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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자갈타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 정도 흐른 뒤였다.

         

       “크으으…!”

         

       얼굴 한쪽에서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혓바닥으로 입 안을 굴려보니 이빨 또한 왕창 뽑혀 나간 모양.

         

       심지어 팔과 다리는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꽉 묶여 있다.

         

       ‘내가 왜…, 아.’

         

       끊겨져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의 침입.

         

       나름대로 전쟁터에서 굴러먹은 부족의 전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가는 모습.

         

       마지막.

         

       아리따운 여인이 거침없이 월도를 휘둘러 제 대도를 박살 내고, 얼굴을 후려갈기는 것까지.

         

       ‘우리 부족민들은 무사한가?!’

         

       그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 어….”

         

       참혹한 광경이 뒤따를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부족은 제법 평온해 보였다.

         

       자신과 함께 약탈에 나서는 전사들이 한데 묶여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랬다.

         

       그 외의 아이, 노인, 아녀자들은 곳곳에 서 있는 무림인들의 눈치만 슬쩍 볼 뿐, 부족 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의아해하는 그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 일어났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보이는 것은 재수 없을 정도로 잘생긴 사내였다.

         

       그는 새빨갛게 익은 사과 하나를 들고 오물거리며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원에서 좀 사는 집안의 자제로 보이는데.

         

       ‘뭐, 뭐냐.’

         

       느껴지는 존재감이 심상치 않다.

         

       당장에라도 네이놈 하면서 내지르려 했던 윽박은 쏙 들어갔다.

         

       “누, 누구시오.”

       “그건 그다지 중요치 않을 것 같은데.”

         

       사실 그건 그렇다.

         

       중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그가 젊은 사내의 이름을 알아봤자 알지도 못할 테니.

         

       그는 골똘히 생각하다 이내 다음 질문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젊은 사내, 백우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진다.

         

       그 모습이 꼭 정답을 얘기했다고 칭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백우진은 자갈타이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와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크게 바라는 건 없고, 그냥 내가 하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만 해주면 돼.”

       “질문…, 질문 말이지.”

         

       대수로울 것 없지 않냐는 듯한 그의 말에 자갈타이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고작 질문 몇 개 때문에 우리 부족을 침략해왔단 말인가!”

       “그런데.”

       “이, 이…, 간악한 놈들!”

       “뭐?”

         

       분노어린 절규를 토해내는 자갈타이.

         

       백우진은 그런 그의 모습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평화롭게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굳이 이렇게 우리를 짓뭉개지 않아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이야기였단 말이다!”

       “허허, 이거 아주 웃긴 새끼네.”

       “뭐가 웃기단 말이냐.”

         

       허허롭게 웃던 백우진의 시선이 더없이 날카로워졌다.

         

       그의 눈빛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자갈타이는 날카로운 칼에 온몸을 난자당하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느그들은 약탈할 때 우리 약탈해요~! 하고 와서 약탈했냐?”

         

       지구에 그런 말이 있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자기한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인간들에 어울리는 말.

         

       지금의 자갈타이에게 딱 잘 맞는 느낌 아닌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여도 너는 할 말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기괴한 표정이 그에게로 향했다.

         

       입은 환하게 웃고 있는데,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은.

         

       “어떻게 생각하냐?”

       “크윽…!”

         

       자갈타이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부족 전체가 무력화된 상황.

         

       모두가 인질로 잡힌 거나 다름없는 상황 속에서 화를 억누르지 못했음은 크나큰 실책이었다.

         

       말 한마디에 기분이 나빠진 이들이 부족민 전체를 도륙할 수 있음을 왜 미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사색이 된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내,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소. 그대의 자비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오…!”

         

       그는 넙죽 몸을 엎드렸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 눈앞의 사내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은 후회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자갈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 물음에 답할 준비는 됐나?”

       “내가 아는 거라면 무엇이든 답하리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때때로 인근 부족의 정보를 팔아먹어야 하는 질문에도,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도 자신의 부족이 온전할 때나 가능한 일이니.

         

       그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살아남는 데에 성공했다.

         

         

       * * *

         

         

       자갈타이 부족에서 말을 타고 반나절 조금 안 되는 거리에는 바르탄 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

         

       원래도 인근 초원에서 강하기로 유명한 부족이었으나, 늙은 부족장의 사후 새롭게 권력을 잡은 젊은 부족장의 인도 아래에 더욱 강성해져가고 있는 이들.

         

       그 탓에 자갈타이가 관계 개선을 위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족이기도 했다.

         

       말을 제 수족처럼 다루며 초원을 내달린 그는 높다란 목책 앞을 굳건히 지키고 선 두 전사의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뒤로 부족의 전사들도 함께 말을 세우며 자갈타이의 뒤로 도열했다.

         

       “누구냐!”

         

       난데없는 타 부족의 등장에 전사가 날 선 반응을 보인다.

         

       자갈타이는 익숙하다는 듯, 양손을 들어 전투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입을 열었다.

         

       “이보게들, 나일세. 자갈타이 부족장.”

       “아…, 자갈타이 님이셨군요.”

         

       그를 향해 겨누어져 있던 창끝이 거두어졌다.

         

       “내 바르탄 부족장에게 전할 말이 있어 급히 왔네만, 부족장은 안에 계신가?”

       “예, 조금 전에 약탈을 마치고 돌아오셨습니다.”

       “아…, 그런가.”

         

       자갈타이의 시선이 제 뒤에 도열해 있는 전사들의 눈치를 슬쩍 살핀다.

         

       눈썹이 꿈틀거리긴 하지만, 그 이상을 내비치는 않고 있다.

         

       그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구를 지키고 선 전사들에게 말했다.

         

       “그럼 바르탄 부족장께 기별을 좀 넣어주게.”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전사 중 하나가 부족장에게 기별을 넣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섰던 전사가 걸어나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사의 뒤에는 어마어마한 체구를 지닌 거한이 곳곳에 돋아난 빳빳한 털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바로 이곳 부족의 부족장, 바르탄이었다.

         

       “오, 자갈타이 부족장! 열흘 만이구려. 오늘은 어쩐 일이시오? 뒤에는 전사들인 듯한데…, 혹 우리 부족에 선전포고를 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껄껄껄!”

         

       커다란 배에 장착된 울림통이 어마어마한지, 그가 웃을 때마다 하늘이 쩌렁쩌렁 울렸다.

         

       귀를 찌르르 울리는 웃음에 자갈타이는 인상을 찡그렸으나, 그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바르탄 부족장과 친분도 나눌 겸 전할 얘기도 있어 찾아뵙게 되었지요.”

       “오! 그러시오? 안 그래도 술 상대가 없어서 적적했는데, 잘 됐구려! 어서 들어오시오. 마침 약탈을 마치고 온 터라 먹을 게 쌓여 있으니, 껄껄!”

         

       바르탄은 자갈타이와 그를 호위하는 전사들을 모두 데리고 부족 안으로 들어섰다.

         

       “자자, 전사들은 전사들끼리 마시게 두고, 우리는 우리끼리 한잔 합시다.”

         

       그가 제 체구에 걸맞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움막 안으로 들어서려 할 때, 자갈타이가 제 뒤에 있던 전사 한 명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바르탄 부족장, 술자리에 우리 전사 하나를 끼워도 되겠습니까? 이 친구가 우리 부족 내에서 술을 가장 잘 마시기에 부족장과 좋은 승부가 될 것 같아서 내 일부러 데려왔습니다.”

       “호오, 자갈타이 부족 제일의 술꾼이라!”

         

       전사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바르탄이 자갈타이의 옆에 선 전사를 바라보았다.

         

       “굉장히 젊은 친구구려! 헌데 실력이 제법, 으음!”

         

       그의 눈에 호기심이 차올랐다.

         

       젊은 전사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제법 상당했다.

         

       바르탄의 삶은 단 세 가지로 정리가 가능하다.

         

       술, 여자, 전사.

         

       그중 눈앞의 젊은 전사는 실력 있고 술까지 잘 마신다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젊은 전사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우진타이라고 합니다.”

         

       우진타이!

         

       그는 자갈타이 부족의 전사로 위장한 백우진이었다.

         

       사로잡은 자갈타이에게 백우진이 물은 것은 인근 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마교도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면 그 부족의 세력이 갑작스럽게 강해졌을 것은 당연지사.

         

       인근 부족 중에서 최근 세력을 크게 확장한 부족이 있냐고 물었고, 자갈타이는 대답했다.

         

       바로 이곳, 바르탄 부족이 최근 가장 크게 세력을 확장해오고 있음을.

         

       ‘기세가 심상치 않은 놈이야.’

         

       실제로 마주하게 된 바르탄은 그 실력이 남달라 보였다.

         

       또한 기묘했다.

         

       실력과는 별개로 몸 전체가 꺼림칙했다.

         

       ‘저 지저분한 털 때문인가.’

         

       그게 저 털 때문에 일어나는 혐오감인지, 아니면 마교도와 손을 잡고 무언가를 얻어내서 일어나는 혐오감인지.

         

       그와 자리를 함께한 상태로 알아볼 요령이었다.

         

       그는 고개를 슬쩍 들어 빛나는 제 눈을 바르탄에게 보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제게 바르탄 부족장과 대작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바르탄은 느꼈다.

         

       사내의 정중한 말투 속에 잠들어 있는 호승심을.

         

       “으하하하하! 젊은 전사답게 굉장히 호기롭군, 그래!”

         

       바르탄은 그런 전사가 마음에 들었다.

         

       “좋소! 이렇게 셋이서 술을 마셔봅시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마시는 거요!”

       “하하…, 이거 참, 제가 제일 먼저 뻗겠습니다, 그려.”

         

       거대한 움막이 세 사람을 집어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말이네요.

    다들 푹 쉬시면서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따라 어딘가 딱 아프다기 보단, 컨디션 자체가 나빠서 골골대고 있네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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