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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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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新婚)
    갓 결혼함. 또는 새로 결혼함. 신혼기의 부부는 신혼부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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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旅行)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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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을 합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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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 시기에 떠나는 여행을 뜻한다. 그 말은 곧 노아와 자신이 결혼한 사이이며 신혼이라는 말이고… 우리가 부부라는 말이고… 여긴 신혼집이라는 말이고… 노아가 내 아내라는 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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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머릿속 모든 미니 리안들이 하얗게 굳어 멍청한 얼굴로 온갖 망상과 생각을 쏟아내는 바람에 리안은 한 번에 너무 많은 명령어를 입력받은 로봇처럼 딱딱하게 굳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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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관성 없이 쏟아지던 무수한 생각들은 결국 한 가지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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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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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손을 어정쩡하게 붙잡고 있던 리안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어째선지 그림체가 진지해진 리안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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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질게.”
    “..어?”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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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단 -… 따다단 -..
   
   대앵 ~ 대애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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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웨딩홀에나 울려 퍼질 노랫소리가 메아리쳤다. 노아는 멍하니 리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무어라 웅얼거렸다. 제대로 들리지 않아 귀를 기울이고자 했지만, 노아가 더욱 고개를 푹 숙이는 바람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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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드러난 귓바퀴와 손가락 끝이 붉게 달아오른 것으로 봐선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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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5초 정도 지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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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퍼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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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자신이 한 말이 고백이나 다를 바 없다는 걸 자각한 리안의 얼굴이 거대한 폭음을 내며 벌겋게 익어버렸다. 머리 위로 잘 지은 밥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같은 게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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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리,리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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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대로 흐느적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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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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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이 덜컹거리며 접시와 나이프 따위가 바닥을 뒹구는 소리를 들으며 리안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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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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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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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가벼운 기합과 함께 번쩍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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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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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이 어두컴컴해서 그런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시트나 등 뒤로 느껴지는 적당히 푹신한 감각으로 봐선, 자신이 기절한 후 침대로 옮겨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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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가 엄청 좋은 향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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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은하게 맡아지는 꽃향기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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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이럴 때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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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가볍게 제 뺨을 때려준 후 흐려졌던 이성을 겨우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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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노아의 정신세계로 끌려들어 온 거 보면 노아도 아이리스와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는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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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앞서나간 생각일지 몰라도 근거가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노아가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른 시간까지 침대에 콕 박혀있던 것도 이상했고, 꿈속에서 말도… 안되는.. 아니 어쩌면 말이 될지도 모르는? 하여튼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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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다.. 노아를 깨울 때도 이상했지. 평소였다면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일어났을 텐데, 소리 높여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던 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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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심각한 얼굴로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나간 끝에 한가지 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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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아이리스와 같은 경우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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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구 너머로 검은 기운을 뿜어내던 아이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리안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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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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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게 결심한 후 침대로 추정되는 장소를 벗어나고자 어둠 속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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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컹, 시트 위를 더듬던 손이 묘하게 뜨겁고 말랑한 것을 덥석 붙잡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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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초의 시간이 흘렀을 때, 꽤 익숙한 감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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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초의 시간이 흘렀을 땐, 어째서 익숙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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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초의 시간이 흘렀을 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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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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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꼬리를 밟은 쥐처럼 온몸에 솜털이 쭈뼛 섰다. 시간이 길게 늘어지고 리안의 몸이 잔상을 남기며 뒤로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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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바밧!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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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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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리의 벌레 마냥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다가 그대로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욱신거리는 뒷머리를 문지르며 상체를 세우자 얼굴 위로 긴 천 자락이 스쳤다. 천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오는 걸로 봐선 커튼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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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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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곧바로 커튼을 양옆으로 열어젖혔다. 밝은 빛이 방 안에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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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벌써 아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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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른하게 풀린 노아의 목소리가 침대 위에서 울려 퍼지더니, 하얀 셔츠 하나를 잠옷처럼 입은 노아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 리안이 코너에 몰린 쥐처럼 벌떡 일어나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노아를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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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마주치자 노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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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침.”
    “아,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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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적인 장면에 리안이 고장 난 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던 리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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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눈동자는 훤히 드러난 상체와 새하얀 허벅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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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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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머릿속에 위험 경보가 시끄럽게 울리는 것과 동시에 리안의 몸이 재차 잔상을 남기며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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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몸이 본능적으로 화장실을 찾아 굴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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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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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흐흐… 오늘도 화장실이 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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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기억 속 리안도 이런 반응을 종종 보여줬는지, 노아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간지러운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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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화장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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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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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파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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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있다간 노아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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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파의 말에 본능파 미니 리안들 몇몇이 이성파로 넘어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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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정신과 육체적 행복도 중요하지만 노아보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
    “허…! 언제 이런 기회가 온단 말입니까?!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뭣보다 이번 꿈이 아이리스 때와 같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개인의 소, 소망이 반영된 꿈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저 말도 일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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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파에 있던 미니 리안 몇몇이 본능파로 넘어왔다. 보다시피 리안의 머릿속에선 이성파와 본능파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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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우세한 건 이성파였다. 짐작이라고는 하나 아예 근거가 없는 말도 아니었고, 별거 아닌 근거더라도 욕망보다는 노아의 안전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치열하게 공방이 오고 가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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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어째서 이성과 본능이 비등하게 나뉘어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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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춥다. 아직 봄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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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리안의 손을 깍지 껴 잡은 채 한쪽 팔을 제 품에 끌어안은 상태로 나긋한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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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으응. 그, 그,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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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경험 제로, 여자 경험 제로인 리안에게 여자… 그것도 노아같은 미녀와 찰싹 달라붙어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받는 건 학창 시절 전교생 앞에서 발표하던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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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거리감 없이 훅 들어와 진하게 스킨쉽을 할 때마다 이성 쪽 리안들 대다수가 우르르 본능 쪽으로 몰려갔다. 그런 본능을 이성 리안이 겨우겨우 설득하는 일이 반복되어 비율이 비등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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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숨을 어떻게 쉬는 거더라? 걷는 게 이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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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리안 대다수가 옥신각신 싸움하고 있다 보니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리안은 자신이 어떻게 숨 쉬고 걷고 있는지 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그저 여름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나 미소녀에게 쓰다듬을 당해 골골거리는 고양이가 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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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것처럼 행복하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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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게 자란 나뭇가지에 파릇한 잎사귀가 작게 흔들리고 그 사이로 따스한 빛이 쏟아져 내리는 풍경도, 맞닿아 슬며시 땀이 흘러나오는 손바닥도, 서로의 향기가 뒤섞여 낯설지만 안온한 향기가 서로를 감싸 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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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게 동화 속의 한장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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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미래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런 생활을 꿈꾸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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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설마.. 노아의 꿈이 아니라 내 꿈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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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이 덜컥 들 정도로 달콤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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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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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속에 녹아들 것 같은 기분에 빈손을 들어 제 뺨을 거칠게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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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씨, 뭐지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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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놀란 토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노아 못지않게 놀란 얼굴로 제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제 얼굴을 가격한 건 제 의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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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가… 본능적으로 그래야 할 거 같아서 -…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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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혀를 살짝 깨물며 얼굴을 옅게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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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주인공’스러운 능력이 생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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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진지해지려야 진지해질 수 없는 개그 주민다운 생각을 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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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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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굳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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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삽화 편집하느라 너무 오래걸리고 말았네요 ㅠㅠ
요번주 일요일은 휴재 없이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신혼(新婚)

갓 결혼함. 또는 새로 결혼함. 신혼기의 부부는 신혼부부라고 부른다.

여행(旅行)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둘을 합치면?

신혼 시기에 떠나는 여행을 뜻한다. 그 말은 곧 노아와 자신이 결혼한 사이이며 신혼이라는 말이고… 우리가 부부라는 말이고… 여긴 신혼집이라는 말이고… 노아가 내 아내라는 말이고…

리안의 머릿속 모든 미니 리안들이 하얗게 굳어 멍청한 얼굴로 온갖 망상과 생각을 쏟아내는 바람에 리안은 한 번에 너무 많은 명령어를 입력받은 로봇처럼 딱딱하게 굳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일관성 없이 쏟아지던 무수한 생각들은 결국 한 가지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꽉.

노아의 손을 어정쩡하게 붙잡고 있던 리안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어째선지 그림체가 진지해진 리안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책임질게.”

“..어?”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줄게.”

따단 -… 따다단 -..

대앵 ~ 대애앵~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웨딩홀에나 울려 퍼질 노랫소리가 메아리쳤다. 노아는 멍하니 리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무어라 웅얼거렸다. 제대로 들리지 않아 귀를 기울이고자 했지만, 노아가 더욱 고개를 푹 숙이는 바람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살짝 드러난 귓바퀴와 손가락 끝이 붉게 달아오른 것으로 봐선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5초 정도 지났을까.

퍼엉!

뒤늦게 자신이 한 말이 고백이나 다를 바 없다는 걸 자각한 리안의 얼굴이 거대한 폭음을 내며 벌겋게 익어버렸다. 머리 위로 잘 지은 밥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같은 게 솟아났다.

“어..어? 리,리안?!”

리안은 그대로 흐느적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챙그랑!

테이블이 덜컹거리며 접시와 나이프 따위가 바닥을 뒹구는 소리를 들으며 리안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핫.”

리안은 가벼운 기합과 함께 번쩍 눈을 떴다.

‘여긴..’

주변이 어두컴컴해서 그런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시트나 등 뒤로 느껴지는 적당히 푹신한 감각으로 봐선, 자신이 기절한 후 침대로 옮겨준 듯했다.

‘뭔가 엄청 좋은 향이나네.’

은은하게 맡아지는 꽃향기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헉, 이럴 때가 아니지!’

리안은 가볍게 제 뺨을 때려준 후 흐려졌던 이성을 겨우 붙잡았다.

‘내가 노아의 정신세계로 끌려들어 온 거 보면 노아도 아이리스와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는 걸지도 몰라.’

너무 앞서나간 생각일지 몰라도 근거가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노아가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른 시간까지 침대에 콕 박혀있던 것도 이상했고, 꿈속에서 말도… 안되는.. 아니 어쩌면 말이 될지도 모르는? 하여튼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다.. 노아를 깨울 때도 이상했지. 평소였다면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일어났을 텐데, 소리 높여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던 건 이상해.’

리안은 심각한 얼굴로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나간 끝에 한가지 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쩌면…아이리스와 같은 경우일지도 몰라.’

수정구 너머로 검은 기운을 뿜어내던 아이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리안은 생각했다.

‘우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움직이자.’

굳게 결심한 후 침대로 추정되는 장소를 벗어나고자 어둠 속을 더듬었다.

물컹, 시트 위를 더듬던 손이 묘하게 뜨겁고 말랑한 것을 덥석 붙잡고 말았다.

일초의 시간이 흘렀을 때, 꽤 익숙한 감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초의 시간이 흘렀을 땐, 어째서 익숙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삼초의 시간이 흘렀을 땐 -…

“흐억..?!”

고양이 꼬리를 밟은 쥐처럼 온몸에 솜털이 쭈뼛 섰다. 시간이 길게 늘어지고 리안의 몸이 잔상을 남기며 뒤로 기어갔다.

파바밧! 쿵!

“억!”

한 마리의 벌레 마냥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다가 그대로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욱신거리는 뒷머리를 문지르며 상체를 세우자 얼굴 위로 긴 천 자락이 스쳤다. 천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오는 걸로 봐선 커튼으로 보였다.

촤아악!

리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곧바로 커튼을 양옆으로 열어젖혔다. 밝은 빛이 방 안에 쏟아져 들어왔다.

“…으응? 벌써 아침이야?”

나른하게 풀린 노아의 목소리가 침대 위에서 울려 퍼지더니, 하얀 셔츠 하나를 잠옷처럼 입은 노아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 리안이 코너에 몰린 쥐처럼 벌떡 일어나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노아를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노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좋은 아침.”

“아,어..으..”

폭력적인 장면에 리안이 고장 난 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던 리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눈동자는 훤히 드러난 상체와 새하얀 허벅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망했다.’

순간 머릿속에 위험 경보가 시끄럽게 울리는 것과 동시에 리안의 몸이 재차 잔상을 남기며 방을 빠져나갔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몸이 본능적으로 화장실을 찾아 굴러 들어갔다.

쿵! 콰앙!

“푸흐흐… 오늘도 화장실이 급해?”

노아의 기억 속 리안도 이런 반응을 종종 보여줬는지, 노아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간지러운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리안이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화장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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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파가 말했다.

“이대로 있다간 노아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성파의 말에 본능파 미니 리안들 몇몇이 이성파로 넘어오며 말했다.

“확실히… 정신과 육체적 행복도 중요하지만 노아보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

“허…! 언제 이런 기회가 온단 말입니까?!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뭣보다 이번 꿈이 아이리스 때와 같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개인의 소, 소망이 반영된 꿈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저 말도 일리가 있어.”

이성파에 있던 미니 리안 몇몇이 본능파로 넘어왔다. 보다시피 리안의 머릿속에선 이성파와 본능파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당연히 우세한 건 이성파였다. 짐작이라고는 하나 아예 근거가 없는 말도 아니었고, 별거 아닌 근거더라도 욕망보다는 노아의 안전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치열하게 공방이 오고 가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성과 본능이 비등하게 나뉘어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된 걸까?

“조금 춥다. 아직 봄이라 그런가?”

노아가 리안의 손을 깍지 껴 잡은 채 한쪽 팔을 제 품에 끌어안은 상태로 나긋한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어, 으응. 그, 그, 그러게..”

연애 경험 제로, 여자 경험 제로인 리안에게 여자… 그것도 노아같은 미녀와 찰싹 달라붙어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받는 건 학창 시절 전교생 앞에서 발표하던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노아가 거리감 없이 훅 들어와 진하게 스킨쉽을 할 때마다 이성 쪽 리안들 대다수가 우르르 본능 쪽으로 몰려갔다. 그런 본능을 이성 리안이 겨우겨우 설득하는 일이 반복되어 비율이 비등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숨… 숨을 어떻게 쉬는 거더라? 걷는 게 이게 맞나?’

미니 리안 대다수가 옥신각신 싸움하고 있다 보니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리안은 자신이 어떻게 숨 쉬고 걷고 있는지 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그저 여름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나 미소녀에게 쓰다듬을 당해 골골거리는 고양이가 된 것만 같았다.

죽을 것처럼 행복하다는 말이었다.

곧게 자란 나뭇가지에 파릇한 잎사귀가 작게 흔들리고 그 사이로 따스한 빛이 쏟아져 내리는 풍경도, 맞닿아 슬며시 땀이 흘러나오는 손바닥도, 서로의 향기가 뒤섞여 낯설지만 안온한 향기가 서로를 감싸 안는 것도.

모든 게 동화 속의 한장면처럼 느껴졌다.

만약 미래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런 생활을 꿈꾸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설마.. 노아의 꿈이 아니라 내 꿈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덜컥 들 정도로 달콤한 꿈이었다.

짝!

꿈속에 녹아들 것 같은 기분에 빈손을 들어 제 뺨을 거칠게 내리쳤다.

‘와씨, 뭐지 방금?’

리안은 놀란 토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노아 못지않게 놀란 얼굴로 제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제 얼굴을 가격한 건 제 의지가 아니었다.

‘뭔가… 본능적으로 그래야 할 거 같아서 -… 헉!’

리안은 혀를 살짝 깨물며 얼굴을 옅게 붉혔다.

‘뭔가 ‘주인공’스러운 능력이 생긴 건가!?’

리안은 진지해지려야 진지해질 수 없는 개그 주민다운 생각을 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꽈악.

노아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굳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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