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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178 – 교수들의 흉수조사>

     

    사다코는 물끄러미 손에 들린 장치를 내려다보았다.

    그날, 악몽에서 나와 발견한 장치.

    저주의 기운이 느껴져서 살펴봤더니 역시나 오크노디를 괴롭힌 저주는 그 안에 보관된 흔적이 읽혔다.

     

    ‘조사해볼 가치가 있겠어.’

     

    무언가 짚이는 기색이 있는지 장치를 보며 창백한 얼굴로 시선을 돌리는 오크노디.

    언데드를 상대로도 겁 없는 아이가 저렇게 티나게 두려워한다면 분명 이 장치에는 그녀가 두려워할만한 무언가가 개입되어 있다.

     

    “거울아 거울아. 이 물건의 이전 소유자의 얼굴을 보여주렴.”

    “허파 5개와 생간 3개를 주면.”

     

    거울의 대답에 즉시 마법배낭inventory을 풀어 강의용으로 준비했던 동물의 싱싱한 허파와 생간을 꺼내 거울 밑 서랍장에 집어넣는 사다코 교수.

    서랍장을 닫자 거울 전체가 맛이라도 보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으적으적.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아티펙트.

    맛 좋은 식사에 만족한 사람처럼 느슨하게 꿈틀거리던 거울표면 위로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 명의 학생.

    그리고 한 명의 상인.

     

    사다코 교수는 거울에 떠오른 상을 마법으로 인화해서 디스트로이어교수에게 넘겼다.

     

    “추적해. 오크노디에게 저주를 건 범인이야.”

    “학생은 내가 아니라 명호스님에게 맡겨라. 성인남성 쪽은 이주 내로 알아내고 연락을 주겠다.”

    “…그 교수. 믿을 수 있어?”

    “우리보다 전부터 교장의 부탁을 받아 오크노디를 감시하던 사람이다. 물론 교장과 관련된 만큼 깊은 정보를 주면 안 되겠지.”

    “이해했어.”

     

    오크노디 구출에 힘을 합친 세 교수.

    사다코. 디스트로이어. 명호스님.

    이중 명호스님은 오크노디의 악몽 속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는 모른다.

    교장이 아카데미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힘을 합치되 진심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는 없는 사이.

    목적은 같지만 그저 이용할 뿐인 관계.

    사람 좋은 명호스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에게 준 정보가 모두 교장에게도 전해질 수 있음을 감안하면 깊은 정보는 내어줄 수 없다.

     

    “이 학생이 누군지 알아내줘.”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이미 아는 학생입니다.”

    “…누구야.”

    “프라이머. 하급반 학생으로 기사학부 지망생입니다. 부여마법 강의를 주로 듣고 있는데 강력한 저주마법을 직접 걸 정도의 실력자는 아닙니다.”

    “다른 강의는?”

    “마법시계로 지금 확인해보죠. 흐음… 교양강의로 제국인문학, 고대문자를 알아보자, 사교댄스를 듣는다고 합니다.”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겠네. 하루 빨리 언데드가 되는 편이 낫겠어.”

     

    사다코 교수의 솔직한 감상에 사람 좋은 명호스님도 허허 웃을 뿐, 차마 부정하지는 못했다.

    교양이야 듣고 싶은 강의를 듣는 것이 맞지만 현실은 경쟁이 심한 학부에서 버티지 못하고 달아난 도피성 강의신청일 뿐.

    그저 학점을 채우기 위한 수강신청으로는 학기가 지날수록, 학년이 오를수록 아카데미에서 버티고 살아남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적당히 욕심 있고 적당히 무능하고 적당히 포기할 줄 모르고. 그런 적당함이야말로 이용해먹기 좋은 패이기는 했겠어.”

    “이 학생입니까? 오크노디가 저주에 걸린 이유가.”

    “다스트로이어와 내가 손을 썼어. 당신이 나설 필요까지는… 없어.”

    “아닙니다. 천존과 석가께서도 서방세계와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경계가 사라진 세계에 어찌 일개 필멸자인 소승이 선을 긋겠습니까.”

    “…그래? 그럼 너무 힘 빼지 말고 적당히 알아봐. 괜히 애가 퇴학이라도 하면 귀찮아져.”

     

    말리고 싶다.

    네가 알아서는 안 될 정보라고.

    막고 싶다.

    교장에게 흘러들어갈 정보를.

    죽일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살심을 언데드의 무심함 속에 섞어 아무 일도 아닌 척 흘려보내는 사다코.

    그러나 돌아서는 명호스님에게는 명정을 유지하지 못한 사다코의 감정이 이미 읽힌 뒤였다.

     

    ‘교수끼리 사이가 좋은 것이 드문 일이니만큼 미움을 받는 일이 없지는 않지. 허나 이토록 강한 살기를 받을 만큼 소승이 잘못을 한 적은 없었소.’

     

    명호스님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리웠다.

     

    ‘오크노디. 저 아이를 노린 원흉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접했기에 정보를 구하려는 소승에게 이렇게까지 경계심을 보이는 것이오? 어쩌면… 혹시…’

     

    교수들 사이에도 원흉에게 포섭된 적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자신이 의심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은 대체 어떤 어둠을 건드린 걸까.

    오크노디는 얼마나 깊은 어둠에 개입한 걸까.

    암흑마력보다 더욱 어둡고 깊은 심연이 느껴진다.

    건드리기조차 두려운 거대한 무언가가.

     

    ‘하오나 도교의 천존도, 불교의 석가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대자대비의 광명과 지혜의 은덕은 가장 깊은 마음속의 어둠에도 드리워야 한다고 하셨소.’

     

    사다코 교수의 에둘러 표현한 경고, 혹은 미처 감추지 못한 진심에도 명호스님은 뜻을 꺾고 침묵하는 대신 더욱 용기를 내었다.

    우선 프라이머 학생을 찾아가자.

    그리고 정보를 끌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이 깊고도 막막한 심연으로부터 오크노디를 구하는 여정의 시작이.

     

     

    * *

     

     

    피렌체 왕국 항구도시 럭키항구.

    이름과 달리 해양몬스터에 의한 해류변동으로 접항이 어려워지며 개같이 멸망한 이 도시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밀수선이나 해적선, 이민선단 같은 불순한 무리들만 들락거리는 망한 도시답게 낮부터 도시에는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 한 놈 숨어있기에는 딱 좋은 곳이군.”

     

    디스트로이어의 정보원.

    도적길드 지부장 로렌츠 도너츠는 시가를 물고 불을 붙인 채, 우중충한 구름에 짓눌린 도시에 연기 하나를 더 보탰다.

    선글라스를 쓰기에는 너무 어두운 낮이지만 암흑가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 정도 어둠이 딱 좋다.

     

    “오크노디라고 했던가. 우리 용사 나리께서 꽂힌 아이의 이름이.”

    “예. 그렇습니다.”

    “그 아이도 참 복 받았군. 세계의 어둠을 한 꺼풀 들춰내었던 남자의 관심을 다 받고.”

     

    그가 시가를 피우는 내내, 독한 연기를 맡으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자리를 지키는 직속수하.

    혹여나 표정관리에 실패할까, 말 한 마디 잘못 할까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할 정도로 로렌츠 도너츠라는 사람은 위험인물이었다.

    그의 발치에 피투성이 몰골의 중년인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가 귀인께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는 몰라도 앞으로는 개과천선해서 똑바로 살겠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를…”

    “참 신기해. 그렇지? 착하게 살라고 시킨 적도 없는데 왜들 그리 내 앞에서는 바른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로렌츠가 손을 까딱하자 중년인이 무릎으로 바닥을 기며 다가왔다.

     

    “손 좀 빌려주겠나?”

     

    덜덜 떨면서 내민 때가 묻은 손에 커팅한 시가 면을 재떨이 삼아 버리는 로렌츠.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주먹을 꼭 쥔 채, 눈물을 흘리는 중년인.

    로렌츠가 다시 한 번 손을 까딱하자 직속수하가 중년인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이제 생각이 났나? 이 남자. 몇 년 전에 자네 상단에 들어와서 이름만 올렸다는 그 상인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상단주의 입이 열리고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도시 어딘가에서 폭음이 울렸다.

     

    “이놈의 일은 쉽게 되는 법이 없군. 비싼 나리랑 놀다보면 이게 문제야. 사람 목숨이 너무 저렴해져.”

    “생포조로부터의 긴급연락입니다. 도망치던 표적이 암흑마력으로 폭주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전투조 투입시켜. 마경에서도 정보를 캐내던 녀석들이 이 정도로 앓는 소리를 내진 않겠지?”

     

    용사에게 필요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사람의 형체마저도 잃은 마인들이 살아가는 마경의 벽촌까지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소재를 입수하던 도둑길드.

    세계 최고의 도적과 합을 맞춘 조직원들에게 암흑마나로 폭주를 일으키는 상대는 처음이 아니다.

     

    “살았나?”

    “죽었습니다. 암흑마나를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혼자 쇼크사를 했습니다.”

    “소지품부터 계좌, 신분까지 다 털어내.”

     

    나리에게 보낼 보고서에 적을 내용을 꽉꽉 눌러 담으려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이 사람이 누구를 만나고 다녔는지, 배후와는 어떻게 접촉하고 다녔는지.

    그런데 상상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와버렸다.

     

    “세비체? 세비체 공작가문이 이 일에 관여했다고?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나라에 다른 세비체가 생긴 건 아니겠지?”

    “피렌체 왕국의 공녀 아카디아 세비체가 있는 그 세비체가 맞습니다.”

    “다시 확인해! 넌 지금 네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몰라. 세계제일의 교육기관에서 미래의 용사를 육성하던 나리가 최우선 사항으로 요청한 ‘꼬리’와 이어지는 선이 한 왕국의 제일가는 공작가라고 한 거다. 그런데도 네 정보가 틀림이 없나?”

    “확실합니다.”

    “…그런가.”

     

    로렌츠 도너츠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마인의 폭주로 가족을 잃은 뒤로 그가 돌아갈 집에는 더 이상 온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잡상인의 말재간에 속아나 하나씩 늘어나던 용도불명의 쓰레기들도 더는 보이지 않는 집에서 잡동사니라고는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 바닥에 누울 때.

    그는 느꼈다.

    늘 구박을 하던 어수선함이 이제는 그리움을.

    다시는 그런 구박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그 공허함을 떠올리며 그의 가슴은 차갑게 식었다.

    자신의 정보가 잘못되면 누군가가 이런 공허함을 간직한 채로 여생을 살아가게 된다.

     

    “검토해라. 추적자들을 속이기 위해 마련된 거짓증거와 거짓유도가 아닌지.”

     

    보고는 그 다음이다.

    만에 하나의 실수도 놓치지 않겠다는 철저한 조사.

    부하들은 역시 꼼꼼한 지부장답다며 말했지만…

    그는 알고 있다.

    부하들은 속여도 자신의 심장은 속일 수 없었다.

    이건 유예이자 도피였다.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

    그것을 나리에게 보고로 올리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미루고 싶다는 마음.

    자신의 공허함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겪을 순간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는 두려움의 표현이다.

     

    “새들이 우는 계절이 다가오는군.”

     

    사람의 시체가 물 위를 뒤덮는, 새들의 진수성찬이 펼쳐지는 계절이.

    이번 여름은 아주 혹독한 여름이 되리라.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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