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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테르시안 제국의 황궁, 황제의 집무실.

     “저거 보게. 저걸 그레이 지브롤터가 수 년 전부터 고안하고 계획했던 것이라고 하더군.”

     합스베르크 황제는 벽에 반짝이고 있는 마나 에너지를 가리키며 히죽거렸다.

     “경룡이라. 눈 가리고 아웅을 해도 유분수지.”

     “그냥 우연이 아니겠습니까?”

     합스베르크 황제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뚱한 표정의 사내, 클레이돌 후작은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듯 불편함을 내비쳤다.

     “폐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폐하께서 저기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경룡 훈련을 원격 투영 천리안 마법으로 보고 계시는 건데, 왜 제 마나를 사용해야 하는 겁니까?”

     클레이돌 후작의 머리에는 마석으로 만들어진 정체불명의 기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그의 머리가 반짝일 때마다 그의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간 마나의 빛은 그대로 하얀 벽으로 투사되어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흡사, 현장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는 시야가 그대로 황궁에 실시간에 가깝게 투사되는 듯한 형태.

     영상마석과 원격 마도신호 전달, 그리고 천리안 마법 등이 어우러진 제국 마도공학연구 부서의 연구로 빚어진 기술은 지금 황제의 앞에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보이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거리에 비례한 압도적인 마력.

     그리고 여기에는 그 마력을 감당할 수 있는 마스터, 클레이돌 후작이 있다.

     “제3 기사단 녀석들의 마나를 혼자서 독식했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아니, 그걸 저 혼자 먹은 것도 아니고….”

     “자네가 마침 황궁에 있었고, 무엇보다 이건 적국의 군사훈련 동향을 시찰하는 게 아니겠는가. 국방부 장관이 당연히 시간과 마나를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냥 비룡을 가지고 속도 경쟁이나 하는 레이스 아닙니까. 경마랑 다를 바가 없는데.”

     “그렇게 보이는 건가?”

     황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입꼬리를 삐죽였다.

     “내 눈에는 누가봐도 비공정을 비룡으로 저격하기 위해 기획한 드라군 훈련으로 보이네만.”

     “그건….”

     “결과를 놔두고 끼워맞추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의 예상은 아마 틀리지 않을 걸세. 지금은 저렇게 땅에 처박고 있지만, 몇 년이 지나면 저들은 정예병으로 거듭나서 비공정을 상대로 공중강습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할 거야.”

     “제 생각은 다릅니다만.”

     

     클레이돌 후작이 머리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으며 입을 열었다.

     “비룡 기사단이 훈련하는 모습을 한 번 우연찮게 봤더니, 도저히 전설의 그 드라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놈들만 가득했던 거죠. 17살…아니 그보다 어렸을 때 봤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17살이 되기 전에 본 걸까?”

     “폐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아니, 그냥. 그래. 기우였으면 좋겠군.”

     합스베르크 황제는 느긋하게 팔걸이에 몸을 기대며, 스크린에 비친 그레이 지브롤터의 비행을 보며 히죽 웃었다.

     “만일 우리가 비행선을 개발하려고 했다라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알고 대응하기 위해 저걸 만든 거라면 천재고, 그게 아니더라도 상황에 맞게 대응방안을 미리 마련하는 준비된 인간이라는 것이니.”

     “그렇게 마음에 드십니까?”

     “그럼. 그레이 지브롤터가 만일 자네의 아들이었다면, 자네는 마음놓고 클레이돌 후작가를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저 친구가 제 아들이라고요? 하하, 무슨 그런 흉악한 말씀을. 저런 인정머리 없는 아들은 아들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 언제는 그레이 지브롤터가 합스베르크와 조금은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인 즉슨 황제가 인정머리도 없다는 건가?”

     “그럼요?”

     “…….”

     클레이돌 후작의 말에 합스베르크 황제는 잠시 침묵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인정머리 없는 건 사실이지.”

     “폐하도 마찬가지십니다만.”

     “하지만 자신의 편이 되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관심과 애정, 사랑을 주는 게 그레이 지브롤터라네.”

     “그래서 그 관심과 애정, 사랑을 받으려고 기어이 ‘비행선’까지 선물하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기대되지 않나?”

     합스베르크 황제는 앞에 놓여있는 붉은색 사탕을 집어들었다.

     “그레이가 내 추측대로라면 공군 사이의 전투에 대한 교범을 ‘단숨에’ 만들어낼 것이고, 그대의 추측대로 그냥 어려서부터 천재였다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에 준하는 교범을 만들어내겠지.”

     “새로운 이론과 학문, 전술을 만들어내는 타이밍으로 사람을 판단하시는 겁니까?”

     “그래. 역대 노스트럼의 영웅분들에 대한 판단 기준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야.”

     황제는 빈정거리며 사탕을 입에 던졌다.

     “전염병 같은 게 터졌을 때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고 그 복수를 위해 치료약을 연구하는 ‘현재의 천재’ 타입이냐, 아니면 전염병이 터지자마자 바로 치료제를 발명해낸…아니지. 전염병이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그와 비슷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그 누구도 몰랐던 약재를 조합하여 치료제를 만들어내는 ‘준비된 천재’ 타입이냐.”

     까득.

     “궁금하지 않나? 만일 전자라면 상관없지만, 후자라면 한 번 묻고 싶군.”

     “제국의 공군이 왕국의 공군을 상대로 선전했는가, 그걸 말입니까?”

     “아니. 후자라면 무조건 우리가 압도했지.”

     황제의 말에는 확신이 엿보였다.

     “저런 꼴의 용기병을 그냥 가만히 놔뒀다면 당연히 우리의 비공정은 저런 허섭쓰레기들에게 잡아먹혔겠지만, 저걸 어떻게든 뜯어고치려고 하니까 반대로 우리가 이겼다는 걸 확신할 수 있지 않겠나?”

     “그건, 어디까지나 ‘감았을 때’의 이야기라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물론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생각해볼 가치는 충분한 주제야.”

     어느덧, 경기는 1바퀴가 끝나가는 때.

     “앞으로 노스트럼의 용기병들은 바뀌겠지. 정예병으로 탈바꿈 할 것이며, 그걸 들쑤시게 만든 그레이 지브롤터를 향한 비난이 쏟아질 것이야.”

     “찬사가 아니고 비난…?”

     “자기들이 병에 걸린 줄 모르고 살다가 병에 걸렸다는 걸 알려준 의사에게 지껄여대는 환자와도 같은 게 지금의 노스트럼이 아닌가?”

     “그건 확실히,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레이 지브롤터를….”

     “괜히 이쪽에서 굳이 비난 여론을 만들 필요가 있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노스트럼의 전통주의자들이 알아서 그레이를 ‘나라의 치부를 드러낸 매국노’라고 비난할 테고, 우리는 그를 동정하고 이해해주는 여론을 만들어서 품으면 그만인 것을.”

     “여론에 휩쓸려 움직일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누구든 여론을 신경 쓰는 게 당연한 거야. 아무리 미친 존재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으하하하하ㅡㅡㅡㅡ!]

     “리가, 없는데.”

     경기장.

     2바퀴 째.

     “…저건 진짜 미친놈인가?”

     합스베르크 황제는 그레이 지브롤터의 앞을 달려가는 황금빛 비룡을 보며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저, 하.”

     “폐하.”

     클레이돌 후작은 얌전히 앞에 놓인 술잔을 들이켰다.

     “저는 때때로, 폐하가 저의 주군이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혹은 제가 노스트럼이 아니라 테르시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요.”

     “하….”

     “만일 노스트럼에서 태어났다면, 저런 인간을 군왕으로 모셔야했던 거 아니겠습니까.”

     “하, 정말.”

     합스베르크 황제는 고장난 마도기계처럼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로….”

     * * *

     

     “미친놈인가.”

     나도 모르게 육성이 흘러나왔다.

     스크린에 비췄으면 그대로 난리가 나겠지만, 다행히 스크린은 전방의 미친놈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으하하하하ㅡㅡ!”

     아무래도 술에 제대로 취한듯, 자신의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고삐를 움켜쥔다.

     안장의 상태를 보아 사실상 하반신이 안장에 고정된, 몸통을 뽑아내려고 해도 안장에 달린 금속 흉갑이 하반신을 딱 붙잡고 있어 뽑혀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도 비룡이 뒤집어서 날아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만큼 단단히 고정되어 있을 터.

     기승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냥 비룡 위에 ‘장착’되어 날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까 술 마시고 달리는 거지.’

     속도는 빠르다.

     기수의 실력이나 그런 것과 별개로, 오로지 노스트럼의 국왕만 탈 수 있는 비룡인 ‘황금룡’ 더 노스트럼은 태생부터가 드래곤의 핏줄로서, 비룡 중에서 가장 빠른 비룡이다.

     푸르르….

     니드호그가 이를 갈며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갑자기 뛰어나온 비룡이 왕국의 수호룡이라는 것과 별개로, 모처럼 두 바퀴 째의 계획을 망가뜨린 저 미친자의 존재 때문에 짜증이 난 것 같다.

     “니드호그.”

     푸르륵.

     내가 니드호그를 부르자, 니드호그가 막 앞으로 더 속도를 높이려다가 잠시 날개를 접는다.

     그리고는 아래로 고꾸라지듯 날았고, 곧 다시 유선형을 그리듯 우아하게 고도를 높인다.

     콰ㅡㅡ앙!

     니드호그가 날아가려던 궤적에 폭발이 일어났다.

     마도폭발로서, 성벽 위의 마법사가 일으킨 진로 방해용 폭발이었다.

     “으, 으아아! 미안해요, 이사장님!”

     “야, 앞 팀에 전해! 지금 선두, 국왕이라고!”

     마법사들의 외침이 귀에 쏙쏙 박힌다.

     아마도 선두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방해하는 게 이번 마법사들에게 주어진 임무지만, 그 임무는 ‘왕명’으로 내려진 건 아니다.

     “아니, 씨…! 미친!”

     그저 욕지기만 내뱉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

     그마저도 뒤따라가는 나를 향해 마법을 날리는 건 그들 중 일부가 충성병자이기도 하겠지만, 내 뒤로도 나를 향해 마법을 날릴 상대가 쫓아오고 있기 때문.

     “그레이 지브롤터ㅡㅡㅡ!!”

     뒤.

     제로스 바르셀 기사단장이 쫓아오고 있다.

     그 뒤로 이미 탈락했던 기수들이 죽어라 몸을 비룡의 등에 바싹 붙이며 쫓아오고 있다.

     맨 뒤.

     “어우야. 잡히면 죽이겠다고 하는 것 같은데.”

     종합적 수치와 부끄러움, 그리고 분노로 점철된 윈체스터 대공이 채찍 같은 걸 든 채로 멀리서 쫓아오고 있다.

     이미 누구 하나 등짝에 피를 낸 것 같은 살기 등등한 기세로, 윈체스터 대공은 나보다도 더 앞-전광판에 보인 음주비행사를 보며 수염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

     전광판에 순간적으로 보였다.

     윈체스터 대공의 적나라한 ‘ㅆ’단어가 입모양으로 보였다.

     “…나중에 저거 다 나를 향해서 한 거라고 무마해야겠네.”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그 누가 국왕을 향해 쌍욕을 대놓고 퍼붓겠는가.

     일반 사교계였다면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하겠지만, 윈체스터 대공도 순간적으로 잡힌 화면에 자신의 육두문자가 고스란히 관중석에 전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제국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윈체스터 대공의 실책 아닌 실책이지만, 내가 수습하는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 살린다 생각해야겠군. 니드호그!”

     저 욕설이 국왕을 향한 게 아닌.

     “전력으로 난다! 올려!”

     푸르르…!

     나를 향하도록.

     휘릭!

     니드호그가 순간적으로 속도를 늦추며 몸을 돌린다.

     나는 잡고 있던 발목에서 손을 놓고, 허공에 붕 뜬 채로 앞을 향해 몸을 숙였다.

     이대로 떨어진다면 당연히 탈락이 되겠지만-

     사륵!

     나는 니드호그의 등에 착지한 뒤, 바로 깃털 사이에 부착된 고삐를 붙잡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증명하면 되겠지.”

     니드호그가 날개를 크게 접었다가 펼치며 준비한다.

     “나의 이 ‘매국심’을.”

     ‘가속’을.

     “신성한 경룡장에서, 국왕이고 나발이고 없다.”

     몸을 최대한 수직에 가깝게 만들고, 뒤로 뻗은 지팡이 끝으로 마력을 모은다.

     “가속.”

     그리고 모은 마력을, 뒤로 단숨에 분사한다.

     파ㅡㅡㅡ앙!!

     니드호그가 날개를 접고 앞으로 튀어나간다.

     이미 빠르게 날고 있었는데, 그 중간에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순풍을 탄 것처럼 더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간다.

     별 거 없다.

     풍석으로 엘레베이터를 밀어올리듯, 내가 지팡이 끝으로 마력을 방출하여 풍석처럼 니드호그의 뒤로 마력을 분사하고 있을 뿐이니까.

     단지 그 마력은, 조금 ‘진심’을 담고 있기에.

     새애애액!

     “어?”

     니드호그는 앞서 달리고 있던 금색 비룡을 넘어,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없는, 비어있는 트랙을.

     ‘마음껏 욕하라.’

     사냥대회에서 눈치없이 국왕보다 더 많은 짐승을 잡는 자를.

     국왕이 출전한 기사 대련 대회에서 간발의 차로도 져주지 않는 왕국의 기사를.

     그리고 국왕의 난입에도 본인이 대놓고 1등을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대가리 위를 보란듯이 날아 1등으로 달리는 매국노를.

     아.

     대가리는 당연히, 비룡의 대가리다.

     대가리는 짐승에게만 쓰는 단어니까.

     우승은 인간의 몫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처음 보는 대회 1등 먹겠다고 뛰쳐나온 주정뱅이

    vs

    국왕이 1등하는데 그거 추월해서 1등먹는 백작가 장남(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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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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