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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자리에 앉고서 외투를 벗고 나니 조금이나마 살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단어 하나로 요약하자면 끔찍함이었다.

       

       아침부터 엔리에게 이끌려 바깥으로 나와서는 여러 옷가게를 진전해야 했으니까.

       

       나를 데리고 다니는 동안 엔리는 자그마한 자제도 보이지 않았다.

       

       내게 이 옷을 입어보라고 밀어붙이는 그녀는 너무도 깊은 원한을 지닌 악귀처럼 보였다.

       

       덕분에 나는 온갖 옷을 입어보게 되었다.

       

       심지어는 짧은 치마처럼 노출도가 있는 복장까지도 말이다.

       

       나는 엔리의 권유를 필사적으로 거절했지만 명분을 쥐고 있는 쪽은 엔리였다.

       

       엔리가 울상을 지어버리면 나로써는 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그 덕분에 엔리의 분노가 가라앉기는 했다만 오늘 겪은 치욕을 생각해보면 그리 수지에 맞는 거래는 아닐 거다.

       

       하아.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엔리의 스마트폰을 박살내 버리고 싶구나.

       

       저 전자기기 안에는 본인이 오늘 하룻 동안 겪었던 치욕이 그대로 담겨 있을 테니까.

       

       곰방대가 없어서 그런가 손이 심심하여 탁자를 두드리고 있자니 남자 하나가 내게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그 자는 중년에 가까운 외모를 지닌 자였다.

       

       너털웃음이 어울리는 다소 포악한 얼굴을 지닌 그는 나름 단련을 한 듯 괜찮은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자! 아무거나 시키십시오! 대회 상금을 여기에 다 털고 갈 생각이니까요!”

       

       목소리 때문에 이 자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배민황.

       

       엔리의 팀원 중에서도 나이가 있는 축이라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던 녀석이다.

       

       더욱이 내게 커다란 원망을 지니고 있는 녀석 중 하나지.

       

       현실에서 만난다면 자신의 안에 쌓인 울분을 모두 풀겠다고 소리치던 녀석이거늘 어찌하야 오늘은 이토록 수줍은 것인지.

       

       “화령님. 들으셨죠? 아저씨가 다 낸다니까 제일 비싼 걸로 가자고요. 여기 1인분에 9만원 하는 갈비부터 먹어보죠?”

       

       어느새 내 옆에 달라붙은 이 여성은 나비린인 것 같구나.

       

       이 놈도 본인을 골탕먹이겠단 생각을 품고 있었을 터인데 왜 이토록 친한 체를 하는 것이지?

       

       혹여 둘이 합심해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것인가?

       

       흐음.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리 경계를 할 필요는 없겠지.

       

       이들에게서 노골적인 적의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여러분! 왜 같이 왔는데 왜 아무도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건가요?!”

       “몰라서 물어보냐?”

       “엔리 언니는 너무 익숙한 얼굴이잖아요.”

       “솔직히 이제 좀 지겹죠.”

       “너무해!”

       

       나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느긋이 메뉴판을 감상했다.

       

       그를 보고서 느낀 단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비쌈이었다.

       

       이 가게의 메뉴들은 하나 같이 비쌌다. 거기에 적힌 것 중에 제일 싼 게 8만원이 넘는 것이었고, 대개의 메뉴들은 10만원안팎의 가격을 자랑했다.

       

       뭐어. 이게 단순한 음식점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

       

       하나로 완결된 메뉴가 10만원이라면 그냥 고급 음식점이라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허나 여긴 고깃집이었다.

       

       세상의 어느 누가 한 사람에 고기 1인분을 시켜 먹는단 말인가.

       

       아무리 위장이 작아도 2인분 이상.

       

       대식가라면 그 한도가 어딘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이 이 인분이라는 체재일 터인데 1인분에 10만원이라니?!

       

       무어냐. 여기서 파는 소는 환단을 먹고 자라난 영물이라도 되는 것이냐?!

       

       내 상정을 한참 벗어난 가격에 당혹스러워 하던 나는 고개를 들어선 이 가게에서 한턱을 내겠다 소리친 배민황의 얼굴을 살폈다.

       

       “왜 그러십니까. 화령님?”

       “배민황님. 정말 마음대로 시켜도 되나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마음껏 시키면 안 되는 금액으로 보인다마는?

       

       여기서 누군가 마음을 먹고 음식을 시키기 시작한다면 여느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이 날아갈 게 분명하다.

       

       아무리 그대가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상금을 받는다고는 한들 여기에서 나가는 지출이 그의 몇 배는 될 터인데 그래도 되는 것이야?

       

       내 물음을 들은 배민황은 무얼 걱정하냐는 듯이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을 내놓았다.

       

       “화령님. 이 가게를 고른 것도. 한턱을 내겠다고 한 것도 저입니다. 그 정도는 낼 수 있으니 그러겠다고 한 겁니다.”

       

       내 가르칠 적에는 투덜거림도 많고 쓰잘데기없는 핑계를 대며 도망칠 생각만 하는 녀석이라 생각을 했거늘.

       

       현실에서 만나니 새삼 다르게 보이는 구나.

       

       이것이 바로 재력이 주는 힘이라는 것인가.

       

       “이야. 배민황님. 역시 대기업다우시네요.”

       “바니야. 나 좀 멋있냐?”

       “물론입니다. 고기 사주는 사람만큼 멋있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치. 그렇지?”

       “아저씨. 지금 호구 취급당하고 있는 거야.”

       “나도 알아! 그렇지만 상관없어! 내가 호구를 자처했으니까!”

       “…아. 그러셔요?”

       

       저리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내가 자제를 할 필요는 없겠구나.

       

       좋다. 그럼 무엇을 먹여서 키운 것인지 모를 이 고기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느껴보도록 할까.

       

       우리가 주문을 끝마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고기를 들고서 방으로 찾아왔다.

       

       그의 손에 들린 고기들은 하나 같이 영롱한 분홍빛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사이 사이에 그려진 하얀 색의 지방들은 분홍색 대지에 그려진 강물과도 같았으니 자칫 메말라 보일 수 있었던 대지를 풍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종업원은 우리에게 고기를 굽는 걸 허하지 않았다.

       

       오른 손에 집게를 들고 왼손에 가위를 쥔 그는 불판 위를 지배하는 자였으니 내게 허락된 것은 오롯이 하나.

       

       그의 집게가 움직이는 걸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고기가 불판 위에 올라가며 지글거리는 소리를 낸다.

       

       자신이 맛있어 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은 소리에 절로 침이 삼켜졌다.

       

       “이제 먹어도 되나요?”

       

       고기의 색이 갈색으로 물든다 싶어 물음을 던졌지만 종업원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흐으. 고문을 당하는 것만 같구나.

       

       코로 지방이 녹아내리는 냄새가 전해진다.

       

       귀에 고귀한 음악과도 같은 소리가 전해진다.

       

       그런데 저 고기를 건드릴 수조차 없다니!

       

       이것이 바로 기다려를 당한 강아지의 심정인가!

       

       마이 튜브에서 그를 구경할 때는 그저 기특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상상 이상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던 것이었구나.

       

       찰나이면서도 영원과 같은 시간이 흐른 후에 종업원이 집게와 가위를 내려놓았다.

       

       드디어인가? 드디어인 것이더냐?!

       

       “이제 드셔도 됩니다.”

       

       나는 그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귀신 같이 젓가락을 움직여 고기를 한 점 집었다.

       

       마음 같아서는 탐욕스러운 돼지마냥 여러 점을 집어 입 안에서 우걱거리고 싶었지만 그는 너무 교양 없는 행동이지 않은가.

       

       이런 비싼 것을 먹을 적에는 하나하나 음식의 맛을 음미해야 하는 법.

       

       나는 고기를 장에 찍은 후 천천히 그것을 입에 넣었다.

       

       혀 위에서 느껴지는 진한 고기의 향과 풍부한 육즙.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그것만으로 이미 이 고기는 자신의 왜 이런 가격을 받았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어찌 소를 키우면 이런 맛이 나는 것인가.

       

       거기에 감탄을 하며 이빨을 움직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녹아 내렸다.

       

       고기가 입 안에서 녹아내린 것이다.

       

       “맛있죠?”

       

       엔리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고기를 불판에 구웠을 뿐이거늘 이렇게나 맛있는 것일까.

       

       과거 무림에 있을 적에는 아무리 귀하게 자란 소를 먹어도 이 고기의 발치조차 따라오지 못했거늘.

       

       품종이 다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서 차이가 나는 것인가?

       

       본인으로썬 감히 추측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그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내게 중요한 것은 이 고기들을 본인의 위장으로 집어넣는 일이었다.

       

       *

       

       나비린은 조금도 쉬지 않고 젓가락을 움직이는 화령의 모습을 구경했다.

       

       그녀가 음식을 먹는 것은 꽤 재미난 볼거리였다.

       

       고고하고 우아한 인상을 주는 여성이 흐물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그마한 입술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걸 어디서 보겠는가.

       

       더 재밌는 점은 화령이 무척 빠르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 전혀 게걸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저렇게까지 빠르게 음식을 먹으면 더럽다거나 탐욕스럽다거나 하는 감정이 느껴지기 마련이거늘 화령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빠르게 젓가락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예법이라고 할 만한 것을 완벽히 지키고 있었다.

       

       빠르고 다급한데 동시에 우아하다니.

       

       실로 모순적인 이야기였지만 화령은 그를 성립시키고 있었다.

       

       나비린은 그 풍경을 지켜보다 문득 아쉽단 생각을 했다.

       

       화령님이 얼굴을 공개한 사람이었다면 먹방을 권유해 보았을 텐데 말야.

       

       잘은 몰라도 화제성 하나는 끝장 날 걸.

       

       “슬슬 배도 채웠겠다 술 좀 시킬까요?”

       

       처음 구웠던 고기들이 사람들의 입으로 모두 사라졌을 무렵 배민황이 술을 마시자는 말을 꺼냈고 술자리에 환장을 하는 나희와 바니가 호응했다.

       

       나비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 자리에 음식보다는 술을 마시러 나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자리의 주인공인 화령 같은 경우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집중해서 고기를 탐하고 있었다.

       

       “화령님.”

       

       나비린의 부름에도 화령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설마 지금 말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먹는데에 집중하고 계신 거야?

       

       “화령님?”

       

       나비린이 재차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화령이 고개를 들었다.

       

       “왜요?”

       “술 드실 거죠?”

       “술이요? 꼭 마셔야 하나요?”

       

       떨떠름함이 절로 느껴지는 화령의 대답에 나비린이 웃음을 흘렸다.

       

       술 잘 못 드시는 구나?

       

       잘 됐다.

       

       “술에 약하신가봐요?”

       “아뇨. 그렇진 않은데 술은 맛이 없잖아요.”

       “네? 요즘에 맛있는 술이 얼마나 많은 데요. 한 번 드셔 보세요.”

       “술이 맛있어 봐야 술이잖아요.”

       

       화령이 거절의 의사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비린은 집요했다.

       

       “술에 약하면 약하다고 하세요. 그럼 저희도 권유하지 않을 게요.”

       “약하진 않다니까요?”

       “에이. 허세 부리지 않으셔도 돼요. 여자가 술에 약한 게 뭐 흠이라고.”

       “맞습니다. 화령님. 못 드시겠으면 안 드셔도 됩니다.”

       “못 마시는 게 아니라 안 마시는 거라고요.”

       

       나비린이 살살 긁는 것을 보고서 분위기를 파악한 배민황이 끼어들어서 화령을 도발했다.

       

       입담이 좋기로 유명한 스트리머 둘은 화령에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졸지에 술을 안 마시면 술에 약한 걸로 알겠다는 식으로 판이 짜여지자 화령이 한숨을 내쉬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알았어요. 한 번 마셔볼게요. 대신 맛없으면 입에 안 댈 거에요.”

       “화령 씨. 괜찮겠어요?”

       

       그를 보고서 엔리가 화령을 말리려 했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화령은 자신의 발언을 되돌리지 않았다.

       

       나비린은 괜찮다 이야기하는 화령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모르겠죠. 내가 이 날 만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화령님.

       

       당신이 그 동안 저를 괴롭히며 주었던 수많은 고생과 굴욕을 오늘 이 자리에서 갚도록 하겠습니다!

       

       꽐라가 되어서 술주정을 부리는 굴욕적인 동영상을 찍고야 말겠어!

       

       *

       

       아라와 식사를 할 일이 잦았던 엔리지만 그녀는 아라와 술자리를 가져본 적은 없었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두 사람 다 술을 마시러 가느니 차라리 카페에 들어가서 단 음식을 먹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었을 뿐.

       

       그래서 엔리는 아라가 얼마나 술을 잘 마시는지 알지 못했다.

       

       보통 술에 강한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술을 찾는 걸 생각해 보았을 때 아라가 그리 술에 강하진 않을 거라 추측하곤 있었지만.

       

       허나 엔리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가 버렸다.

       

       “이거 과일 막걸리 맛이 괜찮네요. 좀 더 시키죠? 다들 괜찮죠?”

       “…더요?”

       

       아라는 강했다.

       

       그녀에게 술을 권유하던 이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와중에도 쌩쌩할 정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 없는 사람한테 도발을 건 게 잘못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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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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