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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무인은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머리가!’

         

       목이 없는 지장보살에 머리가 돋아나 있었다.

       그것도 숲의 어둠을 뭉치고, 그림자를 얼기설기 조형해서 만든 듯한 머리가.

       하지만 기로 강화된 눈으로 분명한 형체를 알아볼 수 있고, 툭 튀어나온 귀와 움푹 팬 굴곡으로 얼굴이 그려진 검디검은 머리가 말이다.

         

       “이, 이….”

         

       무인은 자기 입에서 새어 나오는 공포 섞인 신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입을 꽉 다물고 이가 부서질 듯 악물었고, 덜덜 떨리는 입술에 힘을 주어 간신히 평정을 가장했다. 하지만 본능이란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 턱은 덜덜 떨렸고, 그와 함께 치아의 위아래가 부딪치며 딱딱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딱.

       딱딱.

         

       무인은 눈앞의 광경이 거짓이기를 간절히 빌었고, 자신이 어릴 적부터 다니던 신사의 신님을 떠올리며 눈앞의 사악한 것을 무찔러달라고 빌었다.

         

       ‘저 사악한 것을 무찔러 주십시오. 신님, 저 사악한 악령…. 어?’

         

       악령.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스쳐 지나간 두 글자의 단어.

         

       무인은 눈앞의 것이 악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을 가득 메우던 공포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신 시현류에서 가르쳤던 ‘악령과 악귀를 만났을 때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행했다.

         

       기를 끌어올려 머리와 눈으로 보내고, 온몸에 기를 거칠게 두르고 밖으로 발산하듯 피워내었다. 그는 기가 빠르게 소모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발산해 악령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그리고 잠깐의 틈을 이용해 정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작게 기를 몇 바퀴 돌렸다.

         

       그리고 그 모든 작업이 끝난 후에야 그는 눈을 떴다.

         

       다만 아까와 다른 것은, 명백한 공포를 품은 대신에 약간의 용기가 서려 있었다는 것.

         

       ‘알 수 없는 괴이’가 ‘악령’이라는 명확한 존재가 되었기에 나오는 용기였다.

         

       일본에서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를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해결하곤 했다. 그리고 이름과 더불어 형체를, 행동을, 전승을, 그리고 그 퇴치 방법까지도 기술함으로써 미지에 대한 공포 대신에 명확한 대상에 대한 공포로 바꿨다.

         

       이는 ‘항거할 수 없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공포’로 바꾸는 행위였다.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미지의 존재는 밤거리를 배회하며 장난을 치는 눈알이 하나 달린 아기 요괴로.

       매일 홀연히 집의 밥을 없애고 사라지는 미지의 존재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행세하는 요괴로.

       무덤가에서 이리저리 흩날리는 알 수 없는 불빛은 등불 하나만 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귀신으로.

         

       그렇게 일본은 수많은 세월 동안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를 요괴로 영락시키며 극복해왔다.

         

       그리고 이는 악령 역시 마찬가지.

         

       악령이라는 것은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사람을 홀리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아주 위험한 존재였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한들 명확히 실존하고, 실체 하는 것.

         

       무엇인지 알 수도 없으며 존재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비하면 그렇게 두려운 존재는 아니었다.

         

       해결책이 있었으니까.

       해결책을 가르쳤으니까.

         

       악령을 없애기는 힘들어도 그것을 쫓아내거나 그것에서 도망치는 것 정도는 무인 역시도 충분히 행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무인은 두려움을 버리고 눈을 뜰 수 있었다.

         

       “이 요사스러운 악령 놈아!”

         

       무인은 마음속에서 둥실둥실 떠올랐던 두려움을 고함과 함께 그대로 밖으로 뱉어내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발을 땅에 박히는 말뚝처럼 단단하게 바닥에 박고, 조금 전까지 덜덜 떨던 손에 힘을 불어넣고 과도할 정도의 긴장을 주어 검을 잡았다. 그리고 근육에 힘을 주고 풀어내기를 몇 번을 반복해서 딱딱하게 굳은 몸을 강제로 풀어내었고, 눈에 힘을 팍 주어서 눈꺼풀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오직 머리가 돋아나 있는 지장보살을 노려보았다.

         

       ‘쳐다보고 있다.’

         

       무인은 일렁이는 어둠 속에서 지장보살의 머리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받았다.

       머리통이 흔들거리는 것처럼 움직이고, 왜곡되고 흐르는 어둠 속에서 지장보살이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무인에게로 다가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기로 눈을 강화했음에도 쉬이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검은 머리통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진짜 눈이라도 가진 것처럼 무인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쳐다본다.

         

       무인이 지장보살을 쳐다보고.

       지장보살이 무인을 쳐다보고 있다.

         

       무인의 기를 두른 눈이 어둠을 가르고 지장보살에게 꽂혔고, 움푹 팬 지장보살의 눈덩이에서 형체 없는 시선이 쏘아져 무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무인은 빛으로써 지장보살을 바라보고 있으며.

       지장보살은 움푹 팬 눈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으로 무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리라.

         

       무인은 평소에 하던 것처럼 보폭을 늘리고, 마치 미끄러지듯 검을 치켜들고 지장보살을 향해 달려갔다.

         

       빠드득!

         

       행여 기합이라도 내뱉으면 두려움이 빠져나와 자기 몸에 스며들까 봐 이까지 악물면서, 무인은 그렇게 온 힘을 다해 공포를 이기며 지장보살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과도할 정도의 기를 불어넣은 목검을 있는 힘껏 바닥으로 내리쳤다.

         

       스악!

         

       기를 머금은 목검.

       시현류의 일격필살 형태의 참격.

       그리고 필사의 각오를 머금은 무인의 의지까지.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목검은 두부처럼 지장보살의 몸을 갈랐다.

         

       지장보살은 목검의 궤적을 따라 그대로 반토막이 나버렸고, 목에 올라와 있던 부자연스러운 검은 머리통은 중앙에 실금이 그어짐과 함께 모래처럼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진 것들은 밤의 산이 품은 바람에 스며들어 멀리,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무인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 지장보살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악령을 퇴치했다….”

         

       악령을 퇴치했다는 무인의 안도감 섞인 한숨과 함께.

         

         

         

        * * *

         

         

         

       “뭐?!”

         

       지장보살을 잘랐다.

         

       그 말을 들은 시현류의 사범은 고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 이-이이이이-!”

         

       사범은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무인을 보며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이마의 핏줄이 울룩불룩 솟아났고, 무언가를 잡고 후려치기라도 할 듯 팔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이내 진정해야 한다는 듯 눈을 감고 마음을 몇 번이고 추스르려 노력했고, 간신히 노성이 아닌 ‘그나마 평상시와 흡사한’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네!”

       “그러니까 웬 심령 체험을 하는 대학생을 붙잡았는데, 그 대학생한테 지장보살에 관련된 괴담을 들었다?”

       “네!”

       “근데 너는 무슨 계집년처럼 그 괴담 때문에 덜덜 떨었고, 그 상태로 순찰했다고?”

       “네. 네!”

       “근데 목이 잘려져 있어야 하는 지장보살에 목이 돋아나 있었다?”

       “네!”

         

       사범은 거기까지 말하곤 무인을 쏘아보았다.

       그리곤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가 깊은숨을 들이쉬는 것으로 참아내었고, 대신에 분노의 감정이 곳곳에 묻어있는 듯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넌. 후우우우우- 그걸 악령이라고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칼을 휘둘렀고?”

       “예!”

       “그리고 네놈은 그걸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지금 꽃병을 깬 계집년처럼 움츠리고 있고-!”

         

       사범은 거기서 더 이상 분노를 참기 힘들었는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사내 구실도 못 하는 겁쟁이 놈이—–!!!”

         

       짜아아악!

         

       사범은 그대로 무인의 뺨을 후려쳤다.

         

       쿠당탕탕!

         

       무인은 뺨을 맞자 그대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일어나—-!!!”

       “예, 예!”

         

       사범은 자신에게 뺨을 맞고 바닥을 무참히 뒹구는 무인의 모습에 더 화가 솟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무인은 새파랗게 질린 채 아까와 똑같은 위치에 섰다.

         

       짜아악!

       쿠당탕탕!

       

       사범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무인의 뺨을 다시 한번 후려쳤고, 무인은 다시 바닥에 뒹굴었다.

         

       “다시 일어나!”

       “예!”

         

       그렇게 ‘체벌’이 시작되었다.

         

       짜아아악!

         

       쿠당탕탕!

         

       “다시!”

       “예!”

         

       짜악-!

       쿠당탕!

         

       “다-시-!”

       “옙!”

         

       사범이 뺨을 때리고.

       무인이 바닥을 뒹굴고.

       호통 소리와 함께 무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이 끔찍한 가혹행위는 몇 번이고 계속 반복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무인의 얼굴이 계속해서 맞은 따귀 때문에 퉁퉁 붓고 터지고 난리가 났을 때, 그제야 사범은 손찌검을 멈추었다.

         

       하지만 분노가 전부 가신 것은 아닌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가 왜 맞았는지 알아?!”

       “예!”

       “왜 맞았는데?”

       “지장보살을 부쉈기 때문입니다!”

         

       빠아악!

         

       사범은 무인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그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고작 내가 그딴 걸로 화를 낼 것 같아?!”

       “아, 아닙니다!”

       “그럼 왜 맞은 것 같아?!”

       “모르겠습니다!”

         

       사범은 무인의 대답에 무인의 고막을 터뜨려버릴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그건 네놈이 사내답지 않아서다!”

       “예!”

       “지장보살? 그깟 돌덩어리 따위 열 번, 백 번이고 베어도 문제가 없다! 원한다면 아예 주문까지 해서 네놈 칼 연습에 쓰라고 갖다 놓을 수 있어! 관리하는 거? 그깟 돌덩이가 뭐 그리 중요해! 그깟 돌덩어리 하나 있으면 수련에 도움이라도 되나?!”

         

       사범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무인의 머리를 콱 붙잡고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게다가 악령 같아서 벴다고? 그럼 아무 문제가 없지! 악령 같아서 베었다는데 그게 뭔 문제야!”

       “예!”

       “내가 화난 것은 그딴 것 때문이 아니야! 웬 이상한 짓거리하고 돌아다니는 놈 이야기에 푹 빠져서 겁을 집어먹고! 그것 때문에 괜히 헛것이나 보고! 게다가 헛것을 베었으면 당당하기라도 해야지! 쭈뼛대면서 나한테 이딴 병신 같은 모습을 보여?!”

         

       퍼억!

         

       사범은 무인의 가슴팍을 적당한 힘으로 후려쳤다.

         

       “시현류의 무인은!”

       “예?”

       “이 새끼야! 시현류의 무인은!”

       “두려움을 몰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사내다워야 합니다!”

       “사내다운 게 뭔데!”

        “별것도 아닌 일에 벌벌 떨지 않고! 피와 칼이 난무하는 전장에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루를 평생처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범은 항상 강조했던 시현류의 정신을 읊는 무인을 보며 그제야 분노가 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왜 실천을 못 했어?”

       “죄송합니다!”

       “무섭다고 덜덜 떨면서 돌아왔으면 내가 너 가만히 안 뒀을 텐데, 그래도 단칼에 베었다니까 이 정도로 봐주는 거야. 알았어?”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그딴 모습을 보이면! 네 아랫도리를 내가 직접 칼로 떼버려서 소원대로 여자로 만들어주마! 알겠어?!”

       “예!”

       “가봐!”

       “알겠습니다!”

         

       사범은 무인을 그대로 쫓아버리곤 다시 평소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채 가시지 않은 짜증과 분노가 사범의 몸을 잠식했다.

         

       “빌어먹을.”

         

       사범은 그 짜증과 분노를 안은 채 수련장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눈을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는 숲속의 길을 거닐며 목이 없는 지장보살을 향해 걸었다.

         

       무인이 단칼에 베었다는 지장보살 모습을 구경이라도 하면서 감정을 풀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뭐야, 이거.”

         

       사범은 지장보살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싹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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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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