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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자, 잠깐만! 데비!”

       

       레키온이 뒤늦게 데보라를 따라갔지만, 데보라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데비, 진짜로 무슨 일이야? 그 사람이 예쁜 거랑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왜 화가 난 건지 이유라도 좀 알려 줘.”

       

       하지만 대답은 들려 오지 않았다. 

       

       “…후우. 알았어. 일단 머리 식히고 내일 보자, 그럼. 네 임무 건은 메그한테 내가 인계해 놓을 테니까 푹 쉬어.”

       

       레키온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단장실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하던 레키온은 한숨을 쉬더니 펜을 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아르 인형을 꼭 껴안았다.

       

       “데비가 왜 저러지…?”

       

       레키온은 열심히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갑자기 여자 이야기를 꺼내더니 화가 나서 가 버리고 내 말은 듣지도 않는다라….’

       

       이거….

       

       “설마 질투…?”

       

       하지만 레키온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사실 견습 기사와 정식 기사를 거치면서 많은 선후배들 사이에 레키온과 데보라의 관계에 대한 말이 돌았던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견습 때 바로 아랫 기수의 어떤 후배는 직접 레키온에게 와서 물어 본 적도 있었다. 

       

       -선배, 좀 단도직입적일 수도 있긴 한데 데보라 선배랑 진짜 사귀는 사이 아니에요? 견습 때 연애 금지라서 그런 거 아니고요?

       -하하하. 아니야. 그리고 너 다른 데 그런 말 하면 데보라한테 혼날걸?

       

       하지만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어디서 들리기만 해도 극구 부정했던 것은 오히려 데보라 쪽이었다.

       

       그래서 레키온은 데보라가 자신에게 이성적인 관심은 전혀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음…. 모르겠다. 한숨 자고 일어난 다음에 내일 맛있는 거 좀 먹이고 기분 풀리게 해 줘야지.”

       

       가끔 데보라가 영문 모를 이유로 화를 낼 때는 맛있는 식당에 데려가면 대부분 해결됐다. 

       

       레키온은 이번에도 데보라의 화가 풀리기를 바라며, 아르 인형을 쓰다듬었다.

       

       ***

       

       방에 혼자 남은 데보라는 말없이 침대 옆 맨바닥에 기대 앉아 있었다. 

       

       “…진짜 여자였네.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다고.”

       

       반쯤 혼이 나간 목소리였다. 

       

       여자인 걸 부정하지 않은 데다가, 자기 입으로 ‘그 사람이 예쁜 거랑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말까지 했다. 

       

       ‘이러면 거의 백 퍼센트라고 봐야지.’

       

       데보라는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것조차 잊고, 머리를 손 사이에 묻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아니, 사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데보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오! 오늘도 두 분이서 함께 계시는군요!

       -잘 어울리십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데보라는 얼굴을 붉히며 강하게 부정했다. 

       

       -무, 무, 무슨 소리야! 이 녀석이랑 나는 그냥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일 뿐이라고!

       -이야, 소꿉친구 속성이 최고죠! 저는 응원합니다!

       -속성은 또 뭔데? 아무튼 얘랑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누가 레키온과 자신의 사이를 엮으려고 할 때마다 극구 나서서 정정을 했으니, 레키온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이 레키온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레키온처럼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녀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사실 바로잡을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두려웠다. 

       

       ‘내 진짜 마음을 말했다가 만약 레키온을 잃게 되면.’

       

       그리고 가장 친한 소꿉친구라는 자리마저 잃게 되면.

       

       그렇게 되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레키온이 한창 정식 기사가 되고 승승장구하기 시작할 무렵, 데보라는 레키온에게 장난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야, 넌 이상형이 뭐냐?

       -나? 그런 거 없는데.

       -에이. 그러지 말고. 아무거나 말해 봐. 취향이 있을 거 아니야.

       -으음…. 그럼….

       -그럼?

       -나보다 검 잘 쓰는 여자?

       -야, 그러면 너 평생 결혼 못 해. 다른 거 없어?

       -네가 아무거나 말하라며? 하하.

       -…됐다. 물어 본 내가 바보지.

       

       웃어 넘기려고 한 대답이겠지만, 그때부터 데보라는 더더욱 열심히 수련했다. 

       

       하지만 레키온의 재능은 하늘을 찔렀다.

       데보라도 나름 검술 자체에는 재능이 있어 한때는 노력을 갈아 넣어 순수 검술만 봤을 때 레키온을 뛰어넘을 정도가 되었지만, 막상 기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마나 오러를 다루는 능력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적어도 곁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라는 포지션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데보라는 노력을 거듭했고.

       

       결국 이렇게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이 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레키온이 더 큰 공을 세우고 황실에서 레키온만 따로 황실 직속 기사단에 데려가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까지 데보라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되니 힘이 한 번에 쭈욱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아냐. 그래도 직접 보기 전까진 몰라.’

       

       데보라는 고개를 들고 주먹을 쥐었다. 

       

       ‘진짜로 내 착각일 수도 있잖아. 일단 레키온은 검 잘 쓰는 여자를 좋아한댔는데, 조그만 사역마 데리고 다니는 테이머랑 같이 다니는 여자가 검을 써 봐야 얼마나 잘 쓰겠어.’

       

       그리고 막상 보면 생각보다 예쁘지도 않을 수 있다. 

       

       데보라는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않나? 머리를 좀 길러 볼까?”

       

       괜히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데보라가 중얼거렸다.

       

       ***

       

       “으음….”

       

       잠결에 아르의 배를 만지려고 손을 뻗었는데, 아르의 배가 느껴지지 않아 눈을 떴다. 

       

       “큐우우….”

       

       눈을 떠 보니 아르는 내 품에 머리를 묻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보통은 내 머리가 아르 목 높이에 위치하는데, 자면서 포지션이 좀 바뀐 모양이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바뀌었네.’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상체를 좀 일으켜 보니, 아르의 하체가 비스듬히 반대편으로 쏠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실비아 씨의 소행이었군.’

       

       나는 아르의 통통한 꼬리를 자기 쪽으로 끌고 와 마치 바디필로우처럼 끌어안고 자고 있는 실비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다리 사이에 꼬리를 끼고 가장 편한 자세로 자고 있어…!’

       

       이렇게 보니 조금 부러울지도…?

       

       “쿠울….”

       

       오랜만에 좀 피곤했는지 깊게 잠든 실비아는 아르의 꼬리를 조금 더 당겨 끝부분을 뺨에 가져다 댔다.

       

       “히….”

       

       뺨에 닿은 부분이 시원한지 실비아가 편하게 풀어진 얼굴을 했다. 

       

       ‘진짜 장난 아니게 예쁘시네.’

       

       이제는 나름 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가끔씩 이런 모습을 보면 놀라곤 한다. 

       

       -이게 제 대답이에요, 레온 씨.

       

       실비아의 저 아름다운 입술이 내 볼에 닿았던 때를 떠올리자, 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후우, 아니야. 엄한 생각 하지 말고.’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뀨우…?”

       

       그때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가 내가 상체를 일으키느라 맨 침대에 얼굴을 박고 있던 아르가 부스스 눈을 떴다. 

       

       그리고 동시에 꼬리를 꿈틀했다. 

       

       퍽.

       

       하필이면 꼬리 끝이 리듬을 타듯 움직여 실비아의 뺨을 찰싹, 때렸고.

       

       “으앗?”

       

       놀라서 눈을 번쩍 뜬 실비아가 아르의 꼬리를 놓았다. 

       

       실비아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푸흡.”

       

       그리고 내가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볼을 부풀렸다.

       

       “…그렇게 웃겨요?”

       “미안해요. 그래도 덕분에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네요.”

       “뀨? 온니 꼬리 맞아써? 미아내!”

       

       아르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침대 위를 한 바퀴 데굴 굴러 가 실비아를 꼬옥 안았다. 

       

       “괘, 괜찮아. 아르야. 아프게 맞진 않았어.”

       “뀨우…. 다행이댜.”

       

       실비아는 아르의 폭신말랑한 젤리와 배를 만지자 기분이 곧 나아진 모양이었다. 

       

       우리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파메라 성을 향해 출발했다. 

       

       아르는 드래곤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말랑콩떡 모드로 변신했고.

       

       “쀼우!”

       

       실수로 사람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가는 동안 쀼 소리로 소통을 했다. 

       

       “좋아. 완벽해.”

       “쀼웃!”

       

       나는 아르의 말랑한 볼을 손바닥으로 찹쌀떡 빚듯이 문질러 주었다. 

       

       마침내 성 앞에 도착한 우리는 꽤나 거대한 성벽을 올려다 보았다. 

       

       “와, 작은 기사단이 관리하는 성인데도 가까이서 보니까 엄청 크네요. 역시 제국에서 임명한 기사단이란 건가….”

       “그러게요. 꽤 웅장하네요.”

       “쀼우!”

       

       성문 앞의 경비도 나름 삼엄한 편인 듯, 기사가 넷이나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 게임에서도 이런 느낌이었지.’

       

       파메라 성을 포함해 이렇게 군사 작전 위주의 소규모 성은 오히려 경비가 더 삼엄한 편이었다.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우리 같은 용병 나부랭이는 들여보내 주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오늘 특별한 용무가 있다는 말씀. 후후.’

       

       우리가 성문 앞으로 다가가자 내 예상대로 기사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멈춰라! 여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 이렇게 나와 줘야지.

       

       ‘단장패 가진 용병 출두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단장패를 꺼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 저, 저 사역마는!”

       

       기사 중 하나가 놀라서 소리쳤고. 

       

       “아르! 아르다!”

       “뭣들 하나! 어서 문 열어 젖혀!”

       “옙!”

       

       쿠구구구구구.

       

       곧 성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

       

       저기, 단장패는 확인 안 하시나요?

       

       ***

       

       아무래도 레키온은 성 안에서도 아르 인형을 들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단장이 웬 와이번 인형을 들고 다니니 기사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겠지. 아마 반나절도 안 걸렸을걸.’

       

       이렇게 폐쇄된 공간일수록 소문은 빨리 퍼지기 마련이라는 걸, 나는 군필자로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곧바로 단장실까지 쭉 안내를 받았고.

       

       똑똑똑.

       

       문을 두드리자마자 벌컥, 하고 단장실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레온 씨! 아르야! 그리고 실비아 씨도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레키온이 우리를 환한 얼굴로 맞아 주었다. 

       

       나는 먼저 단장실로 들어가며 안쪽을 슥 스캔했다.

       

       ‘오, 뭐야. 데보라인가?’

       

       안쪽에는 여자 기사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대략적인 외관을 알고 있는 나는 곧바로 그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데보라는 왜인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원래 이런 느낌이었던가?’

       

       언제나 당찬 모습을 보여 주던 데보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굉장히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내 뒤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레키온 단장님.”

       

       곧 실비아가 내 뒤를 따라 들어오며 환한 얼굴로 인사를 했고.

       

       “아.”

       

       실비아를 본 데보라는 외마디 탄식과 함께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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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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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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