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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크로우펠츠 재단은 예술작품을 심사하는 데 있어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상 기준을 가지고 작품을 뽑는다. 그 탓에 대중에게는 욕을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예술이 뭔지도 모르는 놈들.’

       

        크로우펠츠는 비릿하게 웃었다.

       

        “더 둘러보시겠습니까?”

       

        수행비서의 질문에, 크로우펠츠는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올해는 생각보다 별로야.”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이 없다.

       

        ‘역시 뒤랑에게 주어야겠어.’

       

        다른 작품은 거들떠볼 가치도 없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크로우펠츠는 뒤랑에게 우승을 안겨줄 생각이었다.

       

        그녀는 뒤랑이라는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작년에 작품이랍시고 전시한 변기가 그녀의 예술적 감각에 영감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그 소년은, 뒤랑은 예술의 직감을 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을 보는 취향이 그녀와 비슷하다.

       

        “저쪽으로 가 보지.”

       

        크로우펠츠가 분수대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뒤랑의 작품이 있는 곳이었다.

       

        “음?”

       

        분수대에 도착한 크로우펠츠가 걸음을 멈춰섰다.

       

        지도 위에 아무렇게나 칠해진 수채화 물감.

       

        뒤랑의 작품이다.

       

        ‘왜 생각보다 별로지?’

       

        그녀가 보았을 때, 작년에 보여주었던 변기보다는 덜떨어진 작품이었다. 지도에 물감을 묻힌다고 뭐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다못해 물감을 더 세세하게 칠했어야 했다.

       

        ‘그래도 저 아이가 우승해야 재단으로 데려올 수 있는데….’

       

        작품 하나 망친 것 가지고 뒤랑의 천재성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크로우펠츠는 작품을 한참이고 구경하며 어떤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를 탐구했다.

       

        ‘지도가 흐릿하게나마 보이는구나.’

       

        아마 마수로 물들어가는 세상을 표현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녀가 추구하는 미술이란, 좀 더 기법을 절제하면서도 은은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것이어야만 했다.

       

        “흐음?”

       

        크로우펠츠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떤 소녀였다. 그녀는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뒤랑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녀의 입에서 감탄이 잇달아 새어 나왔다.

       

        ‘저게 대중의 인식이구나.’

       

        저 소녀는 미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크로우펠츠는 저 소녀에게 관심이 쏠렸다.

       

        ‘아름다워.’

       

        백옥같이 희고 고운 피부에, 세상의 빛을 다 빨아먹은 듯한 묵빛 머리카락. 그리고 토파즈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금색 눈동자까지.

       

        전설로만 들었던 금안족이다.

       

        그러나 크로우펠츠가 금안족 소녀를 보고도 품은 감상은 단순히 ‘예쁘다’ 정도가 아니었다.

       

        “추상적이면서도 색조 대비가 완벽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백과 흑, 그리고 그 차이를 오묘하게 메우는 금(金)까지. 세 가지 배색 모두 원소마도에는 없는 빛깔이었으나, 오히려 그 점에서 그녀는 심미를 찾았다.

       

        그래, 마치.

       

        ‘존재 자체가 예술이로구나!’

       

        크로우펠츠는 탄복하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학생, 내가 누구인지 아니?”

       

        크로우펠츠가 다짜고짜 물었다.

       

        그 물음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크로우펠츠 이사장님이다!

        – 에테르와는 무슨 관계지?

       

        “네 이름이 에테르구나. 성씨가 무엇이니?”

        “없습니다.”

       

        크로우펠츠는 헛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곧 평정을 유지한 채 슬쩍 미소지었다.

       

        “그렇구나. 아름다워, 정말로.”

       

        난데없는 칭찬에 에테르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금안족 특유의 포커페이스가 없었더라면 결례를 범했을 정도로.

       

        외모가 아름답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그걸 만나자마자 대놓고 칭찬하는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감사합니다.”

        “아아,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술적이로구나.”

       

        에테르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또 이상한 사람한테 걸렸구나 싶었다.

       

        ‘이 년은 뭔데 우리 언니한테 찝쩍거려?’

       

        에테르 곁에 서 있던 로즈마리는 입술을 자근거리며 크로우펠츠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선 살기를 내뿜어 쫓아내고 싶었지만, 여기서 ‘위압’을 사용했다가는 정령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크로우펠츠가 말했다.

       

        “혹시 예술제엔 참가했니?”

        “네.”

        “정말? 네 작품을 보고 싶구나.”

       

        에테르는 학생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통해 눈앞의 여자가 크로우펠츠 이사장이라는 걸 알았다.

       

        크로우펠츠. 예술제에서 가장 강력한 심사 권한을 지닌 사람.

       

        사탕발림해서 나쁠 건 없었지만, 그건 성정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땐 줄타기가 중요하다는 걸, 에테르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네, 저쪽에….”

       

        그때였다.

       

        “아니, 이거 크로우펠츠 선생님 아니십니까?”

       

        작품을 설명하던 뒤랑이 크로우펠츠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들어왔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대하는 듯한, 깍듯한 자세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제 작품을 보러 와 주신 거군요! 저, 미셸 뒤랑! 존경해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의 관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크로우펠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녀의 시선은 에테르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예술적인 용모로군. 바디 페인팅이라도 한번 시켜보고 싶은데…. 어떻게 재단으로 못 끌어들이나?’

       

        크로우펠츠의 눈빛이 싸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있는 금안족 소녀! 레이디도 작품을 냈다고 했죠? 한번 보고 싶습니다!”

       

        에테르는 대답하는 대신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안내했다.

       

        에테르의 작품은 화계마도 연구실로 가는 언덕길에 있었다. 중앙광장에 비하면 후미진 곳이었다.

       

        “왜 이런 한적한 곳에 둔 거죠?”

       

        뒤랑이 물었다.

       

        “무거워서요.”

       

        생각해 보니 작품을 끌고 오갈 장비를 대여하지 않았다.

       

        5톤에 육박하는 원자폭탄을 분수대까지 끌고 오기에는 힘과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에테르는 일부러 남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제 작품을 배치했다.

       

        남의 눈에 안 띄어도 딱히 상관없었다. 어차피 상을 주는 건 심사관이고, 딱히 떨어져도 발명대회 때 다시 내면 그만이었으니까.

       

        “흐음….”

       

        크로우펠츠가 감상하던 도중에 침음을 흘렸다.

       

        작품 외부는 깔끔했다. 곡선은 유려하게 다듬어져 있고, 모양은 흠잡을 곳 없이 잘 잡혀있다. 형태감도 명확하다.

       

        작품의 외관은 프레이의 성취물이었다. 2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연성술만 갈고닦은 프레이는 자연스레 조각에도 능통해졌다.

       

        하지만.

       

        “지나치게 고전적인 양식을 따르는 조형물이군.”

       

        추상적이지 않다. 심미도 부족하다.

       

        일반인이야 그럭저럭 잘 만든 작품이라 말하며 감상하겠지만, 보다 예술적인 영역을 보고자 하는 크로우펠츠의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는 조형물이었다.

       

        “작품명이 뭔가요?”

       

        크로우펠츠가 물었다.

       

        “버섯이요.”

       

        에테르의 무기질적인 대답에, 그녀의 눈썹이 활처럼 휘었다.

       

        ‘버섯…?’

       

        자기가 아는 그 버섯 맞나?

       

        탑처럼 우뚝 솟아올린 모양이 버섯처럼 생기긴 했다. 

       

        “설마 버섯처럼 생겨서 작품명이 버섯인가요?”

        “네, 일단은요.”

       

        그렇다면 낙제점이었다.

       

        ‘깊이가 부족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적 이데아에 알맞지 않았다. 이 정도 작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었고, 또 이 정도 작품명은 어린애도 지을 수 있었다.

       

        차라리 어린아이만이 낼 수 있는 순수성을 주제로 한 것이라면 모를까. 이건 노골적이어도 너무 노골적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한 크로우펠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이 소녀를 전시대에 세워놓고 같은 제목을 사용했다면, 그게 더 파격적이었을지도 몰라.’

       

        크로우펠츠가 입을 뗐다.

       

        “관념의 추상화, 개념의 재해석.”

       

        그녀가, 에테르에게 물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어디로 갔어?”

        “빠뜨렸습니다.”

        “흐음, 고의로?”

       

        에테르는 무어라 답변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이쪽은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괜히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았다가 밑천 드러나고 개쪽먹기 싫었다.

       

        가만히만 있으면 반은 간다. 인생 살면서 터득한 지혜였다.

       

        에테르가 침묵을 택하자, 크로우펠츠는 멋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안 드나 보네.’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

       

        뭐 어쩌겠는가. 그냥 발명대회에 재출품해서 상 타는 수밖에.

       

        ‘아쉽게 됐어. 부상이 뭔진 보고 싶었는데.’

       

        예술제에서 우승하면 상금 말고도 특별한 아이템을 부상으로 준다는 얘기가 있다.

       

        – 그거? 얻으면 서브 퀘스트는 대부분 클리어 가능해. 딱히 중요하진 않은데, 있으면 일이 한결 편해진다고.

       

        바로 어제, 병실에 누워있던 버멜에게서 들은 정보였다.

       

        우승하면 녀석에게 퇴원 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내부에도 구조가 있니?”

       

        상념에 잠겨있던 사이, 크로우펠츠가 넌지시 질문했다. 에테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합부를 열어젖혔다.

       

        “여기요.”

       

        내부에는 여러 장치가 있었다.

       

        뇌관과 중성자 발생기, 예술성은 내다 버린 채 오로지 효율만을 추구하여 가져다 붙인 스크롤들, 베릴륨 장막에 둘러싸인 구체 우라늄까지.

       

        거를 타선이 없다.

       

        크로우펠츠는 당황하여 물었다.

       

        “이, 이게 뭘 표현한 거니?”

        “표현하려 한 게 아닙니다.”

        “그, 그러면….”

       

        에테르는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내뱉었다.

       

        “터뜨리려고 만든 겁니다.”

       

        로즈마리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우리 작품은 터뜨려야 완성되거든요.”

       

        에테르는 그리 말하며 품에서 조막만 한 스크롤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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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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