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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시야가 높아진 것 같은 감각.

       

       저 개미와도 같은 생명들이 아등바등 살아가는 지상을, 한참이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부감(俯瞰).

       

       그리고, 팔과 다리, 알 수 없는 기관들이 수십 개나 돋아난 것 같은 느낌.

       

       서큐버스 여왕은 그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감각에 혼란을 느끼다가도, 자신의 안면을 향해 느릿하게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면.

       

       “⋯⋯⋯⋯?!”

       

       유리 랜스터의 눈동자가 휙 돌아가며, 주먹의 궤적이 엉뚱한 방향으로 꺾인다.

       

       어머나, 어떻게 된 걸까. 내가 무슨 능력을 쓴 거지?

       

       물리력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유리 랜스터의 정신에 작용했다. 저 무시무시할 정도로 두터운 사슬을 뚫고⋯⋯ 그녀의 움직임을 멋대로 유도했다.

       

       유리의 우화 『본망구속(本望拘束)』은 틀림없는 여왕의 카운터. 아까 전부터 뿌려대고 있었던 페로몬도, 그녀에게는 줄곧 통하지 않았는데.

       

       다시, 다시 해 보자.

       

       저 사납고 무서운, 사슬을 감은 짐승에게 실험해 보자.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인다. 엎드리렴, 유리.

       

       “──흡!”

       

       차르르르르륵, 쐐애애액──!!

       

       여왕의 명령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면을 쓸어내며 쇠사슬이 채찍처럼 휘둘러진다. 여왕은 깜짝 놀라, 의자로 사용하던 세리스를 방패 삼아서 공격을 막아냈다.

       

       푸하악-!

       

       사슬이 세리스와 함께 여왕을 때린다. 으지직, 하고 여왕의 오른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며, 붕 떠서 튕겨 나갔다. 

       

       이렇게 쓰는 건⋯⋯ 아니구나. ‘절대명령’ 같은 게 아니야. 조금 더 디테일한 능력인가 봐.

       

       조금 더 써보자. 무슨 효과가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휘둘러 보자. 여왕은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같이 웃으며, 사방으로 권능을 쏟아냈다.

       

       찰칵찰칵찰칵.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유리 랜스터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 끝으로 갔다가, 급격하게 이동했다. 의도하지 않아도 마구잡이로 엉키는 시야에, 유리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감각에 의존해서 공격을 날려 온다. 날카로운 직감으로 여왕을 노려 사슬을 휘둘러오지만, 역시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는 굼뜨다.

       

       여왕은 아직 몇 번 더 쓸 만한 세리스 방패로 데미지를 깎아 내며, 느긋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좋아, 시선을 조종⋯⋯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구나. 그렇다면 이건? 

       

       여왕은 붓과 같은 것으로 허공을 덧칠했다. 

       

       차라라라라락-!! 유리 랜스터가 처음보다 부쩍 불어난 수의 사슬을 이끌면서 쇄도한다. 양 팔에 각각 다섯 가닥. 쇠로 된 짐승의 발톱 같은 모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화의 위력이 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까드드드득, 콰과과-!!

       

       사슬이 지면을 말 그대로 갈아엎으면서 크게 휘둘러진다. 시선이 통제 불능인 상황이니, 맞추기 쉬운 광역기로 공격 패턴을 전환한 듯싶었다.

       

       세상을 쪼개버릴 기세로 휘둘러진 사슬은⋯⋯.

       

       “⋯⋯미친 마법사⋯⋯?!”

       

       헛것을 본 유리에 의해, 중간에 궤적이 꺾여 크게 흔들린다.

       

       으적-!!

       

       상대적으로 육체능력이 부족한 여왕에게는, 궤적이 꺾여 속도와 위력이 크게 감소한 사슬조차도 위협적이다. 그녀는 사슬 한 가닥에 휘말려, 파리채에 맞은 벌레처럼 날아갔다.

       

       그럼에도 여왕은 웃고 있었다. 긴장감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이게⋯⋯ 위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랬으니까.

       

       이제야 알았다.

       

       이것, 이 능력⋯⋯ 『톱니바퀴 : 히로인』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았다!

       

       차르르르르륵──!!

       

       유리를 휘감은 사슬의 개수가 더욱 늘어나, 이제는 사자의 갈기나⋯⋯ 아지랑이처럼 보였다. 으직으직, 사슬이 휘감긴 유리의 양팔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무리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가하는 부하를 늘려, 우화의 힘을 증폭하고 있다. 저러다가 꽉 쥐어진 토마토 같은 꼴이 되는 건 아닐까, 염려될 정도였다.

       

       말하자면⋯⋯ 우화의 과부하(過負荷)일까.

       

       비상식적인 사용법이다. 우화가 종료되었을 때 어느 정도의 반동이 올지를 생각하면, 커다란 스케일의 자폭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 사슬의 파도에 휘말리면, 형체조차 남지 않겠지. 차르륵 차르륵 갈아대는 소리와 함께 조각조각 찢겨 흩날리겠지.

       

       하지만.

       

       “하지만, 그걸로⋯⋯ 사랑하는 사람까지 갈아버릴 수 있으려나아.”

       

       챠라라락, 콰과과과과과──!!

       

       다가오는 사슬의 폭풍에 맞서, 여왕은 가볍게 톱니바퀴를 밀었다. 맞물려 돌아간다.

       

       찰칵.

       

       그리고 눈을 감았다. 권능의 사용에 실수가 있었다면, 여왕은 죽는다. 그 경우에는 아쉬움 한 조각을 남기고 산화하리라. 결과를 보자.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와서⋯⋯!

       

       사방을 갈아내며 다가오던 사슬은, 여왕의 코앞에서 멈췄다.

       

       여왕은 살며시 눈을 떴다. 사슬은 눈꺼풀에 스칠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흐, 우후후⋯⋯ 후후후훗⋯⋯.”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비집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여왕은 전능감이 주는 무시무시한 희열에 떨었다. 허리가 들썩거릴 정도의 흥분과, 혀가 바짝 마르는 것 같은 고양감에, 좀처럼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유리 랜스터의 표정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이 어째서 공격을 멈췄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려줄까요? 왜⋯⋯ 나를 공격할 수 없는지.”

       

       “⋯⋯⋯⋯.”

       

       “그건, 내가 당신의 『히로인』이니까.”

       

       시선을 사로잡는다. 눈을 뗄 수 없다.

       

       홀린다. 우연한 마주침, 스쳐 지나가는 콤마 몇 초의 시간에 사랑이 싹튼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어라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고, 자꾸 눈길이 가고, 그렇게 운명이 얽혀든다. 

       

       어쩐지 새들이 기쁘게 지저귀는 것 같고, 햇살은 축복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각막에 필터라도 씌운 것같이,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러한 모든 연출이 이 톱니바퀴에 담겨 있다. 이건⋯⋯ 누군가의 히로인을 만들어내기 위한 승화 능력이었다.

       

       무대는 열렸다. 인물이 등장하고, 배역이 부여되었다. 이 연극을 지배하는 각본가는 스스로를 히로인으로 삼았다. 온갖 연출로 그 당위성을 거듭 덧칠하면서.

       

       그러니 공격할 수 없다. 

       

       세계를 움직여 홀리니, 가히 궁극에 도달한 『매혹』이다⋯⋯!

       

       그래, 이해할 수 없겠지. 나라도 그럴 거야. 우화도 승화도 말하자면 무작위. 영혼의 형태는 정말로 다양하기에, 어떤 능력을 정확하게 노려서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

       

       『절망 새기는 올가미』가 그토록 노력하고 노력해서 만든 대 마법사용 암살자도, ‘마력의 물질화’라는 능력을 정확히 노리고 개화시킨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불가능⋯⋯.

       

       이토록 정교하고 확실하며,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가지런히 정렬된 능력의 집합이 탄생하는 것은, 불가능.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왕은 언젠가 스쳐 지나가며 들었던 『어린양』의 말을 떠올려냈다.

       

       -어느 순간 종적을 감추어버린 이 시대의 악신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운명을 지배하는 힘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영웅을 만들거나, 재앙을 만들거나, 비극을 만들거나, 희극을 만들며 놀았다지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실로 아득한 이야기다. 세상을 움직여, 그 많은 사람으로 인형극을 만들어 즐기다니?

       

       인지를 흐리고, 주인공을 몰입하게 하고, 그럴듯한 시련을 준비하고, 타이밍을 맞추고,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 성패를 결정하고, 웃고 울게 만들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기까지.

       

       대체, 몇 가지나 되는 우화를 겹쳐야 그러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 흑마법사들이 쫓는 악신의 능력은, 필히 위대한 하나가 아니라 정교한 여럿일 것이니. 만약 그것을 이름 붙여야만 한다면.

       

       -우리는 ‘신의 도구함’이라 불러야 하겠습니다⋯⋯.

       

       아하.

       

       과연── 이것은, 명실상부한 ‘신의 도구함’이로구나.

       

       “웃기지 마──!!”

       

       으직. 유리 랜스터가 스스로를 다시금 단단히 묶는다. 잔뜩 죄어진 사슬에 피부가 짓뭉개지며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조금씩 움직인다. 끼기기기긱.

       

       툭. 유리 랜스터의 주먹이 여왕의 왼쪽 눈꺼풀에 닿았다.

       

       “⋯⋯아하, 이런. 저항하고 있군요⋯⋯? 감히 이 위대한 능력에 맞설 수는 없었을 테니, 제가 조금⋯⋯ 서툴렀나봐요.”

       

       “으, 그, 아아앗⋯⋯!!”

       

       “미안해요, 유리. 금방 편하게 해 줄 테니까.”

       

       여왕은 스스로의 무능함을 인정했다. 『히로인』의 모든 기능을 꺼내 쓰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러니 겸허하게 인정하자. 단 하나의 도구만을 꺼내어 쓰자. 범위를 좁혀서 사용한다면, 하나뿐이라면, 자신도 능히 다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의 이름은.

       

       『히로인 : 마음을 녹이는 독』.

       

       ===============================================================

       

       아, 시작했나요? 그래요⋯⋯ 시작했군요. 발동한 거예요.

       

       잘 들어주세요. 네.

       

       당신은 눈앞의 원수에게 증오의 불길을 태우면서 공격을 거듭 퍼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그건, 상대가 너무 강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너무 약해서, 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때 정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지낸 적이 있었죠. 당신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습니다. 그 시절의 친애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걸까요?

       

       자꾸만, 옛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눈앞의 여왕에게 증오를 느끼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애정이 눈을 흐렸습니다.

       

       툭. 툭.

       

       당신의 그 강대한 힘을 품은 주먹은 가냘픈 갓난아기처럼 힘이 완전히 빠져서. 주먹이 내질러 질 때마다, 툭. 툭. 하고.

       

       당신은, 자신의 피로 순백의 여왕을 덧칠하고만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타격이 아니었어요.

       

       마음을 가라앉혀도, 가라앉혀도, 자꾸만 솟아오르는 사랑이 당신을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겼습니다. 그래요⋯⋯ 당신도 바라고 있는 거예요.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뭔가 착각을 한 거야⋯⋯. 그도 그럴 게, 그렇게 내게 상냥하게 굴어 주던 새하얀 언니가⋯⋯ 어째서 마을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겠어?

       

       합리적인 의문이 아닌가요? 

       

       “개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렇다면, 어째서. 그 주먹에 힘이 실릴 기미가 안 보이는 걸까.

       

       눈을 감아도 ‘시선’이 쏠립니다. 당신은 오감으로 나를 느끼고 있으며, 그 외의 모든 것은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칩니다. 주먹질 한 번에 내 속눈썹이 떠오르고,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나의 향기를 깊이 빨아들이고.

       

       “아니야. 이건 내 감정이 아니야. 나는, 너를 증오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네요.

       

       증오를 부정한 적은 없어요, 유리. 그 위에 사랑을 덧씌웠을 뿐. 

       

       세상에는 애증이라는 단어가 있답니다.

       

       유리. 사실⋯⋯ 당신은 나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신기하죠?

       

       저는, 악신의 승화가 조금 더 직접적인 능력일 줄 알았거든요. 커다란 광선을 날리거나, 타인에게 절대적인 죽음의 저주를 부여하거나.

       

       하지만, 쾌락의 악신상이 제게 부여한 능력은 생각보다도 매니악한 힘이었어요. 결국은 타인의 감정을 ‘아주 잘’ 부추기는 힘. 물리력도 절대성도 없었으니까.

       

       당신이 진실로 마음이 단단했다면, 통하지 않았을지도.

       

       네, 전부 당신의 부족함이 문제였던 거예요. 당신의 각오가, 당신의 노력이, 당신의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당신은 버려내고, 버려내었다고 했지만.

       

       아니잖아요. 사실 버려내고 싶지 않아서,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두기만 했잖아요. 감정을. 그 얄팍함이 발목을 잡았어요.

       

       당신의 우화가 ‘감정을 없애는’ 것이었더라면.

       

       증오가 없었더라면, 분노가 없었더라면. 당신의 마음이 정말로 텅 비었더라면. 저는 당신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겠죠.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감정을 가라앉혀도, 그것이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호수 밑바닥에서 새파랗게 일렁이고 있음을, 외면했기에.

       

       나는 그것을 끄집어내 증폭하여, 잡아버렸다.

       

       “⋯⋯⋯⋯.”

       

       힘이 다 빠졌군요. 우화의 지속시간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에요.

       

       자, 가라앉습니다.

       

       당신은 마침내 가라앉습니다. 온갖 감정에 무게추를 매달아 가라앉히던, 그 마음의 호수에. 드디어 자신이 발을 담글 때가 온 것입니다.

       

       천천히 들어갑니다. 발끝이 퐁당 담기면, 어쩌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서늘함에 놀랄지도 몰라요.

       

       하지만 괜찮아요.

       

       가라앉습니다.

       

       가라앉습니다.

       

       ⋯⋯⋯⋯.

       

       가라앉았습니다. 너무나도 편안합니다.

       

       당신은 한 구의 익사체가 되어, 당신이 물에 빠트려 죽여버린 모든 감정들과 함께, 후회 속에서 천천히⋯⋯ 흔들립니다. 흔들. 흔들.

       

       영원히.

       

       ===============================================================

       

       무릎이 꺾이고, 풀썩. 유리 랜스터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서큐버스 여왕은 악신상을 안은 채로 가만히, 맹수의 시체를 바라보듯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녀가 전투 불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후, 흐흐⋯⋯.”

       

       웃었다.

       

       “흐, 하하⋯⋯ 아하하하핫, 핫, 아하하하⋯⋯!!”

       

       즐겁다. 너무나도 즐겁다.

       

       어디가, 어떻게 즐거웠냐고 물으면⋯⋯ 유리 랜스터를 인형처럼 조종하는 그 과정이, 정말이지 아찔할 정도로 즐거웠다. 그렇게 분노를 토해내던 유리가, 벅차오르는 애정에 혼란스러워 하는 꼴이란!

       

       지금은 숙련도가 낮고, 또, 악신상의 힘을 무제한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가 자승자박으로 우화의 반동에 묶일 때까지 시간을 끄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다음에는 좀 더 재미있게 사용할 수도 있을 터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난다.

       

       이번에는, 이미 유리 랜스터가 누군가에게 품고 있던 호감을 훔쳐 와서⋯⋯ 자신에게 투영하는 방식이었지만.

       

       시간을 들이면, 결국 유리 랜스터가 여왕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를 충직한 호위 기사로 만들어서 쓸 수 있겠지.

       

       매일 밤, 여왕을 죽이고 싶은 증오에 속이 끓으면서도, 가슴에 품은 사랑 때문에 어쩔 줄을 모르고 괴로워하겠지. 

       

       아니면, 진흙탕을 뒹구는 돼지와 사랑하게 만들어버릴까?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금수에게 애정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하면서도, 결국 부정하지 못하고⋯⋯ 우습게 사랑하겠지!

       

       어머나.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걸까.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더 괴롭힐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을, 더 에스컬레이트한 방법으로 부수고 놀 수 있다!

       

       서큐버스 여왕은 『둥지』로부터 부하들을 불러내었다. 살아남은 말살대원들을 끌고 가, 머리에 최면을 새겨 넣고 마력 배터리로 만든다.

       

       그사이에, 여왕은 의식불명의 유리 랜스터에게 무릎베개를 해 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정보를 추출하였다.

       

       어쩌다가 『둥지』의 입구를 들킨 건지, 어떻게 여기까지 파고들어 온 건지. 꼼꼼하게 체크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머나?”

       

       그녀의 기억 속에는 흥미로운 정보가 있었다. 아카데미에 자색 마탑주가 존재한다거나, 벌써 우화를 달성한 아카데미생만 세 명이 넘는다거나.

       

       그리고.

       

       아카데미에 머무르고 있는 자색 마탑의 환상 마법사에 대한 것.

       

       호기심을 품은 여왕은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TRPG라는 놀이에 대해서 알았다. 간접적인 기억이니 그 전부를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완성형이 그곳에 있었다.

       

       전율했다. 이거구나, 이렇게 하는 거였어. 

       

       미친 마법사가 자아내는 이야기는 악신의 승화를 사용하는 완벽한 메뉴얼처럼 보였다. 당하는 사람이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삶을 꾸며내는 그 손재주란!

       

       욕심이 생겼다.

       

       저 마법사의 머리통을 열어, 그 정보를 한껏 들이마실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악신의 승화를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왕은 유리 랜스터의 머리를 상냥하게 토닥이며 속삭였다.

       

       “유리, 당신을⋯⋯ 실험체로 삼으려고 했어요. 무기물에게도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성벽을 바꿔버릴 수는 있을까. 이것저것 해 보면서 다양하게 괴롭혀주려고 했는데.”

       

       친밀했지. 마법사와 유리 랜스터는.

       

       함정을 파자. 유리의 머릿속에 공들여 함정을 파 놓고, 마법사에게 선물하도록 하자. 친절하게.

       

       그리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깊이 파고든 마법사의 정신을⋯⋯ 잡는다. 잡아서 홀리고, 짜내어 삼킨다. 모든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든다.

       

       덫을 놓자.

       

       그는 이야기를 자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함정도 같은 형식으로 준비하면 좋겠다.

       

       그래. 생경한 단어지만, 이렇게 부르는 것일 테지.

       

       “내가 준비한⋯⋯ 세션이에요. 우후후.”

       

       서큐버스 여왕은 마스터링을 준비했다.

       

       ===============================================================

       

       “⋯⋯핑발레즈?”

       

       며칠 만에 보는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영영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만납시다,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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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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