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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EP.178

     

   완전히 포위됐다.

     

   정확히는 내가 아닌 엔리카를 노리고 이곳을 찾아온 마법 병기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녀를 보호할 예정이었으니 나도 포위됐다고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우웅- 철커덕!

   철그럭! 철그럭!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기계음이 아닌 갑옷이 맞물리는 소리가 마력의 흐름 뒤로 번잡하게 들려온다.

     

   땅과 하늘을 빽빽하게 채운 수백 기의 마법 병기. 그 장관을 잠시 감상한 내가 검을 빼어 들자 전방에 있던 헤라클레스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운을 띄웠다.

     

   -비켜라. 성좌.

     

   또박또박하고 거친 음성이 나의 감정을 자극했다. 왠지 모르게 냉기를 머금은 듯한 풀 플레이트 갑옷. 나를 상대할 것을 대비한 것인지 약간의 변화를 거친 병기인 것 같았다.

     

   -만약 방해하겠다면 당신도 이 자리에서 심판하겠다.

     

   그들에게서 이번 기회에는 엔리카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곧장 전투태세를 취하는 걸로 봐서는 나의 대답 여부에 따라 곧장 공격을 퍼부을 기세였다.

     

   “무섭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살벌한 반응에 반쯤 장난스러운 모습을 비췄다.

     

   “근데 심판할 능력은 되고?”

     

   -비록 네가 성좌라고는 하나 우리는 이미 그대의 전력을 모두 파악했다. 그 잘난 빙계 마법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지.

     

   “퍽이나.”

     

   그들이 대비해온 것은 한기의 심장을 사용해 음한지기를 극성으로 사용했던 나였다.

     

   다시 말해 ‘열화의 심장’을 활용한 열양지기나 무武 그 자체를 중점으로 한 근접전에는 마땅한 대처가 이루어지기 전이라는 의미였다.

     

   빠드득.

     

   자신만만한 나의 반응에 어디선가 이를 가는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속은 텅 비었는데 이런 사소한 소리까지 구현하다니 굉장한 기술력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비켜라. 우리는 네 뒤에 있는 마녀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지 그대와 싸우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많이 몰려온 거 아니야? 양심이 있어 없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것일 뿐. 만약 그대가 우리와 같은 상황이라도 철저히 준비하지 않겠는가?

     

   그의 말에 내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집 안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대화를 지켜보던 엔리카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인정한 것은 준비에 대한 것이지 엔리카를 내놓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도 제안을 하나 하지.”

     

   -뭐지? 다음 층으로 가는 포탈을 열어 주는 것 말고도 필요한 게 있는가?

     

   “길을 열어. 그리고 여기 있는 엔리카가 엔리코를 만날 수 있게 해 줘. 전후 사정을 다 듣고 나면 나도 적당히 판단한 후에 엔리카를 넘겨주든가 말든가 선택하도록 하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의미. 나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지금까지 병풍처럼 별말 없이 서 있던 자들도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어차피 그대의 냉기는 우리에게 닿지 못한다. 그대가 우리와 싸워 봐야 남는 건 개죽음뿐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성좌라고 하나 이 많은 수를 혼자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림잡아 일천은 될 것 같은 물량.

     

   그들은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병기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바탕이 된 오만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궁금하군. 왜 이 녀석을 못 죽여서 그렇게 안달인 건지.”

     

   지금까지 지켜본 엔리코는 전쟁이나 싸움에 미친 광적인 독재자 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독재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며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탐관오리의 모습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누나’를 죽이려고 한다?

     

   “거슬려.”

     

   그냥 넘어가기에는 찝찝해도 너무 찝찝했다.

     

   엔리코는 그의 목숨을 노린 화신들을 처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녀석이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는 그녀를 굳이 죽이려 한다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엔리코가 지금 이곳을 보고 있는 것은 확실한가?”

     

   나의 물음에 헤라클레스들이 일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했던 것은 잠시. 가장 전방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하다.

     

   “그럼 지금 내 앞으로 데려와. 할 말 있으니까.”

     

   나의 물음에 그들이 다시금 침묵한다. 나의 예상대로 엔리코가 지금 이곳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피를 보겠다는 거군.

   -우리는 그대에게 경고했다. 가만히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층으로 갔을 터. 죽음은 네놈이 자초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놈들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다들 비슷한 기운의 마력을 발산했다.

     

   꿈틀거리며 검의 형상을 이루는 마력 덩어리와 크고 작은 화살과 창으로 변화되는 마력들. 그리고 그들이 먼저 움직이기 직전에 내가 먼저 발을 놀렸다.

     

   타아앙!!

     

   나는 빠르게 몸을 날려 가장 전방에 있던 헤라클레스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콰드득!

     

   그대로 뽑혀 버린 한 기의 머리통과 갑작스러운 상황에 빠르게 달려드는 다른 병기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으로 따라오기에는 나의 움직임이 두 수는 더 빨랐다.

     

   파파팟!

     

   -뭣?!

   -무슨 움직임이……!

     

   나는 나무를 박차고 몸을 비틀며 순식간에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행한 일은 그 투구를 머리에 뒤집어쓰는 것. 그렇게 고개를 돌려 엔리카를 바라봤을 때, 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발생된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보였던 거구나?”

     

   마력이 남은 헤라클레스를 통해 본 엔리카는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보랏빛 머리에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아니었다.

     

   백색 머리에 반쯤 죽은 푸른 눈동자. 심지어 얼굴에 보이는 주름과 약간의 검버섯은 내가 알던 그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스윽.

     

   “지금 이게 본 모습이지?”

   “……예?”

   “보라색 눈동자, 보라색 머리카락이 진짜 네 모습인지 물은 거야.”

     

   나의 물음에 그녀가 답지 않게 존댓말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

     

   그녀가 흘러내린 자신의 옆머리를 잡아 관찰하기 시작한다.

     

   “보라색 맞는데…… 아, 조금 푸른 자주색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럼 됐다.”

     

   애초에 저 투구를 통해 보이는 모습이 가짜일 것이 분명했다.

     

   나에게는 환각이나 정신적인 공격에 대항하는 사기적인 스킬이 있었으니 고작 화신인 그녀가 나의 눈을 속였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 이제 슬슬 가 보자.”

   “…어딜?”

   “연금술사의 도시까지 갈 거야. 네 동생이랑 이야기하게 해 줄게.”

     

   내가 그녀를 등진 채, 앞으로 나서자 공중에 둥둥 떠 있던 몇몇 마법 병기들이 무기를 꺼내 들며 아래로 내려온다.

     

   -다들 주의해라. 성좌의 움직임이 우리의 예상치를 뛰어 넘었으니.

   -알겠습니다.

     

   성좌에게서 뽑아낸 마력으로 만들어 낸 마법 검. 도대체 꿍쳐둔 마력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 정도의 출력이라면 어지간한 고수의 검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상대하려는 방법은 그들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뭐 하는 거지?

   -크큭. 역시 조금 전의 움직임도 그대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었나보오. 다시 빙계 마법이라니.

     

   나는 한기의 심장을 꺼내 들었다. 그 기운이 공기에 떠 있던 수분을 모조리 얼리며 주변을 바짝 마르게 할 지경이었지만 적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다면 여유로운 모습이랄까.

     

   쏴아아…!

     

   -냉기 저항 주문과 화염 장벽을 펼쳐라.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사위에 불기둥이 솟아오르며 거대한 막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불지옥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불의 파도. 이전에 엔리코도 그렇고 지금의 그들이 강조하듯 빙계 마법에는 어느 정도 손을 써둔 상태인 것 같았다.

     

   하지만.

     

   “하아……”

     

   나는 마력을 훨씬 더 끌어 올렸다. 일반적인 무인이나 기사라면 절대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을 기운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츠츠츠츳!

     

   단전에서부터 뿜어지는 극한의 한기가 나의 전신을 타고 돌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나에게는 음기 이외의 양기가 단전 한구석에 똬리를 튼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심장이 정지할 걱정 따위는 없었다.

     

   ‘2층에서 했던 노력이 헛고생은 아니었군.’

     

   화영의 천월신공과 함께 당휘소의 사천현무신공을 동시에 배우고자 했던 나의 노력들.

     

   비록 전심전력을 사용한 요행이었다고는 하나, 상반되는 두 가지 무공을 배운 것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흐읍!”

     

   파차차창!!!

     

   몸이 얼어붙는 동시에 단전에서 나오는 양기가 나의 심장과 뇌를 보호했다. 격한 냉기로 인해 공기의 수분이 얼어붙다 못해 작은 눈꽃이 되어 주변에 흩날린다.

     

   불타오르는 세상 속에 고고하게 자리 잡은 눈꽃.

     

   -이, 이게 대체……

   -버몬드! 저게 가능한 거요?

   -젠장!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냉기에 대한 대처는 완벽하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상대할 수 있는 건 인간이지 저건…! 저건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잖소!

     

   주변의 불꽃이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영상 속 장면처럼 그대로 멈춰버렸다.

     

   자연 현상이라면 결코 불가능한 일. 압도적인 냉기에 굳어 버린 뜨거운 마력들이 그 자리에 색을 잃지 않고 얼어붙은 것이다.

     

   ‘차가운 불꽃이라……’

     

   주인을 잃은 마력의 불꽃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그나마 온기가 유지되는 것은 엔리카가 있는 후방의 오두막 뿐.

     

   반쯤 얼어붙은 헤라클레스들의 갑옷에 주변의 풍경이 비친다.

     

   이미 빛을 잃은 채, 멈춰 버린 불꽃과 공기 중에 생성된 크고 작은 얼음덩어리들.

     

   그리고 그 얼음에 비친 나의 주변으로는 마치 얼음의 신이 세상에 강림한 듯, 새하얀 눈 폭풍이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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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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