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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절치부심하여 칼을 갈고 나왔다. 하지만 우리가 칼날을 들고 숫돌과 씨름하고 있을 때, 저들은 망치와 모루를 동시에 휘두를 힘을 기르고 있었다.

        

        

       ─크리스, 대만의 프로게이머

        

        

        

        

        

        

        

        

        

        

        

        

        

        

        

        

       “그럼 지금부터 다이스에게 어떤 물품들을 짬때릴지에 대해서 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와, 짬? 진짜? 이젠 숨길 생각도 없어요?”

        

       “택배로 받을지, 직접 가져갈지 정도는 선택하게 해드릴게요.”

        

       “아이, 나 방송 안 해! 배 째-우왁, 진짜 째려고 다가오고 있어, 이 사람! 여러분들! 얼른 경찰에 신고해요! 히에엑!”

        

        

        

       -ㅅㅂ 시작부터 텐션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종일관 당당한 미친련과 최근에 입뗀 미친련의 정면승부ㄷㄷ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유진없는 삶은 더이상 상상할수없어

       -유진다이스합방????? 오늘만큼 풍성한 저녁이 없다 야식딱대!!!

       -선생님 제발 방송 좀 그만 알차주십시오 제 지갑이 야식값으로 다 나가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5만 명을 돌파한 시청자가 화면 너머로 유진을 직시했다.

        

        단순히 말만 들어보면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 나름 일상적인 느낌이지만, 오른손에 도끼를 쥐고 있는 상태에서 입이 열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법. 5만 쌍의 눈동자가 어쩐지 광기가 뚝뚝 흘러내리는 듯한 유진의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원래 광기란 일상적인 면모와 그렇지 않은 면모가 아주 기묘하게 공존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법이었고, 자기 집 안에서 태연자약하게 택티컬 토마호크를 들고 돌아다니는 유진의 모습은 그 말뜻에 정확히 부합 중이었다.

        

        그 와중 정정할 생각조차 없이, 다이스에게 쓸모없는 물건들을 전부 덤핑해버리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유진의 모습은 한층 기괴함을 더했다.

        

        

        

       <고구마밥 님이 10,000원 후원하였습니다.>

       -와! 다이스! 작년엔 방송은커녕 인터뷰도 거르던 양반이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

        

       “우와, 도네이션 처음 받아봐. 이거 어떻게 반응해주면 돼요?”

        

       “마음대로 해요.”

        

        

        

        다이스.

        

        인터뷰 같은 거야 여럿 나갔지만, 직접적인 스트리밍을 통해 자신에게 다이렉트로 꽂히는 현금이란 존재는 그녀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요컨대 한 사람에게 향하는 직접적인 호의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사실에, 그녀가 허리를 꾸벅 숙여 생전 처음 받아보는 도네이션에 감사를 표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나 – 그러한 행동이 어느덧 6만대로 치솟고 있는 시청자 수 앞에서 벌어진다면 달라진다.

        

        100명 중 한 명만 도네이션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600명. 그보다는 적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럼에도 두 자리 수는 확실하게 넘는다는 소리였다.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이스는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으앙, 허리 아파….”

        

       “10분만 도네이션 막을게요. 냉각 시간입니다.”

        

       “아주 스트리머 다 되셨네요, 유진 씨.”

        

        

        

        그녀 입장에선 상당히 놀라웠다.

        

        스트리머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그동안 방송도 여러 번 보긴 했지만, 눈 앞에서 6만 명이나 되는 시청자들을 능수능란하게 조련하는 모습을 직접 관람하는 건 또 새로웠으니까.

        

        만약 자신이었더라면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유진이 아무리 돈으로 패든 땡깡을 부리든 어그로를 끌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기 때문이었지만 – 물론 지난 번처럼 발로 시청자를 걷어차 쫓아낸 적도 있긴 있었다 – .

        

        

        

        그것과는 별개로, 유진의 언박싱은 상당히 독특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시작부터 어디에서 보내주었다고 언급한 후 개봉하여, 내부의 내용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는 여타 언박싱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저 벽면 한 켠에 가득 쌓인 상자를 열고, 간략하게 소개한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이 가능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 박스를 개봉하는 건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가슴이 웅장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다이스 역시도 어제 간략하게 타 스트리머 또는 유어스페이스 채널의 언박싱 영상들을 몇 개 보고 이 자리에 온 상태지만, 아니나 다를까.

        

        예상을 대각선으로 뛰어넘는다.

        

        

        

       “상자는 제가 열 테니, 테이프 뜯는 것만 같이 도와주세요.”

        

       “어으, 토마호크 좀 반대편에 놔주세요. 많이 부담스러워요.”

        

       “직접 들어보실래요?”

        

        

        

        의외로 그녀는 군말없이 받아들었다.

        

        상당히 묵직한 무게. 무광택에 검은 색. 심지어는 날조차도 검은 색이었다. 보통은 ‘새파랗게 빛난다’는 표현이 어울려야만 하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의 택티컬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날은 무진장 날카롭게 서있었다. 어지간한 칼보다도 더 예리하게 갈려있는 도끼날은 역설적으로 손을 대보고 싶다는 기괴한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걸 눈치챈 것일까, 유진이 무심하게 덧붙였다.

        

        

        

       “그러다 다쳐요. 만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요.”

        

       “아. 그랬죠, 참. 여기요.”

        

        

        

        다시 소유권이 넘어간다.

        

        손목을 움직여 테이프 부분에 툭 갖다대자 톡 하고 잘려나간다. 손을 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테이프를 북북 뜯고는 사전에 준비한 쓰레기통에 구겨넣는다.

        

        이제 내용물을 빼내고 상자를 잘 접어놓으면 되는…데.

        

        

        

       “우와, 이거 뭐예요? 너무 귀엽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뭔.”

        

        

        

        상자를 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크기도 크고 무게도 무거웠다. 하지만 안에서 달각거리는 소리는 이것이 정교한 기계장치 같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내용물 간 적당한 유격을 두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용물을 내심 궁금해하고 있었더니, 이게 뭐람.

        

        

        

       <카르멘디엠 님이 5,000원 후원하였습니다.>

       -와 유진눈나 넨도가 몇개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십 개는 되어보이는 SD 인형 – 심지어는 전부 똑같은 것도 아니고 전부 다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 들이 박스를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유진이 – 내가 혼미해진 정신을 부여잡을 무렵 보이는 것은 은근슬쩍 들어있는 하나의 편지봉투. 내용물에 적혀있는 말들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일본의 피규어 회사와 협업하여 다양한 시제품을 제작했다.

        

       -이 모든 걸 전부 생산하지는 않을 예정이나, 일단은 몇 개를 뽑아 판매 가능한 소량의 시제품을 제작해놓았다. 편지 하단에 적힌 QR코드를 통해 판매 링크로 들어갈 수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들을 몇 가지 골라서 생산할 예정이니, 하나씩 확인하여 광고해주었으면 좋겠다.

        

        

        

        부유형 드론캠이 뒤에서 슬쩍슬쩍 움직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간단히 생각을 정리했다. 뭔지도 모르고 바로 QR코드를 띄울 수는 없으니, 이것들을 전부 소개한 다음 띄우는 식으로 해야겠다는 구체적 구상이 떠오른 건 바로 그 다음이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납작한 직사각형 캐리어 세 개가 조심스럽게 분리되어 나왔다. 박스 내부에 가득찬 뽁뽁이들을 뜯고 바닥에 내려놓자 쓸데없이 휘황찬란한 SD 피규어들이 그 면면을 드러내었다.

        

        그 수만 해도 무려 42개.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나하나 다 만들었는지는 모르겠긴 한데, 편지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기존 도안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최대한 재활용하여 금방 만들 수 있었다고 하더라.

        

        기술력의 발전이란 여러모로 대단하구나 싶다.

        

        

        

       “…어지럽네요.”

        

       “와, 가지고 싶다. 이거 머리맡에 두고 경기하면 실력 오를 것 같아요.”

        

       “괴상한 소리 좀 그만 해요.”

        

        

        

       -와 진짜 뒤지게 탐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 지난번에 깠던 이카루스시계만큼 가지고싶다

       -꼬리퀄리티 ㅗㅜㅑㅋㅋ

       -아 됐고 언제파냐고!!!!!! 링크내놔!!!!!!!!!!!!!

       -집안에 하나 들여놓기 딱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절하게도 피규어의 아래에는 어떤 장면을 모티브로 했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써있었다.

        

        그렇게 박스가 하나 열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드론캠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여러 각도에서 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택티컬 토마호크를 든 유진. 이게 첫 번째네요.”

        

       “일단 이거 찜.”

        

       “….”

        

        

        

        그렇게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패딩 입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진. 총 쏘고 있는 유진. 바닥에 발랑 드러누운 유진.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유진…물론 이것들 외에도 35개가 넘는 다양한 포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어딜 봐서 기존 도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야, 그냥 새로 전부 만든 것 같은데. 이게 기술력의 발전인가 싶었다. 2040년이 몇 년 남지 않은 시점이면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마지막 하나까지 전부 소개하는 데는 의외로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토탈 42개가 있습니다. 구매 링크를 곧 올려놓을 건데, 현재 판매 수량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고 하네요. 아마 들어가면 설문조사도 있을 겁니다. 어떤 상품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투표를…하.”

        

       “흐힣, 아니! 유진 씨! 저희 광고 중이에요, 광고! 그렇게 속마음 나오면 안 돼!”

        

       “왜 이런 게 존재하는 걸까요? 두려워지네요.”

        

        

        

       -와 지금사면 프리미엄임?????

       -아시1부랄 진짜 여기 광고 족같이하네(박수가 나올 정도로 영악하게 잘 판다는 뜻)

       -이걸 어케참냐고!!!!!!!!!!!!!!!

       -오늘도 사표를 내지 말아야 할 이유 하나 더 찾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발그만해!!!백수로남고싶어!!!알바찾고싶지않아!!!

        

        

        

        그와 동시에 QR코드화된 링크 업로드.

        

        그리고 1분 뒤, 판매 사이트는 터져버리고 말았다.

        

        트래픽은 그로부터 몇 분도 안 되어 역류한 후 도네이션으로 변환되었고, 삽시간에 유진의 방송은 돈을 주어도 자신의 메시지를 올리려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만 하는 마굴이 되었다 – 다르게 말하면, 도네가 1시간이나 밀렸단 소리였다.

        

        그 와중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휴대전화.

        

        

        

       “잠시만요, 무슨 일이래.”

        

       “무슨 일인데요?”

        

       “갑자기 전화가 왔네요. 몇 분 정도만 시청자 분들이랑 놀고 계셔요.”

        

       “네? 네!? 아니, 유진 씨! 어디 가! 으악! 잠깐만───!”

        

        

        

        질질질.

        

        유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에는 일절의 브레이크도 없었다. 찌지직 하고 매끈매끈한 뱃살이 바닥과 마찰하며 나는 소리가 처절하게 울려퍼지는 사이, 기력이 빠진 다이스는 그대로 바닥에 몸을 뉘였다.

        

        철컥. 문이 닫히며 유진이 통화를 하러 사라진 가운데, 그녀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드론캠을 이리저리 조작했다. 현재 송출 화면이 띄워진다. 요컨대 시청자들이 지금 어떤 화면을 보고 있는지 스트리머도 알 수 있단 소리였다.

        

        힐끔.

        

        다이스가 닫힌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갔냐? 갔지?”

        

        

       

       -갔냐?

       -유

       -진

       -유진뚠뚠콘다돼지뱀누나꼬리로휘감아주세요!!!!!!

       -아 다이스도 공범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제야 다이스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바닥에 가지런히 정렬된 피규어 하나를 집어든 그녀가 드론캠에 그것을 갖다대었다. 밥먹는 유진이었다. 음식 모양 플라스틱의 퀄리티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귀여웠다. 게다가 재질이 재질인지라 볼을 손가락으로 누르니 말랑푹신했다.

        

        목소리를 낮춘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 이게 마음에 드네요. 귀엽지 않나요? 꼬리도 잘 나왔고…근데 왜 이렇게 변태같이 섬세하게 나왔대. 아무튼 귀여우니 만족. 저는 제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상품이 이렇게 나온다면 되려 좋을 것 같은데….”

        

        

        

       -ㄹㅇㅋㅋㅋㅋ

       -거 다이스씨 집어치우고 유진이랑 첫만남이나 말해봐요

       -사이트 아직도 복구안됐죠? 개빡치죠?

       -다이스는 부럽다 달라고하면 하나 공짜로 받겠지?

       -아니 어떻게 이걸 40개나 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여러분, 이걸로 끝이 아니에요. 유진 씨 굿즈는 아직 한참 더 많이 나올 걸요? 당장 작년에도 그랬어요. 프로게이머 파생 상품들은 엄청 많아요. 구단이나 개인 로고 새겨진 옷도 있고, 키보드나 마우스, VR 접속기기는 예사죠.”

        

        

        

        머그컵. 베개. 키홀더, 뱃지와 팔찌, 에코백, 스냅백, 피규어 등등.

        

        그녀가 작년의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1년 전에도 이러한 혼란의 중심에 있었기에 다시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 다양한 제품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물론, 그 ‘다양한’에는 ‘괴상망측한’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간단히 예시를 들자면, 좀 널널하다 못해 맛탱이가 약간 가버린 구단은 작년에 다키마쿠라…그러니까 안는 베개 커버를 출시한 곳도 있었다. 물론 수위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래도 답이 궁금하다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과감함이었고.

        

        게다가 유진은 꼬리라는 메리트가 있으니…그런 광기어린 제품이 아니더라도 나올 건 많았다. 가령…꼬리 쿠션이나 꼬리 베개 정도?

        

        

        …잠깐만.

        

        좋은데?

        

        

        

       “잠시만요. 저도 박스 뜯어봐야겠네요.”

        

        

        

        망설임은 없었다.

        

        유진이 놓고 간 박스 해체용 도끼. 아까는 그리 부담스러웠는데, 한 번 목표가 정해지니 거칠 것이 없었다. 적당히 아무 박스나 들어올린 다이스가 그것을 통통 두들겼다. 그러다가 뭔가 의심스러운 소리가 나면 내려놓는다.

        

        물론 그것보다 더 간단하게는 택배 위에 붙여진 송장을 확인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개인 굿즈 시제품이라고 쓰여진 가벼운 상자 하나를 어디선가 기어코 찾아낼 수 있었다.

        

        박스를 앞에 내려놓고는 테이프를 이리저리 자르고 있자-

        

        

        

       “다 됐어요.”

        

       “흐익, 전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왜 놀라요?”

        

        

        

        어, 글쎄요.

        

        마음 속에 켕기는 게 좀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짚이는 게 아무런 것도 없는 사람보다는 좀 거칠고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더 반응이 날카롭듯이, 방금 전까지 유진 꼬리 베개만을 생각하며 박스를 뜯던 그녀에게는 유진의 등장이 그렇게나 무서울 수가 없었다.

        

        아무튼 무슨 일로 갔는지가 궁금해질 시점이었다.

        

        다이스가 질문을 입에 담자, 금방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전화예요? 좀 민감한 내용인가?”

        

       “아, 그런 건 아니고. 피규어 보내준 곳에서 온 전화였어요. 사이트가 터졌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해서, 광고 중이라고 했더니 떨떠름하게 끊더라고요.”

        

       “아, 하하….”

        

        

        

        …내가 사이트 담당자였으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다이스는 그리 생각했다. 아무튼 이젠 그녀가 질문을 받을 차례였다. 택배를 둘러친 테이프를 북북 뜯으며 답변했다.

        

        

        

       “아무튼 어, 송장에 개인 굿즈라고 써있길래 가져왔어요.”

        

       “벌써부터 열기 싫어지는데….”

        

       “아이, 괜찮아요. 이런 시제품들은 전부 이카루스에서 최종확인 거치고 튀어나온 거예요. 진짜 민감하거나 괴상한 것들은 선수랑 상의해서 나오거나, 아예 처음부터 빠꾸당하니까요.”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다이스는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지만, 뒤에서 관망 중인 유진의 눈길은 이미 짜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초나 지났을까,

        

        

        

       ───부우욱!

        

        

        

       “우와! 이게 뭐야!?”

        

       “…허이구.”

        

        

        

       -??????????????

       -오ㅓㅏ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QR코드내놔QR코드내놔QR코드내놔QR코드내놔QR코드내놔QR코드내놔QR코드내놔QR코드내놔QR코드내놔QR코드내놔

       -딱대라 꿀잠예약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준내탐스러 ㅋㅋㅋㅋㅋ

        

        

        

        아나콘다 꼬리 베개.

        

        이게 왜 진짜임!을 외치며 품 안에 베개를 꼬옥 껴안은 다이스를 보면서, 유진은 뒷목이 시큰거리는 걸 느꼈다.

        

        

        

       “…이런 게 왜 진짜 있는 거래.”

        

        

        

        다들 선 위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유진조차 베개의 두께와 푹신함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문득 술이라도 마셔야 이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괴상한 물음이 솟아올랐다.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은 채, 그녀는 상실된 어이를 되찾을 때까지 옅은 웃음만을 흘려대고 있었다.

        

        아시아 예선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나콘다 꼬리 베개(유진향 첨부)

    원하는대로 껴안고 잘 수 있습니다

    저도 하나 가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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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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