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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저는 미셸 뒤랑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미셸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네, 뒤랑 씨.”

       

        에테르는 진작에 선을 그었다. 

       

        뒤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레이디들도 참여하신 건가요?”

        “네.”

        “오호! 이거, 훌륭한 경쟁상대가 되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에테르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초록.

       

        브로치에 달린 색으로 보아하건대 3학년이다.

       

        ‘사망년’이라고 불리며 고통스러운 실습과 과제, 시험을 견뎌내야 하는 3학년이 예술제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학점 관리를 안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도 안젤리카와 비슷한 부류겠지. 자기만의 분야에 흠뻑 빠져서, 학점이 딱히 필요 없는 선배.

       

        그나저나.

       

        “앗, 당신들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웨이브 진 금발과, 말로 표현하기 민망한 흉부를 지닌 소녀가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최신식 사진기가 들려있었다.

       

        신문부 부장, 안젤리카 토츠펠.

       

        안젤리카는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다가오더니, 곧 에테르를 보고 몸을 쭈뼛 굳혔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순식간에 이채가 사라졌다.

       

        “아아, 아아아…!”

        “저런, 레이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잠깐만요…. 머리, 머리가 아파요…!”

       

        맞다.

       

        에테르가 손뼉을 맞대며 생각했다.

       

        과거 안젤리카는 버멜과 에테르를 상대로 파파라치 행세를 하다가 캘리퍼스에 머리를 가격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토츠펠 가문의 일원이자 선배인 그녀를 함부로 후려팼다는 것이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이었기에, 에테르는 버멜의 도움을 받아 안젤리카의 기억을 말 그대로 지워버렸다.

       

        그런 사건이 있은 뒤로는, 에테르와 안젤리카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안젤리카가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간다.

       

        “흐으, 흐으….”

       

        안젤리카는 심호흡하며 심신을 진정시켰다.

       

        “레이디, 괜찮으십니까? 제가 양호실에 데려다 드릴까요?”

        “괘, 괜찮아요. 그보다….”

       

        두통이 가라앉았는지, 안젤리카는 물기 어린 눈으로 뒤랑을 흘끗 쳐다보았다.

       

        “저번에 우승하신 분 맞으시죠?”

        “이런,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이놈의 인기란….”

        “설마 교양관 화장실 변기를 뜯어다가 작품으로 전시하던 게 우승할 줄은 몰랐어요!”

       

        안젤리카가 의뭉 반 흥미 반인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이번 작품도 비슷한 주제인가요?”

        “아뇨, 조금 다른 겁니다.”

        “현대미술인가요?”

        “현대미술입니다!”

        “그런 건가요!”

        “그런 겁니다!”

       

        두 사람, 합이 잘 맞는다. 둘이 사귄다고 소문내도 되겠어.

       

        그런 음흉한 생각을 했던 에테르였지만, 실행으로 옮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은 안젤리카가 아니었다. 그럴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대신 안젤리카가 수첩을 끼적이는 것을 보며 한숨 섞인 미소를 지었다.

       

        “실례지만 취재 좀 해도 될까요!”

       

        안젤리카는 음흉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 뒤랑이라는 사람, 나중에 고생 꽤 하겠는걸.

       

       

        **

       

       

        – 이상으로 개막식을 마칩니다.

       

        – 예술제 참석자 여러분께서는 심사위원들의 총평이 있을 오후 5시 전까지 교정에서 자유롭게 작품들을 감상해 주시길 바랍니다.

       

        틸레트는 제국에서 가장 넓은 학교다.

       

        학교 전체를 관통하는 대로변만 걸어도 20분 남짓 걸린다. 새벽이나 밤 시간대만 되면 조깅하러 나온 학생 말고도 벤치에서 쉬고 있는 외부인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아으, 인파가 왜 이런 거야?’

       

        로즈마리는 텁텁한 인간 냄새에 코를 틀어막으며 걸었다.

       

        그동안 교환학생 엘프들을 신경 쓰느라 언니를 많이 보지 못했다.

       

        근처에 급 높은 정령이 있다면 함부로 스코프를 켤 수도 없었다. 하급이나 중급 정도라면 몰라, 대놓고 상급 이상의 정령을 관찰하려 들었다간 곧바로 정체가 들통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즈마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하나뿐이었다.

       

        인간처럼 움직이기.

       

        평소에도 인간 연기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범인 행세를 해야만 했다.

       

        ‘사방이 엘프 천지잖아!’

       

        이곳에서 에테르 언니를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반지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스코프 없는 로즈마리 입장에선 아주 틀린 비유도 아니었다.

       

        “와, 저것 좀 봐!”

        “물레방아네.”

       

        언제 설치한 건지, 중앙분수대에는 물레방아가 있었다.

       

        ‘…재질이 좀 이상한데?’

       

        가까이 가서 보니 곡식을 빻아 만든 물레방아였다.

       

        말 그대로 잡곡으로 빚은 물레방아.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형체를 잃지 않은 채 잘만 돌아가는 중이었다.

       

        “제 작품에 관심 있으신가요?”

       

        이게 뭔 병신같은 작품인가 보고 있던 로즈마리 곁으로 한 여학생이 따라붙었다.

       

        “어머나, 블랜튼 공녀님이시네요? 안녕하세요!”

       

        깍듯한 건 마음에 든다. 로즈마리는 멋쩍은 연기를 하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전 요리부 부장을 맡고 있는 세실이에요. 친구들이랑 이번에 이 작품을 출품했는데, 보다시피 꽤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런가요.”

       

        로즈마리는 무기질적으로 답했다.

       

        ‘관심 없단 말이야.’

       

        일단 언니부터 찾아야 해.

       

        그렇다고 눈앞의 소녀를 바로 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대공작가의 공녀에게 싸가지 없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평판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잠입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게 평판이다. 부적절한 평판은 매사를 더 어렵게 만든다.

       

        “흥미로운 탈곡기네요.”

        “헤헤, 그렇죠?”

       

        그 뒤로 세실이라는 소녀는 남은 설명을 이어갔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직관적인 재료를 써서 차별화를 두었다느니, 곡물의 가시화를 통해 물레방아의 역할을 보는 사람이 상기함으로써 시각의 지평을 넓히게 해준 것이라느니, 이거 만드는 데 한 달이 걸렸다느니…….

       

        로즈마리는 세실의 말에 맞장구치며 10분을 붙잡혀 있었다.

       

        ‘피곤해.’

       

        그 뒤로도 여러 작품을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벽돌을 매단 모빌이죠.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갓난아이 시절부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표현한…….”

        “돌로 만든 나무입니다. 주체의 전환을 표현함과 동시에, 내강외유가 무엇인지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제 지난 학기 성적표입니다. 제목은 ‘삼불화붕소’인데요.”

       

        이해할 수 없다.

       

        당최, 인간들의 미적 감각이라는 게 무엇인가?

       

        적어도 수백 년을 살아온 로즈마리에게는 현대미술이 도무지 이해 가질 않았다.

       

        로즈마리는 고개를 내저으며 계속 걸었다.

       

        “언니, 어디 있는 거야….”

       

        가끔가다 마주치는 엘프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움찔한다.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서 지난날들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러다가 문득, 로즈마리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건…….”

       

        로즈마리 눈에 괴상한 작품이 하나 들어왔다.

       

        뒤랑의 작품이었다.

       

        ‘저 사람은 알지.’

       

        작년 예술제에서 변기 뜯어다가 전시해 놓은 걸로 금화 1천 장의 주인공이 된 인물.

       

        그 변기 말고도 평소에 이상한 걸 두루두루 만들던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크로우펠츠 재단에서는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학생이라면서 졸업 후 스카우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솔직히, 로즈마리는 그때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표정 관리나 해야지.’

       

        촤락! 비틀린 입매를 가리기 위해 흑우선을 펼쳤다. 로즈마리는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뒤랑이 있는 인파 속으로 걸어갔다.

       

        ‘저건 또 뭐야?’

       

        A1 용지의 두 배 정도 되는 지도 위에 수채화 물감을 덕지덕지 뿌려놓은 걸 작품이랍시고 전시해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계인 그녀가 뒤랑이라는 인간의 작품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해설이 필요했다.

       

        “어떤 물감을 주로 사용하신 건가요?”

       

        로즈마리는 행인의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아, 대부분은 밝은 계통의 색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희망찬 색들이지요!”

        “그런데 최종 결과물은 보기보다 칙칙하네요?”

        “그렇지요? 그래도 베이스가 되는 지도는 희미하게나마 보이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뒤랑은 목에 힘을 주면서까지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을 토해냈다.

       

        로즈마리는 광대가 올라가려는 걸 멈추지 못했다.

       

        ‘부채를 챙겨오길 잘했어.’

       

        그때였다.

       

        “개쩌네.”

       

        익숙한 단어, 익숙한 목소리.

       

        로즈마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인파 사이로 황금빛 눈동자 한 쌍이 들어왔다. 에테르를 발견한 로즈마리는 화색이 되었다. 그녀가 인파를 뚫으며 에테르에게 다가갔다.

       

        “언니!”

        “엉, 동생.”

        “여기서 뭐 하세요?”

        “작품 감상.”

       

        대화는 짧았다. 에테르의 눈은 작품의 제목에게로 가 있었다.

       

        [제목 : 미래]

       

        “마냥 이상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왜 천재인지 알 것 같아.”

        “지도에 물감만 덕지덕지 붙여놓은 거잖아요.”

       

        까놓고 얘기해서, 로즈마리가 붓질 몇 번만 해도 저것보다는 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전 저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현대미술이 대부분 그렇지 뭐.”

        “언니는 미술도 잘 알아요?”

        “아니?”

       

        로즈마리는 귀족으로서 회화와 조소를 배웠다. 그랬기에 고전미술이라면 어느 정도 조예가 있었다. 

       

        사실,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미술은 단순했다. 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의 미술은 사물과 사람을 얼마나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내느냐가 관건이었으니까.

       

        반면에.

       

        현대 인간들이 다루기 시작한 미술은 뭐가 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인간들의 미적 기준은 로즈마리에게 있어 몰이해의 영역이었다.

       

        하얀 캔버스에 고작 점 하나 찍은 게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진다면, 그건 자본과 노력의 낭비였다. 로즈마리로서는 이해할 수도, 이해할 필요도 없는 일.

       

        기계는 해석하지 못하는 영역. 그것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과정을, 인간들은 ‘심미(審美)’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로즈마리는 그 심미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에테르도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여야만 했다.

       

        언니가 자신과 같은 ‘마수’라면.

       

        “작품명이 ‘미래’인 것부터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어. 칙칙하고, 흐릿하고, 다라울 정도로 어둡지. 마치 검은 안개가 낀 것처럼 말이야.”

       

        에테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작품명을 ‘흑주’로 두었으면 더 좋았을걸.”

        “에?”

        “안 그래?”

        “네에… 네! 그렇네요!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역시.

       

        아니겠지.

       

        로즈마리는 헤벌쭉하게 웃으며 작품 감상을 마무리했다.

       

        여전히, 저 그림이 뭘 표현하고 있는 건지는 알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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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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