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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홀로서기가 두렵다면 내가 도와줄게.”

   “……도, 와준다고요? 저 같은 걸요?”

     

   어느새 메리의 말투는 바뀌어 있었다.

   크라슈를 윗사람이라 인정해버린 그녀는 무척이나 공손하게 양 무릎을 모은 채 크라슈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 메리 넌 나랑 같은 동기생이잖아. 같은 동기생을 돕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도움을 주겠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말이 그녀를 다시금 흔들어 놓았다.

     

   “친구 좋은 게 뭐 있겠냐?”

     

   크라슈의 미소가 메리의 눈에 무척이나 눈부시게 보였다.

     

   꿀꺽-

     

   어느새 무심코 침을 삼킨 메리가 멍하니 있을 때 크라슈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툭 닿았다.

     

   로브 너머 그의 손길이 닿은 순간 메리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도 그럴 게 로브 안쪽은 오직 속옷 한 장뿐이었기 때문이다.

     

   매혹의 향 탓에 몸이 너무 달아오른 탓일까.

   크라슈의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메리는 아랫배에서 오는 충격에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그렇지?”

     

   그리고 그런 메리를 보며 크라슈가 다시금 웃음을 머금자 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한없이 약해진 그녀는 4살짜리 어린애처럼 멍하니 대답했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천천히 걸어가 창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들어온 밤바람이 매혹의 향을 일부 날리며 땀으로 젖은 메리의 머리카락을 차갑게 식혔다.

     

   그제야 메리도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이야기는 다 한 거 같은데.”

     

   크라슈는 엄지로 바깥을 가리켰다.

     

   “이제 돌아가서 잘 시간인 거 같지?”

   “네, 네에, 맞아요.”

     

   메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거리며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달아오른 몸 탓인지 걸음이 무거웠지만 애써 참았다.

     

   그러고는 메리가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크라슈의 얼굴에는 무척이나 친절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에 무언가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따라 올린 순간 거기에는 크라슈의 손이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은 무척이나 따스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칭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아버지마저도 이제는 그녀에게 매몰찼다.

     

   그녀는 황녀 시해자였으니까.

     

   메리의 다리가 무심코 주룩 무너질 뻔했다.

   하지만 올려다본 크라슈의 얼굴을 보니 그녀는 간신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네 노력을 네가 깎아내리지 마라.”

     

   마지막 말을 들은 순간 메리는 울컥한 기분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네, 크라슈 님, 오늘 고마웠어요.”

     

   이제는 크라슈에게 존칭을 서슴없는 그녀가 붉어진 귀와 함께 로브를 다시 쓰고, 창문 밖으로 나갔다.

     

   “저 힘낼게요.”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긴 뒤 그녀는 빠르게 크라슈의 방에서 떠나갔다.

     

   회귀하고 나서 계속해서 텅 비어 있던 마음이었다.

     

   깎이고 깎여 어느새 이제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꺼지기 직전이었던 자신이었으나.

   오늘 크라슈와 만난 순간 깎여졌던 부분이 처음으로 채워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크라슈는 자신을 진심으로 동기생이자 친구로서 위해주었고, 응원해주었다.

     

   그런 그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

   자신보다도 강하고, 뛰어난 그가 해주는 인정을 또 한번 받고 싶었다.

     

   어느새 그녀의 머릿속에 늘 드리우던 시그린과 아서는 종적을 감춘 채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밤하늘 위.

   메리는 그렇게 달렸다.

     

   오늘 밤 왜인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 * *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살.

   기분 좋은 바람.

     

   “우우우응!”

     

   바다 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가 잠옷 차림으로 기지개를 쭈욱 폈다.

     

   그녀의 이름은 시그린 에파니아.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 방긋하고 웃음을 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왜인지 기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꿈자리가 무척이나 좋았기 때문이다.

     

   ‘아서 님이 나오다니.’

     

   꿈으로만 본 건 아쉽지만 기억 속 아서를 본 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최근에 몇몇 일들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안 좋은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평소와 다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혹시 시켜둔 일이 잘된 거려나.’

     

   어제, 이제는 가치가 완전히 없어져 버린 개를 이용해 개끼리 교배시켜놓았다.

     

   분명 그게 잘되어 이토록 기분이 좋은 게 아닐까?

     

   시그린은 키득거리는 웃음과 함께 방문을 나왔다.

   곧 배가 불러올 메리와 그의 옆에 서야 할 크라슈를 떠올리니 기분이 날아오를 것 같았다.

     

   크라슈를 빼앗긴 샬롯이 망연자실할 것은 분명하고.

   아내인 메리를 따라 자신의 명을 충실히 따라야 할 저주 받이를 떠올리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 가득 웃음을 지은 시그린이 그렇게 방문을 열고 나왔을 때였다.

     

   “시그린 님, 편지가 한 장 왔습니다.”

   “편지?”

     

   전속 하녀의 말에 시그린은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최근에 황궁에서 시켜둔 일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시즐리, 그 녀석이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던데.’

     

   방금까지 좋았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시그린은 손을 내밀었다.

     

   “줘보렴.”

   “여기 있습니다.”

     

   시녀가 편지를 건네자 시그린은 편지를 앞뒤로 살폈다.

   왜냐하면 어디에도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마법적인 걸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혹시나 마법을 썼나 싶었지만 그런 것도 아닌 듯싶다.

   황궁에서 보내는 편지가 이토록 허술할 리는 없을 터.

     

   시그린은 그대로 편지 봉투를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참을 내용을 읽었을까.

     

   “이 미친년이!”

     

   그녀는 어울리지 않게 욕설을 내뱉으며 편지를 콱하니 구겼다.

   왜냐하면 편지를 보낸 이가 다름 아닌 메리였기 때문이었다.

     

     

   [ 시그린 님께 ]

   시그린 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제 시그린 님께 폐를 끼치지 않고 홀로 서보고자 합니다.

   – 메리 다이아나 올림

     

     

   편지의 내용을 본 순간 시그린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세 번을 더 읽고 나서야 내용을 파악했다.

     

   자신이 버리기 전에 메리가 자신을 먼저 떠났다.

   이 기막힌 상황에 시그린은 숨이 턱 하니 막혔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것이었다.

     

   크라슈의 아이를 잉태하라 했더니 대뜸 홀로서기를 선언하다니.

   그것도 그 개가 자신의 명령을 어겨 가면서 말이다.

     

   “아아아아아악!”

     

   시그린이 짜증이 섞인 분노를 입 밖으로 표출했다.

   아까까지 좋았던 기분은 한 번에 날아갔다.

     

   이제 아무래도 좋다.

   크라슈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직접 끌어들여야겠다.

     

   “머저리 같은 년, 네까짓 게 마지막까지 도움 될 리가 없지.”

     

   시그린은 편지를 찢어버리며 바닥에 흩뿌리곤 몸을 돌렸다.

   그녀의 두 눈에 담긴 감정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짝짝!

     

   그 순간 박수 소리와 함께 그녀의 앞에 한 명의 남자가 부복 자세로 나타났다.

     

   그는 흑룡 기사단의 일원 중 한 명으로 뒤에서 움직이기 전문인이었다.

     

   “지금 크라슈, 그 남자는 어디 있죠?”

     

   시그린이 질문하자 그는 부복 자세로 전했다.

     

   “아침에 마법진을 타고, 자신의 본가로 떠났습니다.”

     

   그다음 말을 들은 순간 시그린이 멈칫했다.

     

   “이, 이!”

     

   중간 평가 이후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며칠의 휴식 시간.

   그 시간 동안 크라슈는 냉큼 본가로 가버린 것이었다.

     

   정말 약 오르기 그지없었다.

   시그린의 분노는 오늘도 끊이지를 않았다.

     

     

   * * *

     

     

   그 시각, 크라슈는 청송관으로 가는 마차에 올라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간 평가가 있는 며칠의 휴식 기간 동안 만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려나.’

     

   크라슈는 손에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동시에 그의 가슴팍에는 못 보던 브로치가 하나 걸려 있었다.

     

   그 브로치의 정체는 다름 아닌 같은 2기생이자 결계사의 아이인 바이오렌의 작품이었다.

     

   「받아. 이게 아니면 끝이다.」

     

   얼굴에 다크써클을 잔뜩 진 채 나타난 바이오렌은 크라슈에게 브로치를 건넸다.

   부들거리는 손을 보건대 이번에는 정말로 한계점인 듯싶었다.

     

   크라슈는 그녀에게서 받은 브로치를 가슴팍에 달아 보았다.

     

   [ ……안 보이는군. ]

     

   돌아온 대답을 들은 순간 크라슈가 바이오렌을 돌아보았다.

   크라슈와 눈이 마주친 바이오렌은 애타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크라슈는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성공이다.」

   「가아아아아아아악!」

     

   이상한 비명을 내지른 바이오렌이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러고는 그녀는 양 주먹을 꽉 쥐고는 크라슈에게 말했다.

     

   「그럼 너 인마, 내가 이제 지금 상태를 유지할 방법을 당장 말해!」

     

   그 말을 들은 크라슈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녀의 실력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시약이 문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을 깨닫게 된 바이오렌은 허망한 듯이 눈을 깜빡였다.

     

   「……고작 그거였다고?」

     

   하지만 짐작 가는 게 있어서일까, 그녀는 천천히 자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래, 어머니가 만든 시약이라 해서 완성품은 아닌 거였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바이오렌은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잘래.」

     

   체력적 한계에 부닥친 그녀로서는 당장 눕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 나 참, 편해졌다 싶더니 이제 다시 까마귀로 와야 하지 않느냐. ]

     

   크라슈는 자신의 앞에 털을 고르고 있는 크림슨가든을 바라보았다.

   바이오렌의 결계술은 크림슨가든의 눈조차 차단하였다.

     

   그런 만큼 어쩔 수 없이 다시 까마귀로 옆에 있기로 한 것이다.

     

   [ 그 메리라는 녀석이 눈치채지 않겠느냐? ]

     

   메리는 크림슨가든의 까마귀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니 괜찮겠냐고 질문하자 크라슈는 팔꿈치를 무릎에 대며 천천히 기대었다.

     

   “그래,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할 거니까.”

     

   황녀 시해하려 했던 당시 자신을 막았던 소년.

   그 소년이 크라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메리는 또 한 번 깊은 패배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패배감은 크라슈를 향한 우상으로 바뀐다.

   메리의 마음속에서 이미 시그린과 아서는 바스러져 없어져 가고 있었으니까.

     

   “자기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녀석이니까. 오히려 그때의 일도 내가 황녀를 시해하여 처형당할 뻔한 걸 막아준 그거로 생각할 거다.”

     

   회귀하며 다른 이들은 분명히 바뀐다.

   그러나 회귀자는 연장된 선상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메리에 관해서만큼은 크라슈는 감히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분명히 그렇게 해석하여 어떻게든 자신을 높게 평가하려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를 낮추는 것이 메리 본인을 낮추는 것과 같아졌으니 말이다.

     

   [ 한심한 녀석이 다 있군. ]

   “능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야.”

     

   크라슈가 짧게 웃은 순간 때마침 주머니가 움찔거렸다.

   주머니를 열자 시체 쥐가 어느새 솟아올라 크라슈의 어깨 위에 앉았다.

     

   “준비됐어.”

     

   그리고 곧 시체 쥐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름 아닌 에벨아스크의 목소리였다.

     

   준비됐다.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안 크라슈의 푸른 눈이 스산히 빛났다.

     

   그녀가 드디어 광도제의 시체화를 마친 것이다.

   사실 크라슈가 중간 평가 동안 구태여 나온 이유도 에벨아스크가 광도제의 시체화를 거의 완성했다는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라헬른 아카데미 안에 에벨아스크와 광도제의 시체를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눈을 피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이 필요했다.

     

   “그럼 모든 게 준비됐네.”

     

   흑마녀의 눈을 피할 수 있고.

   광도제의 시체가 준비되었으며 심문은 물론 그 시체를 이용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

     

   모든 것이 한데 모인 지금.

   크라슈가 천천히 웃음 지었다.

     

   “익시온 새끼들의.”

     

   뚝배기를 부숴버릴 작업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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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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