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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로티와 제이크는 끝까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데려다가 우리와 섞으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귀족이라는 자리는 눈치를 키울 수밖에 없는 자리다. 물어볼 것, 물어보지 않을 것, 알아야 할것, 모르는 게 나은 것…… 그리고 그 사람한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싫어할 만한 것. 이 사실은 남작인 레오부터 왕족인 샤를로트, 나와 마찬가지로 황녀인 앨리스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할 이야기가 있겠지, 뭐. 상황을 보자면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눈치 없게 그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긴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실컷 놀았네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어린 시절?”

        

       돗자리에 앉은 샤를로트가 한 말에, 앨리스가 물었다.

        

       “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정치니, 국제 정세니 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뛰어놀던 시절이요.”

        

       ……하지만 너 열다섯 살이잖아?

        

       내가 열다섯이었을 때는 애니메이션이나 보고 용돈 모아서 피규어나 사다 모았었는데.

        

       아니지,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생활방식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뀐 적이 없는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졸업’을 나는 하지 못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하지만 내가 살던 세계의 일반인과 이쪽 세계에서 언젠가 반드시 왕위에 오를 사람의 생각이 완전히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넌센스다.

        

       당장 나와 샤를로트 사이에 앉아있는 앨리스만 해도 그렇다. 앨리스는…… 음, 샤를로트 같던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자체가 없었으니까.

        

       황제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니지, 황제가 느긋하게 앉아서 뭔가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 자체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국정섹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황제이니, 그렇게 권력을 유지하고 더 위로 올라가려는 행위 자체가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알리스는 그런 시절이 없었나요?”

        

       “나? 나는…….”

        

       앨리스는 샤를로트의 그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 놓고 놀아본 적도 없어서, 노는 방법조차 모르는 날카로운 성격의 황녀.

        

       원작의 앨리스는 그랬으니까.

        

       앨리스가 대답하지 못하자, 샤를로트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나를 보는 그 눈동자에는 의문이 담겨있었다.

        

       나와 앨리스의 관계는 양호하다. 오히려 몹시 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나서는 앨리스를 나는 쉽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내가 그걸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는 둘째치더라도.

        

       “……실비아는 철들기 전부터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던 애야. 나보다 팍팍한 삶을 살았으면 살았지, 마음 편하게 지냈던 적은 별로 없을 거야.”

        

       “…….”

        

       이야기를 들은 샤를로트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아, 그래서…….”

        

       그래서 뭐?

        

       샤를로트가 뭘 떠올리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분명 그 떠올린 이야기의 내용은 내가 불쌍하게 보이는 이유였을 것이다.

        

       설마 파르페 먹을 때마다 조금의 생크림도 남기지 않고 다 퍼먹는 것을 들키기라도 했을까?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이번 겨울에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샤를로트가 겨우 말을 꺼냈다.

        

       “이번 겨울에는 꼭 벨부르로 초대할게요. 평소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은 다 잊어버리고 그냥 놀아봐요, 우리.”

        

       “……그럴까?”

        

       샤를로트의 말에 앨리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 초대가 결국 이루어지지 않을 초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는, 올해 겨울에 전쟁이 시작되었으니까.

        

       *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우리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낮에는 뜨거운 햇빛이 내리비치는 곳이었지만 일교차가 워낙 커서 해가 진 뒤에도 수영복을 입고 있다가는 감기 걸리기 딱 좋았다.

        

       원작에서 아무리 캐릭터 조형이 세세하고 온갖 숨겨진 설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정도는 정해둘 수 있다. 캐릭터의 스리 사이즈나 속옷 사이즈 정도는 설정으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세세한 버릇 같은 것까지 죄다 만들 수는 없다.

        

       애초에 모델링, 모션 돌려막기로 유명한 회사의 작품이라서 캐릭터별로 그렇게 세세한 모션을 넣는 것은 어려웠고, 그렇기에 그런 모션을 넣는다면 ‘소소한 버릇’이 아니라 게임 스토리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쪽이 더 빠를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뜨겁게 익힌 고기를 불어서 식히는 모습이나,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있을 때의 모습, 대화할 때 손의 움직임이나 걸음걸이.

        

       ‘원작’과는 여러모로 다르게 느껴지는 그 소소한 차이점이, 여기 있는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했다.

        

       아니지, 살아있는 것이 맞다.

        

       모두 숨을 쉬고,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른다. 정해진 대사만을 읊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자기가 생각한 내용을 말로 하거나,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모두를 살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실비아.”

        

       앨리스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입 안에 소시지가 꽂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대답을 바란다면 입에 소시지를 꽂는 일은 하지 않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육즙과 훈연 향이 풍부한 소시지를 씹어 삼키고 대답했다.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

        

       앨리스는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어?”

        

       나는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앨리스는 내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는 게 그렇게 끔찍한 일이야?”

        

       글쎄.

        

       예전에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원작에서 전투는 칼과 총알이 오간 후 사람이 쓰러지는 것이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달랐으니까.

        

       포탄에 맞아서 몸이 반 토막이 나고, 검에 베여서 내장이 줄줄 흐르고……. 당연히 원작에서야 여러 가지 이유로 그냥 생략된 표현일 뿐이겠지만.

        

       나는 이미 전장을 보았다. 내가 쏘는 총에 사람이 쓰러지고, 내가 던진 수류탄에 사람이 찢겨나가는 것도 보았다.

        

       만약 내 친구 중 하나가 그런 식의 죽음을 맞게 되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겠죠.”

        

       “…….”

        

       내 말에 앨리스는 이번에도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푸른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너무 너 혼자서 다 뒤집어쓰려고 하지 마.”

        

       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네 주변에는 이렇게 사람이 많은걸.”

        

       그렇다. 많다.

        

       그렇게 많기에, 이 모든 사람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앨리스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저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앨리스의 시선은 그 이후로도 한동안 나에게 머물렀다.

        

       *

        

       그 이후로 일은 순탄했다.

        

       우리는 몇 개의 의뢰를 더 해서 할당량을 채웠다.

        

       1학년 모두가 모여있었는데도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느긋했다. 이쪽의 의뢰는 대부분 야생동물 사냥이라서, 그렇게 경쟁하듯 뛰어들 필요가 없었다. 제이크가 사냥에 탐탁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에 우리가 야생동물 사냥을 수행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이 부분에서는 딱히 숨겨진 것이 없었다. 은폐 퀘스트 몇 개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그냥 마르마로스 확보용일 뿐이었고, 메인 스토리에 큰 영향을 줄 만한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느긋하게 있다가 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가끔은…… 이렇게 휴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매번 일만 하고 쉬지 않으면 사람은 망가지기 마련이니까요.”

        

       “……그게 네가 할 소리야?”

        

       나는 편하게 쉬고 있는데.

        

       물론 시간을 돌리고 나면 몸의 피로도 다시 돌아오지만, ‘더 잘 수 있다’는 그 든든함 덕분에 마음은 편할 수 있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마음 편하게 있다가 돌아가면 될 듯합니다.”

        

       “그렇게 말 안 해도 그러려고 했거든.”

        

       내 말에 앨리스가 토를 달듯 말했다.

        

       뭐,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지만.

        

       *

        

       게임과 현실의 다른 점 중 하나로, 내가 어딘가에 들어가려면 허락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민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게임적 허용’이긴 했지만, 참 기묘하게도 그렇게 만난 사람과 퀘스트가 진행되거나 하는 일도 있었기에 마냥 ‘게임적 허용’이라고만 하기도 힘들었다.

        

       그 말은 즉, 내가 공작가에 다시 들어가려면 공작의 초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황녀라고 해도 공작의 개인 공간을 마음대로 침범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저택 안으로 몰래 들어갈 능력이 있었다.

        

       “…….”

        

       좋아.

        

       경비원한테 다섯 번 걸린 뒤에 들어오다니, 나도 실력이 늘었네.

        

       그럼, 중요한 은폐 퀘스트를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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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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