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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그날 밤.

        잠 못 이루던 아나티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힘없이 오두막 밖으로 나가기에,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아나티샤를 따라갔다.

       

        내가 따라감에도 불구하고 아나티샤는 말이 없었다.

        그저 달이 잘 보이는 곳에 주저앉아, 멍하니 달을 바라볼 뿐.

       

        그런 그녀의 옆에 앉자, 아나티샤는 달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라그나님.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전…… 평생 황녀가 아니었어요. 뭐, 진짜 황녀가 아니긴 했지만요.”

       

        그냥 비유였다며 애써 설명하던 아나티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으며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황녀 취급도 못 받았고, 모욕받고 무시당하기만 했죠. 진짜로 맞거나 죽을 뻔한 일도 있었고요.”

       

        “…….”

       

        “사실 라그나님과 이곳으로 왔을 때, 화가 난 와중에도 조금은 안심했어요.”

       

        죽지 않아도 되는구나.

        무늬만 황녀인 척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도란도란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나티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은 채,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그저 조용히 들어 주었다.

        인간이 아니기에, 아나티샤의 일을 공감해 줄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 정도뿐이니까.

       

        “이제 전 황녀가 아니예요. 누가 뭐라도 그렇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아나티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지금부터가 이 아이의 고민이겠지.

       

        “그런데 아직도 제가 황녀래요. 심지어 저 때문에 전쟁까지 벌어졌다고 해요.”

       

        “…….”

       

        “알아요. 저는 핑계고, 그저 라그나님의 힘이 목적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사람들은요? 저들의 욕심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나티샤.

        나는 그저 그녀의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            *            *

       

       

        – 몬가가 몬가네.

        – ㅠㅠㅠ

        – 아이고.

        – 뭔가 슬프네.

        – 짠하다

        – ㅠㅠ

        – ㄹㅇㅋㅋ

       

        = “짠하네요.”

       

        “그러하느냐?”

       

        나로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다.

        나 역시 나를 따르는 이들을 다스리는 입장이지만, 그때 아나티샤가 느꼈던 ‘죄책감’은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아나티샤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의 욕심 때문에 희생당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나티샤가 죄책감을 느낀단 말인가?

        내가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녀가 왜 죄책감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뭐,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그 후에도 며칠간 아나티샤는 어두운 표정을 유지했다.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겠지.

       

        = “따로 위로는 안 해주셨어요?”

       

        “내가 뭘 알아야 위로해 주지 않겠느냐?”

       

        ‘위로’라는 것은, 위로 대상의 아픔을 들어 주거나 공감해 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과 공감할 수 없는 내가, 어떻게 인간을 위로해 준단 말인가?

        심지어 인간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던 그 시절에 말이다.

       

        – 하긴.

        – 일리가 있음.

        – ㅇㅇㅇㅇ

        – 그러네.

        – 지금도 라나님이 위로해주시는 거 상상이 안 되는뎈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자기 객관화가 잘되시는 라나님ㅋㅋㅋㅋ

        – ㅋㅋㅋ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였단다.”

       

       

        *            *            *

       

       

        “음?”

       

        나는 고개를 돌렸다. 

        산맥의 아래로 수많은 인간들이 몰려온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단순히 인간의 무리라고 하기에는, 그 숫자가 상당했다.

        대략 100명 정도?

       

        물론 ‘상단’이라고 부르던 인간들의 무리도 저 정도 숫자가 다니기는 했으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는 이들이다.

        결코 인간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곳으로 올 이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전부 금속을 걸치고 있군.’

       

        남편의 능력을 계승했기 때문일까?

        워낙 오랫동안 금속과 붙어 지내다 보니, 이 거리에서도 금속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 후각에, 산맥 아래에 모인 인간들이 전부 금속을 걸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일반적인 인간보다 더더욱.

       

        ‘군대라는 것인가?’

       

        오로지 전투를 위한 인간들의 무리.

        그들이 산맥 아래에 모여들었다.

       

        ‘어쩔까?’

       

        평소라면 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나티샤와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이들이니까.

        애초에 이곳이 내 영역이라고 선포한 것도 아니고, 내 영역으로 선포한 곳도 그렇게 넓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일반적인 인간이 감히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딱히 영역을 침범당하는 경우도 없었다.

       

        본래 ‘영역’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먹이를 구하기 위한 지역을 의미한다.

        먹이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경쟁자까지 경계하기는 싫으니, 영역을 설정해 다른 경쟁자를 배제하는 것.

        그것이 본래 ‘영역’의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먹지 않아도 생명 활동이 가능한 나에겐 영역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아나티샤라는 새끼 인간…… 아이를 키워야 했기에 최소한의 영역만 가졌을 뿐.

        심지어 그 아이도 이젠 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더욱 영역에 집착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나티샤를 노렸던 세 기사들을 본 것이 얼마 전이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군대가 이곳에 도착했다?

        저들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            *

       

       

        “그래서 나는 아나티샤에게 말하기로 했단다.”

       

        – ㅇㅇㅇ

        – 본인 일이기도 한데, 아는 게 좋지.

        – ㅇㅇㅇㅇㅇ

        – 맞는 판단인 듯?

        – 그냥 몰래 처리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 좀 어렵네.

       

        시청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다.

        뭐, 본래 이런 일은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는 하다.

        그냥 그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할 뿐이니까.

       

        – “그래서, 아나티샤가 뭐랬어요?”

       

        “나에게 이야기를 들은 아나티샤는, 우선 그들과 만나 보기로 했단다.”

       

       

        *            *            *

       

       

        지금 산맥 아래에 모인 군대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지난번에 보았던 세 기사와 같이, 그 볼레스토 공작이라고 하는 인간의 군대일 가능성.

        그 경우에는 아나티샤에게 좀 더 우호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아나티샤가 꼭 필요할 테니까.

       

        문제는 반대의 경우.

        나와 계약을 맺었었던 황실의 군대일 경우다.

       

        그들의 처지에서는 아나티샤와 내가 상당히 거슬릴 것이다.

        그러니 최선은 아나티샤를 죽이거나, 혹은 사로잡는 것.

       

        ‘물론 내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지만…….’

       

        상식이 있다면, 드래곤인 내가 지키고 있을 아나티샤를 노릴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상식이 있었다면, 감히 아나티샤와 자기 딸을 바꿔치기하려고 했었겠는가?

        나는 이미 그들에 대한 상식을 포기했고, 그렇기에 나는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를 찾아온 이들은…….

       

        “저기! 마녀가 있다!”

       

        “죽여라!”

       

        와아아아아아!!

       

        음.

        아무래도 후자인 모양이었다.

       

        “하아~!”

       

        “…….”

       

        나와 같은 생각한 모양인지, 아나티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아나티샤의 등을 토닥여주며, 나는 물었다.

       

        “내가 처리할까?”

       

        나라면 저들이 들고 있는 모든 금속들을 조종해, 저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혹시나 목숨을 빼앗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간단하게 팔다리 하나씩 날려 버리는 것 정도로 타협할 수도 있고.

        어쨌든 그 모든 과정을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으로 해치울 수 있었다.

       

        “아뇨.”

       

        하지만 그런 내 의견을, 아나티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건 제 일이에요. 당연히 제가 해결해야 하고요.”

       

        “그렇구나.”

       

        어느새 훌쩍 큰 아이의 말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다 큰 내 아이들이 독립을 할 때 느꼈던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제 아나티샤의 말대로, 결혼해서 독립하기만 한다면 완벽하련만…….

       

        “……이상한 생각 하시는 거 아니죠?”

       

        “내가 이상한 생각하는 것 같으냐?”

       

        “네.”

       

        “…….”

       

        난 억울하다.

       

        평소 아나티샤가 짓던 ‘볼을 부풀리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서 시선을 뗀 아나티샤가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후우~!”

       

        “무기라도 만들어 줄까?”

       

        인간은 질긴 가죽도, 따뜻한 털도, 날카로운 발톱이나 송곳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뛰어난 두뇌와 이성, ‘손’이라는 기관을 통해 인위적인 ‘가죽’, ‘털’, ‘발톱’을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병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인간의 가죽’이요, ‘옷’은 ‘인간의 털’이며, ‘무기’는 ‘인간의 발톱’이다.

        당연히 그 어떤 것도 없는 아나티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숫자에서도 밀리는데, 무기와 가죽이라도 동등하게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괜찮아요.”

       

        하지만 아나티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지켜봐 주시겠어요?”

       

        “……그래.”

       

        걱정은 되지만, 아이를 믿어 주는 것 역시 부모의 역할이겠지.

        비록 난 이 아이의 친부모가 아니지만, 친부모로부터 부탁을 받은 보호자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거라.”

       

        나는 부모 대행으로써,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마.

       

        “고마워요.”

       

        내 말에 환한 미소를 돌려준 아나티샤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죽어라!!”

       

        그리고 가장 먼저 도착한 ‘기사’가 오러를 두른 검을 내려치고…….

       

        터어어어어엉!!

       

        “……에엥?!”

       

        아나티샤의 압축 근육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압축 근육 특유의 단단함.

        그리고 근육에 두른 오러의 방어력.

        마지막으로…… 공격이 적중하는 순간, 0.001초의 순간만 압축을 풀어 근육을 팽창시켜 상대의 공격을 튕겨 내는 ‘머슬 임펙트’의 방어 기술인 ‘리플렉션 바디’의 발동까지.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방어에 기사의 검이 튕겨 나갔다.

       

        “후우우우~!”

       

        후우우우웅!!

       

        그리고 양팔이 위로 들리며 텅 비어 버린 기사의 몸을 향해, 아나티샤의 주먹이 나아간다.

        겉보기에는 그저 가녀린 주먹이나…….

       

        투콰아아아아앙!!

       

        “푸컥?!!”

       

        아나티샤의 주먹이 닿은 기사의 철제 갑옷이 움푹 파이며, 그대로 하늘 위로 치솟았다.

        ‘리플렉션 바디’와 같은 원리다.

        주먹이 상대에 적중하는 그 짧은 순간, 압축된 팔 근육을 재빨리 팽창시키는 것으로 강력한 일격을 날리는 ‘머슬 임펙트’의 공격 기술.

       

        “제트 펀치!”

       

        투콰아아아앙!!

       

        “케에에에엑!!”

       

        마찬가지로 두 번째 기사를 방패째로 날려 버리는 아나티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인들이여. 보고 있는가?

        자네들의 아이는, 분명히 장군감이다.

       

        그날.

        100여 명의 인간 군대는 대략 5시간 만에 제압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후피집 로맨스 ‘비슷한 것’이라고 했지, 진짜 로맨스라고는 안 함. (진짜임.)

    이제부터 패왕 아나티샤의 일대기가 시작됩니다. (아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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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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