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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인생을 무슨 ‘다음 삶’이라도 있는 것처럼 살고 있는 남자.

     젊은 시절에는 마치 ‘이번 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샤를로트 렘부르 군터를 크림슨 지브롤터에게 빼앗기고-본인만 그렇게 생각한다-난 뒤로는 이번 생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남자.

     간단히 말하여, 인생을 막 살고 있는 사람이다.

     너무나도 막 살고 있어서 왕국의 충성병자들 중 일부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통해 전해들은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사실상 차기 국왕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시점이 중요하다.

     

     세인트 지오의 나이는 나의 아버지 크림슨 지브롤터 백작과 비슷하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생각한다면 그 평균 수명보다는 적게 살 것처럼 막 살고 있지만, 노스트럼의 역대 국왕 평균 나이를 생각하면 최소한 60세까지는 살 확률이 크다.

     보통 국왕의 자리는 선왕이 죽고 그 다음 왕이 상속을 받듯 물려받는 것이 기본.

     그런데 앞으로 얼마 뒤, 40대 창창한 나이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두고 차기 국왕을 대놓고 언급한다?

     그 누가 쉽게 말을 꺼낼 수 있으랴.

     그냥 폐급이기는 해도 아직 건강상의 문제는 없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국왕이라는 자를 ‘다음 후계자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왕을 바꾸자고.

     그래서 그 누구도 감히 무능왕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성격이라도 호구 같았다면 앞에서 대놓고 에둘러 비판하거나 그랬겠지만, 뒤끝 하나는 왕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인간이라 뒤에서도 쉬이 비판하지를 못했다.

     왕국에서 대회 같은 걸 열어도 마찬가지.

     

     왕국의 어떤 귀족도 ‘왕족’이 대회에 나섰는데, 그걸 대놓고 이기려고 들지 않는다.

     왕가에 밉보이거나 한다면, 설령 그 상황에서는 ‘허허’ 웃고 넘어가더라도 그 후에 먼지 한 톨이라도 꼬투리잡아 반역으로 몰고갈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세인트 지오가 마도자동선을 훔치거나 샤를로트 백작부인을 성희롱하는 일도 없었겠지.

     

     아.

     있기는 있었다.

     단지 다들 지금은 무덤에 묻혀있고, 아마 그들이 죽은 날에는 저마다 갑자기 방에 투명마법을 사용하며 찾아온 황금갑옷의 기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는 있으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상황.

     건전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면 그 다음날 목이 졸려 죽을 걸 알기에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

     그저 뭐 같지만 참고 또 참으면,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국왕이 되어 노스트럼을 바꾸어주기를 기다리는 상황.

     술에 취해서 자기 멋대로 경룡 대회에 뛰쳐나와 1등하겠다고 나서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

     “까라고 그래.”

     나는 달린다.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누구든, 내 앞을 향해 포격을 날리는 마법사들이 당황하든 말든.

     “어쭈.”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성벽 위로 뛰어올라, 코너링을 하지 않고 직선을 따라 달리며 나보다 어떻게든 더 먼저 날아가려고 하는 저 금발적안의 남자가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게 아니라 쪽팔림과 분노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든 말든.

     “니드호그. 더 빠르게. 감당할 수 있겠나?”

     푸르르르ㅡㅡㅡ!!

     나는 지팡이 뒤로 마력을 방출하여 니드호그에게 ‘부스터’가 되어주고, 니드호그는 크게 날개를 펄럭이며 그 가속을 받아 더 빠르게 트랙을 따라 달린다.

     콰ㅡㅡㅡ앙!

     마법사 하나가 날린 폭발이 시야를 가린다.

     순간적으로 성벽 위를 보니, 나를 향해 거의 울상을 지으며 마법을 날린 유약해보이는 청년은 어느덧 사색이 되었다.

     한 명은 당장 이 나라의 권력자.

     그 자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마구 퍼부으며 저기 저 건방진 놈을 향해 공격을 퍼부으라고 ‘왕명’을 내리니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하지만-

     “왕국보다는 제국이 더 미래가 밝아보이기는 하겠지.”

     캬ㅡㅡㅡ악!!

     니드호그가 폭연을 향해 소리를 내질러, 폭연을 몰아내며 앞으로 다시 날아간다.

     마법사를 슬쩍 바라본 니드호그의 시선에 마법사는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어쩌겠는가.

     현재의 권력자가 어쩌면 ‘차기 황제’가 될 지도 모르는, 최소한 지금의 황제가 자신의 숨겨진 사생아들보다 더 아낀다고 하는 사위-제국의 부마가 될 수 있는 자를 공격하라는데.

     공격을 안 하면 노스트럼의 입장에서는 매국노가 되고, 공격을 하면 제국 부마의 노여움을 산다.

     물론.

     “훗.”

     나는 제위를 이어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런 상황을 이용하여 저 반칙을 일삼는 주정뱅이 음주기승자에게 ‘정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가시박힌 월계관을 잠시나마 머리에 쓸 수 있다.

     ‘애초에 이럴 때 권력 좀 써먹으려고 제국까지 가서 황제 폐하라고 불러준 걸.’

     이럴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뭐하러 합스베르크 듣기 좋은 소리를 하겠는가.

     ‘아버지를 무능왕 억제기로 쓰기에는 너무 위험하거든.’

     아버지는 바로 검부터 들 사람이다.

     

     “이, 반역자 새끼가ㅡㅡ!”

     조금 전 내 뒤를 스쳐지나가며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반역’을 운운한 저 생각이 짧은 남자는 자기 발언의 수위를 생각하지 않는다.

     “스크린에 소리까지 실시간으로 전해지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지.”

     혹시나 지금 상황이 스크린에 비친다면, 그리고 입모양을 통해 무능왕이 내게 한 말을 알아차린 이가 있다면.

     “그래도 ‘지브롤터’가문의 장남인데, 대놓고 반역을 운운했다고? 하하.”

     아마도 지금쯤 뒷목을 잡고 쓰러지거나, 왕국 내전이 일어나는 걸 걱정하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내놓은 자식이었지만, 그건 노스트럼 입장에서는 내놓은 자식이었지.”

     펄럭.

     “그리고 이럴 때야말로, 제국 입장에서는 지브롤터를 더 품으려고 할 테고.”

     노스트럼의 수호자였을 때는 지브롤터는 모든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노스트럼의 편이었지만, 검과 방패를 내리고 좌우로 손을 뻗고 있는 ‘중립’의 위치에 있다면 지브롤터는 그 위치가 사뭇 달라진다.

     노스트럼의 편에 서면 전통적인 왕국의 수호자 역할이 계속되겠지만.

     테르시안의 편에 선다?

     노스트럼을 향한 첫 번째 칼날이 된다.

     “저건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잠시 무능왕의 생각을 읽어내고 싶다는 의욕이 솟구쳤지만, 나는 니드호그가 날아가는 전방을 주시해야 했다.

     “어이쿠.”

     “……그레이 지브롤터!!”

     앞.

     세인트 지오를 위한 충성병자, 제로스 바르셀 단장이 결승선을 지키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을까, 라고 하기에는 저 인간의 생각이 어느정도 보인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국왕이 되면 황금여명 기사단이 전부 버려질 것 같으니, 어떻게든 세인트 지오를 모셔야겠지.”

     전 국왕의 사설 경비대같은, 현 국왕에게 충성하지 않는 무력집단은 차기 국왕에게 있어 그저 숙청 대상일 뿐.

     “감히, 네가 우승을 하려고 해?!”

     “그래서 막으시겠다.”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미 상대 비룡은 속도 경쟁이 아닌, 기수의 검격에 승패를 맡기기로 한 듯 제로스 단장이 검기에 집중하도록 최대한 흔들림 없이 체공하고 있다.

     상하좌우.

     어디로 피하든, 살기등등한 오러가 날아온다.

     “거 참.”

     나는 니드호그의 고삐를 세 번 당겼다.

     신호를 인지한 니드호그가 잠시 속도를 낮추고, 나는 니드호그의 등 위에서 왼발로 섰다.

     “다른 건 몰라도, 검을 쓰는 실력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여주시겠다?”

     첫 번째 선로에서는 내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지팡이를 휘둘러 공격을 흘려냈다.

     

     본인도 오러를 쓴다는 것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되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지켜보는 결승선 앞에서 오러까지 사용하며 기어이 나를 격추시키려고 한다.

     설령 내가 오러를 써서 대응한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오러 사용자-‘마스터’라는 걸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

     “최소한 같이 죽자는 거네.”

     그럴 수는 없지.

     “니드호그!”

     타ㅡㅡ앗.

     나는 왼발로 니드호그의 등을 디디며 크게 뛰었다.

     한 발로 뛰어오르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느나, 니드호그가 관중석에 있던 모두가 보일 정도로 나를 크게 위로 튕겨올린 덕분에 나는 높이 점프할 수 있었다.

     “뭣…?!”

     “앞에서 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나를 한참이나 올려다보는 제로스 단장의 머리 위를 넘어간다.

     점프하면서 일부러 몸을 뒤집어, 제로스 단장의 머리 위를 바로 지나가는 순간에는 다리가 하늘을 향하고 눈이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공중제비.

     기사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겠지만, 하늘을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비룡 위에서 하기는 쉽지 않다.

     꺄아아아악ㅡㅡㅡㅡㅡ!!

     관중석에서 비명이 가득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대로 그냥 떨어진다면 죽음이겠지만, 높이 떠오른 나와 달리 제로스 단장의 아래에서 그림자 하나가 치솟았으니까.

     회색 그림자. 

     나는 그림자의 뒤, 발판을 손잡이로 잡았다.

     펄럭.

     회색의 날개가 펄럭이며, 결승선을 통과한다.

     압도적인 속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는 왼손으로 발목 대신 발을 걸치고 있던 발걸이를 잡은 채 트랙 중앙을 날았다.

     고요하다.

     

     1등이 그레이 지브롤터라는 것과 별개로, 저 뒤에서 천천히 날아오는 황금색 비룡에 모두가 침을 삼킨다.

     누군가는 나를 향해 ‘저 저 눈치없는’이라면서 당장이라도 자리를 떠나고 싶어하지만, 나는 눈치가 없어서 1등을 한 게 아니다.

     “니드호그. 잘 했어. 이제….”

    푸르르.

     니드호그는 지금까지 달려왔던 때보다 더 긴장한 날갯짓으로 선회했다.

     

     나머지 19(+1)마리의 선후배 비룡을 비웃듯이 넘어설 때도 아무렇지 않게 날던 녀석이 갑자기 긴장하며 날개를 천천히 움직인다.

     ‘녀석.’

     아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겠지.

     왕보다 더 먼저 1등으로 도착했다는 경룡은 전부 이 순간을 위한 ‘과정’이라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을테니.

     사냥대회.

     우수한 성과를 거둔 기사들은 간혹 그런 짓을 하고는 한다.

     제가 잡은 사슴을 누구누구 영애에게 바칩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나 때로는 생각을 했지만.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펄럭, 펄럭.

     VIP 관중석을 향해, 니드호그가 조심스럽게 날개를 펄럭이고, 나는 관중석의 난간에 왼발로 착지하며 오른쪽 다리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아스타시아.”

     VIP 좌석, 제국 학생들이 앉아있는 아스타시아의 앞.

     “1등의 영광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손을 뻗었고, 아스타시아는 멍한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1등의 영광을, 사랑하는 레이디께.”

     무능왕이 트랙에 갑자기 뛰쳐나오는 것이 무능왕의 개연성이라고 한다면.

     “당신에게 1등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해 날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건, 지브롤터의 개연성.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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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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