기막힌 화학 작용이 한창이라 동공이 풀린 상태인데도. 꾸역꾸역 건배사나 축사를 해야 한다면서 책임감(?) 넘치는 바보까지 있었으니.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럼 그들이 혐오스러워서 그랬냐?

         …글쎄. 쇼우 자신도 공허함과 갈증을 달래보고자 어지간한 자극 행위나 대용품 따위에 열중했던 시기가 분명 있었으니까, 그런 걸로 차별할 생각은 없었다.

         

         온갖 기호품, 별의별 유희, 그걸로도 부족해 어렵게 공수한 엘리시움의 기억 영사기마저 남용해서 현실로부터 도피하던 입장에서 본다면.

         

         아무리 중요한 일 때문이라도.

         단지 약간의 술과 담배, 거기에 취미가 비슷한 타인과의 대화만으로 헤실헤실 풀어져서 근심걱정 없는 것처럼 구는 이들 한복판에 서있다는 상황이 주는 피로감이 보통이 아니었던 게 주된 이유이리라.

         

         “후우…….”

         

         한숨…이라기보단 침울한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녀가 당장 옆에 있었다면 냉정한 척 외면하고 있다가도, 자신이 뭔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살피고자 수줍게 기웃거리는 -본인은 어디까지나 최대한 선심 쓰는 거라는 자세를 취하지만, 그 점이 정말 그의 심장을 괴롭혔다- 태도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애당초 이런 불쾌한 기분이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복잡하게 경우를 따질 것 없이 아나스타샤가 근처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릴 적 이후로 입에 달고 살았던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를 전부 끊어버렸으니까.

         

         …물론 오히려 열심히 복용하기 시작한 다른 약물도 생기긴 했다.

         가령 혈액 순환을 늦추는 조절제라던가, 심박수를 느긋하게 만들어주는 베타 차단제라던가!

         

         전혀 새로운 관계를 쌓는 도중이고, 쇼우가 양식과 단계를 차츰 밟은 뒤에야 일선을 넘을 생각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자꾸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신뢰하고 있다.’는 것처럼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검은 소녀를 벌써 잡아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전을 진행하기 위한 핵심적인 일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더라도.

         아나스타샤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되는 원인이 바로 앞쪽에 있었으니.

         

         “꺄악…! 사장님은 어쩜 날이 갈수록 센스가 좋아지실까 몰라! 옷이며, 여기 인테리어며 아주… 아니면 그냥 미모가 물이 오르시는 건데, 내 눈이 못난 건가 봐요!”

         “커흠, 커허허흠! 카사네 사장, 저번 선물을 잘 받으셨소이까? 어떻게 답장이라도 돌려주셨다면….”

         

         “흐음…. 다들 나름대로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렇지만 아무리 흥겨워도 한 명씩 순서를 지켜서 말해주겠어? 밤은… 아직 기니까 말이야.”

         

         저 벌레 무리 마냥 몰려든 군중들을 보라.

         

         교태로운 콧소리, 고혹적인 미소, 가끔은 팔뚝을 때로는 턱을 살짝 어루만지는 손놀림으로.

         추종자들을 어르고 달래는 건 기본. 거리를 잘못 잰 바보를 능숙하게 제어하며-떼어내며-, 좌중을 휘어잡고 흐름을 이끄는 요부.

         

         친목 도모나 교류가 명목인 사교회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이 자리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카사네 아마기. 이번에 우연히 차례를 넘겨받았을 따름이지, 굳이 주최자라는 직함이 없었더라도 그녀는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끌어들였을 능력이 충분했으나.

         

         그런 카사네와 아나스타샤가 엮인다는 게.

         여기서 추가로 벌어질 예정 행사가 다소 과격한 것도 하나였지만, 무엇보다 저년의 눈에 자신의 반려가 계속 담기는 걸 참아주기 어려웠다.

         

         ……특히나 평생을 시달려온 악몽의 주범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여자라면 절대, 더더욱.

         

         “……하?”

         

         그녀의 뾰족한 눈꼬리가 가일층 치솟았다. 반대로 미려한 눈썹은 사납게 내려앉았고.

         

         시야에 들어온 서로가 거슬리는 건 마찬가지. 그냥 못 본 척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 자신을 더럽게 마음고생 시킨 주범이 아직도 태연하게 술잔을 돌리며… 밉살스럽게 비싼 컬렉션만 축내고 있는 광경은 탐탁치 않았다.

         

         게다가 안 그래도 아까의 망측한 말다툼을 직관한 티엔 중장의 태도가 굉장히 미적지근해져서, 어렵게 구축한 상호간의 암묵적 이해가 손상된 게 틀림없다는 짜증이 분분했으니.

         

         또각… 또각.

         

         여기서 거슬리는 방해꾼을 확실히 치워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카사네는 홀을 가로질러 쇼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싸움을 팔린 그는, 다가가는 수고를 덜어준 거 하나는 고맙다고 속으로 싸늘하게 냉소했고.

         

         “내가 분명 부탁하지 않았니? 적당히 놀았으면 자리 좀 비켜달라고. 혹시 너무 오래 은둔하다가 나와서, 행사 분위기에 취해버렸어? 아니면 소싯적에 놀던 너를 못 버틴 파트너가 실신해서 시간 죽이러 나왔다던가.”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수싸움은 자신이 이겼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카사네는 뿌릴 콩고물도 없고… 호스트에게 환영받지도 못하는 불청객이 왜 여태 버티고 있냐는 듯이 이만 좀 꺼지라는 말을 면전에 내던졌다.

         

         그 와중에도 가장 확실한 반응을 돌려주었던 아나스타샤를 어떻게든 또 걸고 넘어져서 가면을 벗기려는 정교한 수작질은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칭찬할 만했다.

         

         실제로도 방송 업계 관계자들은 이 필터 없는 기싸움이 어찌 흘러갈지 상당히 꽤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기싸움이라는 건 다른 쪽도 정해진 테두리 내에서 응할 생각이 있어야 성립하는 법.

         카사네 아마기의 큰 실수가 두개라면, 하나는 이 순간에도 재밌는 말장난으로 그녀의 주의를 끌어야 할 이유가 실시간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제 파트너라면 지금쯤 볼일도 마쳤으니 슬슬 돌아가고 있을 겁니다.”

         

         “뭐……?”

         

         미쳐버린 개는 상황을 재면서 무는 게 아니라.

         나중에 안락사 당하건 말건 일단 그 이빨을 살덩어리에 박아 넣고, 힘이 다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챈 것.

         

         예전에는 배후 조사가 목적이었기에 예의를 갖춰서 세무 감찰 정도로 수위를 조절했지만… 아예 무너트리기 위해 온 지금은? 몰락 작전의 진행 상황이 계속 귓전으로 속속 들어오는데, 아직도 자신이 참아줄 이유가 있나? ……그럴 리가!

         

         “지금부터 못 볼 꼴이 많이 나올 텐데, 제 색깔과 제 형상만으로 가득 채워도 모자랄 순백의 도화지에 더러운 핏자국이 튀어서야 절대 안 될 말이니까요.”

         

         “……에다마츠, 너 정말 처돌았어…? 대체 무슨 또라이 같은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러는 건지는 몰라도, 당장 내 눈앞에서…!”

         

         마치 경고를 무시하고, 그 입으로 파트너를 재차 언급한 대가로 진짜 죽여버리겠다는 것처럼 섬뜩한 표정을 짓는 쇼우를 잠시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면 카사네가 정신을 차렸다. 쏘아붙이려던 모욕도 급하게 끊었지만.

         

         꼭 쇼우의 협박, 혹은 협박을 넘어 불길한 암시가 일렁이는 말 때문이라 하기보다는. 밖에서 울리기 시작한 어마어마한 양의 총성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었겠다.

         

         “!? 너 이 씹새끼가!!”

         

         뭔가 잘못됐다. 그것도 많이.

         강하게 헛숨을 들이켠 카사네가 다급하게 보안 네트워크를 망막에 띄웠다.

         

         주요 통로 화면… 정상. 내부 근무조… 이상 보고 없음. 외부 녹화 장치… 평화로움.

         

         “지랄은…!”

         

         그렇지만 이 모든 지표들은 밖에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는데, 신뢰하는 추적자는커녕 직원 중 아무에게서도 제대로 된 보고가 들어오지 않는 시점에서 모조리 비정상을 뜻하는 적신호나 다름이 없었으니.

         

         절대 후회할 거라는 눈빛으로 쇼우를 한차례 노려본 카사네가 직접 상황을 알만한 부하를 찾고자 발을 움직였다.

         

         그러니까 아직도. 그녀는 상식적으로 손익을 따져보고 있는 것이었다. 불쌍하게도.

         

         쿠당탕—!!

         

         “헙!? 카사네님!”

         “꺄아아악……! 어떡해!!”

         

         툭, 무심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힐을 신은 그녀의 발을 걸어서 넘어트린 쇼우는 옆 테이블에 있던 적당한 병을 집어 들어 꼴꼴꼴… 하고 반쯤 빈 술잔을 다시 채웠다.

         

         그 모습을 본 충직한 부하 중 하나가 다급하게 옮기던 쟁반을 내려놓고 권총을 뽑으려 했으나….

         

         으득!!

         

         “끄아아아악!?”

         

         곧바로 움직인 쇼우의 경호 추적자로 인해 손목이 부서지고 쓰레기처럼 바닥에 팽개쳐졌다.

         물론 그 광경을 보고도 허리춤에 손을 댄 무장 직원들은 많았지만 그들의 손이 미묘하게 떨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렇게 주변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자신을 막아볼 인간이 있으면 얼마든지 움직여보라는 듯, 천천히 쓰러진 누나에게 다가간 그가 들고 있던 잔의 내용물은 친절하게 정수리에 부어주었다.

         

         흡사 이제 그만 달콤한 꿈에서 깨고, 정신차리라는 것처럼.

         

         “…한 번만 말하지. 약물 생산 체계 임시 담당자 카사네 아마기. 기밀 유출 및 사취 공모죄로 그대의 임원직은 효력 정지되었으며, 현재 본사 조사팀과 현장 판독팀이 오고 있으니 최대한 협조하도록.”

         

         “효력 정지…? 현장 판독!? 너 이 개좆 같은 젖먹이 코흘리개 새끼!!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꾸민 거야—!! 이사회에 그딴 권한은 없잖아! 병신 머저리가 누구한테 속는 거야!!”

         

         “속은 게 아니라, 방금 막 증거물 압류 소식을 전달받은 최고 위원회에서 인가가 났다. 명백한 과반수 동의로.”

         

         “!?”

         

         째지는 듯한 비명이 뚝하고 끊겼다.

         에나마의 최고 위원회는 3인으로 구성된다. 장남 쇼우토, 영부인 스즈나시, 그리고… 오츠게 회장 본인.

         

         ‘무기한 휴직’으로 분류된 스즈나시에게 의결권이 없다는 걸 고려하고, 오랜 시간 유명무실하게 제구실을 하지 못하던 위원회에서 과반수 동의가 나왔다는 건…!

         

         쩍 벌어진 입과 충혈된 두 눈.

         정확히는 알기 힘들어도 뭔가 명분이 있는 걸로 보이자마자, 배경을 내세워서라도 쓰러진 카사네를 도울 것 마냥 움찔거리던 일부 참석객들의 행동이 멈췄다.

         

         참으로 얄팍한 관계라고. 쇼우는 야박하게 평가했다.

         미세한 신경전이나 입장 대립에서야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기반을 통째로 판돈으로 걸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당연하지 않았으니까.

         

         “파티는 끝났다. 지금부터 반항하는 자들은 상황 종료 후에도 통상적인 귀가 조치가 바로 이루어지기 힘들 수 있음을 분명히 하겠다.”

         

         와장창!!

         쿠구구궁——!!!

         

         발코니로. 그리고 외부를 향해 난 창문으로.

         유리나 가벽으로 된 구조물이 일제히 깨져 나가며 레펠 강하, 또는 호버팩(Hoverpack; 제트팩, 단 제자리 부유까지 가능한)을 착용한 괴한들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뭐야, 이 특종거리는!”

         

         여기저기서 카메라가 번뜩이는 건 다목적 특수 보병들에게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식적인 출동마다 겪는 일이기도 했고, 그들이야 건드리면 곤란한 귀빈들이 벽 근처로 피신한 걸 확인한 걸로 족했으니.

         

         “잠깐, 잠깐잠깐잠깐잠깐. 쇼우? 우리 귀여운 막내. 마음 여린 아가. 아버지가 오빠한테 힘을 실어주는 흉내를 냈을 리가 절대 없으니까. 네 감언…이 아니라, 조언을 따르신 게 분명해. 맞지? 맞지?? 응? 지금 아주 큰 오해가 있어. 직위 해제 같은 형벌이 나올 만한 거사에 나는 손댄 적이 절대 없다고…! 제발, 제발 믿어줘. 응??”

         

         부재중인 지휘부와 엘리트 병력의 차이로 인해 무난하게 체념하는 휘하 병사들을 본 카사네가 접근 방식을 바꿨다.

         

         최고 위원회의 정식 의결이 한 발 걸쳤다면 앞에 있는 에다마츠 이사는 아무리 밉고 거슬리더라도, 주된 적이 아닌 유일한 소통 창구나 매한가지다.

         

         허면 추하게 애걸하는 한이 있더라도 매달리는 게 맞다는 이성적인 결론에 그녀는 도달했고.

         

         “……그렇습니까? 그러면….”

         

         엉뚱한 피해자인 카사네는 전혀 몰랐겠지만.

         쇼우는 이 짤막한 기회, 스스로가 형제 자매들의 운명을 쥐어 그들이 무엇을 요구받던 머리를 처박아야 하는 상황을 아주 오랜 시간. 구체적으로는 거의 30년을 기다려왔다.

         

         조용히 또한 부드럽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쇼우의 얼굴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흠뻑 젖은 생쥐의 옆으로 다가갔다. 장내가 소란스러운 와중이기에 설령 추적자라도 엿듣지 못할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제가 정말 알고 싶은 정보가 하나 있는데… 혹시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님?”

         

         “!!”

         

         질문이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고 보는 예비 익사자를 그가 흐뭇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가학심이 자극되어서 기뻤나? 예전이었다면 그랬을 수도.

         앞으로 흡수하게 될 권한들이 기대돼서?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저 케케묵은 불가사의에 대한 진솔한 답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예감에, 아나스타샤를 만나서 많이 옅어진 증오가 머리를 치켜들었을 뿐이다.

         

         “거의 30년전… 기업 전쟁이, 어머님이 참변을 당하셨던 그 전날 밤. 정원에 철없는 꼬맹이가 몰래 나갔습니다. 공교롭게도 낮에 보물찾기를 하면서 숨겨 놨던 장난감을 찾으러 말이죠.”

         

         “…그 전날 밤? 정원??”

         

         이 망가진 녀석이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저 뜬금없는 스토리텔링이 정보와 어떤 연관이 있길래, 급박한 와중에 노래하듯이 풀어놓는 걸까.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많은 형과 누나 중에, 두 명이 목소리를 낮춰 밀담을 나누고 있더군요. 어린 저는 당시엔 이해할 수도, 누군지도 구분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다음날에 몸으로 직접 겪게 될 일을 ‘데드 링크가 간섭한 것처럼 꾸미고 위치를 흘릴 테니, 이 참에 회장직을 공석으로 만들자.’ 라고 잘도 간단하게 말했는데 말이죠.”

         

         “그…게, 무슨. 아니, 너. 설마….”

         

         안압을 견디지 못하고 실핏줄이 터진 두 눈에서 새빨간 핏물이 흘러내렸다.

         

         운명의 신은 장난을 좋아했다. 그것도 지나치게. 정작 목표였던 오츠게 회장은 긴급 출장으로 새벽에 자리를 비웠고, 너무 어렸던 쇼우는 그 진상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되는 평생의 짐이자 후회를 지게 되었으니.

         

         결국 죽은 건 더러운 음모 따위에 손가락 끝조차 담가본 적 없는 아마기 가문의 정신적 지주뿐.

         

         “그 때, 찢어 죽일 남자에게 반론조차 없이 고개를 끄덕인 독사 같은 여자. 너였냐, 카사네 아마기?

         

         “아…… 아니, 오해…. 아냐. 나는….”

         

         수십 년간 속에서 곪아서 기형적으로 뒤틀린 원념을 코앞에서 받아낸 그녀가 체통도 없이 턱을 덜덜덜 떨었다. 덤으로 넋이 나간 것처럼 말을 더듬었고.

         표독스러운 척은 다 하던 이 요부가 범인이 맞았다면. 하다못해 뭔가를 알기라도 했다면 목표가 조금 더 명확히 보였을 텐데… 아쉽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였다면 그동안 주변을 살피는데 투자한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별 수 없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차근차근, ‘사이좋은 가족’들의 뒷조사를 계속 해야지.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변명할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누님. 이걸 아시는 순간, 모두의 뇌를 산 채로 뽑아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격노하실 테니까. 본인들을 찾으면 반드시 직접 죽이겠다고 맹세했거든요.”

         

         “힉…!?”

         

         멋대로 새어 나오던 악의를 꾸깃꾸깃 주워담고 싱긋 웃어 보인 쇼우는 어느샌가 자신의 뒤편에 시립한 상태로 조용히 눈싸움을 하던 상처투성이 추적자와 본사 파견팀장을 확인했다.

         

         “…이제는, 그걸 슬슬 넘겨줄 수 있나? 추적자?”

         “미안, 하오나. 귀하는 전달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소이다. 크릅.”

         본래라면 감찰 이사인 자신이 끝까지 남아서 증거 감식 과정을 보고, 판결문을 낭독하고, 당사자에게 처벌을 고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그 업무를 냉정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본사 인물이나, 권한 대행 비서에게 처리를 맡기고 쉬러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우습게도 아니었다.

         복수는. 천천히, 허나 확실하게 이루어도 된다.

         이제 자신에게는 돌아갈 안식처가. 이 지치고 피폐한 영혼을 보듬어줄 구원자가 기다리고 있기에.

         

         불쾌한 초과 근무 정도야 가면이 아닌 진짜 웃는 얼굴로 해치울 수 있었다.

         

         “…감마. 장부 같은 걸 일부러 나한테 주려고 기다릴 필요도 없다. 빨리 판독팀에게 넘겨버려라. 그리고 돌아가서 원래 임무에 충실하도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식은땀을 폭포처럼 흘리는 누군가)

    이제 다음화로 에피소드 본편은 마무리 예정입니다만. 외전까지 연재하고 또 몇 일 쉬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일 연재분이 업로드되기 전까지 무기명 투표를 좀 진행하고자 합니다!

    주제는 외전 소재로.
    1. 일본에는 요바이라는 무시무시한 풍습이 있다고 한다! -> 아나스타샤 방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쇼우.
    2. 바보 아샤는 마약의 효과를 몸으로 살짝만 체험해보기로 했다! -> 약에 취해서 뒷 사교회장으로 터덜터덜 나가버리는 주인공.
    3. 님아…… 아무도 그런 거 원하지 않으니까, 헛소리말고 본편이나 잘 준비해주세요. -> 외전은 없었다. 세계는 평화로웠다.

    댓글에 어떤 식으로든 1, 2, 3 숫자 중 하나를 자연스럽게 포함해서 써주시면 해당 선택지를 고르셨다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해보겠습니다.
    참고로 노벨피아는 댓글을 수정하시더라도, 작가는 최초 원본을 확인할 수 있어서 ‘3’ 이라고 적으신 다음 댓글 수정을 통해 이모티콘을 통해 교체하셔도 저밖에 알 수 없습니다.(아마도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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