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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반으로 잘린 지장보살.

         

       새똥과 온갖 오물이 묻어 더러워진 지장보살의 몸통.

       더러운 몸과 대비되는 깨끗한 단면.

         

       훌륭한 솜씨로 일도양단 되어버린 지장보살은 사범이 생각하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주변이었다.

         

       “이건.”

         

       사범의 눈에는 수많은 지장보살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셀 수도 없는.

       아니, 나무의 숫자와 정확히 일치하는 숫자의 지장보살의 얼굴이 말이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이야.”

         

       지장보살의 주변에 빼곡하게 자라고 있던 나무들에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장보살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새까만 잿더미를 물에 갠 다음에 찍어낸 듯 새까만 지장보살의 얼굴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죽어가는 나무,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시들시들한 나무, 영양분의 부족과 살아가기 힘든 환경에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형태를 이루고 있는 나무, 다 죽어서 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간신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그 모든 나무에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고, 자애로운 듯 보이는.

       하지만 음각 판화로 찍어낸 듯한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몰골의 얼굴들.

         

       새까만 얼굴에 하얀 눈꺼풀, 하얀 입술, 하얀 코.

         

       사범은 토막이 나버린 지장보살 석상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새겨진 얼굴을 보고 표정이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는데, 이 떨림은 공포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모멸감.

       분노.

         

       차가운 방향으로 내려가는 공포가 아닌, 위로 솟구치는 뜨거운 감정들.

         

       사범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다.

         

       “어-떤 새끼가…. 감히 이딴 장난을 해—–!!!”

         

       억누르려다가 결국 터져 나온 노성은 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푸드덕.

         

       나무에 앉아있던 새들은 놀라서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도망가버렸고, 꾸벅꾸벅 잠을 자고 있던 산짐승들 역시 화들짝 놀라며 풀숲을 헤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 바람이 불어와 나무의 잎사귀들마저 흔들거리게 했다.

         

       “감히 우리 시현류에 이딴 애새끼 장난질을 벌여-!”

         

       사범은 분노했다.

         

       쾅!

         

       그는 분노를 참지 않고 손에 기를 둘러 그대로 나무 하나를 후려쳤고, 그러자 파릇파릇하게 살아가고 있던 나무가 ‘살아갔던’ 나무가 되어버렸다.

         

       몸통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파편을 사방으로 튀기며 부러져버렸고, 반 이상 푹 파인 나무의 몸통은 그대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무에 찍혔던 지장보살 얼굴 역시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혀버렸다.

         

       “이건 도전이야! 우리 시현류에 대한 도전!”

         

       그는 살기마저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단순한 장난의 영역을 넘어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리라.

         

       무인 하나에게 겁을 주어서 시현류가 가장 경멸하는 ‘겁쟁이’로 만들고.

       ‘시현류’가 수련장으로 쓰는 사유지에 멋대로 침입했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밤에 직접 나서서 놀라게 하기까지 했으며.

       게다가 그 장난이라는 것을 동네방네 자랑이라도 하듯 온갖 곳에 지장보살 얼굴을 찍어 도발까지 했다.

         

       이건 단순히 장난의 영역을 넘어, 도장의 간판에 낙서하거나 페인트를 뿌리고 도망을 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먹칠!

       시현류의 명성에 먹칠한 것이다!

       

       감히, 그 누구보다도 호전적이고 실전적이라 자부하는 유파의 얼굴에 먹칠하다니!

         

       사범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오냐. 장난질을 당했다고 해도 체면 때문에 일을 크게 벌일 수 없으리라 생각했겠지?”

         

       무인들의 세계는 이미지가 매우 중요했다.

         

       실적과 논문만 있으면 되는 능력주의가 팽배한 마법사의 세계나 자신의 소환수를 자랑하고 서로를 돕는 사교 모임이나 다름없는 소환사의 세계, 주술로 사기를 치려는 작자만 없으면 서로에게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주술사의 세계와는 전혀 달랐다.

         

       이미지.

       정확히는 ‘강해 보이는’ 이미지야말로 무인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었다.

         

       속된 말로,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것이 무인의 세계였다.

         

       권법을 다룬다면 빈손으로 전차에 대항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검을 다룬다면 단칼에 산조차 벨 수 있다고 소리를 높이고.

       기공을 다룬다면 절벽조차 기공 한 방에 부술 수 있다며 힘을 내보이고.

       창을 다룬다면 무엇이든 꿰뚫을 수 있다고 소리를 친다.

         

       무인이라는 능력자의 자부심은 다른 능력자들과는 달랐다.

         

       한데 뭉치고 기술을 교류하며 군대로서 발전한 마법사들과도 달랐고.

       제물을 바치고 기괴해 보이는 의식을 벌이고 제 몸을 깎아가며 이상한 사술을 쓰는 주술사와도 달랐으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르는 이상한 동물인지 뭔지도 모를 것에 제 목숨을 맡기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단신으로.

       몸을 깎아가는 것이 아닌 단련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목숨을 책임진다.

         

       그것이 바로 무인의 자부심이요, 무인의 근본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무인은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것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했다.

         

       물론 무공의 경지나 전투 기술의 차이 같은 것이야 당연히 인정한다.

       이긴다면 그 경험을 발전의 계기로 삼고.

       진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아쉬워하며 수련에 매진해 더 높은 곳을 향했다.

         

       승부에는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않고, 그 결과에는 아쉬움을 품되 그것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공 외적인 수단을 이용한 공격과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지금, 사범의 눈에는 저 수많은 지장보살 얼굴이 바로 ‘무인의 체면을 더럽히는’ 짓으로 보였다.

         

       “감히 우리 시현류를 겁쟁이라 조롱하다니.”

         

       빠드득.

         

       사범은 지장보살의 얼굴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선하고 포용력이 가득한 자비로운 미소는 끔찍하게 뒤틀린 비웃음으로 보였고, 사이사이에 흐르는 바람이 내는 소리는 얼굴을 모르는 범인의 조소 섞인 소리로 들렸다.

         

       고작 괴담에 겁을 집어먹는 무인 집단.

       ‘사내 구실도 못 하는 겁쟁이들’이 가득한 유파.

       이렇게 대놓고 방문했음에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무능력자들.

         

       사범은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그대로 수련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자신이 아까 흠씬 두들겨 팬 무인의 숙소로 쳐들어갔다.

         

       콰아앙!

         

       사범은 문이 부서질 듯 세차게 열곤 무인에게 소리쳤다.

         

       “너! 어제 봤다던 그 대학생 인상착의 말해봐!”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무인의 멱살을 그대로 잡고 끌고 갔다.

         

       “아니, 말하는 게 아니지. 너! 그림 잘 그리는 놈 끌고 올 테니까 그놈한테 그리게 해. 몽타주 만들라고. 알았어?!”

       “예!”

         

       무인은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예전부터 꾸준히 학습해온 대로 일단 ‘예!’라고 크게 소리쳤고, 머리를 비운 채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놈인지 잡히기만 하면 끔찍한 하루를 보내게 해주마.”

         

         

         

       

        * * *

         

         

         

         

       “흠. 이건 모르겠군요.”

       “뭐요?”

         

       사범의 다짐과는 다르게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범인의 행적을 찾기 위해 온갖 전문가들을 데려왔지만, 전부 모르겠다고만 대답한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딴 말 들으려고 당신들 데리고 온 줄 알아요?!”

         

       사범은 곤란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자칭 전문가들을 보며 분노를 터뜨렸다.

         

       일본 경찰청 소속 대테러부대, 특수부대(SAT, Special Assault Team) 출신의 보안 전문가.

       프로파일러(profiler)이자 마력흔 분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법사.

       사람 흔적을 찾고 추격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는 유명한 탐정.

       근처 정토진종(淨土眞宗) 종파의 절에서 데리고 온 승려.

         

       누가 보더라도 사람 흔적 찾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아야 할 조합이다.

         

       그런데….

         

       “저희도 이런 말씀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의 명성과 실적을 보고 불러주신 것이니만큼 사실대로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저희는 일본 천하에 크게 이름을 알린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그 이름의 무게도 알고 있고, 그 이름의 무게만큼이나 의뢰인에게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게 바로 프로정신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프로의 정신을, 프로의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사범님께서 말씀하신 ‘범인’에 대한 흔적은 찾아보기가 힘들군요.”

         

       전문가라고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범인’의 존재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단 마력흔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마력을 사용하는 이능이나, 마력을 이용해 작동하는 아티팩트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가 있겠네요.”

       “마력흔을 지우는 방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거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고려해봤습니다. 하지만 마력흔을 단기간에 지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잘 지운다고 해도 미세하게나마 그 흔적이 남게 됩니다. 그 흔적마저 지우려면 반드시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요. 사범님 말씀대로라면 밤에서 새벽 사이에 일이 일어났을 텐데, 그 시간으로는…무리입니다. 마력흔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해요.”

       “정말 불가능합니까?”

       “물론 0%는 아닙니다. 국가나 거대 기업이 기술을 꼭꼭 숨겨놨을 수도 있고, 특수부대나 스파이들이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지식 안에서는…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마력흔을 없애는 것은 힘듭니다.”

         

       마법사는 마력흔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고.

         

       “일단 저는 흔적을 발견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학생’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럼 그 녀석이 헛것을 보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 가능성도…부정할 수는 없군요.”

       “뭐요!”

       “그냥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일단 시현류에 속한 분들이 만든 흔적만 보일 뿐이니….”

         

       보안 전문가는 무인 말고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다른 두 명 역시도 비슷했다.

         

       “제가 이곳저곳을 살펴봤는데, 이건 사람의 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앞서 들으셨던 말처럼 다른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나무에 새겨진 지장보살 얼굴도 살펴봤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사람의 손이 닿은 것 같지 않거든요?”

       “그럼 뭐 귀신이 한 짓이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그쪽에 무게를 두고 싶군요. 트릭을 사용했다기에는 너무 기괴해서…. 솔직히 사람의 짓으로는 보이지 않네요.”

       “뭐가 기괴하다는 겁니까?”

       “이 까만 거, 물감이 아닙니다.”

       “물감이 아니라고요?”

       “네. 이거 물감이 아니라, 곰팡이입니다. 곰팡이.”

       “곰…팡이?”

       “게다가 말입니다. 어떤 약품이나 주술, 마법 같은 것이 개입되지 않을까 잘 찾아봤는데 그런 것도 없고요. 심지어 이거, 곰팡이가 나무의 뿌리 쪽에서 올라와서 얼굴 모양으로 번진 겁니다. 쓰-읍.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사람 짓이 아닙니다.”

         

       탐정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으며.

         

       “흠. 제가 살펴보았는데 주술 역시 아닌 듯합니다. 소승이 나이를 많이 먹지는 않았으나 나름 적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자부하는데, 이런 주술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주술이 아니다?”

       “일본 천하의 주술과 음양술은 제각기 특징과 뿌리를 가지고 있지요. 완전히 새롭게 보인다고 한들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와 피어난 것이기에 뿌리만 알고 있다면 쉬이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아는 것과는 너무 이질적인바, 주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려는 이것이 주술이 아니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진짜로 범인이 귀신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귀신이 범인이라면 보안 장치에 잡히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

         

       사범은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안 장치에 잡히지 않았으니 악귀도, 악령도 아닙니다. 그럼 주술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습니까?”

       “허허허. 다시 말하지만, 주술은 아닙니다. 어찌 일본 천지에 뿌리에서 벗어난 주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외국의 주술이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우리 대일본의 신민들이 어찌 그런 비국민이나 할 법한 짓을 했겠습니까? 일본의 주술은 음양사와 절, 정부에 의해서 강력하게 통제되고 있는 것을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럼 외국 주술사일 가능성은요?”

       “허허허허. 진심이십니까?”

         

       승려는 집요하게 질문하는 사범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일본의 온 국토가, 천하가 외국 주술사를 잡아내고 있습니다. 하늘의 그물 못지않게 성기고, 하늘의 눈 못지않게 빠짐없이 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외국 주술사가 천하를 활보하고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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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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