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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핑발레즈를 배웅할 무렵부터 하늘이 우중충하다가 요 며칠간은 줄곧 비가 내렸다. 이럴 때는 새삼 마법의 존재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전생이었더라면 세탁물들을 말리지 못해, 언제 해가 뜨려나만 기다리고 있지 않았겠는가. 빨래 건조대에 걸린 눅눅한 옷들이 퀴퀴한 냄새만 더해가고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값비싼 건조기를 사지 않더라도 마법 한 번이면 뚝딱이다.

       

       “⋯⋯그러니까, 빨래 말리려고 저를 불렀다는 건가요 교수님?”

       

       “바로 그거지.”

       

       “교수만 아니었으면⋯⋯ 어휴.”

       

       인간 빨래건조기 셀비어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마법을 영창했다. 그녀의 손으로부터 일렁이는 화염이 몸을 굽이치며 춤을 춘다.

       

       겸사겸사 연구실 내부의 습기 제거도 부탁했더니 정강이를 까일 뻔했다. 교묘한 보법을 밟아 피하지 않았으면 멍이 들 정도의 데미지를 입었을 터.

       

       지이이잉.

       

       빨래가 실시간으로 말라가는 게 눈에 보인다. 내 속옷과 내복들을 무자비할 정도로 뽀송뽀송하게 만들어버린 화염은, 이제 핑발레즈의 속옷으로 표적을 바꾸었다.

       

       “⋯⋯⋯⋯쯧.”

       

       셀비어는 속옷의 형태와 부피로부터 그 무시무시한 크기를 짐작해 냈는지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그녀는 결코 빵빵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부피감을 비유하자면, 사과보다는 크고⋯⋯

       

       “눈도 뽀송뽀송하게 해 드려요?”

       

       “사양하마.”

       

       나는 시선을 피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과 투항의 포즈다.

       

       투두둑.

       

       바람이 살짝 불어서인지, 빗방울이 연구실 창문 너머를 두어 번 툭툭 때리고 지나간다. 문 좀 열어달라는 것마냥.

       

       나는 얄미운 빗방울을 노려보았다. 문을 두드려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다. 머리가 핑크색이고 성희롱을 잘하는 내 친구지.

       

       아무리 내가 외로움을 탄다고 한들, 그녀가 아닌 빗방울을 연구실 안으로 들일쏘냐. 오고 싶다면 핑발레즈를 데려와라. 데려온다면 기꺼이 이 문을 열어주마.

       

       “⋯⋯비랑 눈싸움이라도 하시는 거예요?”

       

       그 내적 밀당이 셀비어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그녀는 유나의 천 면적이 살짝 모자란 이너웨어를 말리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협상 중이야.”

       

       “말도 안 통하는 청탑의 하수인들이랑 무슨 협상을 해요. 꽁꽁 얼어서 도도한 척이나 할 줄 알지.”

       

       “불꽃은 말이 통한다는 듯이 말한다 너⋯⋯?”

       

       “아주 잘 통하죠. 얘네는 얼거나 증발하거나 모습을 바꾸는 일도 없고, 호불호가 확실하거든요. 싫으면 태우니까.”

       

       일리는 있었지만 와닿지는 않았다.

       

       불꽃 친구라. 그 녀석은 까닥 하면 사방으로 번져버리는 욕심쟁이라, 아무래도 비위 맞춰주는 게 까다로울 것 같은데. 돌멩이 친구는 너무 과묵할 것 같고.

       

       이렇게 잡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워도, 불안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떨어지지를 않는다.

       

       “뭐⋯⋯ 요새 안 좋은 일 있어요?”

       

       “친구한테 소식이 없어서 좀 불안해.”

       

       “아, 핑크머리 분. 확실히 요새 안 보인 지 좀 되긴 했네요⋯⋯ 그게 불안해서 불 먹은 화염 두꺼비처럼 축 늘어져 있던 거군요?”

       

       “그건 또 무슨 비유야.”

       

       관용어구에도 이 악물고 물이라는 단어를 안 쓰다니, 얼마나 청탑의 백설에게 라이벌 의식이 강한 거냐.

       

       불안이라는 감정은, 사실 불안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불안이 달라붙은 감정이 문제다. 내가 핑발레즈를 좋아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불안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졌을 거다. 수시에 확정적으로 붙으면 수능을 조져도 아무렇지도 않듯이.

       

       그러니 불안을 제거하려면, 그 숙주를 제거해야 한다.

       

       씹던 껌이 머리카락에 엉겼을 때랑 비슷하다. 큰 덩어리는 떼어도 찐득찐득하게 남고, 그건 머리를 여러 번 감아도 깔끔하게 없애기 어렵다.

       

       결국 머리카락의 엉킨 부분을 잘라낼 수밖에 없다.

       

       “그건 또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

       

       “⋯⋯왜?”

       

       “소꿉친구가 해 준 얘긴데, 감정은 묻거나 잘라내는 일 없이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대요.”

       

       “⋯⋯꽤 묘한 이야기네.”

       

       셀비어가 내뱉은 문장이 내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듯했다. 줄곧 외면하던 부분을 누군가가 짚어내는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셀비어는 그 소꿉친구라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모양이다. 벌써부터 표정에 행복이 가득하다. 냉장고에 넣어 둔 케이크를 꺼내는 사람 같다.

       

       그녀는 소꿉친구를 대신해서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였다고 해서, 그 사랑까지 ‘없던 일’이라며 부정하게 되면⋯⋯ 나중에 다시금 찾아올 사랑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면서.”

       

       “⋯⋯⋯⋯.”

       

       “그런 종류의 감정은, 반증이래요. 교수님은 그 사람과 무척 친하니까⋯⋯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그 사실에 기뻐해도 좋대요. 불안의 크기만큼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으니까.”

       

       빌딩이 높으면, 그 높이만큼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렇다면 그림자에 가려져 떨고 있거나, 그 사실에 분개하여 빌딩을 무너뜨리는 대신에. 빌딩의 꼭대기에 올라 경치를 보라는 걸까. 

       

       “⋯⋯그게 말처럼 됐으면 속앓이를 안 했지.”

       

       “솔직히 좀 그렇긴 해요. 그래도 멋진 말 아닌가요? 정론이라는 느낌.”

       

       이상적인 말이긴 했다.

       

       “위로 고맙다, 셀비어. 다음 수행평가 내용 유출해 줄까?”

       

       “됐어요. 서로 같은 처지라서 해 본 말이에요. 저도 그 소꿉친구를 10년 넘게 기다리고 있거든요.”

       

       다 말렸으니까 가 볼게요, 하고. 셀비어는 손을 휘휘 저으며 연구실에서 나갔다. 붉은 머리카락이 휘휘 흔들리다 쓱 사라졌다. 10년 넘게라⋯⋯?

       

       10년, 10년인가.

       

       이대로 핑발레즈가 사라지고 기약 없이 10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그런 아주 불길하고 무서운 가정을 해 봤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려다가, 멈췄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그런 만약을 떠올렸다가 실제로 이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겁이 덜컥 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상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잃고 싶지 않다.

       

       마탑주도, 핑발레즈도, 잃고 싶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내가 조금 더 음흉한 속내를 드러냈다가 ‘으엑, 연애는 좀⋯⋯ 우리 친구로 지내자’ 라는 말을 듣는다든가.

       

       둘 중에서 어느 한 사람과 이어졌다가, 다른 한 사람이 ‘저를 고르지 않으셨군요. 그렇다면 저 또한 당신을 고르지 않겠습니다’ 라며 떠나간다든가.

       

       그런 일어나지도 않은 만약의 공포에 바짝 얼어붙어서,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여기에 못 박혀 서 있다.

       

       우리들 셋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잃고 싶지 않기에, 똑 부러진 말로 관계를 규정하지도 않고, 질투도 삭이면서, 결코 선을 넘어오지 않는 유나도.

       

       자신이 언제고 복수를 위해 떠날 것을 알기에, 다가오는 듯하면서도 우리들 사이의 관계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던 유리 랜스터도.

       

       연인이 되어 보는 건 어때. 그 한마디는 마음 구석 그늘에 꽁꽁 묶어서 숨겨 두고는. 의미없는 스킨십으로 차가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으니까.

       

       뭉쳐서 살결을 맞댄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맞대어지는 형편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 법 아닌가.

       

       실은, 바란다.

       

       조금 더⋯⋯ 끈끈한 관계를 바란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가족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

       

       ⋯⋯이야기를 해 보는 건 어떨까.

       

       유리 랜스터가 돌아오면, 셋이 모여 앉아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솔직하게, 나는 너희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 같다고.

       

       조금 더 속내를 터놓고 말하고, 조금 더 마음의 내밀한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고.

       

       물론,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쩌면 싸움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성격적으로 뭔가 맞지 않아서 다투고, 언성을 높일지도. 하지만 그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서로에게 맞춰 가면서, 지금 그어진 선으로부터 한 발짝 나아가서. 조금 더 친밀한 관계가 되어보지 않겠느냐고.

       

       그러니까. 내게 말해 달라고 하는 거다.

       

       유나는, 그 고깔모자에 새겨진 낙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째서 가끔씩 훌쩍이며 우는지. 자색 마탑에는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리는, 그 복수심이 어떤 일로부터 기인한 것이며.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한 우화를 발현한 건지. 

       

       너희들의 고민을, 내가 해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해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위안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다.

       

       그러자.

       

       그렇게 하자.

       

       핑발레즈가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용기를 내서 말을 꺼내자. 분위기가 곱창 나는 경우를 대비해서 농담도 몇 개 짜 가자. 대본도 써 둘까. 거울을 보고 연습하는 거다.

       

       그게 전부인가? 그 뒤에는?

       

       여행은 어떨까. 진짜 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륙 남부로 긴긴 여행이라든가. 거기엔 멋진 해변이 있다던데, 물놀이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은, 이리드에게 받은 소원권을 쓸까. 핑발레즈를 내 전속 수행원으로 배치해 달라고 하자. 어떤 임무 때문에 훌쩍 떠나가야 하는 일이 없도록. 좋은 아이디어 같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나는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만남을 기대했다.

       

       모든 게 잘 풀리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하고 재미있을 거다. 그러니까, 부디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와 주기를.

       

       그렇게 기도하던 순간에.

       

       벌컥.

       

       문이 열렸다.

       

       나는 혹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한 핑발레즈가 아닐까 하여 반갑게 고개를 돌렸으나. 그곳에는 비에 푹 젖은 생쥐 꼴인 유나가 서 있었다.

       

       “⋯⋯⋯⋯.”

       

       “⋯⋯왜, 왜 그래요? 마탑주님. 그런 표정으로, 그 꼴로⋯⋯.”

       

       나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표정에 드리워진 그늘의 색과, 꾹 쥐어진 양손이 의미하는 바가. 두려워서.

       

       머리를 갉아대는 불안 속에서, 나는 거듭 스스로를 위안했다. 별일 아닐 거야. 대수롭지 않은 일일 거다. 그렇다고 말해 줘.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비정하여.

       

       “⋯⋯유리가, 의식불명이야.”

       

       “⋯⋯⋯⋯.”

       

       헐떡이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박제된 나비처럼 한참이나 굳어 있었던 것 같다.

       

       ===============================================================

       

       유리 랜스터는 잠들어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것은 지나가던 아카데미생으로, 골목에 버려져 있었던 유리를 목격하고 신고를 넣었다고 했다. 

       

       아카데미에 남아 있었던 방위국 요원은 그녀의 신원을 확인하고 우선적으로 사제에게 인계했다. 그리고 여신교의 사제로부터 ‘치유 불능’이라는 대답을 들은 후에.

       

       내게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소식을 전했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곱게도 잠들어 있었다. 보는 내가 얄미움을 다 느낄 정도로. 나는 꾹 닫힌 그녀의 눈꺼풀에 대고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다.

       

       “⋯⋯핑발레즈?”

       

       미동도 없다.

       

       왜 대답을 해주지 않는 걸까.

       

       별명이 내심 마음에 안 들었나? ⋯⋯그래, 어쩌면 모욕적으로 들을 수도 있었겠다. 처음에는 인신공격을 위해서 붙인 별명이었으니.

       

       그렇다면 조금 부끄럽지만, 이름으로 부르자.

       

       “⋯⋯유리. 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 침묵을 한참을 곱씹어 본 뒤에야, 유리 랜스터가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틱.

       

       스트레스 수치가 가파르게 치솟자, 머릿속의 『사이코패스 모듈』이 켜졌다.

       

       그래. 별일 아니다. 그냥⋯⋯ 서큐버스 한 마리가 반쯤 죽은 거다. 호들갑을 떨거나 당황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아파할 이유도 없다. 그냥, 나와는 관계가 먼 타인일 뿐이다. 지나가던 개미 한 마리가 짓이겨진들,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애초에 그녀의 마음은 불순했을 거다. 2황자가 나의 감시를 위해서 붙인 인선이니, 내 비위를 맞춰가며 정보를 빼낼 속셈이었겠지.

       

       나를 홀리던 불여우 한 마리가 떨어져 나간 거니까, 이건 이득이다. 감시자가 없으니 나는 아카데미에서 자유롭다. 그렇지? 그래.

       

       그러니까, 그러니까 별일이⋯⋯.

       

       아니야.

       

       빠악.

       

       마력을 담아서 스스로 뺨을 후렸다. 그 모듈은 짓이겨졌다. 모듈 옆에 있던 무고한 다른 모듈도.

       

       나는 머리를 거칠게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그녀는 죽은 게 아니다. 돌이킬 수 있다. 이게 정신의 문제라면, 나라면 가능하다.

       

       마법진을 띄우고 마력을 흘린다. 필요한 마법은 즉석에서 만든다. 나는 유리 랜스터의 머릿속을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저항감이 느껴진다.

       

       인위적인 마력의 흔적을 감지했다.

       

       기억을 더듬는다. 이건, 3황자 대가리에 심겨져 있던 것과 같다. 서큐버스 여왕의 것이다. 그리고, 다른⋯⋯ 다른 것도 느껴진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그물 같은 게.

       

       유리 랜스터는 여왕의 마법에 의해 스스로의 정신에 갇혔다. 말하자면, 머릿속에 생긴 던전을 헤매는 셈이다. 

       

       알 수 있다. 그녀는 악몽을 꾸고 있을 것이다. 흑마법사들은 고통을 주어, 영혼에 상처를 내어 마력을 흡수하니까. 그녀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외부 시술을 통해서 적출 및 배제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여왕의 마법은 허술하고 빈틈이 많아서 갈기갈기 찢어발길 수 있을 터이나, 그 마법을 보조하는 이상한⋯⋯ 타르 같은 녀석이. 너무나도 교묘하다. 악의적이다.

       

       가시가 잔뜩 박힌 아이언 메이든과 같다. 내가 억지로 입구를 비집어 열려고 하면, 안에 들어 있는 유리 랜스터의 정신에 수백 개의 구멍이 난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나와 비등한 수준의 마법적 기예를 느꼈다.

       

       나와 함께 그녀를 살피던 자색 마탑주도 말한다.

       

       “⋯⋯복잡한 승화 능력이 걸려 있는 것 같아. 『빼기』로 지워낼 수 있을까 했는데, 무리야. 유리까지 휩쓸릴 거야⋯⋯.”

       

       “⋯⋯⋯⋯.”

       

       초조하다. 초조해진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정말로 이렇게, 그녀를 내버려둘 수밖에 없나? 아니.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입구가 있다. 입구를 찾았다.

       

       유리 랜스터의 머리에 설치된 함정은 내부로부터 취약한 구조이며, 침투하기 쉽도록 잘 꾸며진 샛길이 세팅되어 있었다. 허점이 아니다. 제작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들어오라는 거다. 그녀를 구하고 싶으면. 안으로.

       

       함정이다.

       

       이성은 경고하고 있었다. 어디서 주워 온 건지 모를 승화까지 덧붙여서 만들어진, 잘 꾸며진 함정이다. 위험하다. 그녀의 머리에 작은 던전이 지어진 셈이다.

       

       세션처럼, 내 의식만을 떼어 안으로 침투한다고 하면⋯⋯ 나는 내 세션에 참여한 플레이어와 비슷할 정도로 무방비해진다. 

       

       그래서?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분노와 슬픔으로 부글부글 끓는 마음이 혹시나 내 마법의 행사를 방해할까 봐, 애써 억누르면서. 이를 갈면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때, 유나가 내 소매를 잡고 세게 당겼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하게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나를 막아섰다.

       

       “⋯⋯아무리 너라도, 죽을지도 몰라. 알잖아⋯⋯?!”

       

       “알아요.”

       

       “아니, 아니야. 모르고 있어⋯⋯!! 그 일레인도, 완숙한 우화를 가진 그녀도 미숙하던 네게 속았어. 나도⋯⋯ 반쪽짜리나마 승화를 가진 나도, 버거웠어! 준비된 마법사와 그렇지 않은 마법사는, 그만한 격차가 있어!”

       

       그래.

       

       그렇다. 승화의 흔적까지 발견된 이상, 위험성은 제곱으로 뛰어오른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있잖아, 그렇게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잖아. 응? 아직 시간이 있을지도 몰라. 적어도. 맨몸으로 뛰어드는 건 아니야. 위험하다니까!”

       

       하지만,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유리 랜스터는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죽어가고 있다.

       

       “내가 더 열심히 해 볼게. 자색 마탑의 전원을 소집해서, 도울게.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야. 늦지 않을 수 있어. 그러니까⋯⋯!!”

       

       불안을 참을 수 없다. 마탑의 인원을 소집하고, 파악하고, 분명 많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과연 그녀가 버텨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지금 들어가서, 유리 랜스터를 성공적으로 구해내기만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 내가 맘속으로 그리던 행복한 미래도, 흔들리지 않는다.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나는 천재이지 않은가. 그렇지?

       

       가자. 그녀를 구하러 가자. 

       

       내 표정으로부터 그러한 마음을 읽은 것인가. 유나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지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금세 눈가가 새빨개지고 눈물이 또르륵 흐른다.

       

       “⋯⋯나는? 그러면, 나는?!”

       

       “⋯⋯⋯⋯.”

       

       나는 덜컥 굳었다.

       

       내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있을 때, 유나는 내게 한껏 설움을 토해냈다. 슬프다. 유리 랜스터가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슬프다. 하지만.

       

       “그렇게, 그렇게 무턱대고 들어가서, 너까지 이런 모습이 되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아⋯⋯? 

       

       “나는⋯⋯.”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묵을 흘리고 있자.

       

       “그렇게는, 안 둬. 못 가. 싫어-!!”

       

       비명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유나의 주변과 손가락 끝에서 물방울이 솟아올랐다. 마법의 전조다.

       

       후우욱.

       

       떠밀렸다. 아니, 공간이 늘어났다. 나와 유리 랜스터가 누운 침상까지의 거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유나의 환상 마법이다.

       

       대응한다⋯⋯!!

       

       “『환상파쇄』, 『공간 좌표 대혼란』, 『눈가림』⋯⋯!”

       

       유나의 마력과 반대되는 속성으로 전방위로 파장을 쏘아, 환상 마법을 부순다. 쌍소멸을 일으키도록 한다.

       

       이어서 나를 타겟팅할 수 없게 흔들고, 견제용 환상 마법을 쏜다.

       

       기술로 제 1파를 막아선 내게 거듭 쏘아지는 건, 더 높은 파도였다. 유나의 영창이 들려온다. 영창이 길다, 고위 주문이다!

       

       “빛을 거둬, 눈 감아.『암전』!”

       

       모든 빛이 꺼졌다. 감각기관이 단체로 맛이 간다. 정보를 읽어 들일 수 없다.

       

       불이 꺼지기 전, 나는 유나의 가슴팍에 둥실둥실 떠오른, 내부에 조금씩 검은 액체가 차오르는 비눗방울을 보았다. 아는 주문이다.

       

       『바이올렛아이리스의 결집된 추억 마수정 폭발』.

       

       힘으로 쓸어버릴 생각이다. 저게 완성되면, 진다. 나는 캐스팅이 완료되기 전에 암전으로부터 빠져나가, 마법의 완성을 방해하기 위해서 공격을 난사했으나.

       

       “『주문분산』, 『재조립』, 『텍스처 해체』⋯⋯!!”

       

       집중할 수 없다. 머리가 어지럽다. 자꾸만, 그 표정이 뇌리에 남는다. 대응하는 것도, 반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아무도 이곳에 들어올 수 없어, 아무도 죽으러 갈 수 없어. 너도⋯⋯!!”

       

       ────.

       

       정보 폭탄이 터졌다.

       

       “⋯⋯으, 어.”

       

       위와 아래를 분간할 수 없다. 내 다리가 정수리에 달려 있었던가, 눈은 발바닥에 붙어 있었던가. 한참을 바르작거리고 나서야, 나는 연구실 문 앞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느샌가 내쫒긴 거다. 나는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려 시도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유나가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이나 문을 두드리고, 열어보려고 시도하다가. 문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았다.

       

       “⋯⋯⋯⋯.”

       

       머리가 아팠다.

       

       ===============================================================

       

       머리가 좀 식었다.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유나가⋯⋯ 광분하면서, 당장 유리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내가 죽어서라도 핑발레즈를 살리겠다고 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녀를 말렸을 것 같다. 

       

       그렇다면, 유리 랜스터를 놓아줘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위험할 뿐이다. 나와 같이 유리 랜스터를 좋아하는 유나가, 이렇게 기를 쓰고 말릴 만큼.

       

       이렇게 고민하느라 시간을 날리고 있는 것도 손해다. 그러나 유나가 농성하고 있는 연구실을 돌파할 자신이 없다. 진심을 낸 자색 마탑주는 강하고, 나 또한 그녀를 진심으로 공격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누군가, 내게 정답을 알려 주기를 바랐다. 머리가 식었다고는 했지만, 강불에서 중불로 상대적으로 식은 모양이다.

       

       나는 한참을 헤매다가⋯⋯.

       

       “⋯⋯그래서 비 쫄딱 맞은 채로, 여자 기숙사까지 오셨다구요?”

       

       “⋯⋯어.”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셀비어를 찾아가버렸다.

       

       “바보예요?”

       

       맞는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봐요, 마이 프렌즈. 맛점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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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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